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무 崔昌武(1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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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교. 제8대 광주대교구장. 세례명은 안드레아. 1936년 9월 15일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갈곡리에서 최복남(야고보)과 박 마리아의 3남 2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1955년 2월에 성신고등학교(소신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3월에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 본과 3년을 마친 뒤 독일로 유학을 떠나 1962년 7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63년 6월 9일에 프라이부르크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계속해서 프라이부르크 대학원에서 수학하다가 1966년 12월에 일시 귀국하여 명동 본당 보좌로 1년간 재임하였으나, 다시 독일로 돌아가 1969년 7월 <평신도 신심의 신학적 고찰>이란 논문으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70년 1월 귀국하여 가톨릭대학에서 윤리 신학 교수로 활동하다가 1973년에 가톨릭대학 신학부장 겸 교무처장을, 1977년 9월에는 서울대교구 관구 신학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1979년 9월 가톨릭대학 11대 학장을, 1991년 9월 16대 학장을 맡았고, 가톨릭대학이 가톨릭대학교로 승격된 1992년에는 초대 총장에 부임하였다. 이처럼 20여 년간 대학에서 사제 양성에 힘쓰다가 1994년 2월 3일 피우메피셴세(Fiumepiscense) 명의 주교 겸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된 최 주교는 3월 25일 명동 성당에서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주례로 주교 서품을 받았다. 그 뒤 서울대교구의 사회 사목 및 수도회 담당 주교로 활동하면서 주교 회의 신앙 교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신설된 서울대교구 민족 화해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북한의 조선 천주교인협회와 교계적인 차원에서 공식 접촉을 가졌다. 해방 후 처음으로 1995년 10월 뉴욕에서 공동 세미나와 미사를 통해 북한의 장재철 조선 천주교인협회 중앙 위원장 등과 만나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이다. 최 주교는 매주 화요일에 명동 주교좌 성당에서 민족 화해 미사를 봉헌하고 남북한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참회 및 회개 확산을 위해 단식 기도와 민족 화해 헌금 실시 방안 등을 마련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 4일에는 민족 화해 학교를 개설하여 본격적인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한편 최창무 주교는 1997년 다른 신부 9명과 함께, 사망 후 안구와 장기를 기증하고 시신은 화장하되 무덤이나 묘비를 만들지 말고 납골당에 안치하지도 말라는 내용의 유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이는 한국의 묘지난 해소에 앞장서고 장기 이식 수술을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이들을 향한 '나눔의 정신' 을 실천한, 주교로서의 모범을 보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남북한 교회의 실질적인 관계 모색을 위해 노력한 결과, 1998년 5월 15일 최 주교는 북한의 조선 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남한 교회의 고위 성직자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였다. 최 주교는 평양 도착 즉시 평양교구장 서리인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받들어 7박 8일 동안 사목 순시를 한다고 자신의 방문 목적을 밝혔다. 그리고 5월 17일 평양의 장충 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봉헌하며 교구장을 대리한 사목 순시 목적을 수행하였으며, 그동안 민족 화해위원회를 통해 지원한 물품이 분배된 사실과 그 내용을 확인하고 농업 개발 문제 협조 등을 협의하였다.
최창무 주교는 1999년 2월 9일에 광주대교구 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되었고, 이듬해 11월 30일 제8대 광주 대교구장으로 광주 임동 주교좌 성당에서 착좌식을 가졌다. 그는 나주에서 윤 율리아가 사적 계시를 받았다며 교회의 교리에 어긋난 주장을 거듭하자 2001년 5월 사목서간을 통해 자제를 촉구하였으나 이에 순명하지 않고 교도권을 거역함에 따라 2005년 5월 5일 나주로의 순례와 행사 참가를 금지하는 공지문을 발표하였다. 최창무 대주교는 대교구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로마에서 개최된 제10차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2001. 9. 30~10. 27)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지역 교회 안에서 주교들의 소명"에 대해 발표하였다. 그리고 2002년 10월 18일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2003년 6월 16일 교황청 인류 복음화성 자문 위원에 임명된 데 이어 2004년 7월 18일에는 인류 복음화성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민주화 요구로 상처받은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최창무 대주교는 2005년 5월 16일 남동 성당에서 5 · 18 민주항쟁 25돌 기념 미사' 를 봉헌하고 매년 5월 18일을 공식 기념일로, 남동 성당을 5 · 18 기념 성당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하였다. 2005년 현재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의장, 주교 회의 상임위원회 의장, 주교 회의 교리 주교위원회 위원장, 광주 평화방송 이사장을 맡고 있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http://www.kjcatholic.or.kr/ 《경향잡지》/ <가톨릭신문>. [白秉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