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또는 공동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결속력을 주는 사건이나 시기를 기념하여 의식을 행하는 행위. 삶의 기쁨과 종교적 기쁨을 표현하기 위하여 주기적으로 거행되는 것으로 매주, 매월, 혹은 매년 거행될 수 있다. 공동체적 삶을 위하여, 그리고 사회적 · 종교적 전통의 연속성을 위하여 축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축제는 어떤 특수한 사건에 대한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을 강화시키며 후대에 그 기억을 전달한다. 그러한 축제는 그 공동체에 의해 정형화된 규범과 예식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I. 성서에서의 축제
〔고대의 축제〕 종교적 성격 : 고대 사회에서 모든 축제는 자연과 연관되어 형성되었지만 종교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축제들은 두 가지를 표현하는데, 하나는 인생과 자연의 축복에서 오는 기쁨을 드러내며 일상의 힘든 일로부터 잠시나마 도피하려는 자연적인 열망을, 또 하나는 인생과 자연이라는 선물을 준 신적인 존재로 향하고 신적인 세계와 결합하려는 노력을 표현한다.
축제는 초월하고픈 인간의 본성적 욕구, "영원을 향한 향수" (M. Eliade)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축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의식과 상징과 신화들이 생겨났고, 그를 통해서 사람들은 영원한 현존이라고 여겨졌던 신화적 세계 안에 동참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세상 창조에 관한 이야기들 혹은 신들과 영웅들에 관한 서사시들은 축제의 의식 안에서 재현되었으며, 그런 의식을 통하여 축제는 사회 구성원들을 일치시킬 뿐만 아니라 종교적 전통을 물려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어느 문화에서든지 축제는 종교의 외적인 표현이다.
축제의 종교적 성격은 봉헌에서 잘 드러난다. 고대인들은 축제를 신들이 인간에게 내리는 선물이며, 동시에 인간이 신들에게 드리는 봉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제사로 바치는 희생 동물이 자연에서 가려낸 봉헌물인 것처럼, 축제는 시간에서 가려낸 거룩한 봉헌물이라고 여겼다. 사실 생업에 필요한 시간을 떼어내는 것은 축제를 거행하기 위하여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주기적인 반복 : 축제가 영속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중요하다. 일정한 주기 안에 위치한 축제는 '전체 시간 안의 소우주 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세속적인 시간을 제거하고 새로운 시간을 설정하려는 노력이 주기적인 축제 안에 표현되었다. 말하자면 '시간의 전적인 재생' 이 축제 거행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공동체의 형성 : 인간이 '이성적 동물' (homo sapiens)일 뿐만 아니라 '놀이를 즐기는 동물' (homo ludens)이라고 한다면, 모든 축제는 드라마요 거룩한 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축제는 드라마와 놀이로만 끝나지 않고 백성을 모으며 끊임없이 공동체를 형성한다. 신들의 영광을 위하여 제정된 축제가 그 사회의 연대성을 보장하는 핵심 요인이 되는 것이다.
다양한 축제들 : 축제는 대상에 따라 구분될 수 있다. 개인과 가족에 기원을 둔 축제는 생일과 명명일(命名日), 입문식, 결혼, 죽음과 장례 등으로 표현되었다. 다른 축제들은 우주적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계절의 변화나 달과 태양과 별들의 변화 그리고 특별히 신년(新年) 같은 것 등이었다. 이런 것들은 추수 감사제 같은 농경 축제와 연관되었다. 마지막으로 신들과 관련된 축제들도 있었다. 이러한 축제들은 우주의 변화 혹은 농경 생활에서 온 것, 또는 어떤 신이나 예언자 혹은 종교 창시자의 생애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것들이었다.
발달된 고대 문화권에서는 농사와 종교 생활 사이의 연관을 명백히 드러내는 고도로 복잡한 축제 달력이 있었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수세기에 걸쳐 사용된 무수히 많은 월중 축제 달력과 연중 축제 달력이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축제는 수메르인들과 바빌로니아인들 그리고 아시리아인들에 의해 변형, 발전되었다. 특정 성전과 연관된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축제는 지역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였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년 축제였다. 수메르인들은 동지(冬至)에 신년 행사를 하였지만, 후대에는 사르곤(Sargon, 기원전 2340~2284?) 달력에 따라 추분(秋分)에 신년 행사를 하였다. 그러나 함무라비(Hammurabi, 기원전 1792~1750) 시대부터 니산(Nisan) 월 초하루, 즉 춘분(春分)으로 이동되었다. 바빌론에서 신년 축제는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 기원전 1800?)에 기록되어있는 대로 세상 창조에 관한 예식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창조신이 혼돈의 세력을 누르고 승리를 거두며 왕으로 즉위하는 것을 경축하는 것이었으며, 외적이고 전례적인 정화도 포함하는 축제였다. 농경 생활에 근거를 둔 다른 축제들 역시 본성상 종교적이었다. 예를 들면 하지(夏至) 무렵에 풍산신 탐무즈(Tammuz)의 죽음을 슬퍼하는 예식이 있었고, 그의 부활도 이때 기념하였다.
이집트에서 축제 달력은 나일 강의 범람과 연관되었다. 수위가 높아진 시기에 아몬(Amon) 신의 영광을 위하여 호화로운 식사 모임이 열렸는데, 그 식사 중에 아몬과 관련된 전례적인 이야기가 읊어졌다. 홍수가 끝날 무렵에는 추수를 보장하는 풍산신 민(Min)에게 바치는 예식을 시작하였다. 구리 낫으로 첫 곡식을 자르는 것은 전례적인 행사가 되었다. 새로운 통치자의 공식적인 대관식은 새해 첫날에 열렸으며, 종종 성전 봉헌 예식과 함께 거행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축제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죽은 자들에 관한 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숭배하는 신의 상을 메고 행렬하는 것인데 종종 나일 강까지 장엄한 행렬을 하였다. 그리스의 축제는 그 특성상 본래 농경적이고 국지적이었으며, 농사의 일정과 연관된 축제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그리스인들은 많은 신들을 공경하였으며, 디오니소스(Dionysos) 축제와 같은 아테네의 몇몇 축제들이 후에는 그리스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리스 축제에서 특별히 의미 있는 외적 행사는 연극과 운동 경기였다.
〔구약성서의 축제〕 어원 : 성서의 사상에 따르면, 모든 시간과 날은 하느님께 속한다. 그러나 특별히 하느님만을 위하여 성별된 날들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축제를 지칭하는 히브리어는 '모에드' (מוֹעֵד)이다. 이 단어는 '지정된 장소 혹은 시간' 을 뜻하며, 더 나아가 '지정된 장소 혹은 시간에서 이루어지는 소집, 모임' 을 뜻한다. 3대 순례 축제에 대하여 언급할 때 구약성서는 '하그' (חָג)라는 단어를 특별히 사용한다. 이 단어의 어근은 '춤추다, 둥글게 돌아가다' 라는 뜻이며, 순례의 예식이었던 행렬과 춤을 암시한다. 참고로 '야훼의 축제' (חָג)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출애 10, 9 : 레위 23, 39 ; 판관 21, 19 ; 호세 9, 5). 이 표현은 아주 오래된 표현인데, 신적인 존재가 자신의 축제를 거행할 때 거기에 인간이 참여할 허락을 받거나 혹은 참여할 의무를 지닌다는 의미에서 나온 표현이다. 칠십인역(그리스어역) 성서(LXX)는 축제를 지칭하기 위하여 '해오르테' (ἑορτή)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불가타(라틴어역) 성서(Vulgata)는 '디에스페스투스' (dies festus)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해오르테' 는 '(신을 위한) 완수' 라는 기본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데, 기원전 9세기경 호메로스(Homeros)가 쓴 《오디세이아》(Odysseia)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는 '해오르테' 라는 단어가 25회 등장하는데, 공관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에서 이 단어는 과월절(過越節)을 지칭한다. 그러나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2장 16절에서 사용된 이 단어는 과월절이 아니라 일반적 의미의 축제라고 보아야 한다.
다양한 축제 달력 : 구약성서에는 다양한 축제 달력이있다. 이런 다양성은 서로 다른 지리적 배경과 시대적 배경에서 유래한 것이다. 구약성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축제 달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출애굽기 23장 14-17절 : 가장 오래되고 짧은 달력이다. 3대 순례 축제(무교절, 오순절, 초막절)를 언급하면서 모든 이스라엘 남자는 1년에 세 번 주님 앞에 나와야 한다고 규정한다.
② 출애굽기 34장 18-23절 : 출애굽기 23장과 약간 다른 형태로 거의 같은 규정을 제시한다. 축제의 숫자는 같은데, 다만 그 이름이 약간 다르다. 하지만 결론은 거의 비슷하다. 괄목할 만한 차이점은 맏배 규정과 안식일 규정인데, 이 두 규정은 출애굽기 22장 28-29절과 23장 12절에 이미 나타난다. 위의 두 달력이 무교절을 언급하되 과월절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출애굽기 12장에서 과월절과 무교절이 연결된 것은 후대의 편집 작업임이 틀림없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위의 두 달력이 3대 축제의 날짜를 확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 축제들이 매년 조금씩 변하는 기후 조건에 따른 농사일에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두 달력은 예배가 예루살렘으로 집중되기 이전의 것이며, 따라서 그 당시 3대 축제는 지방 성소에서 거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③ 신명기 16장 1-17절 : 이 신명기법 역시 거의 같은 달력을 유지한다. 결론도 위의 두 달력과 같은데, 다만 "주님께서 고르신 곳"(16절)이라는 구절을 첨가하였다. 이 첨가 구절은 각 축제를 언급할 때마다 따라붙는다. 이것은 신명기에 의해 부과된 예배의 중앙 집중화에 관한 표현이다. 신명기 16장의 달력에서는 과월절과 무교절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위의 두 달력과 마찬가지로 신명기 16장의 달력 역시 추분을 새해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 유대인들은 가나안 문화의 영향을 받아 추분을 새해로 받아들였다. 추분 새해는 가나안 농경 문화와 관련이 있다. 가나안 사람들은 가을에 씨를 뿌려 초여름에 추수하였기 때문이다.
④ 레위기 23장 : 정확하게 날짜를 지정하고 있다. 날짜 지정은 춘분 새해를 따르며 각 달의 이름은 서수(序數)로 붙여진다. 이것은 레위기 23장의 달력이 바빌로니아 역법을 채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레위기 23장의 달력은 앞의 달력들보다 내용이 훨씬 더 풍부하여 안식일, 햇곡식 축제, 7월(티쉬리 월) 초하루 축제, 속죄일을 포함하고 있다.
⑤ 에제키엘서 45장 18-25절 : 이 규정에서도 축제 달력을 뽑을 수 있다. 춘분 새해의 정월(니산 월) 초하루와 이렛날에 성소를 정하게 하는 속죄 예식을 거행해야 한다. 그리고 정월 14일에 과월절을 지키고, 이어서 7일 동안 무교절을 지키며, 7월 15일에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 에제키엘의 달력에서 오순절이 생략된 것과 연초의 정화 예식에 대한 언급을 간과할 수 없다. 에제키엘의 규정은 이상적인 것이며 아마도 글자 그대로 실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에제키엘의 달력은 사제계 문헌인 레위기 23장으로 대치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⑥ 민수기 28-29장 : 에제키엘의 달력을 무시하면서 레위기 23장의 달력을 해설하고 첨가하며 몇몇 제사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였다. 이 달력은 에즈라 시대 이후 제2 성전의 제사 규정을 반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바빌론 유배 전의 축제 : 모세 오경에 규정된 바빌론 유배 전의 축제들은 3대 순례 축제를 비롯하여 안식일, 초하루제〔新月祭〕, 속죄일 등이 있다.
① 안식일 : 유대인들의 축제일을 특징짓는 가장 근본적이고 일차적인 요소는 거룩하고 전례적인 휴식이다. 한 주간의 거룩한 날을 뜻하는 안식일이란 의미의 히브리어 '삽바트' (שַׁבָּת)는 전례적인 휴식을 동반한 축제일의 동의어가 되었다.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은 모든 일을 멈추는 거룩한 날로 여겨졌다(출애 20, 8-11). 레위기 23장의 축제 달력은 안식일을 준수하라는 훈령으로 시작한다. 하느님이 창조를 마치고 쉰 이렛날(창세 2, 3)은 거룩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세 시대부터 과연 안식일이 지켜졌는지 여부를 가려내기는 어렵지만, 모세 시대부터 모든 생업에서 손을 떼고 이렛날 하느님의 휴식을 생각하며(출애 31, 12-17),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되었음을 생각하라(신명 5, 12-15)는 안식일 준수가 강조되었다. 안식일 준수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낸다. 안식일을 특징짓는 요소는 이날이 계약의 하느님과의 연관성을 통하여 축성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모든 활동을 일체 금지함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은 하느님 앞에서 누리는 행복과 안전의 시간을 의미하였다(이사 58, 13-14). 안식일 준수가 개인에게는 물론 땅 전체에도 축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하느님에게만 보류되고 하느님이 자신의 영역으로 거룩하게 한 시간을 대표하는 것이며, 결국 하느님이 시간의 주인일 뿐만 아니라 온 세상과 생명의 주님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② 초하루제 : 안식일이 주간 축제라면 초하루제는 월중 축제이다. 초하루에도 역시 생업에서 손을 떼고 특별한 제사를 바쳤다. 이때 드리는 제사는 민수기 28장 11-15절에 언급되어 있는데 번제, 곡식 예물 그리고 포도주로 이루어졌다. 제물 봉헌에 덧붙여 나팔을 불어야 했는데, 그것은 하느님 앞에 기억되기 위함이었다(민수 10, 10). 민수기 28장 9-15절에 따르면, 안식일에 봉헌해야 하는 제물보다 초하루에 봉헌해야 하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초하루제는 이스라엘 역사 내내 아주 대중적인 축제였다. 왕정 시기에 레위인들은 안식일뿐만 아니라 초하루에도 아론의 후손 사제들을 도와야 했다(1역대 23, 29-31). 바빌론 유배 이전의 예언자들은 초하루에 대중을 모아서 가르치거나 예언 말씀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 같다(2열왕 4, 23). 그러나 모두가 초하루를 제대로 지키지는 않았기에, 아모스는 초하루제 때문에 장사를 방해받아 불평하는 사람들을 질책하였다(아모 8, 5). 바빌론 유배 중에는 초하루제를 지킬 수 없었지만, 유배에서 돌아온 후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초하루제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느헤 10, 34). 이사야서 66장 22-23절은 에제키엘서 45장 17절의 규정을 인정하면서 초하루를 이스라엘의 마지막 운명과 연관짓고 있다.
③ 속죄일 : 7월(티쉬리 월) 초하루는 백성이 모여 나팔을 불면서 경축하였기 때문에, '나팔절' 이라고도 한다(레위 23, 23-25). 티쉬리(Tishri) 월은 일곱이라는 숫자와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달에 속죄일과 초막절이 있기 때문에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티쉬리 월 초하루제는 초하루를 장엄하게 지낸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티쉬리 월 초하루제는 하느님이 창조주요 임금이며 세상 만물의 재판관임을 뜻하는 축제이다. 여기서 이 축제의 전례적 명칭 즉 '재판의 날' , '기억의 날' 이 생겨났다. 티쉬리 월 1일과 2일 이틀 동안 명절을 지냈는데, 미쉬나(Misha)와 탈무드(Talmud)는 이 축제를 한 해의 머리라는 뜻으로 '로슈 하 샤나 (Rosh ha-Shanah)라고 불렀다.
속죄일(贖罪日)인 7월 10일을 구약성서에서는 '음 하키푸림' (יומ כיפור)이라고 부른다. 레위기 16장과 23장 26-32절에 기록된 것처럼, 이날은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혹은 모르고 저지른 모든 종류의 부정을 대대적으로 정화하는 날이다. 이날에는 안식일처럼 모든 일이 금지되었으며, 거룩한 모임을 열고 단식을 하면서 참회 행위를 해야 했다. 이날의 신학적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용서받는 동시에, 용서하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
④ 3대 순례 축제 : 출애굽기 23장 14-17절과 신명기 16장 16절에 언급된 대로 과월절과 무교절(無酵節), 오순절(五旬節), 그리고 초막절(草幕節)이다. 3대 순례 축제는 달의 차고 짐에 따른 것이 아니라 연중 계절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자연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능력과 섭리를 기념하는 중요한 기회였다. 이 축제들은 '하그' 라는 용어로 지칭되었으며, 이때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성소에 순례를 가서 '주님의 축제' 를 지내야 한다. 이 순례 축제들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면서 호화로운 식사를 나누는 자리였고, 일상의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춤과 노래로 마음껏 기뻐하는 자리였다.
과월절과 무교절은 본래 서로 다른 원천에서 온 것이다. 가축 떼의 번성을 위하여 유목민들이 피를 발라 행하던 고대의 봄 축제에서 과월절이 유래하였으며, 한 해의 첫 곡식을 바치는 농경민 축제에서 무교절이 유래하였다. 그렇지만 무교절 축제가 과월절 축제 직후에 뒤따라왔기 때문에 이 둘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축제로 합쳐졌다. 과월절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느님이 개입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의 하나인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축제이다. 출애굽기 12장이 전하는 바와 같이, 하느님은 마지막 재앙 때 이집트인들의 맏이와 맏배를 치셨지만 문설주에 피를 바른 이스라엘인들의 집은 보호하셨다. 하느님은 그날을 기념 축제로 지키도록 명령하셨으며(출애 12, 14), 이스라엘 백성은 첫 과월절을 시나이 광야에서 지켰다(민수 9, 1-5).
히브리 달력에서 과월절은 1년 중 첫째 달에 있다. 이 첫달은 바빌론 유배 전에는 아빕(Abib) 월이라 불렀고(신명 16, 1), 유배 후에는 니산(Nisan) 월이라 불렀다(느헤 2, 1). 니산 월은 오늘날 그레고리오력의 3~4월에 해당한다. 과월절 축제는 니산 월 14일 저녁에 시작되었으며, 곧이어 7일간의 무교절 축제가 뒤따랐다. 무교절 축제 동안에는 그 어떤 누룩도 일체 먹을 수 없었다. 빵에서 누룩을 완전히 빼 버리는 것은 짐승의 고기에서 피를 뽑아내야 먹을 수 있다는 규정과 상통한다. 누룩과 피 모두 힘을 소생시키는 것이며,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물로서 따로 떼어놓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무교절 동안 첫날과 일곱째 날에 거룩한 모임을 열었으며, 이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었다(출애 12, 16). 하느님의 개입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벗어났다는 주제는 하느님이 충성스럽게 순종하는 당신 백성을 위하여 언제든지 또다시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이스라엘 역사 초기에 과월절과 무교절은 비교적 단순하였는데, 왕정을 거치면서 좀 더 세련되고 복잡한 과월절 예식이 생겨났다(2열왕 23, 21-23 ; 2역대 35, 1-19).
두 번째 축제는 주간절(週間節)이라고도 부르는 오순절인데, 단 하루만 축제가 거행되었다. 무교절 직후 낫을 대어 첫 곡식 단을 거둔 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오순절이 지켜졌다(신명 16, 9-12) . 이 축제는 추수의 마지막과 첫 포도 수확을 봉헌하는 시기의 시작을 표시하였다. 오순절 축제 때 밀로 만든 빵 두 개와 더불어 어린 양 일곱 마리와 황소 한 마리 그리고 숫양 일곱 마리를 바쳤다(레위 23, 15-20).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느님께 드리는 이 예물은 하느님 축복의 무상성(無償性)에 대한 찬양이었으며,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기회였다(신명 16, 10-11). 오순절은 근본적으로 추수 감사 축제이므로 물질적 풍요는 전적으로 하느님께 달렸음을 인정하는 신앙 고백인 셈이다. 신명기 26장이 그것을 잘 보여 준다. 오순절은 과월절과는 달리 특별한 역사적 상황에 연관된 축제가 아니지만, 후에 계약과 율법에 연관되었다. 서기 2세기경에 저술된 외경 《희년서》(The Book of Jubilees) 6장은 이 축제의 목적을 하느님이 노아와 맺은 계약을 해마다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며, 1장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가나안 농경민의 축제였던 맥추절(麥秋節)이 후기 유대교에서 노아와의 계약 그리고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받은 사건과 연결되면서 오순절로 바뀌었다.
'추수절' 이라고도 하는 초막절은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이 매년 모이는 세 번째 축제로서, 7월(티쉬리 월) 10일에 거행된 속죄일을 마치고 같은 달 15일에 시작하여 8일 동안 거행된다. 이 축제는 본래 농사일이 끝나는 한 해의 마지막과 관련되었다(출애 34, 22). 이것은 가나안 농부들이 마지막 수확물인 포도와 올리브를 거두어들이며 지내던 축제에서 초막절이 유래하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후대에 가서 이 축제는 이집트 탈출 후 사막을 방황하며 천막에서 지낸 시기를 상기하는 명절로 바뀌었다. 축제의 첫날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주님께 번제를 드렸으며, 마지막에도 역시 그렇게 하였다. 레위기 23장 39-43절은 초막절 예식에 관한 상세한 규정을 제시하고 있는데, 거기서 '초막절' 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이 축제는 에즈라 시대에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거행되었으며, 느헤미야서 8장 13-18절의 전후 문맥으로 볼 때 왕정 시대에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위의 3대 순례 축제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축제는 초막절이었다. 열왕기 상권 8장 2절과 65절 그리고 에제키엘서 45장 25절에서 초막절을 단순히 '하그' 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바빌론 유배 후의 축제 : 모세 오경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바빌론 유배 이후에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생겨난 후기의 축제는 부림절, 봉헌절, 니가노르의 패배 기념일이다. 이 중 부림절과 봉헌절은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이 거행하는 명절이다.
① 부림절 : 12월(아달 월) 14일에 시작하여 그 다음날까지 지내는 명절이다. 부림절의 유래는 에스델서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페르시아에 살던 유대인들이 에스델의 활약으로 사악한 하만의 계략에서 구출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림절을 지내게 되었다(에스 9, 17-32) 부림절은 마카베오 하권 15장 36절에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모르드개의 날' 이라고 불리고 있다. 서기 1세기경 활동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F. Josephus, 37/38?~100?)의 《유대 고대사》(Antiquitates Iudaicae)는 페르시아의 유대인들이 그들의 원수에게 복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달(Adar) 월 14일과 15일에 부림절을 거행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랍비 문헌에 따르면, 사람들은 아달 월 13일에 단식을 하고 그날 저녁 집 안의 모든 등불을 밝히고 회당으로 향하였다. 아달 월 14일과 15일은 기쁨의 날이었고, 이날 회당에 가서 에스델서의 내용을 들었다. '부림'(פּוּרִים)은 제비 혹은 주사위를 뜻하는 '푸르' (פּוּרִ)의 복수형 명사이며, 여기서 이 축제의 이름이 생겨났다(에스 3, 7 ; 9, 24). 서기 200년경에 완성된 유대교의 가장 오래된 규정집인 미쉬나가 증언하는 것처럼, 부림절은 이미 그때를 전후해서 거행되어 왔다. 그러나 부림절의 기원은 불확실하다. 에스델서의 내용이 역사적이기보다는 민담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축제는 동방 디아스포라의 유대인 공동체가 페르시아의 신년 행사를 변형한 데에서 온 것 같다. 에스델서의 히브리어 본문이 하느님의 이름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② 봉헌절 : 하누가(חֲנֻכָּה)라고도 하는 봉헌절은 9월 (기슬레우 월) 25일부터 10월(데벳 월) 2일까지 8일간 지내는 명절로서, 마카베오 상권 4장 36-59절과 하권 10장 1-9절에 언급된 대로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기원전 175~164)에게 짓밟힌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을 유다 마카베오가 기원전 164년에 정화하고 새롭게 봉헌한 사건을 기념한다. 최초의 봉헌절은 "초막절과 같은 방식으로" (2마카 10, 6) 치러졌다. 마카베오 하권 1장 9절은 봉헌절을 '기슬레우(Kislev) 월의 초막절' 이라고 부른다. 봉헌절과 초막절을 연관시키는 관습은 아마도 열왕기 상권 8장 65절에서 온 것 같다. 솔로몬 성전 봉헌 축제가 초막절 기간 중 7일간 열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후 제2 성전 제단도 초막절 축제 때 봉헌되었다(에즈 3, 3-4). 이 축제는 기원전 124년부터 거행되었는데(2마카 1, 9),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8일간 매일 밤 집 앞에 등불을 하나씩 밝혀 나가는 예식이다. 신약성서 역시 봉헌절을 언급하며(요한 10, 22),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봉헌절을 '빛의 명절' 이라고 불렀다. 미쉬나는 봉헌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데, 이런 침묵은 정통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하스모네 왕가(마카베오가)에 대한 적대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축제의 의미는 겨울의 어둠 한가운데서, 더 나아가 세상의 어둠 한가운데서 빛을 밝히는 것이다. 봉헌절이 그리스도교의 성탄절 즈음에 오기 때문에 오늘날 유대인들에게는 큰 축제로 자리잡았으며,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생겨났다.
③ 니가노르 패배 기념일 : 시리아의 니가노르 장군을 패배시킨 것을 축하하는 날인데(1마카 7, 49 ; 2마카 15, 36), 12월(아달 월) 13일에 거행되었다. 후에 부림절의 일부로 편입되어 독립된 축제가 되지 못하였다.
〔신약성서의 축제〕 신약성서는 예수와 제자들이 안식일을 비롯한 주요 축제들을 지켰다고 증언한다. 따라서 초대 교회 신자들은 유대인들의 축제 준수를 곧바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더불어 팔레스티나 지역을 넘어 교회가 차츰 성장해 감에 따라 초대 교회의 유대교 축제 준수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초대 교회는 일단 구약성서의 축제를 이어받으면서도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중심으로 고유한 축제를 새롭게 형성해 나갔다.
예수 그리스도의 축제 : 예수 당시에는 안식일이 엄격하게 지켜졌으며, 안식일에 유대인들은 회당에 모여 구약성서의 말씀을 들었다(루가 4, 16 : 사도 13, 14 : 18, 4).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안식일에 모든 일을 금하였으며, 예수는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유대교 장상들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가 유대교의 축제를 완전히 거부하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신약성서 시대에 유대인들은 과월절과 무교절을 널리 그리고 성대하게 거행하였는데, 예수 역시 과월절 예식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였기 때문이다(루가 2, 42 ; 요한 2, 13). 또한 예수는 봉헌절 축제가 열리던 때에 예루살렘에 있었다(요한 10, 22).
요한 복음서는 축제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예수는 평범한 유대인이 아니라 참된 이스라엘을 대표하며,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참된 축제 거행을 보여 주셨다. 그를 통하여 유대교의 전통적인 축제가 새롭고 최종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요한 복음서는 강조한다. 신약성서에 총 25회 등장하는 축제란 의미의 '해오르테' 라는 단어가 요한 복음서에서 15회나 나타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공관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공생활 동안 단 한 번의 과월절을 지냈지만,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세 번의 과월절을 지냈다(요한 2, 23 : 6, 4 ; 11, 55). 이에 따라 예수님의 공생활을 3년으로 생각하는 전통이 생겨났지만, 요한 복음사가의 관심은 연대기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형론적인 관점에서 모세를 능가하는 참되고 새로운 예언자요 종말론적인 예언자로 예수를 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요한 6장).
과월절과 무교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그 의미가 크다. 최후의 만찬이 과월절 직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관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 사이에 최후의 만찬 날짜에 대한 불일치가 발견된다. 즉 공관 복음서는 최후의 만찬 날짜를 유대인들의 과월절 식사 시간과 같은 때로 보는 반면, 요한 복음서는 과월절 전날이라고 본다(요한 13, 1).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시간은 유대인들이 니산 월 14일 오후 3시경 과월절 만찬에 쓸 어린 양을 잡는 시간과 일치한다. 이러한 불일치에 대하여 학자들 간에 여러 견해가 제시되었지만, 중요한 것은 공관 복음서나 요한 복음서 모두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새로운 과월절' 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 복음서는 오순절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 신약성서에서 '오순절' (πεντηκοστή)이라는 단어는 세 번만 나타난다(1고린 16, 8 ; 사도 2, 1 ; 20, 16). 그리고 '초막절' (σκηνοπηγία)이라는 단어는 단 두 번밖에 나타나지 않는다(요한 5, 1 ; 7, 2). 요한 복음서의 이야기에서 초막절은 예수가 당신 자신을 계시하는 배경이 된다.
초대 교회의 축제 : 초대 교회 신자들은 안식일을 비롯한 유대교의 축제에 참여하였다(사도 16, 13 ; 20, 16). 물론 그리스도교의 축제가 유대교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이점도 드러나고 갈등도 생겨났다. 바오로 사도는 유일한 하느님 대신 별과 기타 자연적인 힘을 인정하는 듯한 유대교 축제일을 단호히 거부하였다(갈라 4, 8-11 : 로마 14, 5). 더 나아가 그는 유대교의 것이든 이방인의 것이든 모든 축제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교체되었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파스카(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습니다 · · ·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1고린 5, 7-8)라는 권고는 바오로의 그러한 사상을 잘 드러낸다. 유대인들의 과월절 예식은 집 안에 남아 있는 누룩 든 빵을 찾아내서 없애 버리는 것으로 시작하여 어린 양을 잡고 쓴 나물을 먹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참된 과월절 어린 양인 그리스도 덕분에 이제 죄라는 묵은 누룩은 없어지고, 누룩 없는 빵으로 상징되는 거룩함과 순결이라는 '파스카적' 삶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바오로 사도는 강조하고 있다.
초대 교회는 주간의 첫날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모임을 가졌는데, 1세기 말경 이날을 '주일' 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묵시 1, 10 : 《디다케》 14). 그러므로 주일은 그리스도교 달력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주일은 최초의 그리스도교 축제였고, 한동안 유일한 축제였다. 주일에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룩된 구원을 기념하고, 그분의 도래를 기다리면서 성체성사를 거행하였다(1고린 11, 23-26). 따라서 그 근원을 따진다면 주일은 유대인들의 안식일과 연결되지 않는다. 주일은 한 주간의 첫날이므로 새로운 창조의 상징이다. 한 주간에 새로운 빛을 던져 주면서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주일에 이어서 유대교의 과월절에 상응하는 부활 대축일이 거행되었는데, 유대교적 의미는 상징적 의미 외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말하자면 부활 대축일은 최초의 연중 축제라고 볼 수 있다. 오순절 역시 그리스도교 달력 안에 남긴 하였지만, 그 본래적인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사도 행전 2장의 성령 강림 사건을 기념하게 되었다.
〔축제의 영성〕 축제는 하느님이 자연 안에, 역사 안에, 그리고 인간의 삶 안에 현존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유대인들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공동으로 거행하는 축제는 영성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축제는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행동을 강조하며, 하느님의 지속적인 축복은 백성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에 달려 있음을 깨우쳐 준다. 축제의 목적은 하느님과 선조들의 계약이 영원함을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일치를 강화하는 데 있다. 또한 축제는 자연 질서를 다스리는 하느님의 섭리를 강조하면서 당신의 약속을 완전히 지키는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드러내고,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역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지킬 의무가 있음을 암시한다.
안식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축제를 거행하는 전례를 통하여 유대인들은 과거에 있었고 지금 벌어지고 또 앞으로 올 사건에 동시적으로 현존한다. 과월절 전례는 과거 이집트 탈출 사건을 상기하고 기념한다. 그러나 과월절을 거행하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첫 번째 파스카의 밤에 구출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것을 '과거 역사를 내 것으로 하기' 라고 한다. 이를 통하여 조상들의 신앙 여정을 상기하고 그들과 같은 영적인 여행을 감행할 수 있는 영감을 얻는다.
이것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로써 이룩된 새로운 파스카 전례를 거행하면서, 과거에 있었던 그리고 지금도 벌어지고 또 앞으로 완성될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사건에 동시적으로 현존한다. 또한 유대인들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되었듯이, 오늘날 그리스도의 새로운 파스카를 거행하는 우리는 모든 종류의 새로운 이집트(그것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든, 우리 교회 공동체를 둘러싼 것이든)에서 해방될 것을 희망하며 영적인 여행을 계속한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구원적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를 통하여 부활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 안에 모신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러므로 축제 거행은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성의 표현이며, 신앙의 신비를 선포하는 행위이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축제는 이제 더이상 '영원을 향한 향수'가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축제는 그 축제가 의미하고 거행하는 것을 실현하며, 그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 신자들은 매일 축제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교부들이 말하였던 것이다. (⇦ 주간절 ; 초막절 ; 추수절 : ← 과월절 ; 무교절 ; 봉헌절 ; 부림절 ; 안식일 ; 오순절 ; → 달력 ; 주일 ; 최후의 만찬)
※ 참고문헌 정태현, 《성서 입문》, 일과 놀이, 2000/ Anne-Catherine Avril et Dominique de La Maisonneuve, Les fêtes juives, Supplément au Cahier Evangile numéro 86, Paris, Cerf, 1993/ R. de Vaux, Les institutions de I'Ancien Testament, tome I · II, Paris, Cerf, 1958 · 1960/ R.K. Harrison, Feast and Festivals of Israel, Baker Encyclopedia ofthe Bible, vol. 1, Grand Papids, Baker Book House, 1995/ G.W. Macrae, Religious Feasts, 《NCE》 5, pp. 655~657/ J. Hild, Fêtes, 《DSp》 5, pp. 222~247. 〔李重燮〕
Ⅱ. 종교학에서의 축제
〔성 격〕 공동체의 중요한 사건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의례인 축제는, 전통 사회의 경우 대부분 계절의 변화 및 농작물의 성장과 연관하여 주기적으로 행해졌다. 공식적 인 축하 의례에 앞서서 금욕, 고행, 절제의 단계를 갖는 경우가 많다. 일상적으로 먹던 음식을 중지하거나 양 혹 은 횟수를 줄이는 것은 그런 단계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일몰에서 다음 일몰 때까지 24시간 금식하는 유대교의 속죄일, 한 달 동안 일출에서 일몰까지 금식하 는 이슬람의 라마단(Ramadan) 40일 동안 참회하며 금 육과 금식을 하는 가톨릭의 사순 시기가 대표적이다. 이 런 참회는 죄와 허물을 씻어 버리기 위해 행해지는 정화 의례의 한 부분으로, 환희와 해방의 의례를 준비하기 위 해 마련되는 것이다.
축하 의례는 온 공동체가 모여 행하는데, 여기에는 대 개 죽은 조상과 귀신 등 신적인 존재도 공동체의 일원으 로서 참석한다. 의례 중에 공동체의 핵심 가치를 나타내 는 상징이 부각되며, 공동체의 유대감이 강화되는 방향 으로 진행된다. 예컨대 공동체 성원 사이의 선물 교환은 공동체의 통합에 기여한다.
한편 축하 의례가 혼란과 무질서의 난장(亂場)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에는 평소에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위가 허용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런 행위를 감행하 도록 격려를 받는다. 금지되었던 것이 드러내놓고 행해지 는데, 사육제(carnival)와 할로원(Halloween) 축제의 경우
에 그런 측면이 두드러진다. 사육제는 아프리카 토속 종 교와 가톨릭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브라질 리우 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의 사육제와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의 마르디그라(Mardi Gras)가 대표적이다.
난장의 경우, 일상의 질서가 중단되고 광란에 가까운 춤과 음악의 향연이 마련된다. 또한 종종 갈등이 과장되 게 표현되며, 대결의 의례가 꾸며지고 욕설과 조롱 혹은 의례적인 구타가 행해지기도 한다. 세력의 역전이 이루 어져 그동안 억눌려 지내 왔던 약자들이, 자신들 위에 군 림해 왔던 자들을 능멸하고 공격한다. 왕자와 거지의 이 야기는 일상 질서의 역전된 모습을 보여 주는 하나의 예 이다. 이런 대결과 갈등은 싸움의 의례로 절정에 달한다. 결국 무질서와 악의 패배로 귀결되고, 대결을 통해 진 쪽 은 추방된다. 질서와 선의 새로운 세계가 재등장하고, 승 리의 축하 의례가 행해진다. 이런 갈등의 극화(劇化)를 통해 공동체의 가치가 재확인되며, 단합의 중요성이 새 롭게 강화된다. 종종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을 받아들 이기 위해 입회 의례도 함께 치러지며, 죽은 자가 귀환하 고 신들도 참석하여 공동체 통합의 가치를 폭넓게 강조 한다.
대결과 갈등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축제는 놀이를 의례화한 측면이 강하다. 전통적인 종교성이 두드러지지 않은 이른바 세속적 의례에서 축제의 성격이 잘 드러나 는 것도 이런 놀이적 측면 때문이다. 신년 축하식, 공휴 일의 제정, 여러 가지 축하 행진, 스포츠 제전은 모두 놀 이적 특성을 강조한다. 축제가 행해질 때는 그동안 억제 되고 분산되어 있던 감정이 공공연히 드러나게 된다. 이 런 감정의 드러남은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감 정을 발산하도록 유도하는 틀에 따른 것이다. 축제 연구 자는 바로 보이지 않는 이런 틀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사 례〕 일본 : 일본의 '마츠리' (祭)는 축제의 두드러 진 예로서 흔히 거론된다. 현재 '마츠리' 는 일본의 수많 은 지역에서 저마다의 독자적인 전통과 생활 양식에 맞 추어 특색 있고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마츠리' 의 의미는 '초월자를 받들어 모신다' 는 것으로, 본래 신 사(神社)의 종교 의식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 러나 근대 사회의 성립과 함께 종교적 성격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광범위한 규모로 대중들을 포괄하는 의례 형 태로 바뀌었다.
'마츠리' 는 통상적으로 정화(淨化), 공물(供物), 기원 (祈願), 그리고 공동 음복(飮福)을 주요 요소로 하면서 통과 의례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농작물의 경작 및 수확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죽은 자의 혼령이 찾아와 산 자와 죽은 자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오 봉' (ち盆) 축제는 바로 이런 수확의 풍요와 연결되어 있 다. '마츠리' 에서 두드러진 점은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 의 자발적인 참여이다. 이런 자발성으로 인해 '마츠리' 는 지역 공동체의 유대와 단합을 증진시키는 기능을 한 다. 특히 일본의 근대 도시에서 벌어지는 '마츠리' 의 경 우에 이런 점이 현저하게 부각된다. 한편 이런 단합의 기 능은 적지 않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곤 한다. '예배 활동'
이라는 뜻의 '마츠리고토' (祭 リ 事)가 '정치적 지배 활 동' 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인도 : 인도 전역에서 벌어지는 홀리(Holi) 축제는 봄 을 맞이하는 신년제(新年祭)의 성격을 띠고 있다. 홀리 축제의 특이한 점은 밝은 색깔의 물감과 가루를 서로에 게 뿌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밝은 색깔이 의미하는 것은 봄의 생명력이다. 즉 새 봄과 함께 나타난 생명의 놀라운 약동을 축하하는 것이 홀리 축제이다. 가족 구성원끼리 '굴랄' 이란 물감과 색 가루를 뿌려 주며 애정과 축복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는 홀리 축제는 길거리에서 카스트 나 경제적 ·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사람들에게 '굴랄' 을 던져 범백이 되게 만드는 것으로 절정에 이른다. 신년 제에 나타나게 마련인 혼돈의 무질서가 이때 구현되는 것이다. 홀리 축제에는 가족 구성원끼리의 성찬이 빠질 수 없으며, 부모는 자녀에게 새 옷을 선물한다. 축제 때 사람들이 입는 옷의 색깔은 보통 하얀 색이기 때문에 '굴랄' 의 밝은 색깔이 더욱 두드러져 보여 '색깔의 축 제' 를 부각시킨다.
시아파 무슬림의 축제 : 이 축제는 칼리프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고 여겨진 후사인 이븐 알리(626~680)가 680년 살해당한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아파에 게 그의 죽음은 순교로 간주되었고, 시아파는 이를 기억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였다. 매년 이때가 되 면 시아파 무슬림은 '타지야' (taziyah)라는 수난극을 상 연하며, 후사인이 순교한 '카르발라' (Karbala)로 순례 여 행을 떠난다. 애도 기간에는 죄 없는 자의 고통과 그에 대한 비탄으로 참여자는 몸을 자해(自害)하기도 한다. 이 단계가 지나면, 환희의 축제가 이어진다.
한국 : 고대 문헌에 나타난 한국의 축제는 계절의 변 화 및 농작물의 성장에 따라 행해진 모습을 보여 준다. 정월에 행해진 부여의 영고(迎鼓), 5월과 10월에 치러 진 마한의 의례, 신라의 한가윗날 놀이, 10월의 고구려 동맹(東盟), 예(濊)의 무천(舞天) 등이 그것이다. 축제 의 성격을 단편적이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구 절을 통해서이다. "나라 안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 밤낮 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춘다. 영고 때는 형옥을 중단하고, 죄수를 풀어 준다. 하늘과 귀신에게 제사 지 내고, 연일 음식을 즐겨 먹고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 고 놀았다. 두 패로 나뉘어 서로 경쟁을 하여 승부를 가 린다."
이런 성격은 모두 일상의 질서가 잠 정적으로 중단되거나 그로부터 일탈 된 모습을 나타낸다. 나날의 노동이 아니라, 술과 춤이 질펀하고, 법규의 엄격성이 느슨해지거나 전도된다. 죽 은 자와 산 자가 서로 교합하며, 은폐 되었던 갈등이 의도적으로 조장된다. 이런 점은 축제의 구조에 늘 나타나게 마련인 무질서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무질서는 질서의 면
역력을 강화함으로써 통상적으로 질서의 탄력성을 증진 시킨다. 하지만 무질서가 기존 질서를 근본적으로 혁파 하는 일도 가끔 생긴다.
1970년대에 한국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도로 전 개된 결과,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는 한편, 도시에 사는 이들의 소외감이 점증하게 되었다. 정부는 그런 부정적 측면을 완화시키기 위해 전통 문화의 창조적 계승을 강 조하였다. 그동안 홀대받던 전통적 축제가 이 시기에 새 롭게 관심의 대상으로 인식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전통적 지역 축제의 발굴과 보존이 정부의 시책으로 추 진되었고, 지역 축제의 활성화가 이루어졌다. 1990년대 지방 자치제의 성립은 지역 축제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 시켰다. 1994년 이후 지역 축제의 폭발적인 양적 성장 은, 각 지역의 정체성 성립에 축제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 하였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축제가 지방 자치제 주도로 이루어져 참여자의 자발성이 결여되어 있고 관광 상품화 경향이 지나치다는 점, 그리고 각 지역 축제의 특징이 제 대로 부각되지 않는 등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 사육제 ; 신도 ; 정화)
※ 참고문헌 《한국의 지역 축제》, 문화체육부, 1996/ 정근식 외, 《축제, 민주주의, 지역 활성화》, 새길, 1999/ 유럽문화정보센터, 《유럽의 축제 문화》,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3/ ㅡ, 《축제와 문 화》,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3. 〔張錫萬〕
축제 祝祭 〔히〕חָג 〔그〕ἑορτή 〔라〕dies festus 〔영〕festival, f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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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순례 축제 중 하나인 오순절에 사도들에게 성령이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