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선 (1919~1987)

崔炳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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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한. 1919년3월 10일 강원도 원성군 신림면 용암리 749번지에서 최영철(요셉)과 이재유(아가타)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43년 4월에 소신학교인 남대문상업고등학교 을조를, 1945년 3월에 성 유스티노 신학교 예과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1952년 9월 25일에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최덕홍(崔德弘, 요한) 주교의 주례로 대구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언양 본당 7대 주임으로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한 최병선 신부는 언양 본당 재임 시 청년회와 성모회를 새로 조직하였고, 인보 공소를 설치하였다. 1953년 11월 거제 본당 5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알마 애육원을 설립하고 원사 벽돌 건물 2층을 신축하였으며, 그 뒤 문산 본당 13대 주임(1955. 5~9)을 거쳐 대봉동 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성전을 건립하기 위해 당시 미국 가톨릭 복지 협회(N.C.W.C.)에서 원조해 준 각종 물자를 신자들의 동의하에 팔아 성전 건립 기금을 모으기 시작하여 1958년 2월 성전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사가 진행되어 가는 중에도 최병선 신부는 마당에 여러 가지 품종의 다알리아를 심어 팔기도 하고, 김장철이 되면 시골에서 고추를 사 와서 팔기도 하는 등 성전 건립 공사에 진력하였다. 이러한 노력 끝에 1960년 4월에 성당을 완공하여 6월 25일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성전이 완공되자 최 신부는 1961년 8월 30일 서울 성가 소비녀회에 요청하여 본당에 수녀들을 파견토록 함으로써 본당 사목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하였다. 1962년 9월 11일에는 교구에서 첫번째로 본당 내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하였으며 1963년 9월 18일 서울 성가 소비녀회 수녀들이 철수하게 되자 교구에 요청하여 예수 성심 시녀회 분원을 설치하였다.
1967년 12월 비산동 본당 13대 주임으로 전임된 최병선 신부는 우선 수도 시설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본당에 수도 시설을 마련하여 식수난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1969년 2월 본당에 황소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하였으며, 1970년에는 혁신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평신도에 의한 자치 운영을 모색하기 위해 본당 운영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 뒤 1972년 10월 신설 예정 본당(오천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었으나, 본당 설정이 무산되자 경산 본당 9대 주임(1973. 3~1975. 1)을 거쳐 계산동 주교좌 본당 15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975년 3월에 사목 위원회를 새로이 구성하였으며, 8월 21일부터 26일까지 8월 정기 반 기도회를 열어 지역 공동체 쇄신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점차 본당 사목의 업무 영역이 다양해짐에 따라 이전부터 시행되어 오던 업무 분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해당 분야의 성직자 · 수도자와 의논하여 본당 사목에 협력하게 하였다. 1976년 3월 24일에 계산 문화관의 준공을 앞두고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하여 사목 위원회 및 액션 단체 대표들을 소집하여 확대 회의를 개최하였고, 이러한 노력으로 같은 해 7월 25일 계산 문화관을 완공함으로써 본당 내에 가톨릭 문화를 확산시켜 나가는 장소를 마련하여 주교좌 성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하였다.
1977년 7월에 남산동 본당 16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병선 신부는, 1979년 5월 초에 사제관 증축 공사를 시작하여 11월에 공사를 완료하였다. 그리고 본당에 부인 성가대와 친목 단체인 모니카회 외에는 여성 사도직 단체가 없자, 1981년 6월 18일 새로운 여성 단체인 마리아회를 창립하는 동시에 본당 내 모든 부녀 단체를 망라한 부녀 연합회 창립 총회를 가졌다. 1981년 12월 30일자로 선목신학대학(현 대구 효성가톨릭대학교) 사무처장 겸 교수로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1983년 1월 25일 비산동 본당 17대 주임으로 전임되었지만 같은 해 3월에 노환으로 휴양하였다. 1984년 1월 18일 다시 선목신학대학으로 전임되어 성소 지도 신부로 재임하였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가톨릭병원에 입원하던 중 1987년 12월 27일 향년 68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장례 미사는 12월 29일 남산동 본당에서 이문희(李文熙, 바오로) 주교의 주례로 집전되었으며, 유해는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 참고문헌  《신앙 전래 200년사》, 천주교 언양 성당, 1993/ 천주교 마산교구 설정 10주년 기념 경축 준비위원회, 《교구 설정 10주년 기념》, 천주교 마산 교구, 1976/ 《문산 성당 80년사》, 천주교문산 교회, 1983/ 대봉 大學 성당 40년사 편찬위원회, <대봉 40년 (1955~1995)》, 대봉 천주교회, 1996/ 《본당 60년사》, 천주교 비산교회, 1988/ 대구대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대구 본당 100년사》, 대건출판사, 1986/ 남산 본당 70년사 편찬위원회, 《남산 본당 70년사》, 천주교 대구대교구 남산 교회, 1999/ 천주교 대구대 교구, 《빛》(1984. 7).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