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교구 신부. 세례명은 마티아. 1920년 9월 20일(음)에 평안북도 선천군 운종면 신미리 706번지에서 최시화(崔時和, 요한)와 오덕화(엘리사벳)의 6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부터 동네 서당에서 《논어》(論語)를 배우기도 하였던 그는 초등학교 공부로 만족하지 않고 신학교에 갈 것을 결심하였다. 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서포의 평양교구청 내에 있던 신학생 예비반에 들어가 1년간 평양 성모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소신학교인 동성상업학교 을조에 입학한 뒤 1941년에 졸업하였으며, 이어 덕원 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48년 10월 10일 평양 관후리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음과 동시에, 최항준 신부는 평양 대목구장 홍용호(洪龍浩, 프란치스코) 주교의 비서 겸 교구청 경리 책임자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48년 12월 말경 평양시 인민위원회가 관후리 성당의 양도를 요구하자 부주교 김필현(金泌現, 루도비코) 신부와 함께 완강히 거부하던 최 신부는 1949년 6월 10일 김필현 신부, 평양교구 사업 기성회 강유선(姜有善, 요셉) 이사 등과 함께 북한 정치 보위부원들에게 강제 연행되었다. 이들은 모두 평양시 인민위원회를 거쳐 도 인민위원회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되었다. (→ 평양교구)
※ 참고문헌 평 양교구 순교자 사료 수집위원회, 《북녘 땅의 순교자들 - 평 양교구 편》, 가톨릭출판사, 1999/ 천주교 평 양교구사편찬위원회 편, 《천주교 평양교구사》, 분도출판사, 1981. [白秉根]
최항준 崔恒俊(1920~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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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