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體驗

〔라〕experientia · 〔영〕exper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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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의 신비한 혼인으로 반지의 증표를 받은 가타리나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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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의 신비한 혼인으로 반지의 증표를 받은 가타리나 성녀.

사물이나 인간 혹은 어떤 사건과 접촉을 통하여 새로운 실재를 느끼고 발견하며 이해하는 것.
체험은 이웃이나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서,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닌 깨달음을 뜻한다. 그리스도교에서 '체험' 은 전통적으로 '신비(神秘) 체험' 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신비 체험은 영성 생활에서 높은 단계에 있는 신비적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현대 신학자들은 신비 단계에서 겪게 되는 신비 체험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넓은 의미의 신비 체험은 영성 생활의 입문 단계에서부터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입문 단계에서의 체험에서부터 전체까지를 포괄하여 '영적 체험' 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인 생활에서의 영적 · 신비적 체험〕 '체험' 이란 일반적으로 인간이 마음대로 반복해서 재현할 수 있는 어떤 경험일 수도 있고, 체험자 자신에 의해 외부에서 관찰될 수 있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앙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체험 혹은 신비 체험은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전적으로 그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체험이다. 교회의 가르침은 하느님 은총의 자유로운 섭리에 온전히 의탁하고 이 은총에 전적으로 복종함으로써 참된 영적 및 신비적 체험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영적 혹은 신비적 체험은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느끼는 체험이며, 또한 하느님과의 인격적 통교를 이루는 체험이다. 하느님 체험은 무엇보다 무상의 선물이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부르고 기다리며, 인간은 그것을 깨닫고 응답해야 한다. 여기에서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로써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자세에서 두 인격의 관계가 형성되며 영적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영성사에서 영적 성숙(완덕)의 여정은 전통적으로 수덕(修德) 단계와 신비 단계로 나뉘었다. 어떤 영성학자들은 수덕 단계의 사람이란 영성 생활의 입문에서부터 주입 관상 기도의 문턱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에 있는 사람이고, 신비 단계의 사람이란 주입 관상(注入觀想, contemplatio infusa), 수동적 정화(受動的 淨化, passiva purgatio) 및 변형 일치(變形一致, transformata uni-tas)의 단계에 이르는 사람이라고 분류하였다. 다른 학자들은 수덕적인 면과 신비적인 면의 구분을 습득덕〔自然德〕 및 주입덕〔注賦德〕이 우세하냐, 아니면 성령의 은사들이 우세하냐에 따라 판단하였다.
인간 실존적 차원에서 볼 때 수덕적인지 혹은 신비적인지 구분하는 것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영성 생활의 어느 순간에든 수덕적인 면과 신비적인 면 중 어느 한쪽이 더 우세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성 생활은 어느 단계에서 우세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언제나 이 두 가지 측면을 다 포함한다. 신비 현상은 수덕 현상 없이 이해될 수 없고, 진정한 수덕 현상은 그 자체 안에 신비 체험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성학자들은 전통에 따라 협의적인 신비 체험을 영적으로 높이 발전한 신비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면서도, 넓은 의미의 신비 체험이란 영적 생활의 초보 단계에서부터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신비 체험은 공동체적으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교회의 신앙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신비 체험은 또한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는 신앙 진리들에 대한 체험이다. 그리스도인은 기도 생활 안에서, 특히 교회의 성사 안에서 영적 · 신비적 체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기쁨과 죄를 용서받은 평화를 누리며 기쁨, 사랑 등 성령의 결실을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신비 체험은 넓은 의미로 이해되며 영적 체험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의 신비 체험〕 신비 체험은 사도 바오로와 사도 교부들이 그노시스(gnosis)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인식과 이교(異敎)의 인식을 구분하려고 시도하였던 교회 초기부터 논쟁점이 되었다. 이후 신학자들의 계속적인 탐구에 따라 '신비주의' (mysticismus) '신비 체험' (experientia mystica) 등의 용어가 더욱 명확해지면서 아레오파지타의 디오니시오(Dionysius Areo-pagita)에 의해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진 신적 체험을 의미하게 되었다.
신학자들 사이에 정의상 차이점은 있지만 그리스도교 신비 사상의 구성 요소에 관한 공통점의 근거가 있다. 신비 체험은 심리적 사실로서 영혼에 미치는 신적 활동의 인식이며, 또한 능동적 체험이 아니라 수동적 체험이라는 것이다. 성령만이 은사를 통하여 인간 안에 그러한 체험을 낳게 하기 때문이다.
신비 체험의 본질 : 적지 않은 이들이 신비 체험이란, 흔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에서 분리되어 있는 어떤 특수 현상일 것으로 여긴다. 그런 체험은 흔히 자연 현상에서 벗어난 예외적이고 비상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시(幻視 또는 顯示, visio)나 탈혼(脫魂, ecstasis), 말씀(locutio) 사적 계시(私的 啓示, revelatio privata) 등과 연계시키곤 한다. 물론 그리스도교 신비 생활에서그런 특이한 현상이 동반될 수 있지만, 그 요소들을 신비 체험의 본질적 요소라고 여기거나 그것에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종류의 특이한 현상과 신비 체험을 혼동함으로써 신비 체험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영성가들은 그 체험들의 근원이 참으로 초자연적인 것인지 곰곰이 식별해야 하며, 그 체험들이 악마의 속임수나 자기 자신의 상상에 의한 것일 수 있음을 살펴야 한다고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그 체험에 집착하지 말기를 권고한다. 실제로 신비 체험의 대가들은 지상에서 하느님과 함께 이루는 합일의 절정인 '영적 혼인'의 상태에서는 그와 같은 체험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아빌라의 데레사(Theresia ab Avila, 1515~1582)나 십자가의 요한(Joannes a Cruce, 1542~1591)은 환시나 내면에서 들려 오는 말씀들이 영혼의 진보에 하느님의 섭리로 작용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특이 현상들은 신비 생활 초기에 나타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사실 교회에서 시성된 성인들은 모두 그와 같은 비상한 체험들에 대해 초월해 있었으며, 위대한 신비가들 중 많은 이들이 그런 종류의 체험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최고의 그리스도교 신비 체험의 실체는 지극히 순수하며 하느님의 은총에 도달함으로써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때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신비가는 자기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신이 기도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 기도를 진정으로 시작하지 않은 것이라고 신비가들은 말하였다. 자신의 체험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체험 자체가 아니라 체험의 중심을 차지하는 바로 그 대상이다.
그리스도교 신비 체험과 유사한 것들이 다른 종교나 어떤 근원 미상의 신비주의에서 발견될 수 있으나, 성서의 전통과 다른 근원을 두고 있는 체험은 순수하게 그리스도교적인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러한 체험은 어떤 식으로든 하느님의 말씀과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본질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진정한 신비 체험은 오직 교회 안에서만 그 정수가 드러나고, 그리스도교 영성의 전통 안에서 본질을 찾을 수 있다.
성령의 은사인 신비 체험 : 신비 체험은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하느님의 신적 활동에 관한 수동적 체험이며, 초자연적 방법에 따라 작용하는 성령의 은사이다. 은사의 작용은 신비 현상의 본질을 형성하고, 성령의 은사가 작용할 때 신비적 활동이 있게 된다. 즉 은사의 작용은 신비 현상의 일차적이고 본질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어떤 신비적 상태나 신비적 행위에 은사 작용이 결여될 수 없다. 그러나 신비 체험은 은사의 활동에서 일반적으로 있는 것이지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십자가의 요한 등 영성의 대가들에 의하면, 영혼의 어두운 밤이나 신비로운 수동적 정화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그러한 체험은 결여되어 있다.
신적 행위에 관한 자각은 신비적 상태와 수덕적 상태 간의 기본적 차이점 중 하나이다. 수덕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믿음과 사랑 안에 있긴 하지만, 아직 인간적 방법으로 그리스도인 생활을 영위한다. 그들은 신적인 것을 일반적으로 내성과 추리에 의해서 인식한다. 그러나 신비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은총 생활의 실재를 자신들 안에서 체험하게 된다. 사실 신비가들은 자신들이 체험하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들은 사랑의 심리적 수동성이 자신들의 생활을 지배함을 깨닫게 되며, 하느님과 일치시키고 거기서 우러나는 결실을 누리게 하는 자신들 밖의 어떤 존재가 개입해 있음을 다소 감각적으로 느낀다. 여기에서 주요 동인은 성령이다. 그리고 영혼은 성령의 활동에 활기있게 반응한다.
신비 체험의 강도는 은사의 작용에 따라 다르다. 신비 행위가 수덕 상태에서 일어날 때 은사는 일반적으로 약하게 작용하는데, 그것은 인간 주체의 불완전한 자세가 그 이상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사가 신적인 것을 체험하게 하지만, 그 상태는 신적인 것을 겨우 감지할 정도로 미약하다.
신비 체험의 본질과 단계는 이러하다. 처음에는 주체의 한계성으로 성령의 은사가 불완전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 체험이 미묘하고 약해서 거의 감지할 수 없다. 그러다가 은사의 활동이 영혼 안에서 점점 강화되고 더욱 빈번해지면 영혼은 신비적 상태에 들어가는데, 이러한 상태의 본질적 특성은 인간적 양식에 의한 주입 덕행의 단순한 실천보다 신적 양식에 의한 은사의 활동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동적 정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은사의 신적 작용은 영혼이 모든 집착으로부터 정화됨을 목적으로 한다. 그것은 영혼으로부터 하느님에 대한 어떤 감미로운 인식을 빼앗아 갈 뿐 아니라, 영혼에게 하느님의 부재감과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상반되는 체험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은사는 덕 실천에 초자연적 양식을 제공하는 본질적이고 일차적인 결과에 국한되고, 이차적이며 우유적(偶有的) 결과인 신적인 체험은 이루게 하지 않는다.
관상 기도와 신비 체험 : 주입 관상 기도가 성령의 은사에 포함되기 때문에 그것이 신비적 활동임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신비 활동이 주입 관상 기도를 반드시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신비적 활동과 주입 관상 기도는 구별될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이다. 주입 관상 기도가 성령의 은사적 작용을 요구하기 때문에 신비적 활동이 없는 주입 관상 기도는 불가능하나, 주입 관상이 없는 신비적 활동은 가능하다. 주입 관상과 신비적 활동을 구분하는 이유는 성령이 내리는 은사들의 본질과 분류를 고찰해 보면 쉽게 이해된다. 은사들이 초자연적 방식으로 작용하고 따라서 영혼은 은사의 작용 아래 수동적이거나 수용적이므로, 은사는 신비적 활동의 본질적 요소이며 은사의 모든 활동은 신비적인 것이다. 그러나 감성적 은사들은 지혜와 이해의 지적 은사에서 비롯되는 주입 관상 기도를 불러일으키지 않고서도 신비적 행위를 낳을 수 있다. 그러므로 신비적 행위와 주입 관상 기도는 구분되며 별개의 것이다.
십자가의 요한은 수동적 정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영혼은 마치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을 가진다고 표현하였다. 하느님이 현존하고 영혼과 일치하는 것 같은 체험이 전혀 없으나 수동적 정화는 신비적 작용이다. 그러므로 주입 관상은 모든 신비 활동의 필연적 구성 요소가 아니라 신비 활동의 한 유형이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어떤 이는 관상 생활로, 어떤 이는 활동 생활로 부름을 받는다. 관상적 추구를 통하여 혹은 활동적 추구를 통하여 개인이 완성하도록 하는 덕이 있으며, 관상적 작용이나 활동적 작용을 신비적 차원에까지 올려 놓을 수 있는 성령의 은사가 있다. 그러므로 주입 관상이 반드시 모든 신비 활동의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들 중 많은 분들은 성령의 은사들이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활동하는 다채로운 방법을 제시하였다.
비상한 신비 체험 : 신비가들에게 때론 정신 및 육체적으로 비상한 신비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현상은 성화 은총이나 덕행, 성령의 은사와는 다른 초자연적 원인에서 나온다. 이것은 부현상(副現象, epiphenomena) 또는 비상한 현상(paranomal manifestation)에 속한다. 이런 신비 현상은 비상한 은총처럼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지거나, 아니면 교회의 성화와 발전을 위하여 하느님이 어떤 이의 성덕을 증거하는 표시가 될 수도 있다.
① 환시 : 이것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대상이 초자연적으로 감지되는 것이다. 여기서 '초자연적' 이라 표현하는 것은 참된 환시를 망상이나 환각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망상이나 환각은 자연적 원인이나 악마의 능력에 의해 일어나는 가짜 환시이다.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는 환시를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첫째, 유형적 환시(corporeal vision)는 사람이 정상적으로 볼 수 없는 어떤 대상을 육안으로 감지하는 것으로, 발현(發顯)이라고도 불린다. 둘째, 상상적 환시(imaginative vision)는 상상하는 중에 초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영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 환시(intellectual vision)는 내적 또는 외적 감각에 박힌 상(像)이나 어떤 감각적 인상의 도움 없이 초자연적으로 생겨나는 순수 직관지(直觀知)이다. 지적 환시의 대상은 일반적으로 지성의 자연 능력을 초월한다.
② 말씀 : 이는 흔히 환시에 동반되나, 둘 중 어느 한 가지만 일어날 수도 있다. 말씀은 초자연적인 영향으로 일어나는 어떤 확언 또는 선언이다. 말씀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는데, 음파를 통해 청각으로 감지할 수 있도록 귀에 들리는 말씀과 상상으로 감지되는 상상적 말씀 그리고 지성이 직접 감지하는 지적 말씀이 그것이다.
③ 사적 계시 : 계시란 교회의 일반적 선익이나 어떤 개인의 유익을 위하여 숨은 진리나 하느님에 관한 비밀이 초자연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숨겨진 진리를 덮고 있는 베일이 말씀 또는 예언에 의하여 초자연적으로 걷히고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천상적인 모든 계시는 예언의 은사를 전제하고, 예언의 해석은 영의 분별을 요구하게 된다.
공적 계시는 마지막 사도의 죽음과 더불어 끝났다고 교회의 신학은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그 후에 받은 계시는 그것이 아무리 교회에 영적인 유익을 가져다준다 하더라도 모두 사적 계시에 속하는 것이다. 성서와 하느님의 종들의 시성 절차에서 확증되는 것처럼 예언의 은사를 받은 이들이 있었지만, 사적 계시는 성서와 성전에 포함된 진리로 구성되는 신앙의 유산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신중한 판단 후에 어떤 계시가 믿을 만한 것이라고 결정되면, 계시를 받은 이는 그것을 신앙의 정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④ 오상 : 오상(五傷 또는 聖痕, stigma)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를 닮은 상처가 신체에 저절로 나타남을 의미한다. 상처가 때로는 그리스도의 가시관에서 오는 것처럼 머리에 생기기도 하고, 또 채찍의 상처처럼 신체 전면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보통 손, 발, 옆구리에 나타난다. 상처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 영구적이거나 주기적인 것, 일시적인 것, 동시적인 것 또는 연속적인 것이 있다. 거의 언제나 탈혼자에게 일어나고 육체적 · 정신적 고통이 뒤따른다.
오상을 받아 그리스도의 수난과 일치하였다고 인정된 최초의 인물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Franciscus Assisii, 1181/1182-12226)이다. 그는 알베르노(Alvemo) 산에서 1224년 9월 17일 오상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성인 이전에도 오상을 받은 이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후에는 더 많이 있었음이 확실하다. 오상의 참 원인을 식별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참된 것과 피상적인 신비 현상을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침들이 있다.
〔현대의 신비 체험〕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완성(완덕, 거룩함)에 부름을 받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일부 예외적인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인의 지위, 완덕에 부름을 받았다고 일깨워 준다(교회 5장). '거룩함' [聖性]은 근원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하느님만이 홀로 거룩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일치 생활이 하나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유일한 주님의 생명과 일치하면서 홀로 거룩한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고, 그분의 유일한 신비체인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한편 공의회는 '거룩함' 의 다양성에 대하여 가르친다. 그리스도와의 일치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유일한 그리스도교의 '거룩함' 이 각기 받은 고유한 은사와 성소 그리고 직무에 따라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함' 이 지닌 다양성은 그리스도인의 신비체인 교회의 본성을 통하여 잘 이해된다. 그 안에서 성령은 유기체적 활성화와 조화로운 업무를 위하여 각자 다른 위치와 기능 그리고 다른 능력들을 부여하면서 구성원들을 그리스도와 일치시킨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성원들 간의 이러한 일치와 차이는 교회를 더욱 활기차고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게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기 자신의 삶의 위치와 방법 안에서 성령의 은사의 작용으로 다양한 신비 체험을 한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최초의 사랑의 행위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신비 체험의 씨앗을 받아 간직하도록 한다. 이 씨앗은 믿음과 사랑이 발전함에 따라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신비 체험은 분명히 인간 자신의 노력을 뛰어넘는 무상의 은총으로 증대된 의식 안에서만 전개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상하거나 부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완덕을 향하여 정상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신비 체험은 믿음 안에서 주님과 일치해 가는 생활에서 당연한 귀결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 사적 계시 ; 신비 ; 신비주의 ; 오상 ; 종교 체험 ; 특수 현상 ; 환시)
※ 참고문헌  G. Moioli, Esperienza cristiana, Nuovo dlizionario di Spritualita, Edizioni Paoline, Roma, 1979, pp. 536~542/ C. Vagaggini, Dizionario enciclopedico di Spritualita, Edizioni Studium, Roma, 1975, pp. 720~728/ 조던 오만, 이홍근 역, 《영성 신학》, 분도출판사, 1991/ 루이 부이에, 정대식 역, 《영성 생활 입문》, 가톨릭출판사, 1992/ 방효익, 《영성과 체험》, 성바오로출판사, 2001/ 박재만, 《영적 지도》,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6. 〔朴載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