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성주군 초전면 대장 1리 655-5 소재. 1980년 1월 5일 성주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성 필립보. 관할 구역은 초전면 · 벽진면 전 지역과 월항면 일부 지역이며, 관할 공소는 달창 · 벽진 · 용봉 공소 등 3개소. 〔교 세〕 1980년 978명, 1985년 1,431명, 1990년 1,410명, 1995년 1,385명, 1999년 1,430명, 2003년 1,211명. 〔역대 신부〕 초대 김상규(金尙奎) 필립보(1980. 1~1983. 5), 2대 이강태(李康胎) 베드로(1983. 5~1986. 1), 3대 손성호(孫成鎬) 요셉(1986. 1~1988. 6), 4대 서정섭(徐正燮) 바르톨로메오(1988. 6~1989. 3), 5대 김정환(金正煥) 미카엘(1989. 3~1991.6), 6대 이창규(李昌奎) 마티아(1991. 6~1994. 8), 7대 정성우(鄭聖羽) 바오로(1994. 8~1995. 2), 8대 이상국(李相國) 그리솔로고(1995. 2~1998. 8), 9대 안상호(安相岵 요셉(1998. 8~2003. 2), 10대 서정만(徐正晚) 이시도로(2003. 2~현재).
이 본당의 설립은 초전 공소의 발전으로 이루어졌다. 성주 본당의 관할이었던 초전 공소는 1950년대에 초전에 거주하던 문종석으로부터 공소 건물 부지 99.17㎡를 기증받았다. 이후 1,438.01㎡의 부지를 추가로 매입하여 1959년 8월 공소 건물의 낙성식을 가졌다. 1978년에는 공소의 관할이 왜관 감목 대리구로부터 대구대교구 소속으로 바뀌었고, 1980년 1월 성주 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상규 신부는 신설 본당이 조속히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성당 부지의 조성과 신앙 공동체의 형성에 주력하였다. 이를 위해 김 신부는 공소 건물(115.70㎡)을 그대로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부속 시설을 마련하였다. 1981년에는 1,160.33㎡의 대지를 매입하여 성당 대지를 확장하였고, 이듬해 6월 유치원을 신축하였다. 2대 주임 이강태 신부는 부임 직후 본당 관할 지역을 7개 구역 15개 반으로 편성하였다. 그리고 기초 공동체 형성의 일환으로 반 단위의 기도와 미사를 실시하여 반원들의 친교를 돈독히 하는 한편, 꾸르실료 교육을 장려하여 신앙 생활의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3대 주임 손성호 신부는 신자 재교육을 위해 재임 중 피정과 공소 신자들을 위한 교리 강의 등을 실시하였다. 또한 레지오 마리애 단체와 반 조직의 운영을 통하여 신자들의 신앙을 활성화시키고자 하였다.
4대 주임 서정섭 신부와 5대 주임 김정환 신부는 신앙 생활의 쇄신을 이루고자 하였다. 1989년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 성체 대회를 앞두고 벌인 한마음 한 몸 운동의 적극적인 참여는 그 쇄신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였다. 한편 성주군 내 3개 본당(성주, 가천, 초전)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성주 3개 본당 신앙 대회' 를 해마다 개최하였는데, 이 행사에서 3개 본당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 체험기를 발표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외부인들에게 교회의 장엄함을 보여 주었다. 8대 주임 이상국 신부는 부임 후 냉담자 회두와 성전 건립을 위한 초석 마련에 사목 활동의 초점을 맞추어 활동하였다. 또한 본당 관할 공소 신자들의 주일 미사 참여 비율을 높이기 위해 주일 아침마다 본당 차를 운행하여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하도록 하였다. 9대 주임 안상호 신부는 본당의 오랜 숙원이었던 성당 신축 공사를 2001년 9월부터 시작하였고, 10대 주임 서정만 신부는 2003년 9월 28일 2년간에 걸친 새 성당(지상 2층, 349평) 신축 공사를 완료한 후 이문희(李文熙, 바오로) 대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1《빛》 164호(1996. 12), 천주교 대구대교구. 〔洪延周〕
초전 본당
草田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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