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일치 운동

敎會一致運動

〔라〕motus oecumenicus · 〔영〕ecumenical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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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1차 세계 교회 협의회 총회(오른쪽)와 1961년의 제3차 뉴델리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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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제1차 세계 교회 협의회 총회(오른쪽)와 1961년의 제3차 뉴델리 총회.


교회 일치를 뜻하는 '에큐메니컬' (ecumenical)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오이쿠메네' (οἰκουμενη)에 어원을 두 고 있으며, 그리스 문학에서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4세기에 '오이쿠메네' 가 교 회에 들어와서 '보편' 또는 '전체' 의 의미를 지닌 단어 로 사용되어 니체아 공의회(325)가 '보편(전체) 공의회' (Ecumenical Counil)라고 불렸고,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에게 '전 교회의 총대주교' (Ecumenical Patriarch)라는 명 칭이 붙여졌다. 1931년에 '에큐메니컬' 을 '분열된 그리 스도계의 일치' 라는 의미를 지닌 현대적인 용어로 도입 한 사람은 스웨덴의 루터교 대주교인 죄더블롬(Nathan Söderblom, 1868~1931)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 스도인들의 일치에 대한 증거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가톨릭 교회는 교회 문헌에서 프로테스탄트의 교회 일치 운동을 인정하는 단 어로 '에큐메니컬' 을 사용하는 것을 피하였다. I. 프로테스탄트 〔기 원〕 신앙 부흥 운동 : 17세기에 독일에서 스페너 (Philipp Jakob Spener, 1635~1705)가 시작한 루터교 경건주 의 운동(Piest Movement)과 영국에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가 창시한 감리교 부흥 운동(Methodist Movement) 그리고 미국에서 장로교인들과 회중 교인들이 일 으킨 대각성 운동(Great Awakening Movement)과 같은 신 앙 부흥 운동은 프로테스탄트 교회 일치 운동의 분위기 를 조성하였다. 경건주의 운동은 종교 개혁 이후로 교의 (敎義) 중심의 정통성을 강조하던 프로테스탄티즘에 반 대하여 교리에 대한 지식보다 올바른 행동의 실천을 중 시하면서 회심과 재생으로 이끄는 영적 체험에 치중하였 다. 이 운동들은 그리스도 안에 회심하는 그리스도인들 을 모두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교회 일치의 특성을 지니 고 있었다. 선교 운동 : 19세기에 이르러 경건주의의 신앙 부흥 운동이 느슨해지면서 서구에서는 경건주의 운동이 선교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선교 운동에는 교단이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 단체가 개별적으로 참여하였 다. 해외 선교를 시작한 프로테스탄트들은 교회 분열이 그리스도교 세계의 소명인 선교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활력을 잃게 하는 종교적 질병임을 깨달았을 뿐 만 아니라 실제로 선교 지방의 주민들이 그리스도교 안 에 분열이 있음을 납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선교 사업에 있어서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 결 과로 창설된 선교 단체들은 성서에 근거한 그리스도인들 의 일치를 주창함으로써 초교파적 교회 일치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청년 운동 :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선교 운동으로 청 년 운동이 전개되었다. 남자 기독교 청년 연합회(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 YMCA)와 여자 기독교 청년 연 합회(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 : YWCA)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통 신앙을 지닌 프로테스탄트 젊은이들의 초교파 평신도 모임으로 프로테스탄트 청년들에게 그리 스도를 심어 주고자 하였다. 기독교 학생 운동(Student Christian Movement : SCM)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인 생활을 열망하는 프로테스탄트 학생 모임으 로 국제적이며 초교파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외방 선 교 학생 자원 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s)은 프로테스탄트 학생들에게 순수한 동기의 선 교를 권장하면서 잡지를 발간하여 교파 사이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재일치를 위한 지도자 모임을 개최하였다. 기 독교 학생 세계 연맹(World's Student Christian Movement) 역시 초교파 단체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한 기도 를 권장하였다. 〔발전 과정〕 세계 선교 협의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 : WMC) : 1910년에 에든버러(Edinburgh)에서 열린 세계 선교 회의는 교회의 공식 모임이 아니라 선교 단체 들의 집회였다. 이는 감리교의 모트(John Ralph Mott, 1865 ~1955)와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1899)가 조직하 였으며 프로테스탄트 선교 단체의 대표 1,200여 명이 회원으로 참가하였다. 이들은 복음 전파, 선교사의 양성, 선교 정책의 수립, 교회 일치에 대한 촉진과 공동 협력을 토의하였다. 에든버러 집회는 현대 교회 일치 운동의 시 작으로 여기에서 프로테스탄트의 교회 일치 운동이 세 가지 방면, 즉 선교 방면으로는 국제 선교 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 IMC), 활동 방면으로는 생활 실천 운동(Life and Work Movement) 그리고 교리 방면으 로는 신앙 직제 운동(Faith and Order Movement)이 전개되 었다. 국제 선교 협의회 : 세계 선교 회의의 후속 위원회에 서 조직을 준비하여 1921년 10월 미국에서 창설되었고 본부는 제네바에 있다. 이 기구의 임무는 선교 문제 연구 와 조사 촉진, 선교 단체의 상호 협력, 양심의 자유, 선 교의 자유, 종교의 자유에 관한 그리스도인들의 견해 일 치, 국제 및 민족 문제에 있어서 정의 구현을 위한 그리 스도인의 단합이었다. 이 조직은 1961년에 세계 교회 협의회에 가입하기까지 5차례(1928, 1938, 1947, 1952, 1957)에 걸쳐 집회를 갖고 선교에 있어서 사회 및 경제 문제, 선 교 연구위원회의 구성,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접촉, 교 회 사이의 문제점, 선교 지방의 자립 문제, 선교와 교회 에 대한 연구를 토의하였다. 생활 실천 운동 : 죄더블롬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우 호 증진을 내세워 창시한 운동으로, 세계 안에서 그리스 도교를 증거하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실천 적 그리스도교' (practical chistianity)라고도 불렸다. 1925 년 8월에 스톡흘름에서 소집된 제1차 총회는 신앙 교리 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활동에 있어서 신앙인들의 일치 는 가능하다고 밝혔다. 1937년 7월에 옥스포드에서 '교 회, 공동체, 국가' 라는 주제로 제2차 총회가 열렸다. 생 활 실천 운동의 첫 목표가 교회 일치 운동은 아니었으나 이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교리 문제를 간 과하였고 선교 지방의 신생 교회의 참여가 부족하였으며 사회 구조의 변혁 문제와 인간의 개인적 회심 문제 중에 서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였다. 신앙 직제 운동 : 1910년에 영국 성공회의 주교 브렌 트(Charles Henry Brent, 1862~1929)의 제의에 따라 시작된 이 운동은 교리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사변적 그리스 도교' (theoretical christianity)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1927 년 8월에 스위스 로잔(Lausanne)에서 개최된 제1차 세계 대회는 교회 일치에 대한 소명과 교회의 본질, 직무, 성 사와 같은 신학 문제들을 토의하였다. 1937년에 에든버 러에서 소집된 제2차 세계 대회는 그리스도 교회와 하느 님의 말씀, 교회의 직무와 성사와 같은 문제들을 토의하 였다. 이 운동은 교회인들이 모여 교회의 본질적 문제를 취급하면서 교파 사이의 차이점과 합치점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교환하였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상호 발견과 공 동 체험을 가질 수 있었으며 교회 일치를 향한 길을 마련 하였다. 그러나 대회에서는 상이한 선언문이 발표되었고 신앙을 강조하는 견해와 직제를 강조하는 견해로 양분되 는 어려움이 있었다. 세계 교회 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 WCC): 회 원 교회들의 보조를 받는 생활 실천 운동과 신앙 직제 운 동은 따로 운영하는 데에 재정적 어려움이 있었고 이론 과 실천의 상호 협조가 필요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37년 7월에 교회 일치 운동의 대표들로 구성된 35인 위원회가 런던 웨스트필드 대학(Westfield Collge)에서 개 최되었다. 이 비공식적 모임은 국제적 교회 협의회 설립 을 위해 준비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고 새로 설 립될 조직은 가입 교회에 대해 구속력이 없고 각 교회의 동의 없이는 어떤 활동도 요구하지 않으며 통합 이후에 도 두 운동의 고유한 활동을 지속하기로 결정하였다. 생 활 실천 운동은 35인의 결정을 옥스포드 회의에서 승인 하였고 신앙 직제위원회도 에든버러 회의에서 승인하였 다. 이어서 1937년 7명의 옥스포드 회의 대표와 7명의 에든버러 회의 대표로 구성된 14인 위원회가 우트레히 트(Utrech)에서 개최되어 자문위원회가 헌장을 작성하기 로 하였다. 1939년 파리 준비위원회에 이어 1946년에 제네바에서 준비위원회를 열어 '교회 일치 연구소' (Ecumenical Institute)를 설립하여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 고 그들에게 연수 교육을 실시하여 모든 교회 활동을 조 정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세계 교회 협의회는 그리스도를 하느님과 구세주로 믿 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영광을 돌리며 서로 하나가 되 어 공동 사명을 완수하는 친교 단체이며, 또한 교회 일치 를 도모하고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여 서로 이해하는 데 에 이바지하는 협력 단체이다. 조직 구성은 최고 의결 기 관인 총회, 운영을 맡고 있는 중앙위원회, 중앙위원회의 결정을 실행하는 집행위원회와 함께 사무국 밑에 제1 사 업부(신앙과 복음 증거), 제2 사업부(정의와 봉사), 제3 사 업부(교육과 혁신)가 있고 그 밖에 관리부, 홍보부, 도서 관, 교회 일치 연구소(연수원)가 있다. 그 동안 개최된 역 대 총회는 다음과 같다. 제1차 암스테르담 총회(1948), 제2차 에버스튼 총회(1954), 제3차 뉴델리 총회(1961), 제4차 읍살라 총회(1968), 제5차 나이보리 총회(1975), 제6차 밴쿠버 총회(1984), 제7차 캔버라 총회(1991). 〔개념과 유형〕 세계 교회 협의회는 직접 교회 일치에 대한 토론에 참여할 수 없고 회원 교회들의 일치 논의를 주선할 뿐이며 교회 일치 문제는 개별 교회의 책임 아래 이루어진다. 개별 교회들이 일치를 모색하는 방법에 있 어서 교회 일치 협의회(church union negotiation)는 두 교회 또는 그 이상의 교회들이 공식 대표를 통해서 조직적 일 치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고, 쌍방 대화(bilateral conversation)는 두 교회 또는 두 교단에서 임명된 대표들이 상호 이해 촉진을 위해서 갖는 신학 대화이며, 다자간 대 화(multilateral conversation)는 두 교회 또는 두 교단 이상 이 상호 이해 촉진을 위해서 갖는 대화이다. 아울러 교회 들은 분열의 현실 속에서 기본적 신앙 진리에 성실하여 일치를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교회 사이의 모임이나 대화에는 참여자의 마음 변화가 요구된다고 언급하고 있 다. 교회 일치의 개념은 교회의 개념 안에서 정의되는 것 이 아니라 교회가 경험하고 실천하는 친교 안에서 정립 된다. 따라서 교회 일치는 단순히 추상적 교회 일치 개념 에 절대적 중요성을 부여하지 말아야 하며, 그리스도 안 에 있기 때문에 성취될 수 있음을 전제해야 한다. 또한 통일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성이 배제되지 않는다. 교회 일치는 5가지 개념으로 설명되고 있다. 첫 째,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신앙인들의 영적 화 합. 둘째, 공동 전승에 바탕을 둠. 셋째, 지역 교회 대표 들의 통교. 넷째, 올바른 복음 설교와 성사 집전. 다섯 째, 같은 원의에 근거한 공조 활동 등이다. 교회 일치 유형의 첫째인 초교파 운동(inter-confessional movement)은 개인이나 단체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함 께 모이는 것으로 기독교 청년 연합회가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교회 연합(federation of churches)으로 참가 교회들 이 그 정체를 간직한 채 상호 협력을 위한 모임으로 세계 교회 협의회가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인 교회 상호 승인 (complete mutual cognition between churches)은 교회 일치와 가까운 형태로서 두 교회나 두 교파가, 또는 그 이상의 단체들이 주체성을 간직한 채 서로 교류하는 것으로 영 국 성공회와 구가톨릭 교회가 여기에 속한다. 넷째, 유기 적 일치(organic union)는 교회 일치의 최종 목표로 두 교 회나 교파 그리고 그 이상의 단체들이 각 교회의 정체를 포기하고 새로운 교리와 새로운 교회 명칭을 지닌 교회 안에서 통합하는 것이다. II. 동방 교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동방 교회들은 대부분 교회 일 치에 관심을 갖고 프로테스탄트의 교회 일치 운동에 참 가하였다. 1902년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요아킴 3세 (Joachim lll)는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들과의 일치를 고 려하도록 요청하는 회칙을 반포하였고, 1920년 콘스탄 티노플 총대주교 로쿰 테넨스(Locum Tenens)는 교회 일 치 운동에 참가하겠다는 강렬한 원의를 표명한 회칙에서 교회 연맹의 창설을 제의하였다. 1927년에 동방 교회는 제1차 신앙 직제 세계 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하였고, 1952년에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가 세계 교회 협의회에 가입하는 선언문을 발표 하였으며, 1954년에 세계 교회 협의회의 제2차 총회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문헌들이 모든 동방 교 회들의 일치된 견해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일치 운동 의 접근 자세에 있어서 세 가지 그룹으로 구분된다. 첫째, 아무런 조건 없이 교회 일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그룹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그리스도교 의 유산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상호 이해와 친교가 필요 하며 이는 현존하는 교리 차이로 장애를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상호 불신과 적대 감정을 버리고 신뢰를 회복하여 형제애를 회복하여야 한다. 이 처럼 동방 교회들이 교회 일치를 호소하는 이유는 교리 문제에 대한 토론보다는 비도덕적 사회 상황을 교회 연 맹이라는 기구를 통해서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협조를 강조하는 데에 있었다. 여기서 제안된 교회 연맹은 어떠 한 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조직이기보다는 사랑의 공동체 위에 세워진 기구로서 교회들끼리 서로 연대하고 교회 일치를 위한 입지를 조성하는 데에 있었다. 여기서 교회 일치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의무이며 사랑의 원칙에 바탕 을 두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비판적인 입장으로 교회 일치 운동에 동의하는 그룹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 을 하나로 묶는 것은 첫 8세기 동안의 교회의 공통 신앙 과 7차례의 보편 공의회와 분열되지 않은 상태의 교회의 전승에 근거하며 그리스도의 참 교회는 동방 교회라고 주장하였다. 동방 교회가 교회 일치 운동에 참여하는 목 적은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교회 생활과 활동에 대 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동시에 동방 교회의 신앙과 전례 의 풍부한 유산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 그룹은 교리 논의 는 교회 분열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교리 문제가 논의되 지 않는 사회 문제에는 참여할 수 있고 교리 논의가 목적 인 신앙 직제 운동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 다. 아울러 다른 교파들과의 공동 예배 집전은 교회법에 위배되고 동방 교회의 신앙 의식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셋째, 교회 일치 운동을 거부하던 그룹으로 1961년에 세계 교회 협의회에 가입 할 때까지 러시아 정교회가 여기에 속하였다. 1948년 7 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자립 정교회의 대표들의 모임은 세계 교회 협의회의 가입과 제1차 암스테르담 총회의 참 석을 거부하였다. 1950년에 해외 러시아 정교회 회의에 서도 공동 협력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그룹은 세계 교회 협의회가 교리적 일치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 이지 않고 국제적 세력을 형성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를 세우려는 의도를 갖고 있으며 인간의 영혼을 돌 보는 교회의 업무에 장애가 되는 사회 및 정치 활동을 계 획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이러한 비판 그룹에는 세르 비아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폴란드 정교회, 알바니아 정교회, 체코슬로바키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알 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구, 안티오키아 총대주교구가 있었 다. 동방 교회의 교회 일치에 대한 개념은 두 가지로 정리 할 수 있다. 첫째로 교회 일치는 신앙의 일치이다. 그리 스도교 신앙은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며 교회가 어떤 교 리는 선택하고 어떤 교리는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첫 7차 례 보편 공의회들에서 정의한 기본적 신앙 교리를 축소, 변조하지 않고 그대로 회복하는 것이다. 둘째로 교회 일 치는 주교직의 일치를 통해서 보존된다. 여기서 교회 일 치의 두 가지 요소 즉 역사적 지속성과 단일성 그리고 성 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 안에 있는 공동 신앙이 발견된다. 이처럼 교회 일치는 신앙과 교회 직무에 바탕을 두고 이 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완 전한 교회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 문에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교회 일치 는 첫 7차례 공의회들과 분열되지 않고 하나였던 초대 교회로 돌아와야 하며, 초대 교회의 공동 유산을 모두 간 직하고 있는 유일한 교회인 동방 교회로 돌아올 때에 교 회의 완전한 일치가 이루어진다고 이해하였다. Ⅲ. 가톨릭 교회 〔발전 과정〕 교회 일치에 대한 관심 : 1864년 9월 16 일에 교황청 검사성성은 동방 교회를 열교(裂敎)로 묘사 하고 영국 성공회를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열교인들과 이 단자들이 설립한 '그리스도교 일치 촉진 협회' (Association for the Promotion of the Unity of Christendom)에 로마 가 톨릭 신자들의 가입을 금지하고 그들이 내세운 그리스도 교 분지설(分枝說, branch theory)을 위험한 종교 무분별 주의라고 경고하였다. 하나 됨(unity), 거룩함(holiness), 공번됨(catholicity), 사도로부터 이어짐(apostolicity)의 4가 지 특성을 지닌 그리스도의 참 교회는 바로 로마 가톨릭 교회이며 '가톨릭' 이라는 용어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만 적용되고 '가톨릭' 교회와의 완전한 일치의 주요 원천은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인 교황들에 있으며 확실한 구원은 열교인들과 이단자들이 그들의 오류를 버리고 로마 가톨 릭 교회로 돌아와서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을 인정하는 데에서 보장된다고 하였다. 교황 비오 9세(1846~1878)는 1868년 9월 8일 동방 교 회의 주교들에게 편지를 보내 전체 공의회가 소집된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제2차 리용 공의회(1274)와 피렌체 공 의회(1439-1443)에서 그들의 선인(先人)들이 교회 일치 에 협조적 태도를 취했던 것처럼 공의회에 참석해 주기 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교황은 동방 교회가 서구 그리스 도교와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로마 가톨릭 교회로 돌아오는 것은 동방 교회가 그들의 원천 에 충실하는 표시라고 언급하였다. 1869년에 교황은 프 로테스탄트들에게 보내는 사도 서한을 통해서 로마 가톨 릭교의 단일성과 프로테스탄트의 분열상을 비교하면서 그들의 선인들이 포기한 로마 가톨릭 신앙을 회복할 것 을 권고하였다. 이 편지는 호교론적 성향을 띠고 있어 논 쟁을 불러일으킬 요소를 담고 있었다. 따라서 교황청의 초대는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교황 레오 13세 : 교황은 <기쁨의 명백한 증거>(Praeclara Gratulationis Publicae Testimonia, 1894)와 <충분히 잘 알 려진 사실>(Satis Cognitum, 1896)을 포함한 많은 회칙들을 반포하여 동방 교회와 프로테스탄트와의 일치에 대한 깊 은 열정을 드러내면서 가톨릭 교회의 위상과 교회 일치 원칙을 밝혔다. 교황은 총대주교들의 특권과 동방 교회 의 고유한 전례를 인정하면서 아울러 교황의 그리스도 대리자로서의 위상을 강조했다. 교황 레오 13세(1890 ~1903)는 프로테스탄트들의 양심에 호소하여 그들의 교 회들이 단일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 하였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단절 되지 않고 붕괴되지도 않았음을 강조하면서, 이 유일한 교회에서 떠난 이들은 그리스도교인들의 일치를 원하시 는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구원의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선언하였다. 레오 13세는 교회 일치가 신앙 문제의 합의 또는 신앙 인들의 친교보다는 신앙의 일치와 행정의 일치 위에 이 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신앙의 일치에는 교도권 (敎導權)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사도들에 게 가르치는 권한을 주었고 그들은 이 권한을 교회에 위 임하였기 때문에 교회의 교도권이 없이 그리스도의 교리 가 인간의 이성에만 맡겨진다면 여러 가지 상이한 해석 과 오류가 발생한다. 따라서 신앙의 일치는 교도권에 순 종하여 올바른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행정의 일치 에는 교계(敎階)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 도의 권위로 통치되고 그의 대리자인 베드로와의 일치를 통해서만 교회의 유일성과 단일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베 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은 교회 일치의 중심이다. 따라서 레오 13세는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인정과 교황에 대한 순명을 의미하는 교회 체제의 일치를 호소하였다. 교회 일치 운동에 대한 비판 : 프로테스탄트에서 활발 하게 전개되고 있었던 교회 일치 운동에 대해 교황 비오 11세(1922~1939)는 1928년 1월 6일 회칙 <사람들의 마 음>(Mortalium Animos)을 발표하였다. 회칙은 프로테스탄 트의 교회 일치에 대한 접근 자세와 방법을 비판하였다. 종교 무분별주의에 근거한 일치 운동들이 배격의 대상이 었다. 교회 일치는 실현될 수 없는 하나의 이상일 뿐이라 고 주장하면서, 상호 비방을 지양하고 사랑의 일치를 추 구하는 것만이 목적인 범(汎)그리스도교 운동들도 배척 하였다. 이는 생활 실천 운동이 교리의 상이점에도 불구 하고 함께 봉사 활동을 한다는 자세와 동방 교회가 제창 한 교회 연맹의 설립을 겨냥한 것이었다. 교회들을 분열 시킨 교리 문제는 뒤로 제쳐놓고 공통된 교리만을 다루 어야 한다는 신학 대화의 방법과,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 리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교회 연합의 수장(首長)으로 천 거하며 교황의 특권은 신앙인의 동의로 부여된다는 주장 을 거부하였다. 회칙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회 일치 운동에 대한 견 해를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는 지난날 그리 스도의 참된 교회를 불행하게 떠났던 이들이 이 교회로 돌아오도록 촉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와 그의 후 계자들의 권위와 수위권을 받아들여 인정하고 순종하는 사람들만이 유일한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머물면서 구 원될 수 있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어떠한 비(非) 로마 가톨릭 교회 집회에도 참가할 수 없으며 이러한 집 회에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참석하거나 지원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동방 교회의 선인(先人)들과 종교 개혁가들은 영혼의 목자인 교황에게 순종하지 않았 고 그들의 후손들도 선인들의 고향인 로마 가톨릭 교회 를 떠나 있으나 교황은 지난날에 교황청이 받았던 모욕 을 잊고 아버지다운 사랑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겠다고 천 명하였다. 이 회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로마 가 톨릭의 교회 일치에 관한 중요한 기본 문헌이 되었다. 교황 비오 12세 : 교황(1939~1958)은 <그리스도의 신 비체>(Mystici Corporis Christi, 1943), <인류>(Humani Generis), <영원한 왕 그리스도>(Sempitermus Rex Christus, 1951) 그리 고 검사성성의 지침서(1949. 8. 8)를 통해서 교회 일치 운 동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기본 원칙을 천명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 로부터 이어오는 '가톨릭 교회' 는 로마 가톨릭 교회뿐이 라는 확신이 재확인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세례를 받은 사람, 신앙을 고백한 사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서 떠나지 않은 사람, 파문을 받지 않은 사람으로 구성되 며 열교, 이단, 배교는 사람을 그리스도의 몸에서 갈라놓 는다. 문헌들은 교회 일치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원 의를 표명하면서 교회 일치 운동을 프로테스탄트 신자들 이 개인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로 돌아오는 운동으로 보았다. 그리스도는 신비체의 머리로서 보편 교회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특수한 통치 방법과 가시적(可視的)인 통상 적 통치 방법을 통해서 교회를 다스리는데, 가시적 통치 방법은 교황을 통해서 수행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 요 수장이지만 그의 대리자인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인 교황들을 통해서 지상의 교회를 다스리고 있으며 만일 교황의 권위가 무시된다면 그리스도의 신비체 역시 모호 해지고 손상되어 영원한 구원의 항구인 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 가톨릭 신자들은 아직 교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 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갈라진 이들은 참된 하나의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 비오 12세의 회칙들은 과거의 문 헌들보다는 프로테스탄트의 교회 일치 운동에 협조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참 교회는 로마 가 톨릭 교회이며 교회 일치는 가톨릭 교회로 돌아오는 것 으로 규정한 점에서 교회 일치적이기보다는 호교적이며 선교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다. 교회 일치에의 참여 : 그리스도교 일치를 결정적으로 촉진시킨 교황 요한 23세(1958~1963)는 일부 가톨릭 신 자들이 사용한 논쟁적 소리를 지양하고 자주 존경과 애 정을 갖고 갈라진 형제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회칙 <어머 니와 교사>(Mater et Magistra, 1961)와 <지상의 평화> (Pacem in Terris, 1963)는 교황의 그리스도인 일치에 대한 관심을 잘 묘사하고 있다. 교황은 1959년 1월 25일 그 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기도 주간 마지막 날에 성 바오로 대성전을 방문하여 기도실에서 기도한 후에 미사에 참석 한 추기경들 앞에서 사목적 방향의 교회 쇄신과 함께 그 리스도교 일치 촉진을 위해서 전체 공의회를 개최하겠다 고 발표하였다. 1960년 6월 5일에 교황은 그리스도교인 일치 촉진위원회를 창설하였고 다음해에는 세계 교회 협 의회 제3차 뉴델리 총회에 로마 가톨릭 대표단을 참관인 으로 파견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동방 교회와 프 로테스탄트의 대표들을 초대하였다. 1963년 9월 29일 바오로 6세(1963~1978)는 제2차 바 티칸 공의회의 제2 회기에 참관인으로 참석한 프로테스 탄트 대표들에게 그리스도교 분열의 잘못이 있다면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는 갈라진 형제들 에게 용서를 청하며, 로마 가톨릭 교회도 받은 피해를 기 쁜 마음으로 용서하고 오랫동안 분쟁을 통해서 받은 고 통을 잊겠다고 말하였다. 1964년 1월에 교황은 공의회 의 성공을 위해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면서 콘스탄티노 플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를 만나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 교회의 일치 운동에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1965년 12월 7일 바오로 6세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와 함께 1054년의 상호 파문을 취소하는 공동 선언을 발표하였 고 1969년 6월 10일에는 제네바에 있는 세계 교회 협의 회 본부를 방문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가입하지는 않 았지만 이 협의회는 훌륭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가톨 릭 교회와의 신학적 쟁점이 해결되기를 희망하였다. 일치 교령 :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4년 11월 21 일에 교회 일치 교령인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Unitatis Redintegratio)을 반포하였다. 이 교령은 교회 일치에 대해 가톨릭적 원칙과 실천 사항 그리고 갈라진 교회와 교단 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그리스도교 의 일치를 추구하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원의에 있 고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들이 교회 일치를 추구하는 데 에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 존 재한다는 굳은 신념이 전제된다. 교회 일치는 보편 교회 의 주교단은 사도단을 계승하였고 주교단의 수장인 교황 은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이 주교단의 지도 아래에 교회 안에 신앙의 일치가 보존되고 그들의 사제적 직무를 통 해서 교회 안에 성사적 전례가 집전되며 그들의 통치에 따라 하느님 가족의 형제적 화목을 이루는 것이다. 동방 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처럼 전례, 수도 생활, 규율과 같은 훌륭한 유산을 갖고 있으며 프로테스탄트 교단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공통 신앙, 성서, 세례, 그리스도교적 생활과 같은 일치 요소를 지니고 있어 로마 가톨릭 교회 와 결합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치 교령은 현명하지 못 한 교회 일치 운동을 피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회 일 치 운동과 프로테스탄트 교회 일치 운동을 결합시켜 발 전시키며 교회 일치는 인간의 힘만으로 이룩할 수 없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실현된다고 권고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1979년 11월 30일 콘스탄티 노플 총대주교 디미트리오스 1세(Dimitrios I)를 방문한 자리에서 교황은 양측 30명씩의 대표로 로마 가톨릭-정 교회 대화위원회를 구성하여 동방 교회와 신학 대화를 시작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는 1984년 6월 12일에 세계 교회 협의회 본부를 방문하여 교회의 화합도 중요하지 만, 완전한 교회 일치는 신앙의 일치로 이루어지며 이를 위해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5년 6월 28일 그리 스도교인 일치 촉진위원회 창설 25주년을 맞이하여 새 로운 상황에 맞게 교회 일치 지침서가 개정될 필요가 있 다고 언급함으로써 1993년 3월 25일에 광범위한 내용 을 담은 교회 일치 지침서가 교황청 그리스도교인 일치 촉진위원회를 통해 공포되었다. 〔일치 대화〕 동방 교회 : 칼체돈 공의회(451) 이후 갈 라진 고대 동방 교회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관하 였고 교황들은 이 교회의 지도자들을 영접하고 답례로 특사를 파견하였다. 이러한 상호 방문은 두 교회의 관계 를 개선하였고 신학 대화를 통해서 분열의 원인이었던 교리 논쟁도 해결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고대 동방 교회 의 지도자들은 칼체돈 공의회의 그리스도 논쟁은 신학 문제보다는 용어 문제에 기인하였다고 인정하였고 공의 회의 결정이 타당하다고 선언하였다. 1973년 교황 바오 로 6세는 로마에서 이집트 콥트 교회의 총대주교 쉐누다 3세(Shenouda Ⅲ)와 함께 그리스도 교리를 담고 있는 신 앙 선언문에 공동 서명하였다. 1984년에도 같은 내용의 공동 선언이 로마에서 요한 바오로 2세와 시리아 정교회 의 총대주교인 작카 1세(Zakka I)에 의해 선포되었고 두 교회는 교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합동 대화위원회를 구성하여 1994년에 혼종 혼인에 대한 사목 지침서를 발 간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방문과 대화를 통해서 비잔티움 전통의 동방 교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였다. 1978년 이후 두 교회는 상대 교회의 주보 축일을 축하하기 위해 교황은 동방 교회의 주보인 안드레아 사도 축일에 축하 사절을 이스탄불에 파견하였고,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베드 로와 바오로 사도 축일에 특사를 로마에 파견하였다. 1979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디미트리오스 1세를 방문하여 신학 대화를 위한 '로마 가톨릭-정교회 합동위원회' 를 구성하였다. 이 위원회는 <천주 성삼의 신비에서 본 교회와 성체 성사의 신비> (1982)와 <신앙, 성사, 교회 안의 일치>(1987) 그리고 <교 회의 성사적 구조 안에서의 신품성사>(1988)에 대한 보고 서를 제출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1967년부터 러시아 정교회와 신학 대 화 및 사목 활동 분야에서 접촉하기 시작하였다. 두 교회 의 대화 주제는 현대 특히 유럽에서 일어나는 정치, 사 회, 문화의 변화에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두 교회는 신학, 역사, 교회의 분야에 서 차이점이 있지만 서로 이해하면서 현안 문제들을 해 결하기 위해 공동으로 협력할 수 있다는 데에 합의하였다. 1987년 베네치아 (Venezia) 회합에서 대화의 주제로 '교 회의 세계 평화에 대한 봉사의 직무' 로 정하여 토의하고 신학 대화를 계속하기 로 결정하였다. 1988년 러시아 복음화 1천 주년을 맞이하여 요한 바오로 2세 는 축하 메시지와 함께 사절단을 파견 하였다. 프로테스탄트 교단 : '루터교-로마 가톨릭 교회 합동위원회' 는 세 차례 (1967~1972, 1973~1984, 1986~1994) 구성 되어 <말타 보고서>(Malta Report, 1972) 와 두 개의 공동 보고서(1980, 1984)를 제출하였고 '개혁 교회-로마 가톨릭 교 회 국제 대화' 는 두 차례(1970~1977, 1982~ )에 걸쳐 1987년에 공동 보고서 를 간행했다. '영국 성공회-로마 가톨릭 교회 국제위원 회' 는 두 차례(1970~1982, 1982~ )위원회가 구성되어 <최 종 보고서>(Final Report, 1982)와 두 개의 합의 선언(1990, 1993)을 내놓았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가 우려를 표명한 영국 성공회의 여성 사제 서품은 두 교회의 일치 운동과 신학 대화에 새로운 장애로 나타났다. '로마 가톨릭 교 회-감리교 국제위원회' 는 네 차례(1967~1972, 1972~1975, 1975~1980, 1982~1988) 구성되어 1991년에 <사도 전승> (The Apostolic Tradition)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제출하였 고, '로마 가톨릭-오순절교 국제 대화' 는 네 차례(1972 ~1977, 1977~1982, 1982~1986, 1986~1991)에 걸친 모임에서 두 개의 최종 보고서(1982, 1986)를 간행했다. '침례교가톨릭 대화 국제위원회' 는 1984년부터 토의를 시작하 여 1988년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그리스도 제 자-로마 가톨릭 대화' 는 두 차례(1977~1982, 1983~1993) 모임에서 보고서를 내놓았다. 세계 교회 협의회 :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회 지도자 들의 상호 방문을 통해 세계 교회 협의회와의 관계 개선 과 공동 협력에 노력하였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뉴델리 총회 이후 세계 교회 협의회의 총회와 국제적인 집회에 참관인단을 파견, 협력하였다. 로마 교황청은 가톨릭 학 자들을 개인 자격으로 세계 교회 협의회의 신앙 직제 위 원회에 파견하여 <리마 문헌>을 내놓는 데에 도왔다. 교 황청 그리스도교인 일치 촉진위원회는 이 문헌에 대한 지역 교회 주교 회의의 의견을 수렴하고 신앙 교리성과 협력하여, 1987년 7월 종합 소견을 작성하여 세계 교회 협의회에 보냈다. 1965년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세계 교 회 협의회와 합동 연구 그룹(joint working group)을 구성하 여 상호 협력과 대화를 계획, 촉진하였다. 이 연구팀은 교회의 보편성, 사도 전승, 그리스도에 대한 공동 증거와 같은 신학 문제를 논의하여 1980년에 <신앙의 공동 고 백>이라는 문헌을 간행하였고 이후로 '공동 증거, 교회 일치 -목적과 방법' 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와의 관계 : 그리스도교는 그 뿌 리를 유대교에 두고 있으며 유대인들의 유산인 구약성서 를 존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대하는 그리 스도인들의 태도는 너그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오늘 날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를 유대교까지 포함하는 것으 로 폭을 넓히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은 커지고 있지만 이에 반해서 유대인들이 이에 응답하기를 꺼리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이나 그들이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받은 박해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반유대주의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비난도 유대인들의 의혹을 쉽게 가라앉히지는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 교회 협의회의 제1차 총회가 유대인들이 선택된 백성이 아니라는 오랜 비난을 포기했을 때에도, 이에 덧붙여 그리스도교의 복음 선포 에 유대인들도 포함된다고 천명함으로써 유대인들의 의 혹을 불러일으켰다. 현재까지 유대인들의 개종 문제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대화에 있어 관건이 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이중성이 제2차 바 티칸 공의회의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1965. 10. 28) 의 성과를 얼룩지게 했다. 이 선언은 "어느 때, 누구에 의한 것이든" 유대인에 대한 박해와 반유대주의의 표출 을 통탄하면서,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을 이어주는 영 적 유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이 문서를 둘러 싼 공의회의 격렬한 토론으로 인해 많은 유대인들은 이 선언에 대해 실망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살기 때문에 특별한 중요성을 띠고 있는 미국에서 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대화는 오래 전부터 '그리 스도교- 유대교 협의회' 나 '유대교-그리스도교 연구소' 와 같은 기관들에 의해 촉진되어 왔다. 최근에 미국 주교 회의는 '가톨릭-유대교 관계 특별 사무국' 을 발족시켰 다. 〔지 침〕 교황청은 가톨릭 교회의 교회 일치 운동을 한 방향으로 모으고 조정, 발전시키기 위해서 교회 일치 지 침서를 발간하였다. 1967년에 발간된 <교회 일치 운동 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결정들의 적용에 관한 지 침>은 지역 교회 주교 회의 일치위원회와 교구 일치위원 회의 구성, 다른 교회의 교역자가 집전한 세례의 유효성, 가톨릭 교회 안에서의 영적 교회 일치 운동, 성찬례의 공 동 집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70년에 <고등 교육 에 있어서의 교회 일치 운동>이 간행되었는데 이는 교회 일치 교육에 관한 일반적 원칙과 세부 지침, 종교 교육과 신학 교육에 있어서의 교회 일치 운동의 영역, 교회 일치 교육에 있어서의 특별 규범, 개인과 기관의 차원에 있어 서의 가톨릭 신자들과 다른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의 공동 협력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새 지침서 : 1986년에 교황 요한 바 오로 2세의 지시에 따라 그리스도교인 일치 촉진위원회의 총회는 교회 일치 지침서를 갱신하기로 결정하였다. 라틴 전례 교회의 《교회법전》(1983)과 동방 전례 교회의 《교회법전》(1990) 그리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1992)가 새로 발 간되고, 로마 가톨릭 교회가 다른 교회 들과의 관계가 발전된 상황 속에서 교 회 일치 지침서가 개정, 증보될 필요가 있었다. 특별 자문 기관의 사전 작업과 그리스도교인 일치 촉진위원회의 총회 (1986, 1988)의 승인을 거쳐 작성된 초안 이 지역 교회의 주교 회의에 보내졌다. 1989년 그리스도교인 일치 촉진위원 회 총회는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일부 수정하여 1990년에 교황청 신앙 교리 성에 제출하였다. 1992년 11월 11일 에 개정 지침서는 신앙 교리성의 검토를 받고 1993년 3 월 25일 교황의 인준을 받아 <교회 일치 운동의 원칙과 규범의 적용을 위한 지침>이라는 제목으로 발간하였다. 〔자세와 전망〕 교회 일치 운동은 그릇된 평화주의나 무차별주의가 아니다.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교인이 가 견적인 한 형제적 단합을 찾겠다는 이 운동은 자기가 속 한 교회의 교리를 포기하고 타교파와의 쉬운 타협을 찾 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신앙인의 운동이기 때문에 교회 가 그리스도로부터 전수한 진리와 성성을 보다 완전하게 표명하는 바로 그런 쇄신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신자 개개인은 교회의 한 일원으로서 진리와 사랑으로 이 쇄 신에 참여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인은 자기가 속 한 교회의 교리와 다른 교회들의 교리와 공통되는 점뿐 아니라 상이한 점도 연구하고 분명히 인식하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일치 운동의 물결은 모든 그리스도교인에게 막대한 희 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특수한 몇몇 사람이 일으킨 물 결도 아니고, 한 시대의 유행 같은 것은 더욱 아니다. '천주 성령이 움직이시는 물결이고' (일치 4항), 예수 그 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을 남기고 떠나시며 하신 유언이 며(요한 17, 21), 또한 이 시대의 특수 감각으로 가능케 된 그리스도교인의 노력이다. 특수 감각이란 과연 무엇 인가? 16세기에는 남과 다른 점을 즐겨 보고, 남과 분리 되는 자기의 특수성을 보았지만 오늘날은 공통된 것을 찾고 있으며, 19세기까지만 해도 자기의 관점을 남에게 강요하고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해서는 경멸과 배타적인 판단을 서슴지 않았지만 오늘은 자기 것과 다를지라도 남의 것을 인정하고 존경하려 한다. 여기에 이 시대의 특 수 감각을 보아야 하겠다. 천주 성령이 일으키는 물결이 란 말은 그리스도교인을 한데 모은다는 것으로, 구원 계 획 안에 하느님의 새로운 관여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구약에서도 예언자들의 설교에 하느님의 관여는 흩어진 무리를 한데 모으는 행위로 표현되었고(호세 3, 5 ; 이사 11, 12 ; 56, 8 ; 예레 3, 18), 에제키엘은 예수께서 하실 말씀을 미리 말하고 있다. '그들 모두를 위하여 한 목자 밖에 없으리라' (에제 37, 24 ; 요한 10, 16). 이렇게 구원 계획의 실현으로서의 일치 운동은 구원 역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모든 노력은 구원 역사의 흐름 안에 하느님이 원하시는 곳에 인간에게 맡겨진 사 명을 다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이 일치 운동 앞에 모든 그리스도교인이 가져야 하는 자세와 사명이 요구된다. 일치 운동이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있지만 이것은 전 문 분야가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학, 사목, 신앙 생활 전 부가 지녀야 하는 본질의 문제이다. 이 운동은 모든 그리 스도교인이 참여하여 찾아가야 하는 일치를 목표로 하고 있고 그 달성을 위해 그리스도교 사상 자체도 자기의 순 수성과 완전함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 특수한 한 분야로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흔히 이 운동은 교 회의 제도나 신학의 쇄신에만 있는 듯 생각하지만 그보 다 먼저 그리스도교인의 새로운 자세 즉 회개가 이루어 져야 한다. 교파적 자만 자족을 버리고 인간 안에서 말씀 하시는 성령의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알아야 하고 하느님 사랑의 불로 태워 주실 것을 끊임없이 빌어야 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자체 쇄신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이 일치의 구현은 그보다 앞서 각 공동체에 속해 있 는 개체의 쇄신 즉 회개를 전제로 하고 있다. 여기서 회 개라 함은 후회의 결과나 윤리적 분석의 결론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 신자로서의 실존의 깊은 인식에서 우러나는 신앙인의 근본 태도를 말한다. 자신의 정당성 을 위한 주장을 포기하고 남의 판단에, 또 남을 통해서 자신이 봉사하는 절대자의 판단에 스스로를 맡길 수 있 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신 그리 스도를 영접하는 자케오는 먼저 자기의 불의를 보았고 거기에 대한 보상을 생각하였다. 그러기에 '구원이 이 집에 임했던 것이다' (루가 19, 1-10). 이렇게 회개라는 것 은 자기 자신을 문제삼는 데 있으며 자기에게 가장 고귀 한 것까지도 문제로 등장시켜 반성해 볼 수 있는 마음의 태도인 것이다. 신앙의 유산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또 계시의 도구로 사용된 사도로부터 전해졌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 다. 이 유산은 역사를 지배하는 예수의 손에서 역사라는 차원의 제한을 받고 있는 죄인인 인간의 연약한 손에 전 해졌다. 여기에 신앙의 유산은 역사적 형태를 띠게 되고 절대적인 진리가 상대적인 표현 안에 머무르게 된다. 어 떤 때는 너무 부분적이고 좁은 표현이 절대적인 것의 전 체성을 가려 버린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너무 인간적인 이해와 해석이 절대적인 것의 순수성을 침해한 때도 있 었다. 그리스도교 일치 운동은 바로 이 전체성과 순수성 을 되찾는 데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일치 운동은 사상 면 에서나 생활 면에서 우리 태도의 깊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교인이 자기 교파 안에 있으면서 각 자의 깊은 쇄신은 필수 불가결할 것이다. 세상은 매일 개 선되는 것이고 거기 사는 모든 사람에 의해서 되는 것이 다. 교회 역시 그 원천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출발 하여 모든 그리스도교인에 의해서 쇄신되는 것이다. 교 파주의의 배타적이 아닌, 교회를 위한 사랑이 없이는 교 회의 쇄신은 없을 것이다. 봉사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뒤 를 이어 세상에 봉사하는 교회라는 것을 안다면 그 일원 인 그리스도교인 안에 배타적인 교파주의가 있을 수 없 을 것이다. 세례성사로써 그 일원을 만들어 그리스도교 인의 생명을 부여한 교회는 지상에 있는 한, 하나의 제도 적 기구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를 낳아 주고 키 워 준 교회는 오랜 역사 안에 살아온 교회이고 제도상의 쇄신이라는 것도 항상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 기가 한 세포로서 살고 있는 생명체인 교회의 쇄신을 논 함에 있어 그 생명체의 생리를 존중하지 않고 기성 제도 의 한 부분을 파괴하는 데 쇄신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 다. 각 지체 안에 흐르는 그리스도교인의 생명이 먼저 충 만해지면서 기구의 쇄신도 있는 것이고 이 그리스도교인 의 생명이 성령이 부어 주시는 사랑이라면(로마 5, 5) 사 랑은 아무것도 다치지 않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겠다. 신앙과 사랑 안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건립하는 노력이 바로 이 일치 운동에 임하는 자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 다. (⇦ 갈라진 형제 ; → 교회와 타종교) ※ 참고문헌  G.K.A. Bell, Documents on Christian Unity, vol. 4, London : Oxford University Press, 1924~1958/ Ruth Rouse · Stephen Charles Neil eds., A History ofthe Ecumenical Movement 1517~1948, vol. 1, 3rd ed.,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8/ Harold E. Fey ed., The Ecumenical Advance. A History ofthe Ecumenical Movement 1948~ 1968, vol. 2, 2nd ed.,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6/ Robert McAfee Brown, The Ecumenical Revolution. An Interpretation of the Catholic-Protestant Dialogue, New York, Doubleday & Company, 1967/ George Tavard, Two Centuries of Ecumenism, translated by Royce W. Hughes from the French edition Petite histoire de movement oecumenique, Connecticut : Greenwood Press, 1978/ Barry Till, The Churches Searchfor Unity, Middlesex-Maryland-Victoria : Penguin books, 1972/ Samuel McCrea Cavert, On the Road to Christian Unity(rep. Connecticut : Greenwood Press, 1979) ; Jacques Elisee, Twenty Century of Ecumenism, translated by Mattew J.O'Cornnell from the French edition : 20 Siecles d'histoire Oecummique, New York-Ramsey : Paulist Press, 1984/ Charles Boyer, Christian Unity and the Ecumenical Movement, London, Burns & Oates, 1962/ Geofifrey Wainwright, The Ecumenical Moment. Crisis and Opportunity for the Church,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3/ William G. Rusch, Ecumenism : The Movement toward Church Unity, Philadepia, Fortress Press, 1985/ The Pontifical Council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Information Service, nos. 1~84(1967~1993). 〔金聖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