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득 崔 - (1807~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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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세례명은 필립보. 서울의 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여러 해 동안 이교도처럼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몇몇 착한 신자들의 권면으로 신앙을 되찾아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으며 선교사가 입국한 뒤에는 그를 찾아가 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바로 그때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났고, 그는 3월에 체포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었다. 두 번째 문초 때 마음이 약해져 배교하고 석방된 최희득은 이때부터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을 받아야만 하였으며, 순교의 은총을 받아 숙식조차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결국 어느 날 포교들을 만난 자리에서 배교한 것을 뉘우친다는 말을 한 뒤 다시 포도청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때까지 그는 순교 원의가 굳지 못하였으나, 옥중에서 조신철(趙信喆, 가롤로)과 긴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순교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포도대장이 그의 속마음을 떠보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천주교의 교리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죽어도 버리지 못하겠습니다"라고 신앙을 증거하였다. 이후 그는 모두 열두 차례의 문초와 형벌을 받고 치도곤 290대를 맞아 몸이 성한 데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또 포졸들이 한 번 배교하고 나서 아직도 천주교 신자라고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라고 비웃는 것도 참아내야만 하였다. 그러나 은총의 힘을 얻어 신앙을 지탱하고 1839년 10월 31일(음력 9월 25일) 유대철(劉大喆, 베드로)과 함께 옥중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니, 당시 그의 나이는 32세였다. (→ 기해박해)
※ 참고문헌  《기해 일기》/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I'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샤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중, 한국교 회사연구소, 1980. 〔車基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