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밝히는 데 사용되는 물건. 밀랍이나 백랍, 쇠기름 따위를 끓여 둥근 막대기 모양으로 굳히면서 가운데에 실 따위로 심지를 넣어 만든다.
초는 악마의 힘을 억제하기 위해 빛을 사용하는 이방 관습에서 유래되었다. 또한 신과 죽은 자들, 그리고 황제들을 숭배하기 위해 로마인들에 의해 사용되었으며, 유대교의 성전과 회당에서도 초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관습이 그리스도교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상의 차이가 있다. 사도 행전 20장 8절에 언급된 "수많은 등불"은 엄밀한 의미에서 전례적 용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때 거행된 성찬례는 한밤중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요한 묵시록 4장 5절에 등장하는 "옥좌 앞에 불타고 있는 일곱 개의 횃불"은 당시의 관습을 반영하기보다는 묵시적 환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초 또는 등불의 사용이 카타콤바의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도 현재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초는 초기 교회 때부터 어둠을 밝히는 실질적인 이유로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사용되었다. 초기 교회에서 초는 저녁 기도(lucernarium)를 위하여 사용되었다. 이때 초를 켜는 것은 처음에는 전적으로 기능적인 면을 지니고 있었지만 점차 전례의 일부가 되었다. 3세기부터는 장례 절차를 위해 죽은 자들, 특히 순교자들의 무덤에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4~5세기에는 성인들의 유해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형상들 앞에 놓여졌다. 초는 세상의 빛이며 부활인 그리스도, 하느님의 현존, 기도, 선행, 봉헌, 희생, 사랑, 희망, 하느님의 은총 등의 상징으로 부각되면서 교회의 전례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alis)에 따르면, 로마 제국의 황제인 콘스탄틴 대제(306~337)는 자신이 건립한 베드로 대성전의 제단에서 사용하도록 황금으로 만든 등을 기증하였다고 한다. 또한 교황 다마소 1세(366~384)와 인노천시오 1세(402~417), 철레스티노 1세(422~432)가 기증한 아름다운 관과 가지 촛대, 청동 촛대와 은 촛대에 대해 《연대 교황표》는 언급하고 있다. 이것들 중 일부는 실질적인 것이었던 반면, 봉헌과 흠승의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4세기부터 미사를 시작할 때, 초를 사제들 앞으로 들고 가는 것이 존경의 표시인 동시에 관례가 되었다. 미사에 초가 처음 사용된 것은 7세기경부터이다. 《그레고리오 성무 집전서》(Sacramentum Gregori-anum)에 따르면, 교황의 행렬에 앞서 7명의 사제가 촛대를 들고 들어왔으며, 그 촛대들은 미사가 거행되는 동안 제대 주변에 놓여졌다. 그러다가 11세기에는 제대 위에만 초가 놓여졌다. 그러나 초가 몇 개 놓여야 하는지에 대한 일정한 규칙은 없었다. 중세의 그림들이나 14~15세기의 그림으로 장식된 사본들에도 종종 제대에 초를 놓지 않고 진행되는 미사가 묘사되기도 한다. 반면 13세기부터 중요하게 여긴 관습은 거양 성체 때 신부들 중의 한 사람이 호롱등이나 초를 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대 위에 놓이는 초가 빛을 상징한다는 명예로운 의미는 계속 유지되었다. 17세기 초반부터 미사에서 초의 사용이 의무화되었고, 그 숫자가 정해졌다. 일반적인 미사에서는 2개의 초가 필수적이었으며, 축일 미사에서는 6개의 초가, 교구장이 주례하는 미사에서는 7개의 초가 사용되었다. 교구장은 그리스도를 대변하며(묵시 1, 12) 칠성사를 집전하기에 7개의 초를 켜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1595년의 《로마 주교 예식서》에서 처음으로 규정된 것이었다. 또한 촛대는 일종의 장식용으로 여겨졌으며, 제대 위에 계속 놓인 것이 아니라 전례 때에만 놓였다.
1917년 교회법전에서는 부활 초의 경우 순수한 밀랍이 최소한 65% 이상인 "적어도 최대한 부분" (Saltem ex maxima parte) 사용되어야 하며, 다른 제대 초들은 최소 25% 정도의 "현저한 양" (notable quantity)으로 만들도록하였다. 하지만 1957년 12월에 발표된 경신 성사성(현 전례 성사성)의 교령에 따르면, 지역적인 차이로 그 정도의 밀랍을 확보하기 어렵다면 제대 초를 위한 밀랍의 적절한 양을 각 지역 주교 회의에서 결정하도록 허용하였다. 또한 이 교령은 평미사에서는 2개, 장엄 미사에서는 6개, 그리고 주교 미사(Missa pontificals)에서는 7개의 초를 켜도록 규정하였다. 장엄 미사에서는 성당에 입당하기 위한 행렬 때와 복음서 봉독을 위해 이동할 때 그리고 복음을 읽을 때 2개의 초를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2개 혹은 그 이상의 초를 성찬 전례 중 성체와 성혈을 축성할 때 제대 주변에서 들고 있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들은 1983년의 교회법전에서 사라졌다.
초 축성 예식은 15세기 이후 시작되었다. 현재는 부활초를 제외한 전례 중에 사용하는 초는 주님 봉헌 축일(2월 2일)에 축성하지만, 의무는 아니다. 전례일의 등급 순위에 따라 대축일급에는 6개, 축일급에는 4개, 그 외의 날에는 2개의 초를 켠다. 그리고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입당을 할 때 향을 든 복사 뒤에 촛불잡이가 서며, 독서자가 복음을 읽기 위해 독서대로 갈 때 촛불잡이는 촛불을 들고 함께 갈 수 있다. 이 외에도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의 성상 앞에 초를 밝힐 수 있으며, 세례와 첫 영성체, 사제 서품을 받는 후보자들이 각자 초를 들고 입장을 한다. 이는 촛불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마태 5, 14)라고 한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은 믿음과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을 지니고 세상에 그 빛을 비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 부활 초 ; 빛과 어둠 ; 제대)
※ 참고문헌 J.B. O'Connel, 3, p. 15/ J.P. Lang, OFM, Dictionary of the Liturgy, Catholic Book Publishing Co., 1989, pp. 79~80/ 주교 회의 전례 위원회, 《미사 경본의 총지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8/ 김종수, 《왜 저렇게 하지?-전례의 표징》,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8. [편찬실]
초
[라]candela · [영]can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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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전례를 위해 초를 밝힌 경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