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조이 崔召史(1790~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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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바르바라.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로 경기도 여주에서 순교한 최창주(崔昌周, 마르첼리노)의 딸이며, 1839년의 기해박해로 전주에서 순교한 신태보(申太甫, 베드로)의 며느리. 어릴 때부터 교리를 배워 신앙 생활을 해 오던 그녀는 부친이 순교한 뒤 비참한 생활을 하였지만, 천주와 이웃에 대한 열렬한 애덕과 인내만은 모든 사람들을 탄복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다가 장성하여 신태보의 아들과 결혼하였으나 얼마 뒤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다. 또 1827년의 정해박해(丁亥迫害) 때는 시아버지와 같이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이후 그녀는 친척이나 친구들의 집에 얹혀 살면서도 오랫동안 옥에 갇혀 있는 시아버지를 자주 찾아갔고, 미약하나마 시아버지와 다른 죄수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1839년의 기해박해 때 최조이는 전라도 광주에 있던 홍재영(洪梓榮, 프로타시오)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던 신자들과 같이 체포되었다. 이내 전주로 압송된 그녀는 첫 번째 문초와 형벌을 평온한 마음으로 참아내고, 감사 앞으로 끌려가자 자신이 1801년에 순교한 최창주의 딸이라는 것을 떳떳하게 고백하였다. 또 "죽음은 제가 바라던 것이고, 오래전부터 저는 그 준비를 해 오고 있었습니다"라고 신앙을 증거하였다. 이후 그녀는 조정에서 사형 판결이 내려올 때까지 옥에 갇혀 있다가, 동료들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가 1840년 1월 4일(음력 1839년 11월 30일)로, 당시 그녀의 나이는 50세였다. (→ 기해박해 ; 신태보 ; 최창주)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5, Notices des Principaux martyrs de Corée(1858년 필사 정리), M.E.P. 소장/ 一, vol. 4, Notes pour I'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일성록》1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중, 한국교회사연구소, 1980/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시복 시성 특별위원회, 《 '하느님의 종' 윤지 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2003. [車基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