체스터턴, 길버트 키스 Chesterton, Gilbert Keith(1874~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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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신앙》의 표지.

《정통 신앙》의 표지.

영국의 시인이자 수필가. 소설가. 단편 소설 작가. 전기 작가. 비평가. 아일랜드의 극작가인 쇼(G.B. Shaw, 1856~1950)나 영국의 소설가인 웰스(H.G. Wells, 1866~1946)와 함께 20세기 초 영국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지성인이었다.
〔생애와 작품〕 체스터턴은 1874년 5월 29일 런던의 중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켄싱턴의 경매가이자 부동산 업자인 아버지 에드워드와 스코틀랜드계인 어머니 마리 루이스는 모두 영국 성공회 신자였으나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편에 속하였다. 후에 그는 《자서전》(Autobiography, 1936)에서 자신의 유년 시절이 '진정한 삶 을 살았던 시기였으며, 삶을 종교적으로 보는 통찰력을 갖게 하였다고 술회하였다.
그는 세인트 폴 공립 학교에서 원만한 교우 관계를 가졌으며, 친구들과 토론 그룹을 만들어 《토론자》(Debator) 라는 회지를 내며 많은 기고를 하였다. 시를 써서 상을 받기도 하였으며, 미술에 재능을 보여 1893년에 런던의 슬레이드(Slade) 미술 학교로 진학하였다. 여기서 그는 정신적 · 감정적 위기를 맞게 되는데, 현실은 실재하는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투사일 뿐이라고 생각하였고, 인간 실존에 관한 회의와 현상학적 세계에 대한 의심은 그를 자신 속에 침잠시키고 종교적 회의론에 빠지게 하였다. 이때의 경험은 후에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악에 대한 그의 이해를 더욱 심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체스터턴은 이러한 정신적 방황에서 벗어나 1901년 프랜시스 블로그(Frances Blogg)와 결혼하면서 더욱더 활기찬 생활과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1895년 슬레이드 미술 학교를 자퇴한 그는 출판사의 편집인으로 일하면서 시나 기사, 미술 비평 등을 기고하였다. 이때 쓴 시들은 1900년에 《현자(賢者)들의 유희》(Greybeards at Play)라는 시집으로 출간되었는데, 그가 그린 그림들과 함께 희화화한 시들을 주로 수록하였다. 이 시집은 그의 대표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의 특기인 풍자적이고 코믹한 시의 습작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후 왕성한 창작 활동을 계속한 그는 《백마의 노래》(The Ballad of the White Horse, 1911)가 출간될 즈음에 이미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칼럼니스트 겸 저널리스트, 시인, 사회 저명 인사였고, 이러한 명성은 그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체스터턴의 성공은 부인 프랜시스의 완벽한 내조의 힘이 크다. 그녀는 지독한 건망증으로 유명한 남편의 유능한 개인 비서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열성적인 영국 성공회 신자로서 그를 신앙으로 이끌었다. 1913년에 체스터턴은 영국의 보수적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모든 가정이 적어도 하나의 개인 사업을 가져야 한다는 '분배주의' (Distributism) 사상을 피력하였다. 《자서전》에서 그는 "작은 나라들과 작은 가정들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 나 의 소망이었다. 인권은 재산을 가질 권리를 포함하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재산권을 옹호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분배주의' 는 경제학적으로는 사유 재산을 가능한 한 작은 단위로 나누는 사유권의 민주주의를 의미하고, 사회학적으로는 시민들 사이에 공동체 의식과 친밀감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이다. 기업 독점 및 국가 사회주의 체제와 같은 거대한 비인간적인 제도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 고립과 이탈을 방지하고, 재산을 최소의 단위로 분리 각 개인이 사유 농장과 사업을 갖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체스터턴은 인간의 행복은 "한 사람이 하나의 사업을 소유할 때 의미가 커진다" 고 말하는데, 이렇게 사회적 단순화가 이루어질 때 어린이의 순진무구함과 경이로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회복할 수 있고, 이는 인간의 행복과 자연적 신비주의의 근저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에 대한 찬미의 시작이다.
그는 중세 사상에서 '분배주의' 와 비슷한 선례를 발견하였고, 이는 1922년에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정치관은 후에도 정리가 잘 안 되어서 파시즘이나 반유대주의와 연관된 것으로 오해받기도 하였다. 그의 가톨릭 개종은 그보다 75년 전 영국 성공회 신부였던 뉴먼(J.H. Newman, 1801~1890)의 경우처럼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뉴스거리였다. 개종 이전에도 체스터턴은 가톨릭을 주제로 한 작품을 집필하였으나, 개종 이후 그의 작품은 예외없이 가톨릭 신앙에 관련되거나 가톨릭을 옹호하는 주제를 다루었다. 그가 쓴 《정통 신앙》(Orthodoxy, 1908)은 그리스도교에 관한 설명 중에 가장 창의적이고 영감을 주는 저서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St. Francis of Assissi, 1923)나 인간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중심으로 고찰한 《영원한 인간》(Everlasting Man, 1925)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노팅힐의 나폴레옹》(The Napoleon of Notting Hill, 1904)은 문학계에서 20세기 영국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체스터턴의 대표작이다. 민주화가 지나쳐 도박성 뽑기로 지도자들을 선택하는 영국 정부를 묘사하는 1984년이 배경인 이 작품에서 체스터턴은 확대주의로 치닫는 제국보다는 작은 기관이나 공동체를 옹호하는 정치적 신념을 보여 준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목요일의 사나이》(The Man Who Was Thursday, 1908)는 판타지 소설로서 엘리엇(T.S. Eliot, 1888~1965)이나 오든(W.H. Au-den, 1907~1973) 등 많은 문필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체스터턴의 작품은 대부분 코믹하고 풍자적인 것 또는 인간의 운명과 신앙의 본질에 관해 진중하고 명상적인 소재를 다룬 것 등 두 종류로 대별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판타지성이 강하고 상징적인 것이 특색인데, 그는 상징이나 우화, 종교적 우의(寓意)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시인과 광인》(The Poet and the Lunatics, 1929)의 한 인물은 "그 어떤 진리도 우화를 통해서 말해져야 한다"라고 말하며 그를 대변하고 있고, 블레이크(W. Blake, 1757~1827)에 관한 전기에서 체스터턴은 "이 세상의 모든 꽃 하나, 돌멩이 하나가 모두 우리
가 열쇠를 잃어버려 해독할 수 없는 상형 문자이다"라 말하였다.
그의 신앙적 확신은 하느님은 현상적이고 일상적인 곳에 현존하고 삶의 가치 속에, 어린이의 경이로움 속에, 공동체 의식 속에, 그리고 고통이 아닌 기쁨 속에 존재한다는 데 기반을 두었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늘 보통 사람의 삶에 있었고, 이런 맥락에서 그의 가톨릭 신앙도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수용하는 영혼적 민주주의의 한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친구인 오코너(John O'Co-nnor) 신부를 모델로 창조한 사제이자 탐정인 브라운 신부는 그의 작품 속 인물 중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인물이다. 1911년 출판된 《브라운 신부의 결백》(The Inno-cence of Fr. Brown)을 위시하여 범죄자의 심리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이 탐정 소설 시리즈는, 각 일화마다 그리스도교 인문주의를 가르치고 있어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우화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도덕성과 생생한 상상력, 풍부한 묘사로 탐정 소설이라는 분야를 더욱 문학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체스터턴은 1936년 6월 14일 버킹엄셔의 비컨즈필드(Beaconsfield)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교황 비오 11세(1922~1939)는 그에게 '가톨릭 신앙의 옹호자' 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평 가〕 체스터턴은 작가 이외에도 철학자, 역사가, 신학자, 사회 비평가, 문학 비평가라고 여겨질 만큼 교육, 과학, 문학, 신학, 사회학은 물론, 심지어는 괴물, 상대성 이론, 금발머리, 눈썹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관심과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의 글들은 그 특유의 우아한 리듬과 경구, 기발한 은유 등으로 특징지어지지만, 너무 장황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체스터턴의 문학은 당대의 사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그의 수단이었다. 그는 예술가이자 시대의 교육자였고, 선구자, 예언자 역할을 하기를 원하였다. 힘 없는 자와 가난한 자들의 대변자로서 그들의 행복을 지켜 주는 것을 작가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생각하였고, 탐정 소설에까지 신비주의적 요소를 가미하는 등,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소재로 한 종교적 우의를 통해 사회 개혁을 꾀하였다. (→ 가톨릭 문학, 영미의 ; 영국)
※ 참고문헌  Joseph Pearce, Wisdom & Innocence : A Life of G.K. Chesterton, Ignatius Press, 1997/ Dictionary ofLiterary Biography, vol. 1, Gale Group, 1978. 〔張英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