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교구 강계 본당의 회장.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일명 자백(慈伯). 1907년 경북 대구에서 최경집(崔景集, 빈천시오)과 이봉조(李奉祚, 마리아)의 4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일본 유학을 떠나 도쿄(東京)의 죠치 대학(上智大學) 예과 2년(철학 전공)을 수료하였다. 귀국 후 평양의 성모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7~8년간 활동하는 가운데, 1932년에는 가톨릭 소년단을 조직하여 방학 때 각 본당을 순회하며 관악 연주와 소년극을 공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변(邊) 안나와 결혼하여 두 아들(장남 정규, 차남 달웅)을 두었다.
성모보통학교를 그만두고 직조 공장(織造工場)을 운영하였으나 실패한 그는 그 후 평안북도 강계로 이주하여 본당 회장으로 교회 일에만 전념하다가 1945년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이 진주한 강계 지역에서 공산당의 종교 탄압이 노골화되자 월남하는 신자들이 늘어났고, 이에 본당의 교세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최삼준은 월남한 장 요한의 페인트 공장을 운영하면서, 끝까지 교회를 지킬 것을 다짐하며 신자들을 격려하였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공산 당국으로부터 요시찰 인물로 주목받던 그는 1949년 7월 8일 석원섭(石元燮, 마르코) 신부를 문병하고 돌아가던 길에 정치 보위부원에게 연행된 후 행방 불명이 되었다.
※ 참고문헌 평양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천주교 평양교구사》, 분도출판사, 1981/ 평 양교구 순교자 사료 수집위원회, 《북녘 땅의 순교자들》, 가톨릭출판사, 1999. 〔方相根〕
최삼준 (1907~1949?)
崔三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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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