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아킴. 1937년 8월 9일에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남천리 209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1961년 12월 30일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후암동 본당 보좌로 첫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63년 7월에 육군 군종 신부로 입대한 후 1965년 10월 월남(현 베트남)의 퀴논 지구 천주교회 등을 방문하여 활동하였다. 귀국 후 1966년 11월에 육군 화랑대 본당 6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67년 5월 성당 보수 공사를 하였고, 14처를 비롯한 성당 내부의 비품을 수리하였다. 1969년 10월에 육군 승진 본당 7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이듬해 5월 춘천교구 일동 공소 건립 공사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춘천교구 명의로 부지를 매입하여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공사를 약 70% 진행시키고 예편하였다.
1971년 5월 이문동 본당 4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같은 해 7월 20일에 사제관을, 1974년 12월 18일에는 유치원 및 주일학교 교사를 준공하였다. 1975년 9월에 서울대교구 재경 위원을 겸임하였고, 이듬해 5월에는 청담동 본당 2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77년 5월 8일 전임 신부 때부터 진행되어 오던 성당 신축 공사를 완료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같은 해 5월에 잠실 공소를 개설한 뒤, 12월에 천호동 본당 관할의 시영 공소와 합하여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1978년 4월에는 압구정 공소를, 9월에는 도곡동 공소를 개설한 뒤, 이듬해 5월에 각각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1980년 9월에 독일 함부르크 교포 사목을 맡게 되어 독일로 건너갔으나, 1984년 8월 간암으로 귀국하여 투병 생활을 하던 중 11월 1일에 강남 성모병원에서 선종하였다. 장례 미사는 11월 3일에 명동 성당에서 거행되었으며, 유해는 용인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 청담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후암동 성당 사목위원회, 《두텀바위 -후암 성당 30년사》, 천주교 후암동 교회, 1979/ 군종교구사편 찬위원회, 《천주교 군종교구사(군사목 50년사)》, 천주교 군종교구, 2002/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톨릭출판사, 1984/ 《청담 본당 10년사》, 천주교 청담동 교회, 1984. [白秉根]
최창정 崔昌鼎(1937~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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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