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회 성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요셉. 세례명은 안톤 아우구스트(Anton August). 한국명은 송만협(宋萬協)
첸글라인은 1911년 10월 3일 독일 바이에른(Bayem) 주 밤베르크(Bamberg) 대교구의 오베르슐라이흐나흐(O-berschleichnach)에서 태어났다. 1924~1928년까지 뮌스터슈바르자흐(Münsterschwarzach) 수도원이 베네딕도회 선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운영하던 성 루트비히 소신학교에서 공부하였고, 이후 뷔르츠부르크(Würzburg)의 새 김나지움을 1933년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 5월 12일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수련을 받고 1934년 5월 13일에 유기 서약을 한 후, 그해 성 오틸리엔 대아빠스좌 수도원에서 운영하던 철학 대학에서 철학 과정을 끝내고, 밖르츠부르크 대학으로 옮겨 신학 공부를 하였다. 1937년 7월 18일 종신 서약을 하고, 8월 1일에는 차부제품(Subdiaconatus)을 받았다.
1937년 8월 29일 7명의 동료 차부제 수도자들과 함께 한국으로 파견되어 9월 3일에 도착한 그는 덕원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계속한 후, 1938년 3월 19일 원산 대목구장 사우어(B. Sauer, 辛上院)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1939년 4월 30일 서울 대목구장 라리보(A.J. La-rrieau, 元亨根) 주교의 주례로 덕원 수도원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1년간 신학 공부를 더 하고 1940년부터 원산 본당 보좌로 사목 활동을 시작하여, 1941~1944년에 신고산 본당 보좌, 1944~1947년까지 신고산 본당 주임 대리, 그리고 1947~1949년까지 나남 본당 주임으로 사목하였다. 1949년 5월 고원 본당 주임으로 있던 당시 북한 공산당에 체포되어 평양 인민교화소에 수감되었다가 8월 평안북도 강계군 전천의 일명 옥사독 강제 수용소로 옮겨져 1953년 10월 23일까지 감금 생활을 하였다. 그 후 만포 수용소로 이송되었다가 북한, 중국, 러시아, 동독을 거쳐 1954년 1월 24일 독일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으로 귀환하였다.
이 수도원에서 손님 담당 신부, 수련장 보좌로 일하다가 1956년 11월 19일 왜관 수도원으로 재파견된 첸글라인 신부는 1960년까지 수도원 원내 소임, 1964년까지 가실(현 낙산) 본당 주임, 1972년까지 화령 본당 주임, 1978년까지 가천 본당 주임으로 사목하였다. 그 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 1988년까지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의 지도 신부로, 1991년까지 대구 대명동의 가톨릭 신학원 고해 담당 신부로 일하였다. 1991년 8월 17일 독일로 휴가를 떠났는데, 그해 10월 30일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에서 심장 마비로 선종하여 수도원 묘지에 묻혔다. → 가천 본당 ; 고원 본당 ; 낙산 본당 ; 한국 전쟁 ; 화령 본당)
※ 참고문헌 D. Drexl OSB, Necrologium congregationis Ottiliensis 1888~2000, St. Ottilien/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자료집 제2집》,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1/ 왜관 수도원 편, 《옛 등걸에 새 순이》, 분도출판사, 1985. 〔宣智勳〕
첸글라인, 요제프 Zenglein, Josph(1911~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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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