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릴로, 알렉산드리아의 (380 ~444)

Cyrillus Alexandr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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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412~444). 신학자. 교회 학자. 네스토리우스(Nestonius, 381~451)를 반대한 그리스 교부. 축일은 6월 27일이지만, 동방 교회에서는 6월 9일에 기념한다.
〔생애와 활동] 주교직 활동 : 치릴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성장, 교육받았다. 403년에 삼촌인 알렉산드리아의 테오필로(Theophilus Alexandrinus, 345?~412)를 따라 콘스탄티노플에 가서 요한 그리소스토모(Johannes Chrisostomus, 344/354?~407)를 단죄한 궤르치아(Quercia) 주교 회의에 참석하였으며, 417년까지는 테오필로의 노선에 따라 요한 그리소스토모를 반대하였다. 테오필로가 412년 10월 15일에 세상을 떠나자 치릴로는 사흘 후에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테오필로보다 더 뛰어난 신학적인 역량을 갖춘 인물이었지만, 교회 권력 다툼에서 삼촌 못지않은 야심을 불태웠고 교회 정치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들이 신자들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자, 그는 유대인들을 추방하는 일에 관여하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반란이 계속 일어나자, 직접 책임질 사안은 아니었지만 세속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스토리우스주의 : 치릴로는 신학적으로 주로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Athanasius Alexandrinus, 295?~373)의 노선을 따르면서, 초기에는 아타나시오의 방식대로 아리우스주의에 대항하였다. 그리고 자세한 은유적인 설명으로 구약성서와 요한 복음서를 주해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생애 후반기는 그리스도론의 정립을 위해 노력한 시기였으며, 안티오키아 학파의 영향으로 그리스도 안의 인성과 신성을 지나치게 구별하여 성모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 (Thoeotoos)이라고 부르는 것을 반대하였던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에게 대항하였다. 이것이 발전하여 신학 논쟁이 되었으며,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의 차이점 및 알렉산드리아 주교좌와 콘스탄티노플 주교좌 간의 불목과 투쟁으로 결부되었다. 또한 이 문제는 콘스탄티노플이 이집트인들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었다.
치릴로는 429년에 발표한 부활절 서간에서 예수는 참하느님이며 참 사람이므로, 예수의 모친 마리아를 '천주의 모친' 으로 믿고 부르는 교회의 전통은 정당하다고 강력하게 옹호하였다. 또한 교황 철레스티노 1세(422~432)를 설득하여 430년 8월에 로마 주교 회의를 열어 네스토리우스를 단죄하도록 하였으며, 자신도 그해 11월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주교 회의를 열어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을 배척하였다. 그리고 이 두 결정문을 네스토리우스에게 12개 조목의 그릇된 신앙을 단죄하는 파문문과 함께 보내면서, 그가 이에 승복하고 서명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 내용은 임마누엘인 주님이 참 하느님임을 믿지 않는 사람과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가-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을 낳았으므로-하느님의 어머니임을 믿지 않는 사람을 단죄하고, 한 분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본질적으로 하나됨을 받아들이지 않고 단순히 외적으로만 결합된 것이라 주장하는 안티오키아 학파의 그리스도론을 단죄하는 것이었다.
에페소 공의회 : 이에 네스토리우스는 치릴로가 라오디체아의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 Laodicensis, 315?~392?)가 주장한 단성론적 이단을 따른다고 역공격을 하였다. 그리고 황제 테오도시오 2세(408~450)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공의회 소집을 요구하여 431년에 에페소공의회가 개최되었다. 이 공의회에서 치릴로는 교황의 특사 자격으로 의장직을 맡았고,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인 요한 1세(428-441/442)를 비롯한 안티오키아 학파 신학자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회의를 진행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에페소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세 번이나 회의 출석 요구를 거부하였던 네스토리우스는 결국 이 공의회에서 단죄되었고, 이 논쟁은 치릴로의 승리로 끝났다. 비록 이 교의 문제가 황제의 개입 등 정치성과도 많이 관련되어 있지만, 치릴로는 그리스도의 신인(神人) 양성(兩性)은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처럼 공존(共存), 내재(內在) 등 외면적 관계가 아닌 보다 근원적인 일치, 즉 본체적 내지 위격적 일치(unio hypostatica)라는 가르침을 통하여 그리스도론에 대한 교회의 정통 교리를 확립시키는 데 획기적인 공헌을 하였다.
치릴로는 안티오키아 학파와 433년에 화의하였다. 안티오키아 학파는 마리아께 '천주의 모친' 이라는 칭호를 인정하였고, 그리스도가 성부와 동일하며 인간 예수와 동일함을 인정하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인 요한에게 보낸 서간에는 이 두 가지 내용이 담긴 신앙 고백문이 담겨 있다. 이 양식이 451년 칼체돈 공의회의 교의 결정에 큰 역할을 하였는데, 즉 칼체돈 공의회의 교의 결정에는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과 치릴로가 네스토리우스에게 보낸 둘째 편지의 내용 및 교황 레오 1세(440~461)가 449년 6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에게 보낸 서간물인 <플라비아누스에게 보낸 교의 서한>(Epistola dogmatica ad Flavianum)의 내용이 함께 수록되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하느님과 "한 분이시며 같은 분"임을 강조한 치릴로의 가르침을 인정한 것이다.
[저술〕 : 치릴로의 폭넓은 저술 활동은 네스토리우스 논쟁 전후의 두 시기로 뚜렷이 구분된다. 치칠로는 논쟁 이전에는 성서 주석과 아리우스주의를 논박하는 데 전념하였는데, 성서 주석서 가운데 모세 오경에 관한 《영과 진리로 드리는 흠숭과 공경》(De adoratione et cultu in spiritu et veritate) 《구약 오경의 우아함》(Glaphyra in Pen-tateuchum)과, 열두 소예언서 및 요한 복음 주해서가 남아 있다. 그 외에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관한 수많은 단편이 성서 주해서 선집에 남아 있다. 치릴로는 성서 주해서에서 인간의 말로 하느님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항상 부족함을 고백하였고, 모든 주해는 그리스도의 육화와 인간 구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로 인해 그의 주석서는 시간 전례의 독서의 기도에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하깨서 주해》(성무 일도서 4권, pp. 359~360), 《로마서 주해》(성무 일도서 2권, pp. 766~768), 《고린토 후서 주해》(성무 일도서 2권, pp. 830~832), 《요한 복음 주해》(성무 일도서 1권, pp. 579~581 2권, pp. 706~707 ; 2권, pp. 792~793 ; 2권, pp. 846~848 2권, pp. 936~938)가 유명하다. 그의 모든 저술은 올바른 신앙을 보호하고 전파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네스토리우스 논쟁과 관련하여 치릴로는 교의 서간 외에 430년 네스토리우스의 그리스도론을 상세히 반박하는 《네스토리우스를 논박하는 5권의 책》(Libri V contra Nestorium)을 저술하였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작품들이 그의 왕성한 저술 활동을 증명해 주고 있다. (→ 교회 학자 ; 네스토리우스주의 ; 아폴리나리우스, 라오디체아의 ; 안티오키아 학파 ; 에페소 공의회 ; 테오필로, 알렉산드리아의)
※ 참고문헌  F.L. Cross · E.A. Livingstone ed., 《ODCC》, 19973, pp. 443~4441 G. Jouassard, 《RAC》 Ⅲ, pp. 499~516/ G. Münch-Labacher, Lexikon der antiken christlichen Literatur, hrsg. von S. Döpp · W. Geerlings, Herder, 2002³, pp. 174~178/ A. Spindeler, 《LThK²》 VI, pp. 706~709/ H.J. Vogt, 《LThK³》 II, pp. 1368~1370/ B. Altaner · A. Stuiber, Patrologie, Leben, Schriften und Lehre der Kirchenviter, Herder, 19938, pp. 283~288, 606/ 0. Bardenhewer, Geschichte der Altkirchlichen Literatur IV, 1962, pp. 23~78/ E.R. Hardy, 《TRE》 VIII, pp. 254~260/ J. Quasten, Patrology III, 19884, pp. 116~142/ H.R. Drobner, Lehrbuch der Patrologie(하성수 역, 《교부학》, 분도출판사, 2001, pp. 581 ~594). 〔張仁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