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祝福 〔라〕benedictio 〔영〕ble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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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 성호로 참석자들을 축복하는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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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 성호로 참석자들을 축복하는 요한 바오로 2세.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물건에 하느님의 은혜를 기원하는 행위. 즉 '좋은 말을 하는 것' 또는 '복을 비는 말을 하는 행위' .
축복은 하느님에게서 기원한다. 우리에게 복을 주고 실현시키는 하느님의 행위가 축복이다.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역사는 축복의 역사이기도 하다. 성서를 보면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이 약속한 축복으로 살았으며, 신약의 교회도 하느님의 축복을 간구하는 예식들을 통하여 하느님이 베푸는 충만한 축복 속에서 살고 있고 또 살기를 희망한다.
I. 성서에서의 축복 (⇨ 강복)
Ⅱ. 전례에서의 축복
〔어원과 의미〕 축복이란 '좋은 말' (eu-logia, bene-dictio)이다. 즉 라틴어 '베네딕시오' (benedictio)라라는 관계성의 개념은 양면적이고 상호 교류하는 특성을 나타낸다. 우리 말로는 서로 구별되지만, 이 말의 뜻은 '축복'과 '찬미' 의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좋은 말' 을 하는 것을 '칭찬' 이라 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칭송' 이라 한다. 또 하느님이 우리에게 '좋은 말씀' 을 주는 것은 '축복' 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찬미' 에 해당된다. 하지만 서양 언어의 표현은 동일하다. 그러나 신학에서 '베네딕시오' 에 대해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하는 개념은 '축복' 이며, 거기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찬미' 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결국 하느님을 '찬미'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에 응답하는 형태이다. 이렇게 하향적인 표현인 축복과 상향적 표현인 찬미는 포괄적으로는 한가지 개념에 해당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에게 끊임없이 내려지는 축복에 우리의 축복(찬미)이 상응해야 한다. 즉 축복은 모든 거룩한 특은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감사의 행위인 것이다. 전례의 신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이러한 축복의 상호 교류로 구성되어 있다.
축복은 '좋은 말' 이므로 결국 말씀이고 선물이다. 생명과 그 신비를 어루만져 주는 선물이며, 말씀과 그 신비를 통해 표현되는 선물인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어로는 '주어진 선물, 어떤 것을 선사함, 선물의 형태' 를 뜻하는 '베라카' (מִנְחָה)로 표현된다. '베라카' 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축복은 특히 파스카 빵(음식)에 내리는 축복을 가리키는 것으로, 성찬례 중 감사 기도문의 기원이다. 이 감사 기도문은 유대교 전례의 본질인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느님의 업적과 백성의 감사를 표현하는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축복으로 인해 주어지는 선(善)은 어떠한 정확한 대상이 아니라 한정된 선물이며, 소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선은 인간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축복한다는 것은 '창조적이고 생명력있는 선물을 선포한다' 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선물이 선사되기 전에 먼저 간구(기도)의 형태로 선물이 선사되고 그 다음에 감사의 형태로 표현된다. 축복의 간구가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감사는 하느님의 자비를 이미 체험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서에 나타난 축복〕 성서에서 축복은 우리의 복을 말하고 원하고 실현시키는 하느님의 행위이다. 그분에게 있어서 말씀하는 것과 행위하는 것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축복은 '말씀' (Verbum)을 통하여 창조로 시작되었다(요한 1, 1-3 ; 참조 : 창세 1, 3. 6. 9). 이 말씀은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고, 죽은 후 부활한 말씀의 신비 안에서 완성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양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신령한 축복으로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에페 1, 3). 축복은 하느님이 내려 주는 복이며, 생명과 그 생명의 신비를 통해 표현되는 선물이다. 그래서 축복은 말씀이요 선물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이 내려 준 '성령' 이다.
구약성서 :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는 축복의 역사이다. 이 축복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되었던 것이며 (창세 12, 3), 축복받은 마리아에게서 탄생한 축복받은 열매인 예수를 통하여 이 세상에 선사된 것이다(루가 1, 42). 성서에서 축복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번영과 자비의 선물이며(잠언 10, 6. 22 : 11, 11. 26 ; 집회 2, 8 : 7, 32 : 33, 17), 하느님의 은혜이기도 하다.
성조 이전의 축복은 창조한 인간에 대한 축복(창세 1, 28)으로 시작된다. 원죄로 고통이 생겨났지만, 홍수 이후 새로운 축복으로 인간은 자손의 번성과 번영을 보장받게 된다(창세 9, 1). 하지만 인류는 하느님의 축복을 내팽개쳤고, 분열과 파괴는 계속 범람한다.
아브라함의 축복에서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축복을 보여 준다. 하느님의 계획은 '지상의 모든 민족을 축복' (창세 12, 3)하는 것이다. 이로써 축복의 역사가 시작된다. 흔히 아버지는 임종 전에 아들들에게 생명과 다산의 풍요로움을 빌고 축복한다(창세 27, 28. 29. 39 : 48, 8. 9. 16 ; 49, 8. 11. 12). 즉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축복에 대한 꿈을 끊임없이 갈망하며, 이 축복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인다. 여기에 하느님 자신의 약속과 축복이 덧붙여진다. 곧 하느님이 약속한 축복은 당신 스스로 인간의 미래를 책임지고 계신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베푸는 축복은 계약에 기초하고 있다. 곧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 있어 참된 예배는 백성은 율법에 충실하고 하느님께만 공경을 드리며, 하느님은 백성에게 당신의 축복을 베푸실 것을 약속하는 계약의 확인이다(출애 23, 25 : 신명 28, 1-4). 예언자들에게 있어 축복은 약속의 형태로 숨겨져 있다(이사 28, 14-19 : 에제 36, 16-38).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은 기도의 중요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축복(찬미)은 곧 하느님의 모든 업적에 대한 응답이다. 따라서 축복은 감사, 찬미 또는 고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시편 31, 21 : 103, 2 : 124, 6 ; 다니 3, 88).
신약성서 : 여기서 나타나는 축복은 하느님의 아드님 안에서 더욱 직접적이고 종말론적인 형태를 보인다. 하향적인 은총과 상향적인 감사처럼, 축복의 두 상호 관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된다(1고린 1, 7 ; 에페 1, 3 ; 묵시 7, 12). 복음서들은 예수에게 내려진 축복의 유일한 사례를 보여 준다. 즉 예루살렘 입성 때 군중이 외친 환호 소리이다(마태 21, 9 이하). 예수가 세상에 오심으로 인해 구원 사업과 관련된 주변의 여러 사람들, 곧 엘리사벳, 즈가리야, 시메온, 그리고 성모 마리아에게 널리 축복이 전파된다(루가 1, 42. 46-47. 68 : 2, 28 ; 11, 27). 하지만 축복은 곧 종말론적 의미에서 '찬미' 받으시는 하느님의 영광과 동일한 가치와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리스도의 성사로 축복의 행위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이것은 성체성사를 세우는 이야기에서 드러난다. 성찬례를 통해 그리스도는 빵을 떼어 나누어 주기 전에(마태 26, 26 : 1고린 11, 24), 그리고 잔을 돌리기 전에 축복의 잔에 감사한다(1고린 10, 16). 이것은 축복이 감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이 연결로 축복은 예식이자 행위와 양식을 나타내는 반면, 감사는 행위와 말씀의 내용을 표현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은 새로운 계약의 의식이므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해 준 유일한 예식이며, 이 의식 안에 총체적으로 축복이 완성을 이루게 된다. 따라서 성찬례의 축복은 이 예식을 통하여 말씀 안에 표현되어 직접 효과를 가져다주는 선물이고, 자녀에게 베푸는 아버지의 완전한 은총이며, 자신의 생명을 아버지께 봉헌한 아들의 완전한 선물이자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우리 모두의 감사가 된다. 그래서 성체성사의 선물은 풍요롭고, 생명과 일치의 신비가 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의미에서 축복의 선물은 받아들일 수 있고 융합되는 생명이다. 그래서 '성령' 보다 더 큰 선물과 축복은 없다. 성령을 하느님의 선물로 우리에게 내려보내셨다는 의미에서 가장 큰 축복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이지만, 한편으로 성령은 우리에게 주어졌고(마르 13, 11 : 요한 3, 34 : 사도 5, 32 ; 로마 5, 5), 우리는 성령을 받았고(요한 7, 39 ; 사도 1, 8 ; 로마 8, 15),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축복은 '성령의 선물' 이다(사도 2, 38 ; 10, 45 : 11, 17). 따라서 하느님의 축복이란 완전한 의미에서 그분의 성령이며, 이 신적인 선물은 그 자체로 축복의 모든 특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물, 출생과 다시 태어남, 생명과 풍요, 충만과 평화, 환희와 마음의 일치 등 축복의 주제가 되는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열매가 된다.
〔교회에서의 축복과 여러 형태들〕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 축복을 마련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을 찬미하고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하느님의 보호를 요청하도록 이끌며 생활의 성화로 하느님의 자비를 받도록 격려받고, 하느님의 은혜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며 기원의 효과를 얻도록 노력한다(《축복 예식서》 9항). 또한 교회에서 제정한 축복은 볼 수 있는 표지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성화와 교회의 모든 활동이 지향하는 목적인 하느님의 영광을 표시하고 각자에게 고유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게 한다(전례 7, 10항).
하지만 일반적인 표현으로 '축복' 이란 말은, 다양한 사물들을 신성시하는 경우에 가장 빈번하게 사용됨으로써 의미에 변화가 생겨 풍요로운 의미를 상실하였다. 또한 가톨릭 교회에서는 여러 가지 '준성사' 로서 축복을 많이 권고한다. 하지만 이것은 감사의 행위를 드리는 히브리적 의미에서의 축복은 아니며, 하느님의 축복을 간청하는 '예식들' 이다. 교회는 이렇게 인간의 전 존재가 하느님에 의하여 자신의 충만한 의미를 채울 수 있고 또한 채워야 함을 보여 주고 있다.
교회에서 축복은 보통 성직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교황이나 주교에게 유보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축복을 사제가 줄 수 있다(교회법 1169조 2항). 하지만 부제는 법에서 명시적으로 허가된 축복을 줄 수 있다(3항). 축복의 대상은 사람과 사물 모두에 해당된다. 축복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주는 것이지만, 예비 신자들에게 또한 교회가 금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비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줄 수 있다(1170조). 아울러 사물을 축복하는 경우, 특히 하느님 경배를 위해 지정된 거룩한 물건들을 존경으로 다루어야 하고, 개인 소유의 것이라도 속되거나 부적절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1171조)
축복의 표지는 손을 펼쳐 들거나 합장하는 일, 안수, 십자 표시, 성수 뿌림, 분향 등으로 구성되며, 또한 축복은 강복, 준성사, 봉헌, 전례적 강복, 비전례적 강복, 거룩한 곳의 축복 등 다양한 모양으로 이루어진다(《축복 예식서》 26항). 이 가운데 '안수' 로 이루어지는 축복은 구약 성서에서 족장들이 자녀들에게 복을 빌어 주기 위해 그들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나세에게 손을 얹음으로써 축복을 내려 주었다(창세 48, 14). 신약성서에서 예수는 아이들에게 축복을 주기 위해 안수를 하였다(마르 10, 13-16 : 마태 19, 13-15 : 루가 18, 15-17). 또 예수는 승천하면서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해 주었다(루가 24, 50-51). 교회에서는 '장엄 축복' (benedictio sollemnis)을 줄 때 십자 성호로 강복한 다음 각 사람에게 안수를 해주기도 한다.
교회 공동체의 기도 모임에서도 축복을 사용한다. 사제가 미사 또는 시간 전례의 아침 기도나 저녁 기도의 마침 예식에서 모인 이들에게 십자 표시로 축복을 주는 것은 삼위 일체인 하느님의 보호를 표현하고 얻는 것이다. 이 형태의 축복은 천상에서 내리는 선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항상 유래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미사 끝에 백성을 파견할 때 거행하는 '장엄 축복' 과 '백성을 위한 기도' 도 안수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백성을 위한 축복이다. 미사 끝에 장엄 축복을 할 경우에 미사 전례서는 특별한 축복들을 규정하고 있는데, 통상적인 양식은 사제가 신자들을 향하여 양팔을 벌리고 두세 차례 먼저 간구를 바치면(안수)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는 회중은 '아멘' 으로 응답한다. 장엄 축복은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나 주교의 의향대로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주님 성탄이나 공현, 수난, 부활, 승천, 성령 강림 대축일 때와 성모 마리아,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들, 그 외 성인들의 축일에 장엄 축복을 줄 수 있도록 미사 경본의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또한 사제는 '백성을 위한 기도'를 축복에 앞서 바칠 수 있는데, 동일하게 회중에게 무릎을 끓도록 초대한 다음 양팔을 벌리고 기도를 바치고, 백성에게 십자 성호를 그으며 축복한다.
안수와 더불어 축복은 대부분 '십자 표시' 형태로 이루어진다. 성찬례의 연장으로 장시간 계속되는 성체 현시에서 성체 강복을 거행할 때, 사제나 부제는 어깨보를 입고 성체께 깊은 절을 한 다음 성광이나 성합을 들고 아무 말없이 교우들에게 십자 표시를 그으며 축복한다. 이렇게 특별한 경배를 드리면서 축복을 받기도 한다(《미사없는 영성체와 성체 신심 예식서》 94, 99항). 하지만 강복만을 주기 위해 성체 현시를 할 수는 없다(89항 : <성체 공경 훈령> 66항).
교회의 성사 집전에서는 안수 형태의 축복이 다양하게 거행된다. 단계적 성인 입교 과정에서 교회는 예비 신자들에게 자주 축복의 기회를 갖도록 권유한다. 처음 준비 기간에 갖는 구마 기도에 이어 주례자가 예비 신자들에게 양손을 펴들고 축복 기도를 바친다. 이것은 예비 신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교회의 관심을 표현하는 축복으로서, 아직 성사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예비 신자들이 힘겨운 인생 항로에서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교회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자리이다(《어른 입교 예식서》 102, 119~124, 374항). 그 외에도 선발 예식에서 이들을 위한 간구는 축복의 기도로 이루어지며(149항) 정화와 조명의 시기에 갖는 수련식에서 구마 기도도 축복을 기원하는 기도로 이루어진다(156항) 이 축복은 죄에서 구원해 주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배우고, 어머니인 교회의 도움으로 죄의 결과와 마귀의 영향에서 벗어나 영성 생활을 위해 강해지고 구세주의 선물을 받도록 마음을 열게 한다.
혼인 예식 때에는 성찬례 유무와 무관하게 고유한 혼인 축복과 마침 축복을 베푼다. 절기에 따라 혼인 고유 미사를 드릴 수 없는 경우라도 이 축복들은 결코 빠트릴 수 없다(《혼인 예식서》 34, 72항). 사제는 신랑 신부를 향하여 두 손을 펴 들고 축복의 기도를 바친다. 그리고 부부의 사랑과 신의로 맺는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한다(74, 242, 244항).
병자성사에서도 축복이 이루어지는데, 성서를 읽고 보편 지향 기도를 한 다음 병자에게 '안수' 를 한다. 이 안수는 치유자인 성령의 은총과 능력을 기원하는 축복의 성격을 띠고 있다(《병자성사 예식서》 일러두기, 5항).
예식으로 이루어지는 축복은 사람들의 축복, 건물과 신자들의 각종 활동에 관한 축복, 전례와 신심을 위한 성당 및 성물의 축복, 신자들의 신심을 증진시키기 위한 물건들의 축복,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축복 등 다양한 필요와 대상에 따라 구별되며, 반드시 말씀 전례를 거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교회의 오랜 전통을 가진 축복도 있다(예컨대 성당 문의 축복, 종의 축복 등). 예전에는 '방사' (放赦)라고 불리던 성물의 축복은 가장 짧은 형식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사제가 십자 표시 한 번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말하면서 축복한다(《축복 예식서》 1182, 1207항 :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124조) .
일상에서 축복을 기원하는 일반적인 형태로는 가장이 가족에게 안수하며 기원하는 축복과 가족이 함께 아침과 저녁 기도를 마치고 기원하는 축복, 그리고 여러 단체의 모임에서 단체의 대표가 모임에서 구성원들과 함께 기도를 마치고 십자 성호를 그으며 하는 축복 등이 있다. (⇦ 방사 ; → 감사의 기도 ; 강복 ; 안수 ; 파견, 전례에서의)
※ 참고문헌  Dom Robert Le Gall, Dizionario di Liturgia, Editrice LDC, 1994, pp. 39~40/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전례 위원회, 《축복예식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6, pp. 9~18/ ㅡ, 《어른 입교예식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6/ 一,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 신심 예식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71 로마노 과르디니, 장익 역, 《거룩한 표징》, 분도출판사, 1976, pp. 38~45, 65~671 허종진, 《한국 가톨릭 용어 큰사전》, 한국 그리스도교 언어 연구소, 1994, pp. 2465~2466/ J. Gilblet, 김영환 역,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 대학교 전망 편집부, 1984, pp. 587~591/ M. Righetti, Manuale di storia liturgica, vol. IV, Miliano, 1959, pp. 473~554/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 〔羅基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