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이웃에 대해, 그리고 사회 및 윤리 규범에 대해 취하는 성실하고 항구한 의지의 특성.
신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충실은 계시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충실의 반영이며 결실이다. 하느님의 속성 중 하나인 충실(출애 34, 6)은 계약을 맺은 백성에 대한 그분의 부성(父性)과 자주 연관되어 나타난다. 이 두 가지 보완적 속성은 하느님과 인간의 계약이 무상의 선물인 동시에 서로에게 매인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하느님을 향해 갖추어야 할 자녀로서의 인간의 효도는 계약의 법규를 준수하는 충실에서 잘 드러난다. 구원의 역사에서 하느님의 충실은 인간들의 불충실에도 불구하고 불변적인 것으로 계시된다. 또한 진리의 충실한 증인인 예수 그리스도(요한 18, 37 ; 묵시 3, 14)는 인간들에게 은총을 내려 주어 그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충실을 본받으면서 영원한 생명의 화관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준다(묵시 2, 10).
〔성서에서의 의미] 하느님의 충실 : 이는 구약성서 안에서 변함없는 하느님의 성품 중 하나로 나타난다. 그분의 충실은 선택된 백성으로 하여금 신뢰를 갖게 한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을 통하여 충실히 그들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그들은 그분께 의탁하며 계약에 충실해야 한다(신명 7, 9 : 1열왕 8, 23). 또한 하느님은 선조들(신명 4, 31 ; 미가 7, 21)과 다윗 왕조(1사무 7, 28 ; 1열왕 8, 26)에게 한 약속에도 충실하다. 그분은 백성 대대손손의 피난처이다(시편 90).
이스라엘 백성은 고통스런 재앙 중에,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으로 벌받는 시련 중에도 하느님의 충실성에 호소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시편 88, 1-9). 충실은 하느님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품성으로 항구성이며 견실함으로 나타난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위와 같은 분이다(신명 32, 4). 그분이 말씀하고 약속하신 것을 신뢰할 수 있으며, 그분은 결코 변하는 분이 아니다(말라 3, 6). 그리고 그분은 결코 속이거나 약속한 것을 철회하지 않는다(민수 23, 19) .
예수의 충실 :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실현된다(사도 13, 32-34 ; 로마 15, 8). 신약성서는 하느님의 충실을 찬양하며(1고린 1, 9 ; 1데살 5, 24), 또한 그리스도의 충실을 칭송한다(2디모 2, 13).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일을 완수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진실하고 충실한 분이다(마르 10, 45 ; 루가 24, 44 요한 19, 28. 30 : 히브 13, 8 ; 묵시 19, 11). 그분을 통해 하느님의 모든 약속이 실현되며(2고린 1, 20), 그분 안에서 선택된 이들의 구원과 영광이 있고 그분과 함께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에 부름을 받게 된다(2디모 2, 10).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을 통하여 심판 날까지 나무랄 데 없는 인간으로 충실하게 머물 수 있도록 견고해진다(1고린 1, 8). 실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충실이 충만히 드러나며(1데살 5, 23), 충실한 이는 악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된다(2데살 3, 30).
인간은 견고한 자세로 그리스도의 충실을 본받아야 하며, 그분과 함께 살고 다스리기 위하여 충실성을 견지해야 한다(2디모 2, 11-12). 또한 우리가 불충실해도 그분은 언제나 충실하고 약속을 어길 줄 모르는 분이다(2디모 2, 13). 그리스도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분이다(히브 13, 8). 자비롭고 충실한 대사제인 그분은(히브 2, 17),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충실성에 바탕을 두면서 믿음과 불굴의 희망을(히브 10, 23) 보존하는 이들에게 은총의 어좌에 나아갈 수 있게 해 준다(히브 4, 14-16 : 10, 23).
인간의 충실 : 하느님의 충실을 인식하는 인간은 당연히 하느님께 신뢰와 충실로 응답해야 한다.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은 또한 이웃에게 그분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① 하느님께 대한 충실 : 이것은 단순한 신뢰 이상으로, 어떠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항구함과 인내와 노력을 드러내는 표지이다(이사 26, 1-6 ; 28, 16 ; 루가 22, 31-32 ; 1데살 3, 1-7).
인간의 충실은 하느님이 요구하는 것에 따르는 절대적이고 온전한 순명과 동일시된다. 아브라함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완벽한 모범이다(집회 44, 20 ; 1마카 2, 52). 충실은 성서 안에 나타나는 신앙의 총체적 실재를 포용한다. 그것은 '신앙' 이란 말이 일반적으로 주는 지적 어감과 다른 것이다.
인간 스스로의 힘만으로 완벽한 충실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하느님이 도와 주지 않으면 불충실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그러한 사실이 확인된다. '충실한 마음' 은 하느님으로부터 조형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돌 같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준다(예레 31, 33-34 ; 에제 36, 26-28).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육화와 함께 그것을 이룬다.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통하여 인간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지막까지 충실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1고린 1, 8-9 ; 10, 13 ; 1데살 5, 23-24) .
인간의 충실은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충실성의 반영이며 결실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존중한다. 그러나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며 은총을 통해 도와 준다. 그리고 하느님은 인간에게 내려 준 은총을 결코 거두어 가지 않는다(로마 11, 29).
② 이웃에 대한 충실 : 성서는 종(1사무 22, 14), 공직자(다니 6, 4-5), 사신(잠언 13, 17), 동맹인(2역대 9, 8-9), 심판관(시편 96, 13), 증인(잠언 14, 5) 등 어떠한 신분이나 위치에 있든지 인간은 충실의 덕을 지녀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느님께 대한 충실이 없는 곳에는 또한 이웃에 대한 충실이 있을 수 없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충실을 저버리며 잘못 산다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라고 고발하며(예레 9, 2-8), 그들에게 더이상 충실이나 성실도 없다고 한탄한다(호세 4, 1-2 ; 예레 5, 1-3 ; 7, 28).
은총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은 이웃에 대한 충실성에서 다른 이들과 구별된다. 충실은 애덕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사랑은 거짓될 수 없다(1고린 13, 4-7). 이웃에 대한 충실은 단순한 본성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충실을 통해 이루어진다. 진실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분의 충직한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가르쳐 준 사랑의 계명(요한 15, 9-17)을 성실히 사는 이들이다.
〔신학에서의 의미〕 그리스도교의 충실은 스스로 완전한 인간이 되려는 의식이나 열의에 기초를 두는 태도가 아니라,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에서 받는 영감이며 은총이다. 그것은 주님을 본받고자 추구하며 그분께 응답하고자 염원하는 사랑에서 받는 은총이다. "우리가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 가장 먼저 깨닫는 것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선포된 하느님 사랑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한 새롭고 영원한 계약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곧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고, 이제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이 새로운 관계는 거저 주어진 상호 소속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과 성실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받는 '은총과 진리' 에 응답해야 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787항).
하느님께 대한 충실은 매우 사소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매일 자신의 본분을 성실히 이행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엄밀한 의미의 충실은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일치하려는 사랑에서 온다. 이러한 사랑과 내적 영감이 부족하다면, 외적 엄밀성은 바리사이적인 것이 되기 쉬우며 무거운 짐이 된다. 한편 사랑이 있을 경우, 본분 수행이나 법규의 준수는 기쁨의 원천이 된다. 계명에 대한 소홀한 자세나 부담스러운 태도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충실의 부족에서 생긴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하느님께 약속을 드리도록 부름을 받았다. 세례와 견진, 혼인과 성품성사에는 언제나 약속이 들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개인적 신심으로 특정 행위와 기도, 자선과 순례 등을 하느님께 약속할 수 있다. 하느님께 드린 약속에 대한 충실함은 지존하신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존경과 성실하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2101항).
하느님께 대한 충실로서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을 성체 및 고해성사 생활을 잘하도록 초대한다. 그리고 그 성사들은 충실을 보존하고 견고케 하는 은총을 받게 한다. "공동으로 거행하는 주일 성찬례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과 그분과 교회에 충실하다는 증거이다"(2182항). 또한 하느님께 대한 충실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 대한 충실 안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순탄할 때뿐만 아니라 역경과 곤궁 중에도 충실한 것이다.
수도자들에게 충실은 우선 서약에 대한 자세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규정된 생활 형태에 따라 살면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이들이다. 그들의 충실은 수도 공동체 생활뿐만 아니라 복음 정신에 따라 완덕의 삶을 향해 매순간 더 정진하기를 요구한다.
평신도들에게도 일상 생활을 위해 항구한 충실이 요구된다. 신실성, 용기, 정의감, 진지한 개방성, 타인에 대한 존중과 이해, 신뢰와 우정을 키우는 일, 인내, 순결한 결혼 생활, 물질적 · 영적 나눔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세례성사를 통해 부름을 받은 거룩함(聖性)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방법은 다를지라도 수도자나 사제 못지않게, 충실한 수덕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기주의에서 참된 사랑으로, 소유적 사랑에서 봉헌적 사랑으로 넘어가도록 힘써야 한다. 무절제한 탐욕으로부터 복음적 절도로, 자기 중심적 쾌락의 추구에서 타인의 행복을 위한 봉사적 기쁨으로, 교만한 자세에서 형제적 공동 협조의 자세로 끊임없이 성숙해야 한다. "세례받은 이들의 충실성은, 복음 선포와 세상에서 이루어야 할 교회의 사명 수행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된다. 진리와 빛의 힘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 위하여, 구원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통한 증거로써 그 진실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2044항). 그리고 기도와 전례 중에 하는 '아멘'의 의미도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어의 아멘은 '믿다' 라는 말과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그 어원은 견고함, 신뢰성, 성실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멘' 이라는 말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성실과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뢰를 의미"(1062항)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연약성을 깨달으며 겸손할 때 충실을 지킬 수 있고 키워 나갈 수 있다. 그러할 때 하느님께 은총을 청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성실)
※ 참고문헌 C. Spicq · M.F. Lucan, Dizionario di Teologia biblica, Casale Monferrato, Marietti, 1982, pp. 391~392/ A. De Sutter · M. Caprioli, Dizionario enciclopedico di Spritualita, vol. 2, Roma, Citttà Nuova ed., 1990, pp. 999~ 1000/ Pierre Adnes, 《DSp》5, pp. 307~331. 〔朴載萬〕
충실
忠實
〔라〕fidelitas · 〔영〕fide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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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였던 아브라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