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사물들에 대한 실제의 분리가 아닌 정신적인 분리를 말한다.
추상 또는 추상 작용은 어떤 사물에서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한 가지 측면만을 취하여 인식하는 정신적 활동이다. 이때 추상 작용을 통해 인식되는 측면은 그 자체로, 정신적으로 분리시키는 다른 측면들로부터 동떨어져서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가지적인 것의 추상〕 추상의 여러 종류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감각 경험의 소여(所與)들로부터 가지적(可知的) 대상을 추상하는 작용이다. '감각적인 것'(sensibile)과 '가지적인 것' (intelligibile)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감각적인 것' 은 인간이 물리적 세계의 사물들과 갖는 본래적 인식의 접촉에서 얻게 되는 소여들, 즉 그 색깔과 모양, 소리, 냄새, 맛, 온도, 무게, 움직임과 정지 등이다. 반면 '가지적인 것' 은 감각적인 것과는 달리, 안정되고 정의 가능하며 장차 과학으로 발전될 대상이다. 만일 감각적인 것이 사물들 안에서 현상적이라면, 가지적인 것은 그것들 안에 담겨 있는 의미이다. 경험 소여로서의 감각적인 것은 특수하고 개별적이며, 장소와 시간에 묶여 있다. 그러나 가지적인 것은 보편적이다. 즉 그것은 여럿에 대해 서술될 수 있고, 개별적 차이들이나 장소 및 시간의 변동과는 무관하다.
로크(J. Locke, 1632~1704)나 흄(D. Hume, 1711~1776)과 같은 경험주의자들은 지식을 감각 경험의 영역으로 한정하며, 감각적인 것과 가지적인 것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간혹 추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여러 사물들에 적용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어떤 개요를 포함하고 있는 영상으로 간주되는 감각적 인상에 대한 다소 정교한 재작업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경험주의자들은 감각적인 것에서 가지적인 것의 추상은 없다고 단언하였다.
사상사에서는 감각적인 것과 가지적인 것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지식을 추상 이론에 호소하지 않은 채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과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가 그 대표자들이다. 플라톤은 가지적인 것이 감각 경험의 소여들을 관통하여 그 가지성에 주목한 결과라고 보지 않고 감각적인 것으로부터그것과는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실존하는 가지적인 것으로 전환할 때 얻게 된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순수 가지적인 것들의 세계와 경험 세계를 뚜렷이 구분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학습이란 이 지상 실존에서 일시적으로 망각해 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득적으로 현존하고 있는, 다른 세계로부터 얻은 관념들을 '상기' 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아우구스티노에게 있어서 가지적인 것들은 생득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상기를 통해 포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감각 소여들로부터 일어난 추상 작용을 통해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 지성은 신에 의해 제공되는 '비물질적인 빛의 조명' 덕분에 가지적인 것들을 인식할 수 있다. 시각이 물리적 빛을 통해 감각적으로 보듯이, 지성은 '신적인 조명' 을 통해 가지적인 것들을 보게 된다. 플라톤은 물론 아우구스티노에게 있어서도, 감각적인 것과 가지적인 것 사이에는 형이상학적으로 무한한 거리가 있고, 또 가지적인 것이 감각적인 것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알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추상이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83~322/321)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도 '감각적인 것' 과 '가지적인 것' 사이에는 형이상학적인 무한한 거리가 있지만, 후자는 오직 전자를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추상 작용이 인식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토마스의 인식론에 따르면, 어떤 사물들(예를 들면 사람, 나무, 돌 등)은 감각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지성에 의해서도 포착될 수 있지만, 다른 것들(예를 들면 천사)은 오직 지성에 의해서만 포착될 수 있다. 인간은 감각적으로도 인식할 수 있고, 지성적으로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은 감각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감각적으로 포착되는 사물들의 감각적 성질들은 직접적으로 알려지지만, 가지적인 것은 오직 감각적인 것의 매개를 통해서만 알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사물들은 현실적으로 감각적' (sensibile in actu)이고 다만 '가능적으로 가지적'(intelligibile in potentia)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감각적인 것인 사물은 있는 그대로 현실적으로 감각될 수 있다. 그러나 가능적으로 가지적인 것이 현실적으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적으로 가지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감각 기관들은 현실적으로 감각적인 것들을 현실적으로 보기 위한 능력들이다. 지성, 즉 '가능 지성' (intellectus pos-sibilis)은 현실적으로 가지적인 것을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능력이다. 감각 기관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들이 현실적으로 감각적이기 때문에 그 어떤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지만, 가능 지성은 가능적으로 가지적인 것을 현실적으로 가지적인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또 다른 지성적 차원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능력이 '능동 지성' (intellectus agens)이다. 가능적으로 가지적인 내용은 감각적 표상(phantasma)을 통한 지식 안에 본래적으로 현존하고 있다. 이 감각상을 통해 인식 주체에 현실적으로 현존하게 되는 것은 오직 그 사물의 감각적 성질들뿐이다. 그러나 그 사물은 현실적으로 감각적인 동시에 가능적으로 가지적이기 때문에, 그 사물의 가지적 측면은 감각상을 통해 인식자에게 '가능적으로' 현존하고 있다. 능동 지성은 그 감각상을 조명함으로써 가지적인 것이 가능 지성에 의해 '현실적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영적 또는 비물질적 빛이다.
가능 지성은 감각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수동적 능력으로서, 가능태로부터 현실태로 전환된 이후에야 비로소 작용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물리적인 사물은 감각 기관들을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전환시킬 수 있다. 즉 능동적 감각 기관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물 자체는 물리적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온전히 영적인 가능 지성을 현실태로 전환시킬 수 없다. 오직 어떤 영적인 것만이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능동 지성' 의 몫이다. 그러나 이 능동 지성은 특별히 지정되지 않은 빛이고 또 어떤 규정적인 것밖에는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 지성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물론 그것을 지정함으로써 어떤 규정적인 것을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에 따라 능동 지성은 지성적 인식의 주된 원인으로서 도구적 원인인 감각상들을 활용한다. 이처럼 능동 지성과 감각상이 합세하여 가능 지성을 현실화시키고, 일단 가능 지성이 어떤 사물의 특정 가지적 측면에 대해 가능태로부터 현실태로 전환되면, 특정 가지적 대상을 인식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 이때 가지적인 것은 감각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다른 것인 채로 남아 있다. 지성적 인식은 결코 감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지적인 것은 오직 엄밀하게 추상 행위인 직관적 통찰을 통하여 감각 경험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만 알려진다.
〔가지적인 것의 보편성〕 추상적 직관에서 인식되는 내용은 감각 경험의 소여들로부터 뚜렷이 구별된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감각 지식의 특성이 '개별적' (indivi-duale)이고 '특수한' (particulare) 데 반해, 지성적으로 인식되는 대상의 특성은 '보편적' (universale)이라는 점이다. 지성은 인식 대상의 의미 내용을 향한 욕구이다. 실상 어떤 대상의 의미 내용과 그 보편성 사이에는 반비례 관계가 있다. 예컨대 인간은 실체보다 그 내용에 있어서 훨씬 더 풍부한 대상이지만, 훨씬 덜 일반적이다. 만일 지성이 가지적 내용이나 의미보다는 초월적인 보편성에 관련되는 것으로 정의되어야 한다면, 이것은 지성적 삶의 찬란한 성취들이 가지적 관점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은 어떤 대상을 소유하게 되는 것임을 강력히 시사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성적으로 인식된 대상이 보편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 사물 안에서 가지성을 감싸고 있는 (그래서 오직 가능적으로만 가지적인) 것이 '질료' (materia)이고, 이것은 또한 물리적 사물을 개체화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지적인 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비가지성의 원리이자 개체화의 원리인 질료를 벗어 버려야 하는데, 실제로 그것은 앞에서 말한 능동 지성의 빛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성은 본질적으로 가지적인 것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가지적인 것을 인식하는 대가는 그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지성적 인식의 대상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 성격과 관련하여 부연 설명이 좀 더 필요하다. 실재적 주체들의 영역에는 오직 개별적인 것들만 실존한다. 어떤 대상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추상은 어쨌든 사물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이 보인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추상 작업에는 대상을 본래적으로 왜곡시키는 어떤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정신 안에 있는 보편적인 '무엇임' (quidditas)은 그 자체로 사물들 안에 개별화되어 있는 동일한 무엇임과 가지적으로 다를 필요가 없다. 본성 또는 무엇임은 그 자체로 개별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두 가지 실존 방식을 동시에 취할 수 있다. 즉 본성들은 정신 바깥의 최초의 실존에서는 개별자의 상태로 있지만, 정신 안에 있는 대상으로서의 두 번째 실존에서는 보편자의 상태로 있다. 보편자는 '실재적 존재자 (ens realis)가 아니라 '이성의 존재자 (ens rationis)이다. 본성은 인식되는 과정에서 보편성을 띠게 되지만, 그때 그 자체로 단지 정신 안에서 비실재적 상태가 되기 위해 가지적으로 비실재화되는 것이 아니다. 본성은 언제까지나 그 사물의 본성인 채로 남아 있다. 이처럼 추상이 사물을 거짓되게 만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추상을 통하여 인식하기 때문에 어떤 값을 치러야 한다. 사물들은 그것들을 인식하는 정신과는 무관하게 주체들로서 실존하기 때문에,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감각적인 것들과 그것들을 단순한 가능성 이상으로 만드는 '존재' (esse) 또는 '존재 현실력' (actus essendi)과 마찬가지로, 많은 가지적 측면들을 지니고 있는 매우 복잡한 복합체들이다. 추상적 직관 행위에서는 어떤 가지적 측면이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추상되어 인식된다. 그리하여 어떤 추상적 직관의 순간에 추상을 통한 인식은 심각하게 불완전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교정할 수 없을 정도의 거짓된 지식과 불완전한 지식 사이에는 무한한 차이가 있다.
〔종 류〕 이제까지의 논의는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가지적인 것의 추상에 국한시켜 전개되었다. 그러나 추상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이에 따라 다양한 학문들이 분류될 수 있다.
단순 포착과 부정 판단 : 추상의 종류들 가운데 중요한 구별은 '단순 포착' (apprehensio simplex)을 통한 추상과 '부정 판단' (iudicium negativum)을 통한 추상의 구별이다. 단순 포착을 통하여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부터 추상한다는 것은 그 나머지를 인정하지 않은 채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오직 전자가 후자 없이 정의되고 이해될 수 있을 때라야만 타당하다. 여기서 전자가 실존적으로 후자로부터 독립적일 필요는 없다. 어떤 것들(예컨대 인간과 같은 어떤 본성)은 어떤 다른 것(예컨대 개별화하는 특성들)으로부터 동떨어져서 실존하지는 않지만, 그것들로부터 동떨어져서 정의된다. 물론 그것들은 단순 포착에 의한 추상을 통해 이것들로부터 추상될 수 있다.
하나의 사물을 부정 판단을 통하여 다른 것으로부터 추상한다는 것은 단지 그것을 그 다른 것과 독립적으로 인식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다른 것 없이도 실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추상은 오직 다른 것으로부터 추상되는 내용이 그 다른 것으로부터 의미에 있어서 독립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실존적으로도 독립적일 때에만 타당하다. 예컨대 인간의 본성은 부정 판단을 통하여 개별화하는 특성들로부터 추상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비록 그것들로부터 동떨어져서 정의될 수는 있지만 동떨어져서 실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부정 판단을 통하여 나무로부터 추상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의미나 실존에 있어서 나무로부터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무가 인간의 정의에 들어가지 않고, 인간은 나무 없이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별은 보편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주 지적하는 것처럼, 단순 포착을 통한 추상과 부정 판단을 통한 추상 사이를 구별하지 못한 점이 플라톤으로 하여금 '형상들' 과 '수학적인 것들' 을 독립적으로 '실존하는' 것으로 설정하도록 강요하였던 것이다.
간결 추상과 비간결 추상 : 지성적 추상 유형들의 구별은 어떤 대상을 추상적으로 표현되게 만드는 '간결 추상 (abstractio praecisiva)과 어떤 대상을 구체적으로 표현되도록 만드는 '비간결 추상' (abstractio non-praecisiva)에 있다. 예컨대 '경건한' 과 '경건함' 은 지성적 내용에서는 별 차이가 없으나, 개념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경건함'의 형상성은 '경건한' 의 개념 방식에서는 어떤 담지자에게 (일반적으로) 속하는 것으로 개념화되고 있다. 경건한 (사람)' 은 '경건함을 지니고 있는 주체' 와 동의어이다. 마찬가지로 이 동일한 형상성은 담지자와의 연관에서 추상될 때, '경건함' 의 관념으로 개념된다. '경건한(사람)'은 어떤 전체 즉 경건함의 담지자인 전체적 주체를 지칭하지만, 오로지 경건함의 관점에서 지칭한다. '경건함' 은 다른 부분들과 더불어 전체를 이루는 한 부분으로서의 형상성을 지칭한다. '경건한(사람)', 은 경건함을 지니고 있는 소크라데스(Socrartes, 기원전 470/469~399)와 같은 어떤 구체적 주체를 언급할 수 있다. 그러나 '경건함' 은 소크라테스를 언급할 수 없다. 그것은 비록 '경건한' 보다 덜 실재적이기는 하지만 개념화될 때 구체적인 주체들로부터 단절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개념화되는 것이다.
형상적 추상과 총체적 추상 : 지성적 추상 유형들의 전통적인 구별들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이 '형상적 추상(abstractio formalis)과 총체적 추상' (abstractio totalis)의 구별이다. 여기서는 용어들의 의미를 명료화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총체적 추상과 형상적 추상은 철학자들에 따라 상이한 여러 추상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티에네의 가예타노(Cajetanus da Thiene, 1480~1547)와 성 토마스의 요한(Joannes a Sancto Thomas, 1589~1644)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추상 이론과 학문 이론을 상세하게 주해하면서 이 구별을 발전시켰다. 형상적 추상은 사고의 가지적 내용을, 그 가지성을 감싸고 있는 질료로부터 추상하는 것이고, 총체적 추상은 그 주체적 부분들로부터 논리 전체를 추상하는 것이다. 형상적 추상은 어떤 대상을 가지적인 것으로 만들고, 총체적 추상은 그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든다. 의미 내용과 보편성의 역비례 관계 때문에 두 추상은 정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인간의 모든 학문을 위해 필요하다. 인간의 학문은 지성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어떤 대상을 필요로 한다. 학문을 위해 실재적인 것은 그것이 인식되는 과정에 있는 여하한 질료로부터도 추상됨으로써 정신에 현존하고 있어야 한다. 형상적 추상은 비가지성의 원리로서의 질료로부터 추상함으로써 과학적 정신을 만족시킬 만큼 가지적 내용이 풍부한 대상을 얻는다. 인간의 학문은 논변을 통해 성취된다. 과학적 분석의 대상들은 논변적 유형에 적합한 것으로서, 즉 보편성 또는 통교 가능성의 상태로 정신 속에 현존하고 있어야 한다. 반면 총체적 추상은 통교 불가능성의 원리인 질료로부터 추상함으로써 보편적이고 또 논변적인 유형에 적합한 대상을 얻게 된다.
대상들은 비가지성의 원리인 질료의 제한으로부터 얼마나 해방되느냐에 따라 상이한 학문의 대상이 된다. 사물들은 개별적인 감각적 질료로부터 해방될 때 자연 과학의 대상이 되고, 모든 감각적 질료로부터 해방될 때 수학의 대상이 되며, 기타 모든 질료로부터 해방될 때에는 형이상학적 탐구의 대상이 된다. 첫 번째 질서의 형상적 추상을 '물리적 추상', 두 번째 질서의 형상적 추상을 '수학적 추상' , 그리고 세 번째 질서의 형상적 추상을 형이상학적 추상' 이라고 부를 수 있다. 형상적 추상의 이 세 가지 질서 또는 등급은 각각 이론적 학문들의 여러 차원들을 구성한다.
총체적 추상 역시 상이한 등급을 허용한다. 어떤 대상들은 좀 더 일반적이고 다른 것들은 덜 일반적이다. 이 차이들은 학문들 '사이의' 차이를 구성하지 않고, 다만 어느 특정 학문의 테두리 '내에서' 만 어떤 역할을 한다. 형상적 추상의 동일한 차원에 있는 두 개의 대상은 동일한 학문 내에서 연구되지만, 보다 일반적인 것이 보다 특수한 것에 앞서 연구된다. 총체적 추상은 학문들을 특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그것은 모든 학문들에 요구되는 공통 조건이다. 그리고 어느 특정 학문 테두리 내에서 그 특정 주제의 진행 순서를 결정한다.
추상과 분리 : 사변 학문의 유형들을 구별하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삼위 일체론 주해》(Expositio super librum Boethii de Trinitate) 제5문과 제6문에서 자연 과학의 대상을 낳는 '전체의 추상' (abstractio totius)과 수학의 대상을 낳는 어떤 '형상의 추상' (abstractio formae), 그리고 형이상학의 대상을 낳는 '분리' (separatio)를 설명하였다. 이 가운데 앞의 두 가지는 단순 포착을 통한 추상들이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추상이라고 불리지만, 세 번째 것은 보다 날카롭게 분리라고 지칭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정 판단을 통한 보다 근본적인 추상의 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추상들 가운데 첫 번째 것은 자연적 사물의 본질 전체를, 그것을 개별화시키고 있는 질료로부터 구별하는 추상이다. 그것은 지성적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할 만큼 질료로부터 해방된 대상을 낳는다. 그렇지만 그 대상은 공통적인 감각적 질료와 관련하여 정의된다. 두 번째 것은 모든 질료로부터 공통적인 가지적 질료만을 빼고 추상한 '양' 이라는 형상을 낳는다. 그리고 세 번째 것은 모든 질료로부터 추상된 대상을 낳는다. 이처럼 대상의 질료로부터 뚜렷이 벗어나는 추상의 양식들에 따라 다양한 등급의 학문들이 생겨나게 된다. 토마스는 이처럼 전체의 추상과 형상의 추상 그리고 '분리' 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물리적 추상(형상적 추상의 첫 등급), 수학적 추상(형상적 추상의 두 번째 등급), 형이상학적 추상(형상적 추상의 세 번째 등급)을 구별하는 가예타노 및 성 토마스의 요한과 동일선상에서 작업하였고, 그럼으로써 학문 분류의 체계적 근거를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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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 抽象 〔라〕Abstractio 〔영〕Abstr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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