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열 (?~1816)

崔性悅

글자 크기
11
황사영을 피신시키기 위하여 상복을 만드는 최설애(탁희성 작) .

황사영을 피신시키기 위하여 상복을 만드는 최설애(탁희성 작) .

을해박해(乙亥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바르바라. 본래의 성은 ''최' 가 아니라 '구' (具), 즉 원래 이름은 '구성열' 이다. 일명 '서 과부' . 1815년의 순교자 서석봉(徐碩奉, 안드레아)의 아내이며, 최봉한(崔奉漢, 프란치스코)의 장모. 충청도 홍주의 한내장벌(현 충남 예산군 고덕면 대천리) 출신으로,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이전에 천주교에 입교한 뒤 과부로 서석봉에게 개가하였다. 그런 다음 경상도 청송의 노래산 교우촌(현 경북 청송군 안덕면 노래2동)으로 이주해 살다가 1815년 부활 대축일에 체포되어 경주로 압송되었다(을해박해). 체포될 당시에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지만, 이를 용감하게 이겨냈다고 한다.
경주로 압송된 후 구성열은 혹독한 형벌로 인해 마음이 약해져 배교할 뜻을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사위 최봉한의 권면 덕택에 다시 신앙을 다잡고 형벌을 꿋꿋이 참아냈으며, 남편과 사위 및 동료들과 함께 대구로 압송되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여러 차례에 걸쳐 문초와 형벌을 받고, 17개월이 넘게 옥중 생활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신앙을 증거하면서 모든 고통을 이겨낸 뒤 1816년 12월 19일(음력 11월 1일) 동료들과 함께 대구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니 당시 약 40세였다. 순교 후 그녀의 시신은 형장 인근에 매장되었다가이듬해 3월 2일 친척과 신자들에 의해 적당한 곳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 서석봉 ; 을해박해 ; 최봉한)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1858년 필사 정리), M.E.P. 소장/ 一, vol. 4, Notes pour I'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 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일성록》/ 金貞淑, <대구 순교자들에 관한 사료분석>, 《대구 순교사 연구》, 천주교 대구대교구 시복 시성 위원회, 2001/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시복 시성 특별위원회, 《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2003.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