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 신부에 이은 두 번째 한국인 신학생.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양화진에서 순교한 최수(崔燧, 베드로)와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최형(崔炯, 베드로) 성인의 아우. 충청도 홍주에서 최인호(崔仁浩, 야고보)와 황 안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경기도 남양으로 이주해 살다가 1836년 초에 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이어 같은 해 3월 14일 서울 후동(현 중구 주교동)에 있던 모방(P.P. Maubant, 羅伯多祿) 신부 집에 도착한 그는 12월 2일(음력 10월 24일) 동료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과 함께 신학생으로 서약을 하고, 3일 서울을 출발하여 마카오로 향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6월 7일(음력 5월 5일) 마카오에 있는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 도착하여 칼르리(J.M. Callery) 교장 신부 밑에서 신학 공부를 위한 기초 학습을 시작하던 중, 위열병에 걸려 1837년 11월 27일(음력 10월 30일) 17세(혹은 1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 최형)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성 김대건 신부의 활동과 업적》, 한국교회사연구소, 1996, pp. 43~871 〈丁夏祥〉, 《日省錄》 헌종 5년(기해년) 8월 7일/ <金大建>, 《日省錄》, 헌종 12년(병오년) 5월 30일. 〔車基真〕
최방제 (1820?~1837)
崔方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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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