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보좌 주교. 세례명은 요한. 1942년 3월 23일 중국 흑룡강성(黑龍江省) 혜륜현의 한인 교우촌인 선목촌에서 최석암(비오)과 김정식(막시마)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1960년 3월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61년 4월 가톨릭대학 신학부에 입학하여 1970년 7월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 11월 6일 대구의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서정길(徐正吉, 요한) 대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신암동 본당 보좌로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뒤 대봉동 본당 보좌(1971. 11~1972. 10)를 거쳐, 영천 본당 9대 주임(1972. 10~1976. 10)으로 활동하면서 재임 기간동안 본당 월보 발행, 수녀원 신축 준공, 성당 보수 등 많은 업적을 남기고 1976년 10월부터 이탈리아 로마에서 포콜라레 영성으로 연수를 하였다. 연수를 마친 후 1979년 6월에 귀국하여 교구청 사목국장과 관리국장으로 근무하면서 교구 참사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82년 9월에는 산격동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레지오 마리애와 여러 단체들을 설립하고 성당 신축 공사를 실시하는 등 신설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 뒤 1986년 1월에 대구 가톨릭대학(현 대구 가톨릭대학교) 사무처장, 1990년 6월에는 대구광역시립 희망원 원장 겸 논공 가톨릭병원 원장으로 부임하여 활동하였다.
1991년 3월에 성동 본당 21대 주임으로 부임한 최영수 신부는 이듬해 4월 1일 새벽에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성당이 소실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슬기롭게 대처하여 1993년 10월에는 황성 본당을, 1995년 4월에는 양남 본당을 각각 분리 · 설립시켰다. 그 뒤 가톨릭 신문사 사장(1995. 7~1997. 2)과 대구 평화방송 사장(1996. 1~2001. 1)을 역임하였다. 2000년 12월 23일에 안동과 포항의 중계소 신설을 허가받아 이듬해 3월에 설치함으로써 대구 평화방송의 난청을 해결하였다. 2000년 12월 22일 시티피(Sitifi) 명의 주교와 대구대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되어 이듬 해 2월 27일 대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내 성 김대건 기념관에서 주교 서품을 받았다. 최영수 주교의 대구대교구 보좌 주교 임명은, 서정덕(徐貞德, 알렉산델) 보좌 주교의 신병으로 교구장 혼자서 넓은 관할 구역과 신자들을 감당하기 벅찬 실정이었던 대구대교구의 사목에 쇄신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영수 주교는 2005년 현재 주교 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과 학교 법인 선목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대봉 성당 40년사 편찬위원회, 《대봉 40년(1955~1995)》, 천주교 대구대교구 대봉 교회, 1996/ 《신암 본당 50년사》, 신암 천주교회, 1997/ 《본당 50년사》, 영천 천주교회, 1986/ 《산격 성당 10년》, 천주교 산격 교회, 1992. 〔白秉根〕
최영수 (1942~ )
崔榮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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