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년(선조 34)부터 1892년(고종 29)까지 약 300년 동안 변란(變亂) · 역모(逆謀) · 당쟁(黨爭) · 사학(邪學) · 흉소(凶疏) · 괘서(掛書) · 가칭어사(假稱御使) · 능상방화(陵上放火) 등에 연루되어 국왕의 특별 지시에 의해 의금부(義禁府)에서 신문(訊問)을 받은 중죄인들의 문초 기록들이 오늘날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필사본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이 중죄인들의 신문 기록들은 표지에 '옥사문서' (獄事文書) · '추안' (推案) · '국안' (鞫案) · '옥안' (獄案) 등으로 제목이 다르게 붙여져 있는데, 그 가운데 '추안' 또는 '국안' 으로 되어 있는 것이 가장 많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의금부에서 국문(鞫問)을 받은 중죄인들의 문초 기록 331책은 《추안급국안》(椎案及鞫案)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분류되어 있는데, 이 《추안급국안》 가운데에는 신유박해(辛酉迫害, 1801) · 기해박해(己亥迫害, 1839) · 병인박해(丙寅迫害, 1866 · 1868 · 1871) 때 국문을 받은 천주교 신자들의 문초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구성〕 《추안급국안》의 기록 방식은, 우선 추국(推鞫)의 준비 과정에 대한 서술이 나오고, 그 다음에 추국을 진행하는 관리들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어서 죄인들의 공초(供招)와 최종 판결 기록인 결안(結案) 그리고 결안에 따른 형 집행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들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 전부가 해서로 쓰여져 있고, 국왕이 비람(秘覽)하는 보고서의 성격을 띠므로 이두(吏頭)가 사용되었다. 또한 장마다 확인 인장이 상 · 하 또는 상 · 중 · 하에 찍혀 있으며, 다음 장과의 연결을 확인하는 인장이 사이에 찍혀 양쪽이 연결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각 책별로 내용을 살펴보면, 제1~6책은 선조 대, 제7~11책은 광해군 대, 제12~65책은 인조 대, 제66~73책은 효종 대, 제74~75책은 현종 대, 제76~128책은 숙종 대, 제129~133책은 경종 대, 제134~223책은 영조 대, 제224~243책은 정조 대, 제244~286책은 순조 대, 제287~294책은 헌종 대, 제295~299책은 철종대, 제300~331책은 고종 대의 순으로 나뉘어 있다. 그 내용은 역모에 관련된 사항이 가장 많고, 그 밖에 흉소 ·도둑 · 사학 · 괘서 · 가어사와 노비 반란, 당쟁 관계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임해군 추대 음모, 광해군 연간의 역모, 이괄(李适)의 반란 사건, 김자점(金自點)의 역옥(逆獄), 윤휴(尹鏞) 관련 사건, 숙종 연간의 당쟁 관계 사실인 경신년(庚申年) 문제, 경종 연간의 노 · 소론의 옥사, 영조 연간의 무신란(戊申亂)과 그 뒤의 역옥, 순조 연간의 사학 죄인과 각종 변란 관련 사건, 고종 연간의 이필제(李弼濟) 역모와 유생들의 만인소(萬人疏)및 임오군란(壬午軍亂),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사실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오늘날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남아 있는 《추안급국안》 331책은 해당 시기에 있었던 추국 전체의 공초 기록이 아니라 한 부분일 뿐이다. 그 가운데에는 낙질(落帙)되어 없는 것들도 적지 않고, 낙장(落張)된 것과 내부가 파손된 것도 상당수 있다. 또한 같은 내용의 책이 중복된 경우도 있고, 책 순서의 배열도 체계적으로 되어 있지 않다. 표지 · 표제가 파손되거나 표제가 잘못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는 규장각 소장 필사본 《추안급국안》 331책에 대해 약간의 첨삭을 가하고 편차를 재조정하여 1978년에 아세아문화사에서 333책의 공초 기록을 총 30권으로 묶어 영인본으로 출간하였다. 그리고 이 《추안급국안》에 상세 목차가 없어서 이용하는 데 불편이 많았는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1998년부터 1999년까지 2년에 걸쳐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추안급국안》의 상세 목차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사료적 가치〕 《추안급국안》에는 국왕이나 지배층 중심으로 편찬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일성록》 등 여러 관찬(官撰) 사료에 반영되지 않은 사건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또한 사료에 나오는 사건의 경우라도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내용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더욱이 국문을 받은 죄인들이 당시에 직접 진술한 기록들이기 때문에, 이 《추안급국안》은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의 정치사를 재정립할 수 있는 자료로서 크게 주목되고 있다. 아울러 이 《추안급국안》에는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모순 갈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으므로 조선 후기 민중 운동사 연구를 위해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신문 대상자로 양반 · 중인 · 상민 · 노비 등 사회의 모든 신분층이 망라되어 있고, 관료 · 상인 · 공장 · 농민 등 모든 종류의 직업인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들이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처지가 어떠한지에 대하여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임진왜란 이후의 법제사,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 생활사 등의 연구를 위한 자료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신유 · 기해 · 병인박해 때의 주된 천주교 신자들의 생생한 신문 기록들이 다수 들어 있어 천주교사의 연구를 위해서도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자료가 된다.
〔천주교 자료〕 추안 및 국안의 천주교 자료들은 여러 곳에 다양한 형태로 소장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의금부에서 작성한 규장각 소장본 《추안급국안》이다. 이 규장각본 《추안급국안》에는 신유박해 때 추국을 받은 이가환(李家煥) 등 45명의 공초 기록과 기해박해 때 국문을 받은 앵베르(L.-J.-M. Imbert, 范世亨) 주교 등 8명의 문초 기록, 그리고 병인박해 때 추국을 받은 남종삼(南鍾三, 요한) 등 21명의 신문 기록이 각각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이 규장각본 《추안급국안》에는 당시 조선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공초 기록이 가장 많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천주교사는 물론 정치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승정원(承政院)에서 작성한 규장각 소장본 《추국일기》의 천주교 자료도 사료적 가치가 크다. 그 제8책에는 신유박해 때 추국 내용의 일부인 1801년 2월 9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이가환 등의 국문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제19책과 20책에는 병인박해 때 추국 내용의 일부인 1866년 1월 16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남종삼 등의 국문 내용과 1868년 6월 19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조연승(趙演承) 등의 국문 내용이 각각 들어 있다. 규장각본 <추안급국안》의 천주교 자료와 비교하여 많은 부분이 누락되고 없지만, 이 규장각본 《추국일기》에는 신유박해 때인 1801년 2월 18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권철신(權哲身, 암브로시오) · 오석충(吳錫忠) · 이가환 · 이기양(李基讓) · 이승훈(李承薰, 베드로) ·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곤자가) · 임대인(任大仁, 토마스) · 정약전(丁若銓) · 조동섬(趙東暹, 유스티노) · 홍교만(洪敎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 홍낙민(洪樂敏, 루가) · 김백순(金伯淳)의 공초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공초 기록은 규장각본 《추안급국안》에는 누락되고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규장각본 《추국일기》의 천주교 자료에는 추국의 진행을 위해 참석한 관리들의 명단이나 국문 내용이 영인본 《추안급국안》의 그것과 다르게 서술된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규장각본 《추국일기》의 천주교 자료도 규장각본 《추안급국안》 못지않게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초서체가 들어 있는 규장각 소장본 《추국일기》를 해서체로 필사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및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추국일기》의 천주교 자료와 역시 같은 책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해서체로 필사하여 영인 · 간행한 《각사등록 78 : 추국일기》의 자료도 활용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병인박해 때인 1866년 1월 20일 진행된 남종삼과 홍봉주(洪鳳周, 토마스)의 국문 내용을 비교해 본 결과, 장서각 및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추국일기》와 《각사등록 78 : 추국일기》 간에 판독이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판독이 다른 부분을 다시 원본인 규장각본 《추국일기》와 비교해 본 결과, 장서각 및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추국일기》의 판독이 모두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로써 《각사등록 78 : 추국일기》가 장서각 및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추국일기》보다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각사등록 78 : 추국일기》에도 적지 않은 오류가 있다. 예컨대 1801년 2월 14일자 유이환(俞理煥)의 신문 기록을 보면, 판독을 잘못한 곳도 있고, 원본에 없는 내용이 잘못 삽입된 부분과 원본의 내용이 누락된 부분도 있으며, 편집이 잘못되어 상단과 하단이 뒤바뀐 경우도 있다. 그리고 장서각 및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추국일기》의 오류로 파악된 것들 가운데에는 필사하는 과정에서 바로잡은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들 탈초본을 자료로 활용할 때는 어느 한 종류만을 활용하지 말고 두 종류를 서로 비교해 볼 뿐만 아니라 그 원본인 규장각본 《추국일기》 30책과도 반드시 대조해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최근에 국학자료원에서 간행한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의 재판 기록ㅡ추안 및 국안》도 유용한 자료이다. 규장각본 《추안급국안》을 비롯하여 사료적 가치가 확인된 추안 및 국안 자료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영인하여 간행한 것인데, 상세한 해제와 목차가 앞에 수록되어 있고, 뒤편에 목차 색인이 첨부되어 있어 연구자들이 이용하기에 매우 편리하다. 마지막으로 추안 및 국안의 천주교 자료들에 관한 여러 종류의 한글 번역본들도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들 한글 번역본으로는 신유박해 때 순교한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의 국문 내용 일부를 번역한 것, 앵베르 주교 등 기해박해 순교자 8명의 추국 내용을 번역한 것, 남종삼 등 9명의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국문 내용 일부를 번역한 것, 그리고 조광(趙케, 이냐시오) 교수가 신유박해 때의 추안 및 국안을 번역한 초고 등이 있다. (⇦ 국안 ; → 신유박해 ; 기해박해 ; 병인박해)
※ 참고문헌 《추안급국안》, 아세아문화사, 1978/ 《추국일기》, 규장각 · 장서각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조선 가톨릭의 역사의편모ㅡ병인년 九위 치명자의 문초>, 《경향잡지》 1941년 1월호~1941년 6월 호, 1941년 8월~1942년 1월호, 1942년 3월 호~4월 회<야고버 주문모 신부의 문초>, 《경향잡지》 1942년 7월~1943년 1월호/ 《기해박해 순교자 문초 기록 번역 초고》, 한국교회사연구소/ 조광 역, 《신유박해 순교자 문초 기록 번역 초고》, 한국교회사연구소/ 정두희 등, 《추안급국안의 상세 목차》, 1999, 학술진흥재단제출/ 서종태 . 한건 엮음,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의 재판 기 록- 추안 및 국안》, 국학자료원, 2004/ 정석종, <《추안급국안》 해제>, 《추안급국안》, 아세아문화사, 1978/ 서종태, <추안 및 국안의 천주교 관계 자료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 《교회사 연구》 22집, 한국교회사연구소, 2004. 〔徐鍾泰〕
추안 推案
글자 크기
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