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 신학

超越神學

〔라〕Theologia transcendentalis · 〔영〕Transcendent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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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 철학적 방법 원리를 활용하여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 (人間學的 轉換)을 이루려는 신학의 한 노선으로서, 현대 가톨릭 신학의 거장인 라너(K. Rahner, 1904~1984)에 의해 시도되었다.
[정의와 당위성〕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 이란 인간 이해를 하느님 이해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라너가 초월 신학을 통하여 추구하고자 한 것은 신학과 인간학의 화해이다.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신학) 사람은 누구나 인간의 표상과 개념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느님에 대한 모든 이야기, 즉 신학은 우선 인간학이다. 라너는 신학을 인간학적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으로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하였다.
먼저 라너는 시대적 상황이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을 요청한다고 보았다. 그의 이러한 견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서구 사상적 조류의 배경을 일별할 필요가 있다. 현대 서구 정신 사조의 특징은 인간학적 주제(主題)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많은 개별 학문들, 즉 의학, 생물학, 고고학, 심리학, 사회학, 철학, 신학 등은 보다 새롭고 폭넓은 인간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집중적인 학문적 관심은 17세기 근대 초기 계몽기 이래 자연 과학의 발달로, 특히 코페르니쿠스(N. Copernicus, 1473~1543), 케플러(J. Kepler, 1571~1630), 갈릴레이(G. Galilei, 1564~1642) 등 선구적인 천문학자들에 의해 기존 세계관이 붕괴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통용되던 객관적 기본 질서가 붕괴되고 우주 속에서 의지(依支)하던 것들을 잃어버림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포함한 일체의 실재(實在)를, 그리고 그 실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새로이 인식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기존의 객관적 진리들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인간은 모든 의지와 확실성의 근본을 의심 없이 명백한 자기 자신의 사유(思惟) 속에서, 즉 자기 주체(主體) 속에서 찾기 시작하였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라는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의 명제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다. 이제 사유하는 인간 자신이 실재 이해의 구심점이 되며, 인간은 자신의 위대함과 비참함을 새로운 안목으로 관찰하게 되었다. 데카르트로부터 출발해서 칸트(I. Kant, 1724~1804)의 비판 철학과 독일 관념론, 여기서 파생된 변증법적 유물론을 거쳐 현대의 현상학과 실존 철학에 이르는 서구 사조는 구체적인 형태와 성격 면에서 차이를 보이면서도 인간 주체를 실재 이해의 중심점으로 삼는 데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
라너는 인간학적 전환을 이룩한 서구 사상의 조류 속에서 돌이킬 수 없으며 돌이켜서도 안 되는 정신사적 시대의 표정을 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사조는 매우 다의적(多義的)이며 복합적인 요소를 지녔기에 라너는 인간을 절대화하는 사조 속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를 보았다. 반면 인간이 우주 내에서 다른 존재자들과 동일한 하나의 소인(素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자유에 전 우주의 운명이 결정되는 주체라는 인간 중심의 사상적 조류 속에서는 그리스도교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아, 신학에서 포기할 수 없는 정당한 소인을 지니고 있다고 천명하였다.
두 번째로 라너는,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은 신학의 본질상 요청된다고 여겼다. 사실상 그리스도교 신학은 하느님에 대한 일반적 원론(原論)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시 진리에 대한 학문이다. 하느님의 계시가 인간의 구원과 직결되기에 신학은 본래 '구원의 신학' 이다. 이러한 계시와 신학의 본질은 계시의 수용자인 인간이 구원되기 위해 계시의 실재로부터 관통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떤 신학 대상도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라너는 기초 신학적 · 호교적 측면에서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이 요청된다고 하였다.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교의 신학의 수많은 주제들이 신앙의 주체인 인간의 직접적 체험과의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객관적으로 나열되고 있으며, 많은 현대인들이 이러한 교의 신학적 진술들을 믿을 수 없는 신화적(神話的) 표현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또한 신학은 단순히 서술적인 복음 선포와 구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인간의 자기 체험과 교의 신학적 명제들과의 단순한 논리적 · 연역적 연관성과 서술적 연관성을 규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이들 연관성과의 가능성 조건까지도 규명해야 하는데, 초월적 방법에 입각한 인간학적 신학이 바로 이러한 과제를 성취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방법 원리〕 라너는 인간 중심적 신학이 신(神) 중심적 신학과 상치(相馳)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다고 주장하였다. 말하자면 이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한 사건의 두 측면이라는 것이다. 신학의 인간 중심주의와 신 중심주의의 동일성 주장은 신학적 인간관, 신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초월 신학의 하느님 및 인간 개념은 초월적 방법 과정을 통해 얻어진 고유한 성격을 지닌다. 이때 '초월적' (transzendental)이란 표현은 칸트가 사용한 용어이다. 칸트는 "인식 과정에서, 인식 대상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대상에 대한 인간의 인식 양식을 다루는 모든 인식은 초월적"이라고 말한다. 칸트가 인간 인식에서 오로지 대상 인식의 선험적 가능성만을 인정하며 경험적 현상의 범위를 넘는 인식을 다루는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벨기에 철학자로 예수회 신부인 마레(J. Maréchal, 1878~1944)은 신스콜라 철학에서 1920년대에 처음으로 칸트의 초월적 방법을 긍정적으로 원용하여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 사상의 해석에 적용하였고, 라너는 로츠(J.B. Lotz, 1903~ ) , 로너간(B.J.F. Lonergan, 1904~1984), 그리고 코레트(E. Coreth, 1919~ ) 등 다른 가톨릭 철학자들처럼 마레살에 의해 정리된 초월적 방법을 사용하여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적 철학 사상을 주석하기 시작하였다. 사실상 반려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인 <세계 내 정신>(Geist in Welt)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식 원리를 초월적 방법 원리에 입각하여 주석한 작품이었다. 그 후에 발표된 《말씀의 청취자》(Horer des Wortes, 1941)에서도 라너는 인식뿐만 아니라 자유 작용을 초월적 방법으로 분석하여 인간의 형이상학적 구조를 규명하였다.
초기 종교 철학자로서의 라너가 칸트나 마레살처럼 사물적 대상 인식 가능성의 조건 규명에 치중하였던 데 비해, 후기 신학자로서의 라너는 사물뿐 아니라 사물화되어서는 안 되는 인간과 인간 역사의 자기 해석 속에서 구명(究明)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초월적 방법이란 한 특정한 대상을 인식할 때 요구되는 선험적 조건의 사유를 통하여 인식 주체와 대상의 상호 연관 내지 조건 관계 등을 구명하는 원리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다. 인식 본질상 하나의 인식 대상에 대한 질문은 곧 인식 주체인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이기도 한데, 이는 모든 인식이 대상의 특성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인식 주체의 본질 구조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월 신학의 기본 사상〕 라너 스스로 분명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의 초월적 방법의 적용 과정은 현상학적 설명(Phanomenologische Explikation) 초월적 환원(transendentale Reduktion), 초월적 연역(transzendentale Deduktion)의 세 단계로 설명될 수 있다.
<세계 내 정신>에서 라너는 인간의 인식 행위만을 칸트-마레샬 노선에 입각한 초월적 방법에 적용하여 인간을 '세계 내 정신' 이라고 정의하며, 정신의 또 다른 기능인 자유 의지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반면 종교 철학서인 《말씀의 청취자》에서는 인식뿐만 아니라 의지 작용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주체 작용을 초월적 방법에 적용하여 인간의 형이상학적 구조를 규명해 냄으로써, 이 책은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기초 자료가 되었다.
인간은 존재하는 순간부터 기존하는 세계 내에서 특정한 시공간을 점유하는 육체적 존재이다. 그런데 세계 내현존재자(現存在者)로서의 인간은 각 범주적인 주체 행위, 즉 개별적인 모든 인식과 자유 행위에서 자신과 범주적인 대상을 초월하여 필연적으로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이 존재에 대한 질문은 인간이기 위해 필연적으로 하게 되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에 내포되기 때문이다. 라너는 인간 본질의 구조를 분석하기 위한 현상학적 설명 단계에서 이와 같이 일체의 범주적 주체 행위에서 필연적으로 존재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현상을 묘사하고 있다.
초월적 환원 단계에서는 질문 제기의 가능성 조건을 주체 안에서 구명한다.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필연적으로 제기하는 인간에게는 그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이미 선험적으로, 비록 존재에 대한 주제적이고 명시적인 인식은 아니나 비주제적이며 함축적인 지식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존재의 비주제적이며 함축적인 지식을 부정할 경우, 의심 없이 명백한 존재에 대한 질문 제기 현상을 부정하게 되는 모순에 빠지기 때문에 선험적 지식은 반드시 긍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이 주어지는 존재의 지평하에서만 인간의 구체적인 범주적 인식과 자유 작용이 가능하게 된다. 이와 같이 존재가 인간의 범주적 주체 작용의 선험적 조건으로 요청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존재에 대한 질문을 제기해야 하는 인간과의 불가분리적 관계가 현시된다. 라너는 형이상학적으로 주체작용의 선험적 가능성으로 요청된 존재를 신앙의 흠승 대상인 하느님과 동일시함으로써 하느님이 인간 주체의 심층적 차원임을 부각시켰다.
초월적 환원 단계에서 하느님에 대한 비주제적이고 함축적인 지식을 지닌 주체의 본질이 구명된 다음 주체의 범주 작용의 구조가 초월적 연역 단계에서 밝혀진다. 인간이 존재, 즉 하느님께 대한 질문을 필연적으로 제기하는 현상은 인간의 유한성 때문이라고 라너는 지적한다. 인간의 유한성은 특정한 시공간에 속한 육체성에서 직접적으로 유출된다. 육체적인 인간은 세계 안에서 자신을 현시하는 대상인 사물 및 자신과 같은 주체인 타자들과의 구체적인 만남을 통해서만 자기를 성취시킨다. 인간의 정신성이 범주적 주체 작용에서 자신과 대상을 뛰어넘어 존재를 지향하는 초월 속에서 드러나는 데 대해, 라너는 자기 성취를 위하여 자신을 시공간 안에서, 감관화(感官化)해야 하는 육체성 속에서 인간의 역사성(歷史性)을 본다. 인간의 역사성과 정신성은 모든 범주적 주체 행위 속에서 언제나 함께 작용하고 서로 조정된다. 이리하여 라너는 인간을 '역사적 정신' 이라고 정의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이 속한 인간 사회와 사물 세계를 포함하는 역사 안에서 하느님을 인식과 자유-사랑-의 주체 작용의 직접적 대상으로 만나지 못하고, 이 주체 행위를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 비(非)주제적으로 긍정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는 인간의 자기 이해와 성취의 장소가 되며, 인간은 매 주체 작용에서 역사 지향(歷史指向)과 자기 귀환(自己歸還)의 주기(週期) 운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가운데 이 작용의 지평인 하느님 계시에 대한 보다 주제적이며 명시적인 지식을 가지고, 이 계시를 받아들임으로써 보다 완전한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요청되는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은 지금까지 구명된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 은총론의 인간학적 전환을 거쳐 그 기저가 완성된다. 삼위 일체와 육화와 은총의 교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을 이루는 3대 신비이다. 삼위 일체와 육화의 신비가 은총의 신비 속에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은총의 신비는 전 계시사와 구세사의 핵심에 속할 뿐 아니라 그 핵심 자체이다. 라너의 관점에서 보면 은총은 무엇보다 먼저 '창조되지 않은 실재' 로서 '하느님의 자기 전달' 을 가리키며, 하느님의 자기 전달인 은총은 그의 신학 사상의 바탕이 되는 기조 단어이다.
하느님의 자기 전달로서의 은총과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종합하면서 라너는, 하느님 지향적인 인간의 초월적 운동이 하느님으로부터 요원한 가운데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초월적 운동의 무한한 지평인 하느님의 자기 전달인 사랑의 지적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밀접하게 제공하고, 이 자기 전달 속에서 인간의 초월적 운동을 이끌어 간다고 밝힌다. 그리고 하느님은 인간이 바라볼 수 없는 요원한 초월자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직접 선사하는 사랑으로 인간의 가장 내밀한 심층에서 존재한다고 부연함으로써 초월 신학의 기조 사상이 정립되었다.
〔과 제〕 라너가 초월 신학을 통해서 시도한 것은 신학과 인간학의 화해이다. 그러나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은 20세기에 발전한 인간학의 방법론과 연구 결과들을 충분히 수용할 때 실현될 수 있다. 라너는 인간 주체로 전환하는 근대 의식의 흐름과 질문 앞에서 전승되어 온 교회 가르침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사유하는 것에 그쳤고, 자연 과학과 심리학에서 이루어진 인간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음으로써 전래되어 온 가르침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다. 따라서 라너의 위대한 시도인 신학의 '인간학적 전환' 은 여전히 하나의 과제로 남아 있다. (⇦ 호교론 ; → 기초 신학 ; 라너, 칼 ; 신스콜라 철학 ; 초월론)
※ 참고문헌  심상태, 《속 그리스도와 구원》, 바오로딸, 1987. 〔沈相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