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에 있는 총대주교좌(Patriarcha-tus)의 최고권자. 한국에서는 1983년의 새 교회법전을 번역하면서 '총주교' 라고 옮겼다.
〔유 래〕 본래 이 용어는 이스라엘 백성의 성조(聖祖)인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하지만 구약성서에서 이 용어는 사제와 레위 가문의 수령(1역대 24, 31), 이스라엘 지파를 다스리는 사람들(1역대 27, 22), 이스라엘 여러 가문의 수령들(2역대 19, 8 ; 26, 12), 백인대장들(2역대 23, 20)을 일컫는다. 신약성서에서는 이 용어를 사용하여 아브라함(히브 7, 4), 야곱의 열두 아들(사도 7. 8-9), 다윗(사도 2, 29)을 일컫고 있다. 이렇게 총대주교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파르티아르케스' (πα-τριάρχης)는 본래 유대인들의 '가부장, 씨족장, 부족장을 뜻하는 용어였으며, 이 단어가 4~5세기부터 교계 제도 안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연로하거나 특별히 존엄한 주교를 지칭하여 총대주교라고 하였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최대 도시의 주교들로 교황에게만 종속되고 해당 지역의 관구장들을 영도하는 으뜸 주교를 뜻하는 용어로 고정되었다.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에서 인정한 총대주교좌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세 곳뿐이었다. 또한 이 공의회에서는 가빠도기아의 가이사리아와 에페소 및 헤라클레아를 수좌 주교좌(首座主教座, Exarchia)로 인정하였으며, 예루살렘은 가이사리아 관구에 속하는 교구였지만 예수가 죽임을 당하고 부활한 성지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명예 수좌 주교좌로 인정하였다. 그 후 330년에 콘스탄티노플이 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자 이곳 주교의 영향력과 지위도 격상되어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을 명예 수좌 주교좌로 인정하였고, 칼체돈 공의회(451)에서는 예루살렘과 함께 총대주교좌로 승격시켰다. 칼체돈 공의회는 또한 5개 주요 교구의 최고권자를 총대주교라고 칭하도록 하였으며, 이 교구들의 서열을 로마,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으로 확정하였다. 이 교구들의 최고권자를 상급 총대주교(Patiiarcha maior)라 한다. 동방 이교(1054) 이후 서방 교회에서는 총대주교의 중요성이 급격히 감소하였으며, 현재 상급 총대주교는 없고 베네치아(1451), 서인도(1540, 1920), 리스본(1716), 그리고 동인도(1886) 등 총대주교의 칭호를 얻은 명예 주교들, 즉 하급 총대주교(Patiarcha minor)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재 동방 교회에서는 특정 지방이나 같은 전례가 거행되는 지역에서 교황 다음의 최고권자로 총대주교가 건재해 있다.
〔총대주교의 권위〕 과거 총대주교의 권위는 막강하였다. 휘하의 관구장들 및 교구장들의 선출을 추인하고 이들에게 주교 서품을 집전하며, 휘하의 관구장들에게 팔리움(pallium)을 수여하고 관할 주교들을 처벌하고, 전체 지역의 상소심을 심판하고, 수도원을 주교의 관할권으로부터 면속시키는 등 실제적인 재치권을 행사하였다. 동방 교회법전 성직자법 규정에 따르면, 총대주교는 그의 예법 교회 소속 주교들만이 투표하는 시노드에서 선출되고 교황의 추인을 받는다(221~239조). 또한 그는 자신의 예법 교회에 속한 모든 계층의 성직자들과 신자들에 대해 으뜸이고 아버지이며 직권자이다(216조) 총대주교가 누리는 특전은 추기경과 비슷하다(273~285조). 서방 교회의 하급 총대주교좌는 명예의 특은 이외에는 아무런 통치권도 없다. 다만 어떤 이에 대하여 사도좌의 특전으로나 승인된 관습으로 달리 확인되면 예외이다(교회법 438조). 현재 하급 총대주교들은 실제로는 관구장 대주교에 대한 존칭과 비슷하다.
〔총대주교좌〕 총대주교가 있는 주교좌를 총대주교좌라 하는데, 이는 총대주교의 직책, 소재지, 통치 구역을 뜻한다. 동방 예법의 총대주교좌는 9개이고, 서방 예법의 총대주교좌는 4개이다. 즉 알렉산드리아의 롭트 예법 총대주교좌와 멜키트 예법 총대주교좌, 안티오키아의 시리아 예법 총대주교좌 · 멜키트 예법 총대주교좌 · 마로니트 예법 총대주교좌, 예루살렘의 라틴 예법 총대주교좌와 멜키트 예법 총대주교좌, 바빌로니아의 칼데아 예법 총대주교좌, 칠리치아의 아르메니아 예법 총대주교좌들은 동방 총대주교좌이고, 동인도 총대주교좌, 서인도 총대주교좌, 리스본 총대주교좌, 베네치아 총대주교좌들은 서방 총대주교좌이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는 오랜 기간 동안 로마 교회와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가 1054년에 동서로 교회가 분리되었다. 이때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및 예루살렘 총대 주교좌들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 쪽에 가담하였는데, 그들은 정통 교리를 지키는 교회라는 뜻에서 자신들을 '정교회' (正敎會, Ecclesia Orthodoxia)라고 지칭하고 전례를 비잔틴 예법으로 거행하였다. 반면 서방은 보편 교회라는 뜻에서 '가톨릭 교회' (Ecclesia Catholica)라고 부르고 전례를 라틴 예법으로 거행하였다. 십자군 시대(1096~1272)와 중세 후기에 동방 교회의 일부가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고 로마 교회와의 친교를 회복하였는데, 이들은 '동방 가톨릭 교회' (Ecclesiae Orientales Catholi-cae)라 불리고 전례를 동방 자율 예법으로 거행하고 있다. 제2차 리용 공의회(1274)와 피렌체 공의회(1439)에서 동서 교회의 재결합이 시도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 당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는 북아프리카, 남부 이탈리아, 시칠리아, 시리아, 팔레스티나, 소아시아, 발칸 반도의 모든 슬라브 민족 국가들을 포함, 600개 이상의 주교좌들을 관할하였다.
오늘날 동방 가톨릭 총대주교좌는 8개이다. 예루살렘의 라틴 예법 총대주교좌(109, 1847)는 팔레스티나와 요르단 및 키프로스에 사는 라틴 가톨릭 신자들을 관할한다.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명의의 라틴 총대주교들은 십자군 철수 이후 로마에 거주하고 교황청에 근무하였다가 그 명의(名義) 총대주교좌들이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에 의하여 1964년에 폐지되었다. 과거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에 종속되었던 교회들은 독자적인 총대주교좌들과 자치 교구들로 분할되어, 오늘날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관할에 속하는 신자는 150만 명 정도이다.
총대주교가 관할하는 교구가 총대주교구(總大主教區, Patriarchatus, patriarchate)이다. 이런 총대주교구로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모스크바 등이 있었다. 교황은 로마의 총대주교로서 라틴어를 학술 용어와 전례 용어로 사용하고, 라틴식 전례를 채택하며, 로마 교회법이 적용되는 서방 여러 나라 전역을 관할한다. 동방의 총대주교구도 전례 양식, 관습 등이 비슷한 교구들의 집합체로 이루어졌다. (→ 교구 ; 주교)
※ 참고문헌 정진석, 《교회법 해설》 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3, pp. 173~199. 〔宋悅燮〕
총대주교
總大主教
〔라〕Patriarcha · 〔영〕Patri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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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