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最後 - 晚餐 〔라〕Postrema coena 〔영〕Last su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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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시오. 이는 내 몸입니다(마르 14,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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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시오. 이는 내 몸입니다(마르 14, 22) .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먹은 마지막 식사. 부활한 예수의 발현을 체험한 제자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창립하면서 최후의 만찬을 본떠 만든 교회의 예식은 '성만찬' (聖晚餐) 또는 '성찬례' (聖餐禮, eucharistia)라고 한다.
I. 성서의 언급과 근거
예수의 최후 만찬에 관한 성서에서의 직접적인 언급은 네 곳에 나타난다(1고린 11, 23-26 ; 마르 14, 22-25 ; 마태 26, 26-29 : 루가 22, 15-22) 그리고 비록 성만찬기의 형식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성만찬 전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겨지는 내용이 요한 복음서 6장 51-59절과 13장 1-11절에 언급되어 있다. 100년경 시리아에서 쓰여진 《디다케》 9-10장과 안티오키아의 주교였던 이냐시오(Ignatius Antiochenus, 35?~107)가 로마로 압송되면서 쓴 편지들, 그리고 152년경 유스티노(Justinus, 100/110?~165)가 집필한 《제1 호교론》 65-67장은 성만찬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문헌들이다. 특히 유스티노의 《제1 호 교론》은 현존하는 문헌들 중에서 성만찬례에 관한 첫 번째 전거를 담고 있다.
〔성서의 언급〕 신약성서에 언급된 예수의 최후 만찬기 중에서 바오로의 성만찬기는 고린토 교회가 성만찬례를 거행할 때 저질렀던 불미스러운 일을 언급하는 본문(1고린 11, 17-34)에 나타나 있다. 반면 공관 복음서의 성만찬기는 모두 수난 사화에 들어 있다. 이들 성만찬기는 기록 연대, 언어, 구조, 내용 등으로 보아 예수의 최후 만찬을 사실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1세기 후반 교회에서 행해지던 성만찬 전례문인 것으로 보인다.
고린토 전서 : 사도 바오로가 에페소에서 54년 봄에 쓴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1장 17-34절에는 성만찬례의 그릇된 관행에 대한 꾸짖음이 들어 있다. 고린토 교회의 신자들은 먼저 공동체 식사〔愛餐〕를 한 후 성만찬을 거행하였다. 그런데 경제적 ·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신자들은 일찍 모여 좋은 음식을 마련하여 자신들끼리 다 먹어 버리곤 하였다. 그래서 가난한 신자들, 특히 노예 신분의 신자들이 거의 빈손으로 늦게 와 보면 먹을 게 남아 있지 않았다. 바오로는 이런 비행을 심하게 꾸짖는다(20-22. 33-34절). 이와 관련하여 그는 자신에게 전해진 최후의 만찬기를 인용한다(11, 23-26). 이 성만찬기를 인용하면서 그는 이 내용은 전해진 것이지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23절). 따라서 사도 바오로가 전한 성만찬기는 자신이 속한 교회, 즉 안티오키아 교회로부터 전해 받아 고린토 교회에 전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관 복음서 : 70년경에 쓰여진 마르코 복음서의 성만찬기는 사도 바오로가 전해 주는 내용과는 상이한 양식으로 되어 있다. 마르코 복음서의 성만찬기는 수난 사화와 관련하여 나타나 있다. 문헌적으로 약 15년 늦게 쓰여진 이 성만찬기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전하기보다는 복음사가가 속한 교회의 성만찬기를 옮겨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아마도 이스라엘 밖에 있는 어느 헬라-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사용하던 성만찬기를 옮겨 썼을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의 성만찬기는 마르코 복음서의 것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마태오는 마르코의 성만찬기를 거의 그대로 베끼면서 자신의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을 반영하여 나름대로 약간의 손질을 하였다. 반면 루가 복음서의 성만찬기는 다소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마르코의 최후 만찬기를 수용하고 또 한편으로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 채록된 성만찬 전승을 합쳐 혼합형 성만찬기로 엮었다. 결국 최후의 만찬기 원형에 대한 접근은 마르코 복음서 14장 22-25절과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1장 23-26절에 나오는 성만찬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유대교의 회식과 과월절 만찬〕 예수의 최후 만찬을 이해하려면, 우선 유대교의 회식 절차와 과월절 만찬 순서를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의 최후 만찬이 유대교 회식의 일종이었는지, 아니면 과월절 만찬이었는지에 관한 논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의 회식 : 이 경우 주례자는 가장이나 주빈(主賓)이다. 먼저 전식(前食)이 나오면 손님 각자가 찬양 기도를 바친다. 전식으로는 흔히 포도주가 나왔는데, 이를 전작(前酌)이라 할 수도 있다. 전식이 끝나면 손님들은 모두 손을 씻는다. 그리고 본식(本食)이 시작되는데, 가장이나 주빈이 빵을 들고 찬양 기도를 드린 다음 손님들에게 나누어 준다. 찬양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 하느님이시요 세상의 임금님이시며 땅에서 빵을 생산하시는 주님, 찬양받으소서"(《바빌른 탈무드》 브라코트 35a). 새로운 음식이 나올 때마다 가장이나 주빈이 찬양 기도를 드린다. 본식 때 손님이 포도주를 마시는 경우, 포도주 잔을 받을 때마다 각자 "우리 하느님이시요 세상의 임금님이시며 포도 열매를 만드시는 주님, 찬양받으소서" 라고 기도한다. 본식이 끝나면 손님들은 모두 손을 씻는다. 마지막으로 후식이 나오는데, 가장이나 주빈이 큰 잔(찬양의 잔 : 1고린 10, 16)을 들고 긴 찬양 기도를 드린 후 먼저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돌린다. 그러면 손님들이 돌려가면서 마신다. 다 같이 시편을 노래하면 친목 잔치인 회식은 끝난다.
과월절 만찬 : 이 만찬의 주례자 역시 가장이나 주빈이다. 우선 첫 잔(Kiddush 잔)을 마시게 되는데,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의 잔에 포도주를 따른 후 주빈이 찬양 기도를 드린다. 찬양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 하느님이시요 세상의 임금님이시며 포도 넝쿨에서 열매를 일구어 내시는 주님, 찬양받으소서"(《바빌른 탈무드》 브라코트 35a). 기도가 끝나면 다 같이 잔을 비운다. 이어 전식으로 야채와 과일을 먹는다. 그리고 과월절을 기념하는데, 출애급 사건을 이야기한다(과월절 하가다, Pascha Hagga-da). 이때 과월절이라고 이름 붙인 유래 및 누룩 없는 빵과 쓴 야채를 먹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알렐루야 시편 전반부를 노래한다(시편 113. 114). 두 번째 잔을 마신 후 중식(中食)을 한다. 가장이나 주빈이 누룩 없는 빵을 집어들고 찬양 기도를 한 다음 빵을 떼어 나누어 주는데, 찬양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 하느님이시요 세상의 임금님이시며 땅에서 빵을 생산하시는 주님, 찬양받으소서"(《바빌론 탈무드》 브라코트 35a). 다 같이 빵과 과월절 양고기를 한 조각씩 먹는데, 조각의 크기는 대략 올리브 열매만하다. 이어 세 번째 잔 겸 후식을 하는데, 중식 후에 감사하며 마시는 잔이다. 이때 알렐루야 시편 후반부를 바친다(시편 115-118). 그리고 네 번째 잔을 마시고 끝난다.
〔예수의 최후 만찬과 초대 교회의 성만찬〕 예수의 최후 만찬과 초대 교회의 성만찬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약성서가 전해 주는 최후의 만찬과 성만찬 전승들, 그리고 특히 《디다케》, 이냐시오 주교의 편지들, 유스티노가 쓴 《제1 호교론》을 분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디다케》와 《제1 호교론》의 번역문을 수록한다.
디다케가 전하는 성만찬 : "우선, 잔에 대해서 (이렇게 하시오). 우리 아버지, 당신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 대로 당신 종 다윗의 거룩한 포도나무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빵 조각에 대해서 (이렇게 하시오). 우리 아버지, 당신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 생명과 지식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이 빵 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들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영광과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9, 2-4).
"여러분은 만족히 먹은 후에 이렇게 감사드리시오.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 마음에 머무르게 하신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대해, 또 당신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신 지식과 믿음과 불멸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전능하신 주재자님, 당신은 당신 이름 때문에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들에게 양식과 음료를 주시어 즐기게 하시고 당신께 감사드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종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적 양식과 음료와 영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당신께 감사드리는 것은, 당신이 능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주님, 당신 교회를 기억하시어 악에서 교회를 구하시고 교회를 당신 사랑으로 완전케 하소서. 또한 교회를 사방에서 모으소서. 거룩해진 교회를 그를 위해 마련하신 당신 나라로 모으소서.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총은 오고 이 세상은 물러가라! 다윗의 하느님 호산나! 어느 누가 거룩하면 오고 거룩하지 못하면 회개하라, 마라나타! 아멘. 여러분은 예언자들로 하여금 원하는 대로 감사드리도록 허락하시오"(10, 1-7).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시오.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의 범법들을 고백하여 여러분의 제사가 깨끗하게 되도록 하시오. 자기 동료와 더불어 분쟁거리를 가진 모든 이는, 그들이 화해할 때까지는, 여러분의 제사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여러분의 모임에 함께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주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에게는 깨끗한 제사를 바쳐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위대한 왕이며 내 이름은 백성들에게 놀랍기 때문이다. 주께서 말씀하시도다"(14, 1-3).
제1 호교론이 전하는 성만찬 : "우리는 진리를 알게 된 후 (모범적인) 행동을 하며 선량한 시민들로, 법률을 잘 지키는 사람들로 인정받고 영원한 구원을 받기 위하여 우리의 믿음을 받아들이고 동의한 사람에게 이와 같이 세례를 베풉니다. 그 후 우리는 우리 자신들과 영적으로 깨끗한 사람들 및 사방에 살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기 위해 형제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그(세례받은 사람)를 데리고 갑니다. 기도가 끝나면 우리는 입을 맞추면서 서로 인사합니다. 그 다음에 빵과 물과 포도주가 섞인 잔이 장상에게 봉헌됩니다. 그는 그것들을 받고 나서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만물의 아버지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고, 그분(성부)께서 허락하신 이러한 호의에 합당한 사람들을 위하여 긴 감사 기도를 바칩니다. 이러한 기도가 끝나면 참석자들은 '아멘' 이라고 응답하면서 동의를 표합니다. '아멘' 은 히브리어로서 '그대로 되소서' 란 뜻입니다. 장상이 감사 기도를 드리고 모든 사람이 동의한 후, 우리가 부제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빵을, 그리고 포도주와 물을 나누어 먹게 하고 불참자들에게도 그것을 날라다 줍니다"(65. 1-5).
"우리는 이 음식을 감사 성찬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가르친 것을 진리로 믿고 사죄와 재생의 세례로 깨끗하게 된 사람,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대로 사는 사람 이외의 다른 사람은 이 성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흔히 먹는 빵이나 흔히 마시는 음료와 같이 이것들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셨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살과 피를 취하셨듯이, 그리스도의 간구 말씀으로 축성된 음식은 살을 타고 나신 저 예수의 살과 피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 축성된 음식으로 우리의 피와 살이 소화 과정을 거쳐서 길러집니다. 사도들은 복음서들이라고 불리는 자기네 회고록들에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것을 다음과 같이 전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빵을 드시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기억하기 위하여 이를 행하시오. 이는 나의 몸입니다. 그리고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드시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피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만 (그것들을) 넘겨주셨습니다. 사악한 악마들은 이를 모방하여 미트라의 비밀 예식에서도 동일한 예식이 행해지도록 묵인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비스런 입교 예식에서도 빵과 물잔이 주문과 함께 사용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거나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66, 1-4).
"이후 우리는 서로 이것들을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을 도와 주며, 우리들은 늘 함께 지냅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은혜들을 두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서 만물의 창조주를 기립니다. 태양에 따라 이름을 붙인 날(일요일)에 도시들이나 바깥 여러 지역에 사는 이들이 모두 모여 공동체 모임을 가집니다. 우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사도들의 회고록과 예언자들의 책들을 읽습니다. 독서가 끝나면 장상은 말로 훈계하고 이러한 훌륭한 행위들을 본받을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모두 함께 일어서서 우리의 기도를 바칩니다. 기도가 끝나면, 위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빵과 포도주와 물이 봉헌되며 장상은 정성을 다하여 기도와 감사를 드리고 백성은 '아멘' 으로 동의를 표합니다. 성찬의 음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지고, 부제들은 그것을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날라다 줍니다. 부유한 사람들과 원하는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대로 내놓고 싶은 그들 자신의 소유물을 바치고, 장상은 모여진 것을 맡아 고아들, 과부들, 병 또는 다른 이유로 궁핍한 사람들, 포로들과 다른 지방 출신의 낯선 사람들을 도와 줍니다. 한마디로 그는 궁핍한 사람들을 모두 보살펴 줍니다. 우리 모두는 일요일에 공동체 모임을 가집니다. 그 까닭인즉, 일요일은 하느님께서 어두움과 물질을 변화시켜 세상을 창조하신 첫날이었기 때문이요, 아울러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로부터 같은 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유대인들)은 토요일 전날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그분은 토요일 다음날 즉 일요일에 그의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 우리가 여러분에게 숙고하도록 전해 준 것을 그들에게 가르쳤습니다"(67 1-7).
Ⅱ. 예수의 최후 만찬
〔날 짜〕 예수가 언제 최후의 만찬을 하였는가는 예수가 처형된 날짜와 관련이 있다. 예수가 처형된 연월일에 대해서는 현재 학계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정설이 있다. 이 설에 의하면, 예수는 빌라도가 유대 지방 총독으로 있던 서기 30년, 더 정확히는 그해 4월 7일에 처형되었다 고 한다. 비록 복음서에는 극히 제한적인정보만 주어져 있지만, 마르코 복음서 14장 52절과 요한 복음서 19장 31절에 의하면 예수는 목요일 저녁때 최후의 만찬을 하고 금요일 오후에 숨을 거두었다. 자정으로 하루가 끝나고 새날이 시작되는 현재의 시간 계산 방식으로 보면 최후의 만찬 날과 처형된 날이 다르다. 그러나 일몰을 기준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끝나는 유대인의 시간 개념으로는 최후의 만찬과 처형이 하루 동안에 모두 일어난 셈이다.
공관 복음서에 의하면, 그날은 과월절이었다고 한다 (마르 14, 12-16 ; 마태 26, 17-19 : 루가 22, 14-16). 반면 요한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과월절 전날에 최후의 만찬을 한 다음 체포되고 처형되었다고 한다(13, 1 : 18, 28 : 19, 14). 따라서 공관 복음서를 따르면 예수의 최후 만찬은 과월절 기념 만찬이 되고, 요한 복음서를 따르면 과월절 하루 전날에 이루어진 이별 만찬이 된다. 여기서는 요한 복음서의 증언을 따르겠다. 따라서 예수는 서기 30년 4월 6일 목요일 저녁때 최후의 만찬을 하고, 다음날인 7일 금요일 오후에 예루살렘 성밖 골고타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장 소〕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진 장소에 관한 언급은 최후의 만찬 준비 이야기에만 나온다(마르 14, 13-16 : 마태 26, 17-19 ; 루가 22, 7-13). 마르코 복음서 14장 13-15절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제자 둘을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였다. '성안으로 가시오···2층 방을··· 거기에다 우리를 위해 (음식) 준비를 하시오." 이 내용에 의하면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안으로 가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큰 2층 방에 미리 과월절 만찬 준비를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층 방' 을 뜻하는 그리스어(ἀνἀγαιον ἐστρωμένον)는 신약성서에 오직 두 곳, 마르코 복음서 14장 15절과 루가 복음서 22장 12절에만 나온다. 따라서 '2층 방' 이 구체적으로 어떤 집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예루살렘이 과월절 만찬 지정 도시였다는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신명 16, 5-6 : 에즈 6, 20).
〔만찬 참석자〕 공관 복음서에 의하면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이들은 열두 제자였다(마르 14, 17 마태 26, 20 : 루가 22, 14). 반면 요한 복음서에 의하면 열두 제자 외에도 '애제자' 가 예수 곁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요한 13, 23). 따라서 예수의 최후 만찬에 참석하였던 이들은 예수를 포함하여 모두 14명이었을 것이다.
〔만찬 진행 순서〕 최후의 만찬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가는 이 만찬이 과월절 기념 만찬이었는가, 아니면 유대교 회식의 일종인 단순한 이별 만찬이었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는 예수의 최후 만찬이 유대교 회식의 일종으로서 유대인들의 만찬 순서에 따라 진행되었을 것이라는 요한 복음서의 증언을 따르겠다. 유대인들의 회식은 전식 · 본식 · 후식으로 진행된다. 주례자는 가장 또는 주빈이었다. 예수는 유대인들의 회식 절차에 따라 만찬을 하였기 때문에 최후 만찬 역시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우선 전식으로 예수가 포도주 잔을 들고 찬양 기도를 바친 다음 포도주를 마신다. 이어 본식으로 예수가 빵을 들고 찬양 기도를 바친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 준다. 후식으로 예수는 다시 잔을 들고 찬양 기도를 바친 다음 제자들에게 잔을 돌린다. 그리고 제자들은 돌아가며 그 잔을 마신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 때 유대인들의 회식 절차를 따랐다. 그렇기에 예수의 행위 자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다만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면 만찬 뒤에 예수가 죽임을당하였다는 사실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한 예수의 말씀〕 예수는 유대인들의 회식 절차에 따라 최후의 만찬을 하였다. 그렇기에 예수가 만찬을 하면서 보인 행동 자체는 유대인들의 회식 때의 동작과 별로 다를 게 없다. 다만 두가지 행동의 뜻을 밝힌 말씀들, 즉 빵에 관한 설명어와 포도주 잔에 관한 설명어가 독특하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면서 "받으시오. 이는 내 몸입니다" 라고 하였다(마르 14, 22 ; 1고린 11, 24).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미리내다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식사가 제자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만찬이 될 것임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그들을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 준다는 생각에서 이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바오로는 "여러분을 위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임으로써 이와 같은 사상을 분명히 밝혔다(1고린 11, 24). 한평생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위해 살았던 예수가 죽음에 이르러서도 제자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말씀이다.
또한 예수는 제자들과 빵을 나눈 후 잔을 돌리면서 "이는 내 계약의 피로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쏟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마르 14, 14 ; 1고린 11, 25). 예수는 빵을 나누어 줄 때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에게 포도주가 담긴 잔을 돌리면서 피를 쏟으며 죽임을 당할 자신의 운명을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포도주가담긴 잔을 준 것은 피를 쏟아 죽게 될 자신을 그들에게 내어 주는 상징적 행위라 하겠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을 내어 주는 행위가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믿음(마르 14, 36), 즉 광야에서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정립시켰던 '계약' 의 연장선상에 자신이 서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Ⅲ. 초대 교회의 성만찬
부활한 예수의 발현을 체험한 제자들이 오순절(五旬節, Pentecoste)에 예루살렘 교회를 창립하면서 만든 예식이 세례와 성만찬이다. 성만찬례는 유대인의 회식 절차에 따라 제자들과 함께 이루어진 예수의 최후 만찬을 본떠서 만들어진 것이다.
〔명 칭〕 가톨릭 교회에서 전례의 핵심인 성만찬의 명칭은 매우 다양하다. 초대 신앙 공동체가 예수의 최후 만찬을 기념하여 매주 한 번씩 모여 함께 나눈 공동체 회식을 일컬어 "주님의 만찬" (Coena Domini : 1고린 11, 20)이라 하였다. 또한 유대인들이 회식을 할 때는 가장 또는 주빈이 빵을 들고 하느님께 찬양 기도를 바친 다음 빵을 떼어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준다. 예수는 유대교의 회식 절차에 따라 그렇게 하였고, 초기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성만찬을 거행하였다. 여기서 "빵을 나눔" (fractio panis : 루가 24, 35 : 사도 2, 42. 46 : 20, 7. 11 ; 1고린 10, 16)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또한 1세기 말엽부터는 '주님의 만찬' , '빵을 나눔' 대신 '감사' 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이 명칭은 유대교 회식 시작 때 가장이나 주빈이 빵을 들고 '찬양' (히브리어로 '브라카')기도를 드렸는데, 이를 그리스어로 옮길 때 '찬양' 이란 의미의 '에울로기아' (εὐλογία)로 직역하지 않고 '감사'라는 의미의 '에우카리스티아' (εὐχαριστία)라고 의역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에서 즐겨 사용하는 '미사' (Missa)라는 명칭은 5세기 중엽에 통용되기 시작하였는데, 현재도 그 어원의 유래와 의미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단지 성만찬 예식을 마치면서 '이테, 미사 에스트 (Ite, missa est)라는 말을 한 데에서 생겨난 명칭이라는 게 정설로 내려오고 있다. 이는 미사가 끝났으니 해산하라는, 해산 선언을 뜻한다.
〔거행 시간〕 그리스도인들은 "주간 첫날에"(1고린 16, 2 ; 참조 : 루가 24, 13 : 사도 20, 7) 또는 "일요일"(《제1 호교론》 67, 3)에 모여 성만찬을 거행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모여 성만찬을 지낸 까닭은 예수가 금요일에 처형되고 일요일에 부활하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제1 호교론》 67, 7). 그래서 1세기 말엽부터 주간 첫날 또는 일요일을 일컬어 "주님의 날" (Dies Domini : 《디다케》 14, 1)이라 하였다.
유대인의 시간 개념으로는 일몰을 기준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끝나기 때문에 유대인의 일요일은 토요일 저녁해질 때부터 일요일 저녁 해질 때까지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시각에 성만찬을 거행하였을까? 초기에는 일요일 낮보다 토요일 저녁에 모여 성만찬을 거행하였을 것이다(루가 24, 29. 30 ; 사도 20, 7). 하지만 이후에 성만찬 거행 시간이 일요일 아침으로 바뀌었다. 그 근거로는 우선 비티니아 속주의 총독인 플리니우스 2세(G. Plinius Caecilius Secundus, 61/62?~113?)가 112년경 트라야누스 황제(98~117)에게 보고한 서간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장하기를, 자기네 죄악 또는 잘못이라야 다음의 사실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일정한 날 밝기 전에 모여, 서로 번갈아 가며 마치 신과 같은 그리스도를 위해 찬송가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끝나면 그들의 관습에 따라 헤어졌다가 (나중에) 다시 모여 음식을 드는데, 이는 해롭지 않은 보통 음식입니다" (편지 10권, 제96신 7항). 또한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치프리아노(Cyprianus, 200/210?~258)는 편지에서 "감사(예식)는 저녁때 제정되었지만 우리는 아침 제사로 감사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그로써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기리기 때문입니다"(63, 15-16)라고 밝히고 있다.
〔장 소〕 313년에 콘스탄틴 대제(306~337)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기 전까지는 건물로서의 성전이 없었다. 따라서 로마에서는 박해가 심할 때는 지하 묘지인 카타콤바(Catacomba)에 숨어서 은밀히 성만찬을 거행하였고, 박해가 덜할 때는 교우들 집에서 성만찬을 거행하였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신자들 역시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성만찬을 거행하였다(사도 2, 46-47). 따라서 교회는 본래 건물이 아니라 가정에서 모인 신앙 공동체였다.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집에서 모임을 가졌다는 또 다른 전거가 신약성서 곳곳에 나타나 있다(1고린 16, 19 : 필레 2절 ; 로마 16, 5 : 골로 4, 15). 따라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성만찬을 거행하기 위해 모였던 장소는 교우들의 가정집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주례자〕 서기 30년경 오순절의 성령 강림 사건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예루살렘 교회의 교회 지도자들은 열두사도들과 일곱 봉사자들이었다. 이들 다음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돌본 이들은 원로들이었다(사도 11, 30 : 15, 2. 4. 6. 22. 23 ; 16, 14 : 21, 18). 그러므로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주로 이들이 성만찬을 집전하였을 것이다. 서기 33년경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사도가 된 바오로는, 44년경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 세워진 공동체에서 바르나바와 함께 그 교회를 돌보았다. 바오로가 지중해 주변의 여러 도시들에 교회를 세우면서 사도들과 전도사들이 많이 생겨났고, 따라서 어느 지역 교회에 사도가 찾아왔을 때는 그가 성만찬을 집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가 없는 공동체에서는 그 지역 교회의 책임자들, 즉 연장자나 주빈이 성만찬을 집전하였을 것이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1장 17-22절을 보면 고린토 교회 교우들은 바오로가 없을 때 자신들끼리 성만찬을 집전하였다.
그럼 구체적으로 누가 성만찬을 집전하였을까? 신약시대는 교계 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때였기 때문에 지역마다 교회 지도자들의 직분 이름이 달랐다. 성서에 나타난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바오로의 편지들을 보면 "감독들과 봉사자들"(필립 1, 1), "수고하며 주님 안에서 교우들을 지도하고 훈계하는 이들"(1데살 5, 12), "사도들, 예언자들, 교사들"(1고린 12, 28)이 교직자였다. 바오로 사후에는 "그리스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전파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다"(에페 4, 11). 그리고 당시의 교계 제도를 보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사목 서간에는 "감독"(1디모 3, 1-7 ; 디도 1, 7-9), "봉사자들"(1디모 3, 8-13), "원로들"(1디모 5, 17-22 : 디도 1, 5-6)이 책임자들이었다. 《디다케》가 쓰여진 100년경 시리아 교회들에는 두 부류의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다. 첫째 부류는 사도들과 예언자들로서, 이들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여러 교회를 떠돌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던 떠돌이 전도사들이다(9. 11장). 둘째 부류는 지역 교회에서 뽑힌 교회 책임자들로서, 감독들과 봉사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15장). 이 두 부류의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떠돌이 예언자들과 붙박이 예언자들이 지역 교회에서 뽑힌 감독이나 봉사자들보다 더 존경을 받고 성만찬 집전에 주도권을 행사한 것 같다(10, 7 ; 15, 1-2). 따라서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교회에 찾아올 때만 그들이 성만찬을 집전하고(10, 7), 그들이 없을 때는 감독들과 봉사자들이 그 직무를 이행하였을 것이다(15, 1).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가 스미르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현행 교계 제도와 흡사한 성직 계급들이 나타난다. "마치 예수께서 아버지를 따르듯이 여러분은 모두 감독(주교)을 따르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마치 사도들을 따르듯이 원로단(사제단)을 따르시오. 여러분은 하느님의 계명을 존경하듯이 봉사자들(부제들)을 존경하시오. 어느 누가 감독을 빼놓고 교회와 관련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감독 자신이나 또는 그가 지정한 사람이 집전하는 그런 감사만이 적법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듯이 감독이 나타난 곳에 (교회의) 무리가 있어야 마땅합니다. 감독을 빼놓고 세례를 베풀거나 애찬(Agape)을 행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8, 1-2). 이 편지에 의하면 107년경에 이미 교회에는 세 부류의 성직자들, 즉 감독과 원로단 그리고 봉사자들이 있었다. 이냐시오는 스미르나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감독(주교)과 감독이 지정하는 사람만이 성만찬을 집전할 수 있다고 명시하였다.
〔진행 순서〕 고린토 교회의 신자들은 식사를 먼저 한 후 성만찬을 거행한 것 같다(1고린 11, 17-22). 성만찬에 앞서 교우들이 함께 식사하였다는 또 한 가지 전거는 《디다케》 9-10장과 14장이다. 통설에 따르면 9-10장은 애찬기(愛餐記)이고, 14장은 성만찬기이다. 특히 9장 1절부터 10장 6절까지의 감사 기도문은 공동체 식사 때 드린 기도이고, 그 식사에 이어 예언자들이 주례가 되어 성만찬을 집전하였을 것이다(10, 7).
성만찬과 식사가 완전히 분리되기 시작한 시기는 110년경이다. 비티니아의 총독 플리니우스 2세가 112년경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른 새벽 해가 솟기 전에 성만찬을 행하고 일단 헤어졌다가 나중에 다시 모여 공동으로 회식하였다. 더 확실한 증거는 유스티노의 《제1 호교론》 65장과 67장으로, 여기에서는 처음으로 성만찬 절차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식사에 관한 말은 전혀 없다. 즉 이 내용에 의하면, 155년경 지역 교회에서는 식사는 없어지고 성만찬만 거행되었다. 692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동방 주교 회의에서 애찬을 언급하지만, 그 후 애찬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경신례의 핵심이 되는 성만찬 전례는 교회 안에서 어떻게 거행되었을까? 이를 《제1 호교론》 65장과 67장을 통해 살펴보자. 65장에 의하면 성만찬 전례는 세례식에 이어 거행되었는데, 이것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예물 준비' 를 한다. 세례식에 이어 성만찬을 거행하였는데, 이때 그리스도가 손에 들었던 빵과 포도주를 형제들의 으뜸으로 예식을 주례하는 이에게 바친다. 이어서 '찬양 기도' 를 한다. 주례자는 그것을 받아들고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만물의 아버지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고, 하느님께서 이렇듯 큰 선물들을 내려 주신 이들의 이름으로 긴 감사 기도를 바친다. 기도와 감사 끝에 참석자들은 모두 동의한다는 뜻을 표시하면서 '아멘' 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영성체' 를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행하였던 것처럼 빵을 나누어 포도주와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다.
또한 67장은 일요일에 거행된 성만찬을 보도하는데, 2세기 초부터 성만찬 날의 식사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유대인들의 회당 예배를 닮은 말씀 전례가 성만찬의 고정 요소로 정착되었음을 보여 준다. 말씀 전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독서' 를 하는데 신자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공동체 모임을 가지면서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사도들의 회고록이나 예언자들의 책들을 읽는다. 이어서 '설교' 를 한다. 즉 독서자가 독서를 마친 후 모임의 지도자는 덕행의 사표들을 본받도록 모든 이들을 훈계하고 권면하는 내용의 설교를 한다. 설교가 끝난 후에는 모두 함께 일어서서 '공동 기도' 를 바친다. 이러한 말씀 전례가 끝난 후에 성만찬이 이어진다.
《제1 호교론》 65장과 67장에는 성만찬 거행 양식이 두 번 반복하여 언급되는데, 앞의 것은 세례식에 이어 새 영세자들과 함께 거행된 것이고, 두 번째 것은 말씀의 전례와 함께 일요일에 거행하였던 성만찬 전례이다. 여기에는 오늘날 거행되는 미사와 상당히 비슷한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성만찬 전례는 그리스도교 경신례의 중심이 되었으며,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마다 신자들이 함께 모여 이를 거행하였다. 따라서 현행 성찬 전례는 2세기 초부터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IV. 신학적 의미
〔그리스도론적 의미〕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시오"(1고린 11, 26). 이처럼 사도 바오로는 성만찬례가 선교와 관련하여 거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즉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해야 할 것은 빵과 포도주의 나눔이요, 기억해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알려야 할 것은 주님의 죽으심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빵과 그리스도의 피인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마다 예수의 죽음을 회상하고, 그 죽음을 그분이 재림할 때까지 알려야 하는 것이다. 즉 성만찬에 참석한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1고린 11, 23)과 예수의 비극적 죽음(1고린 11, 26)을 되새겼으며, 그리스도가 다시 올 때를 학수고대하였던 것이다. 결국 성만찬례는 십자가에서 죽은 과거의 예수님을 기억하고(회상제), 부활하여 빵과 잔에 현존하는 현재의 그리스도를 기리며(찬양제), 장차 재림할 미래의 주님을 기다리는 예수 잔치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최후 만찬을 본떠 성만찬례를 거행하면서 3차원의 그리스도를 기억하였으며, 이 성만찬례를 그분의 재림 때까지 계속 반복해야 하였다. 이를 통하여 신자들은 예수의 죽음이 주는 의미를 언제나 새롭게 깨달았으며 주님의 죽음을 전하였던 것이다.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빵과 잔 안에 임재하시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다." 부활한 그리스도가 음식의 모습으로 현존한다는 믿음을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와 1551년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는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풀이하였다. 겉은 빵과 포도주로 남아 있지만, 속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교리이다. 실체가 변한다고 해서 '실체 변화' (transsubstaniatio)라 한다. 그러나 루터(M. Luther, 1483~1546)는 실체 변화 대신 '실체 공존' (con-substantiatio)이라 하였다. 이에 대해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종교 개혁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교단들은 '특히 성품성사의 결여로 성찬 신비 본연의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지 못하였다' (일치 22항). 이러한 이유로 가톨릭 교회는 이들 교단들과 성찬례 공동 거행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교단들도 '성찬식에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면서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로 생명을 얻는다고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일치 22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1400항).
〔교회론적 의미〕 친교 : 성만찬의 첫 번째 의미는 친교 (κοινωνία)이다. 그런데 '친교' 는 가진 것들을 나눌 때 실현된다. 사도 바오로는 성만찬이 지니는 '친교' 와 '나눔' 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우리가 찬양하는 찬양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와 맺는 친교가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과 맺는 친교가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니, 우리는 여럿이지만 한 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빵을 나누기 때문입니다"(1고린 10, 16-17). 성만찬의 뜻은 부활한 그리스도와의 친교요, 그리스도인들 서로 간의 친교라는 것이다. 즉 부활한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끼리 하나되는 잔치가 곧 성만찬례라는 것이다. 바오로는 시간적 · 경제적 여유가 있는 교우들이 성만찬례를 거행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자신들만 일찍 모여 맛있는 음식을 미리 먹고 마시는 고린토 교회의 행동을 개탄하였다(1고린 11, 17-22). 가난한 교우들, 특히 주인에게 얽매인 노예 · 머슴들은 음식이 없어 굶주리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업신여김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1고린 11, 20-22). 이는 '친교' 와 '나눔' 이 없이 행해진 성만찬례의 단적인 예라 할 수있다. 성만찬을 일컬어 '빵을 나눔' 이라고 한 것은 성만찬이 가지는 나눔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유스티노의 《제1 호교론》에는 성만찬이 지니는 나눔의 의미가 잘 드러나 있다. "부유한 사람들과 원하는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대로 내놓고 싶은 그들 자신의 소유물을 바치고, 장상은 모여진 것을 맡아 고아들, 과부들, 병 또는 다른 이유로 궁핍한 사람들, 포로들과 다른 지방 출신의 낯선 사람들을 도와 줍니다. 한마디로 그는 궁핍한 사람들을 모두 보살펴 줍니다" (67, 6).
예수가 주는 몸과 쏟는 피는 '준다' 는 것을 의미한다. 성만찬은 주는 것이다. 예수는 빵과 포도주를 주면서 우리가 당신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도록 당신 자신을 음식으로 준다. 따라서 나눔은 당신 스스로를 내어 준 예수와 일치하는 것이며, 또한 형제들과의 일치이자, 많은 사람을 위해 개방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섬김 : 성만찬의 두 번째 의미는 '섬김' (διακονία)이다. 예수는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고 또한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속전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습니다"(마르 10, 45)라고 하였다. 즉 많은 이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바치겠다는 마음이다. 이러한 의미는 성만찬의 핵심을 이루는 "여러분을 위하는 내 몸과 "많은 이들을 위하여 쏟는 피" 라는 말씀에도 드러나 있다.
요한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최후의 만찬을 시작할 무렵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줌으로써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었다(요한 13, 1-17).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후에 예수는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세를 당부하였다. "주(主)요 또 선생인 내가 여러분의 발을 씻었다면 여러분도 마땅히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본을 보여 준 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행한 대로 여러분도 그렇게 행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3, 14-15). 이 섬김의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 있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 임할 때 평소에 사랑하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였다(요한 13, 10). 그리고 그분은 인류를 사랑하기 때문에 인류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하느님께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이 되었다(에페 5, 2). 성만찬례의 기본 정신은 사랑이고 이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 섬김이다.
되돌아섬 : 성만찬례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덕목은 '되돌아섬' (μετάνοια)이다. 바오로는 고린토 교회 신자들이 성만찬례를 거행하기에 앞서 가져야 할 자세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이 빵을 먹거나 이 잔을 마시는 이는 주님의 몸과 피의 죄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먼저 자신을 살펴보고 그 다음에야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시도록 하십시오.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신을 단죄하는 심판을 먹고 마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 병자들과 허약한 이들이 많고 또 잠든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핀다면 심판은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주님께 심판을 받으며 그런 징벌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과 함께 영영 단죄받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1고린 11, 27-32).
여기서 "합당하지 않게" 빵을 먹거나 잔을 마신다는 것은, 공동체 회식(애찬)을 합당하지 않게 행하고서 성만찬에 참여하는 행위를 뜻한다(1고린 11, 17-22). 또한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않고" 먹고 마신다는 의미 역시 공동체 회식에서 부유한 교우들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교우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합당하지 않게" 빵을 먹거나 잔을 마시는 행위와 몸을 "분별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행위는 공동체 회식에서 부유한 교우들이 자신들이 가져온 음식을 미리 먹는 바람에 배고픈 사람과 술 취한 사람이 생기고(1고린 11, 21), 그 결과 공동체가 분열되는 현상이 생기는 것(1고린 11, 18)과 내용이 일치한다. 그래서 바오로는 이러한 비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고린토 교회 신자들이 먼저 "자신들을 살피고"(1고린 1, 28. 31), 성만찬례를 거행하기 위해서 모일 때에는 가난한 교우들을 기다려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어야 한다(1고린 11, 33)고 권고하였다. 그러므로 성만찬례에 참석하는 이는 누구든지 자신을 살피고 공동체 회식에서 올바른 행동을 취하는지를 판단하여 '되돌아섬' 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사목적인 의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부활을 체험하면서 예수의 최후 만찬을 성만찬례로 만들어 매주 토요일 저녁 식사 때, 후에는 일요일에 재현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성만찬을 지낸 까닭은 예수가 금요일에 처형되고 일요일에 부활하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즉 성만찬례는 주간 예식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마다 이 성만찬을 거행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반복 실행 명령' 을 만들었다. 즉 "여러분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1고린 11, 24b)와 "여러분은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1고린 11, 25b)가 그것이다. 이는 교회의 지침으로서 미사 통상문 안에 들어 있는 전례 지침(rubrica)과 같은 것이다.
결국 사도 교부 시대까지는 오늘날처럼 매일 미사를 봉헌한 것이 아니라 주일마다 성만찬례를 거행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성만찬례는 예수의 반복 실행 명령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1고린 11, 20)마다 언제나 다시 이루어졌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예식은 반복되어야 했으니, 그 이유는 예수의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1고린 11, 26). 이렇듯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반복 실행 명령을 통해 예수를 언제나 살아 계신 분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 과월절 ; 만찬 미사 ; 미사 ; 빵 나눔 ; 성찬 전례 ; 에우카리스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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