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축일 전날 저녁부터 시작하는 전례 거행. 축일 전야를 뜻하는 라틴어 '비질리아' (vigilia)는 어원적으로 '깨어 있음' 을 뜻하는 부사 '비질' (vigil)에서 유래하였다. 한국에서는 부활 대축일의 경우 '부활 성야'(復活聖夜, Vigilia paschalis in nocte sancta)라고 번역하고, 일반 대축일의 경우에는 '전야' (前夜), 장례 등의 경우에는 '밤샘' 이라고 번역한다.
전례 거행을 위한 시간은 하루, 주간, 한 해와 같은 다양한 리듬에 따른 구조를 갖고 있다. 또한 교회는 '구일 기도' (Novena)와 같이 대중 신심을 표시하는 리듬이나, 성년(聖年, Annus Sanctus)과 같이 직접적인 전례 리듬이 아닌 것도 있다. 현재 전례력이 따르는 거행의 근본적인 리듬은 자연적인 날이다. 즉 하루가 전례 시간의 기본 단위이다. 전례일은 원칙적으로 자정에서 시작하여 다음날 자정 직전까지 지속된다(<전례력 지침> 3항). 자정에서 자정까지를 하루로 측정하는 방식은 그리스-로마 관습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주일과 대축일의 거행은 이미 그 전날 저녁에 시작한다"(<전례력 지침> 3항). 이렇게 하루의 시작을 전날부터 시작하는 방식은 유대인들의 관습에 기원을 두고 있다(창세 1, 5).
〔역 사〕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 관습의 영향으로 주일 성찬례 거행을 밤에 시작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신약성서는 주일 성찬례 거행에 대해 언급하면서 밤에 시작되었음을 암시한다(사도 20, 7-12). 로마 제국 비티니아 속주의 총독인 플리니우스 2세(G. Plinius Caecilius Secun-dus, 61/62~113?)는 112년경 트라야누스(98-117) 황제에게 보고한 서간에서 두 가지 성찬례 거행을 언급하고 있는데, 새벽(ante lucem) 모임에서 회중은 하느님께 바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 찬송가를 부르고 선서를 하였다(편지 10권, 제96신 7항)고 한다. 순교자 유스티노(Justinus, 100/110?~165)가 주일 성찬례를 묘사하면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성찬례 거행이 새벽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많다(《제1 호교론》 67). 히폴리토(Hippolytus, 170~236)의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에는 안식일, 즉 토요일 첫 시간에 모여(prima sabati : 《사도 전승》 22) 주간 성찬례를 가졌다고 한다. 세례를 '닭이 울 때' 베푼다는 표현도 새벽을 가리킨다(《사도 전승》 20-21).
초대 교회에서 밤 기도는 역사적 발전에 따라 상당히 다른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전례적 밤 기도이다. 이는 큰 축일 전날 밤에 성찬례 거행과 함께 드리는 기도이다. 최고의 축제는 주간 파스카 축제인 주일과 그 특별한 모습으로 연례 파스카 축제인 부활 대축일이다. 둘째는 성찬례 거행 없이 하는 밤 기도이다. 이 기도의 기원은 신자들의 개인 기도, 특히 공동으로 하는 수도승들의 기도였다. 이 관습은 여러 교회에 전파되었고, 시간 전례에서 밤 기도의 기원이 되었다.
〔밤 기도 전통〕 하루의 리듬에 맞춘 개인 기도 또는 공동체 기도 거행, 즉 시간 전례 관습의 중심에는 '깨어 기도하라' 는 예수의 명령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 특히 밤 기도에는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모습을 기억시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매일 부활 성야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구약성서의 많은 본문들은 밤 시간을 기도와 묵상에 바치는 습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시편 1, 2 ; 76, 3 ; 87, 2 : 91, 2-3 ; 118, 55. 62 ; 131, 2 ; 이사 26, 9). 신약성서 역시 예수가 제자들에게 보여 준 모범(루가 5, 16 ; 6, 12 : 마태 26, 36 ; 사도 12, 12 ; 16, 25)이나, 제자들에게 한 권고들(마르 26, 36 ; 루가 21, 36 : 마태 26, 41. 46 : 골로 4, 2 ; 에페 6, 8)을 전한다.
매우 열정적인 믿음, 원수의 시기를 거슬러 깨어 있음, 주님의 되돌아오심을 준비하는 삶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깨어 있다' 라는 동사가 자주 등장한다(사도 20, 31 : 1데살 5, 6 : 1고린 16, 13 : 1베드 5, 8 : 묵시 3, 3 : 16, 15). 이 본문들에서 기도로 보내는 개인적 또는 전례적 밤 시간은 수덕적 · 신비적 훈련의 가치를 넘어 상징적이고 증언적인 의미를 갖는다.
〔부활 성야의 전통〕 부활 성야는 축일 전날 밤을 의미하는 전야가 아니라 성서적 · 전례적 의미에서 큰 축일의 밤 거행이란 의미에서의 성야이다. 즉 부활 성야는 부활 준비가 아니라 부활 전례 거행 자체이다.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는 한 해 전체 동안 가장 중요한 철야 또는 깨어 있는 밤이란 뜻으로 부활 성야를 "모든 철야의 어머니"(Semo 219 ; 《PL》 38, 1088)라고 하였다.
밤에 거행하는 이유는 유대교의 과월절(Pascha) 축제에서 기원한다. 이 축제에서 중요한 부분은 '깨어 있음'이다. 또한 하느님의 깨어 있음이 이집트 탈출의 밤을 통하여 계속되었음을 기억한다(출애 12, 29). 그러므로 유대인이 과월절 식사를 니산 월 14일 저녁에 거행하는 것은 이집트에서의 해방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메시아를 기다리며 깨어 있음도 의미한다. 밤 축제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이 그들을 위해 이룩한 모든 일을 살아 있는 것으로 간직하였다.
옛 파스카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즉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로 결정적으로 완성되었다. 그래서 항상 밤에 거행된 유대인의 파스카를 대체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부활 축제도 밤에 거행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파스카는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를 기리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리스도교 부활 축제의 연례적 거행이 밤에 이루어졌음을 전해 준다. 이렇게 부활 성야는 파스카 토요일 저녁에서 부활 주일로 가는 밤에 있으며, 부활한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며 깨어 기도하는 성야이다.
부활 성야의 영향으로 순교자 공경도 성인의 무덤에서 주년일에 밤 거행으로 이루어졌다. 무덤에서의 밤 거행은 보통 성찬례 거행으로 마쳤으며, 이 미사를 철야 또는 전야 미사(in vigilia)라고 불렀다. 위령 전례도 하느님 아버지께로 건너간 사람 곁에 머물며 철야 기도를 하였는데, 이는 기도와 시편 낭송 그리고 하느님 말씀의 경청으로 구성되었다.
〔축일 전야 거행〕 축일을 전날 저녁부터 시작하는 관습은 제1 저녁 기도와 전야 미사 및 전야 기도를 거행할 기회를 주었다. 이러한 거행은 축일의 시작이지만 준비라는 의미도 지닌다. 예를 들면 성탄 전야 미사의 경우 준비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그러므로 부활 대축일의 경우는 제1 저녁 기도 대신 파스카 토요일 저녁 기도라는 이름을 갖는다.
주일과 대축일의 거행은 항상 전날 제1 저녁 기도부터 시작한다. 시간 전례서는 주일과 대축일 및 축일을 위한 후렴과 함께 바치는 찬가와 복음을 덧붙인 전야 기도 형식을 제시하고 있다. 축일에는 전야가 예상되어 있지 않지만, 주님의 축일 거행은 연중 및 성탄 시기 주일과 겹칠 때 제1 저녁 기도부터 시작한다(<전례력 지침> 13항). 일부 주일과 대축일에는 전날 저녁에 미사를 드릴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전야 미사도 마련되어 있다(<전례력 지침> 11항). 미사 경본은 다음과 같은 대축일에 전야 미사를 제시하고 있다. 즉 성탄, 공현, 승천, 성령 강림, 세례자 요한 탄생,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 승천 대축일 등이다. 전야 미사는 대축일 전날 저녁 제1 저녁 기도 전이나 후에 드린다.
축일을 전날 저녁부터 시작하는 관습은 주일이나 의무 축일의 미사를(in die) 전날 저녁에 거행하는 것을 허용한다. 결과적으로 이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주일이나 의무 축일 미사 참여의 의무를 유효하게 완수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목적인 이유로 토요일 저녁 미사 또는 당일 여러 미사를 거행해야 할 필요성과 연결되기도 한다. 이 경우 개별적인 편의성뿐만 아니라 회중의 신비, 성찬 모임의 신비에 대한 성찰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상적인 모습은 초대 교회 또는 일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단 하나의 성찬 모임에 지역의 신자들이 모두 다 함께 모이는 것이다. (→ 저녁 기도 ; 파스카 삼일)
※ 참고문헌 A. Adam, Das Kirchenjahr mifeierm, Freiburg, 1979/ A. Bergamini, Cristo festa della Chiesa, Roma, 1982/ AA.VV., L 'anno liturgico, Genova, 2nd ed., 1989. 〔沈圭栽〕
축일 전야 祝日前夜 〔라〕vigilia 〔영〕vi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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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