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의 화가. 이탈리아에서 비잔틴 양식의 최후를 장식한 거장. 모자이크 제작자. 본명은 천니 디 페피(Cenni di Pepi) 또는 벤치비에니 디 페포(Bencivieni di Pepo) .
[생애 및 활동] 미술사에서 본명보다 '치마부에' 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이 화가의 본명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사를 집필한 바사리(G. Vasari, 1511~1574)는 그의 이름을 조반니 치마부에(Giovanni Cimabue)로 쓰고 있다. 그런데 치마부에라는 별명은 '황소의 머리' 혹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는 사람' 이라는 의미이다. 단테(A. Dante, 1265~1321)가 《신곡》(La Divina Commedia)에서 그를 연옥에 있는 거만한 사람들 중 하나로 묘사하면서 "치마부에는 재능은 팩 뛰어났지만 너무 거만하여 누가 만일 자신의 결점을 지적하거나 자신이 그 결점을 깨닫게 되면 거침없이 거절하거나, 아무리 중요한 작품이라도 파괴해 버리곤 하였다" 라고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거침없고 오만한 그의 성격을 빗대어 붙여진 별명으로 여겨진다.
바사리의 전기에 의하면, 치마부에는 1240년 피렌체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영리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 성당의 수도원 학교에 보내어 문법 공부를 시켰다. 그러나 그는 문법 공부보다 사람, 말, 집 등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을 책과 종이에 쉴새없이 그렸다고 한다. 또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옆에 있는 곤디(Gondi) 경당의 지붕과 담을 수리하고 장식하기 위해 비잔틴에서 온 예술가들의 작업을 하루 종일 지켜보며 공부에는 게으름을 피웠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적성이 미술에 있음을 깨닫고 비잔틴에서 온 화가들과 함께 일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들에게서 화가로서의 첫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치마부에의 작품에는 비잔틴 예술의 영향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비잔틴 화가들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화법을 폭넓게 개량하여 이탈리아 회화를 새로운 단계로 진입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1273년 이전의 초기, 아시시와 피렌체에서 활동한 1270년대 후반~1280년대 중반, 1301~1302년의 후기 등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최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것은 아레초(Arezzo)의 산 도메니코(San Domenico) 성당에 있는 거대한 규모의 <십자가 처형>이다. 1288~1290년 동안에는 아시시(Assisi)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프레스코화를 카발리니(P. Cavallini, 1250?~1330?)와 조토(Giotto di Bondone, 1267~1337) 등과 나누어 제작하였다. 피렌체로 돌아온 치마부에는 피렌체의 교회를 위해 두 점의 패널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즉 현재 우피치(Uffizi) 미술관에 있는 <성모자>와 산타 크로체(Santa Croce) 성당의 <십자가 처형>이다. 또한 1301~1302년에는 피사 주교좌 성당의 모자이크 <복음사가 성요한>을 제작하였는데, 이 모자이크에는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제작 연대가 적혀 있다. 산타 키아라(Santa Chiara) 병원의 제단화를 루카에서 온 누쿨루스(Nu-chulus)와 함께 주문받았던 그는, 1302년 7월 피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주요 작품〕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프레스코화 : 치마부에는 1288~1290년에 이 성당의 상부 성당(Upper Church) 익랑(翼廊, transept)을 주로 장식하였다. 이 작품은 조토 이전, 르네상스 이전 회화 중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인 동시에 치마부에의 예술적 표현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수세기를 거치면서 이 프레스코화는 많은 손상을 입어 현재는 대충의 윤곽과 기하학적인 장식만을 알아볼 수 있다. 성가대석(Chor)에는 성모의 죽음과 승천 그리고 대관식을 다룬 이야기가 있으며, 익랑의 중앙 천장에는 <4명의 복음사가>가 묘사되어 있는데 이 작품이 이곳에 남아 있는 프레스코화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 황금빛의 배경은 마치 모자이크를 연상시키며, 사도 요한은 아시아, 루가는 그리스, 마태오는 유대, 마르코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삼은 도시 풍경 속에 각각 배치시켰다. 북측 익랑에는 요한 묵시록의 내용과 <십자가 처형>이, 남측 익랑에는 복음 사가들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북측 익랑의 <묵시록의 그리스도>는 동시대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 도상과 매우 유사하게 보여, 처음에는 최후의 심판으로 오인되기도 하였다. 한편 하부 성당(Lower Church)의 남쪽 익랑에 프레스코로 그려진 <성 프란치스코와 네 천사와 함께 있는 옥좌의 성모자>는 19세기에 보수되었는데, 그 제작 연대를 두고 논란이 많으나 양식적인 면을 고려할 때 일반적으로 상부 성당의 것보다 후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패널화 : 치마부에의 최초 작품인 아레초 산 도메니코 성당의 <십자가 처형>의 형태는 준타 피사노(Giunta Pisa-no, ?~1260?)의 영향으로 여겨지며, 십자가 맨 위의 톤도(Tondo)에 그린 복을 주는 그리스도상은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치마부에는 십자가 형태의 패널 중앙에 그리스도를 그리고 좌우 양팔 부분에 성모와 사도 요한이 슬픔에 잠긴 모습을 반신상으로 그렸는데, 인간적인 감정이 잘 묻어나 있다. 인체 표현 양식은 그가 교육받은 비잔틴의 영향이 농후하며, 선적인 인체 표현은 형태를 선으로 인식한 로마네스크 회화의 영향이 묻어난 것이다. 이 작품에서 휘어지는 듯한 그리스도의 조형적인 인체 표현과 황금색으로 표현된 규격화된 주름이 있는 로인클로스(loincloth)는 상당한 입체감을 나타낸다. 그리고 세 인물의 얼굴에서 묻어나는 감정의 무게는 주목할 만한 표현이다. 작품의 제작 연대는 1260년대로 추정된다. 또한 그는 1287~1288년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을 위해 <십자가 처형>을 제작하였는데, 인체를 표현한 형식적인 면에서는 아레초의 것보다 자연스럽고 세련된 사실주의 경향을 띠며 인물의 감정 표현도 완곡해졌다.
현재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385 X 223cm의 거대한 <성모자> 패널화는 원래 피렌체의 산타 트리니타(Santa Tri-nita) 성당의 주 제단화였으며, 1993년에 복원되었다. 도상적으로 마에스타(Maesta)라고 불리는 이 주제는 하늘의 여왕으로서 성모가 옥좌에 앉아 있는 것으로 중세에 흔히 볼 수 있었다. 천사에 둘러싸여 옥좌에 앉아 있는 성모자 아래에 있는 구약성서의 네 인물-왼쪽부터 예레미야, 아브라함, 다윗, 이사야-은 그리스도 왕국을 상징한다. 이 <성모자> 패널화는 두초(Duccio di Buo-ninsegna, 1255~1318)의 <루철라이의 성모>(Rucellai Ma-donna, 1285)와 구성상 매우 유사하며, 여전히 비잔틴 전통의 특징을 드러낸다. 그러나 고개를 위로 한 화면 하단 가장자리의 두 예언자, 얼굴이 살짝 측면의 형태로 그려진 천사들, 포개어 놓은 듯한 인물과 옥좌 하단의 오목한 공간 표현은 화면에 깊이감을 준다. 특히 건축적으로 표현한 옥좌는 공간 구조를 탄탄하게 하며 3차원적 효과를 만드는 반면, 화면의 가장자리를 압축해 놓은 듯 보이게 하면서 두 인물을 받쳐 준다. 이 작품은 생동감과 연극적인 인물 표현에 능숙한 치마부에의 특징을 보여 주는 대표작이다.
〔평 가] 치마부에는 비잔틴 양식에 치우쳤던 14세기 이탈리아 회화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은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또한 당대 최고 화가의 자리에 있었던 그는, 우연히 양치기였던 조토의 재능을 발견하여 화가의 길로 이끌었다. 그러나 역사 속의 그는 제자 조토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치마부에가 없었다면 조토의 회화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생기 있는 인물 묘사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 방법은 중세 회화에서 벗어나 조토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두 세대 이후에 나타날 새로운 '재생' (Renaissance)의 전조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 가톨릭 미술 ; 두초, 부오닌세냐의 ; 조토 디 본도네)
※ 참고문헌 조르조 바사리, 이근배 역,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탐구당, 1986/ Alfred Nicholson, Cimabue : a critical study, Princeton, 1932/ Frederick Hartt, History of Italian Renaissance art : painting, sculpture, architecture, Englewood Cliffs, Prentice-Hall, 1979. 〔鄭恩賑〕
치마부에
Cimabue(1240~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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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성모자>(우피치 미술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