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말기 역법(曆法)을 개수(改修)한 연혁을 기록한 책으로, 1645년 북경에서 전 8권으로 간행된 직후 조선에 전래되어 지식인들에게 서양 과학의 우수성을 인식시켰다. 현존하는 《신법산서》(新法算書 또는 西洋新法曆書)의 권1부터 권8에 <연기>(緣起)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명말(明末)의 역법 개수 과정과 관련된 당시의 상소문(奏疏)과 여러 가지 관측 내용에 대해 변론한 일들로 구성되어 있다. 역법 개수를 명한 황제의 조칙과 역법 개수의 책임을 맡고 개력(改曆) 사업을 이끌었던 서광계(徐光啓, 1562~1633)가 황제에게 올린 문서〔題本과 奏本] 및 서광계의 뒤를 이어 개력의 책임자가 된 이천경(李天經, 1579~1660)이 황제에게 올린 문서가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으며, 이 밖에 예부(禮部) · 이부(吏部) · 흠천감(欽天監) 등 역법 사업과 관련 있는 관청에서 황제에게 올린 문서들이 수록되어 있다.
중국의 역법은 명말에 이르러 일월식(日月蝕)을 예측하는 데 종종 오류를 범하였다. 이미 만력(萬曆) 38년(1610) 11월 초하루의 일식을 잘못 예측한 바 있어, 서광계가 서양 선교사를 천거하며 서양 역법을 번역하자고 건의하였지만 실행되지 못하였다. 그 후 숭정(崇禎) 2년(1629) 5월 초하루의 일식 때 홈천감에서는 기존의 대통력(大統曆)과 회회력(回回曆)에 의거하여 추산하였지만 오류를 범하였고, 반면 서광계는 서양 역법에 의해 일식 시각을 정확히 예측하였다. 이에 9월 13일 황제는 당시 예부 좌시랑(左侍郎)이었던 서광계에게 개력의 책임을 맡겼고, 서광계는 선무문(宣武門) 안의 천주당 동쪽에 역국(曆局)을 개설하고 통고바르디(N. Longobardi, 龍華民, 1559~1654) , 테렌츠(J. Terrenz, 鄧玉函, 1576~1630) 등의 선교사와 함께 개력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개력 사업은 서양 천문 역법서의 번역, 새로운 천문 의기의 제작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서광계는 1631년부터 1632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번역한 서양 천문 역법서를 황제에게 올렸고, 1633년 서광계가 사망한 이후 그의 천거로 개력 사업의 책임자가 된 이천경은 1634년 두 차례에 걸쳐 천문 역법서를 황제에게 올렸다. 이상 다섯 차례에 걸쳐 황제에게 올린 서목은 모두 135권, 1접(摺), 1가(架)였는데, 그 구체적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제1차 보고(1631. 1. 28) : 《역서총목》(曆書總目) 1권, 《일전역지》(日纏曆指) 1권, 《측천약설》(((天說) 2권, 《대측》(大測) 2권, 《일전표》(日纏表) 2권, 《할원괄선표》(割圓八線表) 6권, 《황도승도표》(黃道升度表) 7권, 《황적거도표》(黃赤距度表) 1권, 《통률표》(通率表) 2권, 이상 24권.
제2차 보고(1631. 8. 1) : 《측량전의》(測量全義) 10권, 《항성역지》(恒星曆指) 3권, 《항성역표》(恒星曆表) 4권, 총도》恒星星總圖) 1접, 《항성도상》(恒星圖像) 1권, 《규일해정와》(揆日解訂訛) 1권, 《비례규해》(比例規解) 1권, 이상 20권 1접.
제3차 보고(1632. 4. 4) : 《월리역지》(月離歷指) 4권 《월리역표》(月離歷表) 6권, 《교식역지》(交食曆指) 4권, 《교식역표》(交食曆表) 2권, 《남북고고표》(南北高弧表) 12권, 《제방반주분표》(諸方半畫分表) 1권, 《제분신》(諸分晨) 1권, 이상 30권.
제4차 보고(1634. 7. 19) : 《오위총론》(五緯總論) 1권, 《일전증》(日繒增) 1권, 《오성도》(五星圖) 1권, 《일전표》(日纏表) 1권, (화목토이백향년표병주세시각표(火木土二百恒年表並周歲時刻表) 3권, 《교식역지》(交食曆指) 3권, 《교식제표용법》(交食諸表用法) 2권, 《교식표》(交食表) 4권, 《황평상한표》(黃平象限表) 7권, 《목토가감표》(木土加減表) 2권, 《교식간법표》(交食簡法表) 2권, 《방근표》(方根表) 2권, 《항성병장》(恒星屏障) 1가, 이상 29권 1가.
제5차 보고(1634. 12. 3) : 《오위역지》(五緯曆指) 8권, 《오위용법》(五緯用法) 1권, 《일전고》(日纏考) 2권, 《야중측시》(夜中測時) 1권, 《교식몽구》(交食蒙求) 1권, 《고금교식고》(古今交食考) 1권, 《항성출물표》(恒星出沒表) 2권, 《고고표》(高弧表) 5권, 《오위제표》(五緯諸表) 9권, 《갑술을해일전세행》(甲戌乙亥日躔細行) 2권, 이상 32권
《치력연기》는 숭정 2년 개력 사업이 착수된 시점부터 명이 멸망하기 직전인 숭정 17년(1644) 정월에 이르기까지 역법의 개수와 관련된 사항들을 정리한 것이다. 서술 방식은 당시 황제에게 바친 문서를 날짜순으로 편집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권1에는 숭정 2년 9월 13일에 내려진 황제의 조칙을 필두로 그러한 조칙이 있게 된 경과 과정과 그 이후 개력사업의 전개 과정이, 숭정 2년 5월부터 숭정 3년(1630) 11월 24일까지 예부와 역법 개수의 책임을 맡은 서광계가 황제에게 올린 문서들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당시 서광계는 번다한 서양 천문 역법서의 번역을 위한 기본 원칙을 수립하였는데, 그것이 이른바 '절차 육목' 節次六目)과 '기본 오목' (基本五目)이었다. '절차 육목' 이란 ① 일전력(日纏曆) ② 항성력(恒星曆) ③ 월리력(月離曆) ④ 일월교회력(日月交會曆) ⑤ 오위성력(五緯星曆) ⑥ 오성교회력(五星交會曆)이고, '기본 오목' 이란 ① 법원(法原) ② 법수(法數) ③ 법산(法算) ④ 법기(法器) ⑤ 회통(會通)이다.
권2에는 숭정 3년 12월 2일부터 숭정 5년(1632) 10월 27일까지 서광계가 황제에게 올린 문서와 흠천감 감정(監正) 장수등(張守登)이 올린 문서가, 권3에는 숭정 6년(1633) 10월 6일부터 숭정 7년(1634) 11월 9일까지 서광계 · 이천경 · 이강선(李康先) 등이 황제에게 올린 문서가 수록되어 있다. 이천경은 제3차 보고까지 주도하였던 서광계가 숭정 6년 10월 사망한 이후 이 사업의 책임을 맡게 된 인물이었고, 이강선은 서광계를 대신하여 예부 상서(禮部尚書)의 지위를 계승한 인물이었다.
권4에는 숭정 7년 12월 3일부터 숭정 9년(1636) 정월 16일까지 이천경이 황제에게 올린 문서와 예부에서 황제에게 올린 문서가, 권5에는 숭정 9년 정월 16일부터 11월 15일까지 이천경이 황제에게 올린 문서와 예부 상서 황사준(黃士俊) · 강봉원(姜逢元) 및 예부와 이부에서 황제에게 올린 문서가, 권6에는 숭정 9년 12월 18일부터 숭정 11년(1638) 4월 22일까지 예부 상서 강봉원, 이천경, 흠천감 감부(監副) 주윤(周胤), 예부 및 예부 관리 공육(鞏焰)이 황제에게 올린 문서가, 권7에는 숭정 11년 5월 3일부터 숭정 14년(1641) 2월 26일까지 이천경, 광록시(光祿寺)의 경(卿) 왕일중(王-中) 등이 황제에게 올린 문서가, 권8에는 숭정 14년 3월 17일부터 숭정 17년 정월 2일까지 이천경, 이부, 예부에서 황제에게 올린 문서가 수록되어 있다.
《치력연기》가 조선에 처음으로 전래된 것은 인조(仁祖) 9년(1631)의 일로, 당시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정두원(鄭斗源, 1581~?)이 가져온 물품 가운데 서양인 선교사 로드리게스(J. Rodriquez, 陸若漢, 1559~1633)가 준 《치력연기》 1권이 포함되어 있었다(《國朝寶鑑》 卷35, 仁祖朝 2 ; 《增補文獻備考》 卷1, 象緯考 1, 曆象沿革 ; 《增補文獻備考》 卷174, 交聘考 4, 本朝中國交聘 ; 《增補文獻備考》 卷 242, 禮文考 1, 歷代書籍). 당시 정두원은 역관 이영후(李榮後)로 하여금 서양의 천문 역법을 습득하도록 하였는데, 이영후는 《직방외기》(職方外紀) · 《치력연기》 등의 서적을 읽고 서양의 천문 역산학에 대해 로드리게스와 서신 왕래를 통해 토론하였다(與西洋國陸掌教若漢書). 《雜同異》 ; 〈西洋國陸若漢答李榮後書〉, 《雜同異》 22冊). 한편 이익(李瀷, 1681~1763)은 《성호사설》(星湖催說)에서 로드리게스와 정두원의 교류를 소개하면서 당시 조선에 전래된 물품의 종류를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치력연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星湖体說》 卷4, 萬物門, 陸若漢).
《치력연기》는 당시 명나라에서 진행된 개력 사업이 서양의 우수한 천문 역법을 근거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역사적 기록을 통해 서술하고 있으므로, 이를 접한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서양 과학의 우수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헌력(時憲曆)으로 대표되는 서양 천문 역산학에 대한 일부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는 이에 힘입은 바 크다 하겠다. 이러한 서양과학의 우수성에 대한 인식은 서학서(西學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낳아 서양의 종교인 천주교가 수용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현재 규장각에는 편자 미상으로 되어 있는 9책의 《치력연기》(奎12625)와 8책의 중국본 《치력연기》(奎 중3488)가 소장되어 있다. (→ 남인과 천주교 ; 서광계 ; 서학 사상 ; 《숭정역서》 ; 한역서학서)
※ 참고문헌 新法算書》 卷1~8(《文淵閣 四庫全書》 788flt, 臺灣商務印書館, 1983)/ 徐宗澤, 《明清間耶蘇會士譯著提要〉, 中華書局, 1949/ 藪內清, 《中國の天文曆法》, 平凡社, 1969. 〔具萬玉〕
《치력연기》
治曆緣起
글자 크기
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