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 본당

草梁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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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동구 초량2동 945 소재. 1951년 5월 1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관할 구역은 초량1 · 2 · 3 · 4동 전 지역. 〔교 세] 1953년 1,485명, 1958년 3,390명, 1963년 4,220명, 1968년 1,986명, 1973년 2,120명, 1978년 2,695명, 1983년 3,034명, 1988년 3,500명, 1993년 3,706명, 1998년 3,320명, 2003년 3,439명. [역대 신부] 초대 코놀스(J.W. Connors, 權若瑟) 요셉(1951. 5~1955. 1), 2대 김경우(金慶佑) 알렉시오(1955. 1~1966. 1), 3대 김성도(金成道) 모세(1966. 1~1968. 1), 4대 안달원(安達遠) 베드로(1968. 1~1971. 10), 5대 박유식(朴裕植) 안드레아(1971. 10~1972. 11), 임시 최영관(崔永寬) 마카리오(1972. 12~1973. 3), 6대 강요안(姜要安) 요한(1973. 3~1974. 3), 7대 최영철(崔榮喆) 알로이시오(1974. 3~1975. 12), 8대 김준필(金俊弼) 아우구스티노(1975. 12~1976. 11), 9대 허성(許城) 야고보(1976. 11~1978. 1), 10대 김기홍(金基弘) 베르나르도(1978. 1~1982. 2), 11대 이상호(李尙護) 라이문도(1982. 2~1983. 2), 12대 오수영(吳壽永) 히지노(1983. 2~1986. 2), 13대 박문선(朴文善) 야고보(1986. 2~1988. 2), 14대 김태호(金兌浩) 알로이시오(1988. 2~1992. 2), 15대 강종석(姜鍾錫) 베드로(1992. 2~1995. 2), 16대 윤희동(尹熙東) 바울리노(1995. 2~2000. 1), 17대 차공명(車孔明) 프란치스코 살레시오(2000. 1~2003. 9), 18대 윤명기(尹明基) 요한 칸시오(2003. 9~현재).
〔전사 및 본당의 설립] 절영도(현 영도)에 있던 부산 지역 첫 본당인 부산포(현 범일) 본당이 1893년 초량에 새 성당을 짓고 이주한 것이 초량 지역의 첫 성당이었다. 이후 부산포 본당 7대 주임 줄리앙(M. Julien, 權裕良) 신부가 본당의 위치를 초량에서 범일동으로 옮길 것을 계획하고 대구 대목구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에게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8대 주임 페셀(P. Peschel, 白鶴老) 신부에 의해 1916년 1월 범일동으로 본당이 이전되어 15년간의 초량 시대는 막을 내렸다.
한국 전쟁으로 전국의 피난민들이 부산에 모여들어 신자수가 증가하자 부산 지역에는 성당 증설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이때 제2차 세계대전으로 본국에 돌아갔던 메리놀 외방전교회 코놀스 신부가 해방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코놀스 신부는 입국 후 초량 지역에 정착하여 사재(私財)를 털고 동료 사제들의 도움을 받아 초량2동 945번지의 대지 150평과 건물 2동을 매입하고 내부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사가 끝나자 대구 대목구장 최덕홍(崔德弘, 요한) 주교의 인가를 받아 1951년 5월 1일 초량 본당이 설립되고 코놀스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코놀스 신부는 미국 가톨릭 복지 협의회(N.C.W.C.)로부터 각종 구제 물자를 제공받아 전교에 힘썼고, 피난 중인 서울 대목구 임화길(林和吉, 안드레아) 신부의 협조를 받아 사목과 전교 활동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이러한 활동들에 힘입어 피난민 신자들과 예비자들이 급증하자 주택을 개조한 작은 성당으로는 신자들을 수용하기가 힘들어졌다. 이에 신자들을 중심으로 성당 건립을 위한 기금 모금과 대지 물색이 이루어졌고, 2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경우 신부가 본당 주변의 토지들을 매입하기 시작하여 456.95평의 토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본당 신자들의 참여로 1956년 11월 부산 최초로 '임마꿀라따 꾸리아' 가 설립되어 이듬해 꼬미시움으로 승격되었다. 1957년 5월 30일에는 본당명을 초량 공교회' 에서 '초량 교회' 로 변경하였고, 1959년 2월 성전 신축 기성회가 구성되어 1961년 4월부터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62년 7월 성당이 완공되어 8월 30일 최재선(崔再善, 요한)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가졌다. 박정일(朴正一, 미카엘) 신부는 2대 보좌 신부로 재임하며 1962년 2월 가톨릭 노동 청년회(J.O.C.)를 설립하여 이후 부산 지역 각 본당의 가톨릭 노동 청년회 창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1964년 11월에는 본당 주보지 <겨자씨>가 발간되었는데, 이것은 교구 주보지인 <가톨릭 부산>의 모태가 되었다.
3대 주임 김성도 신부는 기존 성당 건물 안에 수녀들이 기거할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고자 건물을 개조하여 1966년 2월 수녀원을 준공하고 3월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였다. 4대 주임 안달원 신부는 한국 전쟁 복구 사업과 경제 개발 계획에 의한 산업화로 피난 신자들의 전출입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교적이 정리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임 직후부터 교적 정리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체계적인 사목을 위한 교무 행정 체계가 정립되었다. 또한 안 신부는 지역 복음화를 위하여 교우 가정 명패 달기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평신도들의 능동적인 교회 활동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본당 내 공동체들을 정비하였다.
[정착과 발전] 5대 주임 박유식 신부는 사회 사업을 통한 복음 선교를 이루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72년 '평화 봉사단' 을 조직하여 부산 시내 양로원과 아동 복지 시설을 대상으로 봉사 활동을 펼쳤다. 6대 주임 강요안 신부는 주일학교 교육과 선교 활성화를 통한 미사 참례 배가 운동을 사목 활동의 지침으로 삼았다. 그리고 7대 주임 최영철 신부는 관내에 맞벌이 신자들이 많은 것에 비하여 미취학 아동들을 위한 보호 시설이나 교육 기관은 없음을 알고 탁아소를 설치 · 운영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교구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1975년 3월부터 어린이 탁아소 시설 공사를 시작하여 5월 개원하였다. 8대 주임 김준필 신부는 1976년 8월 《겨자씨 : 본당 설립25돐》을 발간하였으며, 9대 주임 허성 신부는 짧은 재임 기간 동안 본당 내 여러 신심 단체들의 활성화와 사회 봉사를 통한 전교 사업에 주력하였다.
10대 주임 김기홍 신부는 1980년 12월 성당 옆 가옥을 매입하여 내부 수리 공사를 하고 수녀원을 이전하였으며, 옛 수녀원은 교리실과 회합실로 개조하여 1981년 11월 축복식을 가졌다. 또한 본당 내 야간 학교를 개설하여 중등 과정 검정 고시반을 운영, 많은 합격자를 배출하였다. 11대 주임으로 활동한 이상호 신부는 본당의 날 행사를 경로 잔치로 대치하는 등 경로 사상의 고취를 통한 지역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12대 주임 오수영 신부는 신자들의 피정을 권장 · 지원하는 데 사목 활동의 주안점을 두었으며, 성체 조배실을 만들어 1985년 12월 부산교구 최초로 지속적인 성체 조배를 시작하였다. 1984년 10월에는 종탑에 예수 성심상을 설치하여 성당의 위치를 알리고 공경심을 심어 주는 효과를 거두었다. 13대 주임 박문선 신부는 신자 피정에 주력하였으며, 신자들 간의 화합을 중시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본당 전화번호부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14대 주임 김태호 신부는 선조들의 신앙 생활을 본받게 하고자 교구 내에 위치한 성지들의 순례를 강조하였다.
한편 부산 지역에는 시각 장애인들을 위하여 1984년 창립된 맹인 선교회가 있었다. 본래 이 선교회의 사무실은 부산 중앙 본당 안에 위치해 있었는데, 회원이 증가하고 교회의 관심이 높아지자 1988년 초량 본당 관할인 초량1동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따라서 본당에서는 맹인 선교회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갖지 않을 수 없었고, 이들이 기도와 선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레지오 마리애의 창단을 권유하여 1988년과 1994년 각 한 개씩의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다. 1975년 5월 개원하여 운영되어 오던 탁아소는 그 운영을 1981년 1월부터 평신도에게 맡겼는데, 시간이 갈수록 운영상의 문제점이 야기되며 당초 설립 취지와 다르게 변하였다. 이에 김태호 신부는 교구의 허락을 받아 탁아소를 폐쇄하고, 1991년 6월 탁아소로 이용하던 강당을 본래의 모습으로 개조하여 본당의 각종 행사들을 진행하는 데 사용하였다.
15대 강종석 신부는 다양한 홍보 수단을 동원하여 외짝 교우 배우자 모임을 마련, 교회가 가정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널리 알렸다. 그리고 16대 주임 윤희동 신부는 신자들의 성서 지식 함양을 위하여 성경 공부와 성서 쓰기 운동을 진행하였다. 특히 윤 신부는 50년이 넘은 낙후된 본당 시설들을 교체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 1996년부터 건물의 출입문과 창틀을 교체하고 제대와 제단, 강당을 개조하고 액자형 14처를 동판의 14처 상으로 교체하는 등 성당을 개 · 보수하였다. 또한 안치한 지 오래된 성모 성심상과 예수 성심상을 교체하여 1999년 11월 축성식을 가졌다. 17대 주임 차공명 신부는 부산시 도시 계획에 의거하여 2001년 6월부터 본당 우측으로 폭 10m의 도로 확장 공사가 시행됨에 따라 수녀원과 성체 조배실 등 일부 시설이 철거될 위기에 놓이자, 이 기회에 부족한 교육 시설을 신축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차 신부는 새 교육관 건립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였으며, 주차장 설치를 위한 대지 확보에도 전력을 기울였다. 2001년 6월에는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초량 성당 50년사》를 발간하였으며, 2003년 1월에는 새 교육관(지하 1층 · 지상 3층, 149평)을 준공하였다. 현재 18대 주임으로 재직 중인 윤명기 신부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개인 성화를 바탕으로 하는 가정 성화를 사목 목표로 하여 신자 재교육과 신앙 쇄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분할시킨 본당으로는 1962년 7월 수정 본당, 1967년 10월 구봉 본당, 1969년 3월 영주 본당이 있다. (→ 부산교구 ; 범일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教區 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0/ 초량 성당 50년사 편찬위원회, 《초량 성당 50년사》, 천주교 부산교구 초량 성당, 2001. 〔洪延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