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회 성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프리돌린. 세례명은 아돌프(Adolf) . 한국명은 민덕기(閔德基) .
치머만은 1900년 2월 12일 스위스 프리부르(Fribourg) 대교구의 쇤아우(Schönau)에서 태어나, 독일 프라이부르크임브라이스가우(Freiburg im Breis-gau) 교구 소신학생으로 프리드리히 김나지움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고 1920년 10월 7일 유기 서약을 한 뒤, 1925년 3월 29일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링크(Maxi-milan von Lingg) 주교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빈(Wien)의 성 가브리엘 수도원에 머물면서 빈 대학교에서 민속학(Ethnologie)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자신의 학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수도원의 선교 박물관을 훌륭하게 구성하였다.
1931년 9월 8일 한국으로 파견을 받고, 11월 5일 덕원 수도원에 도착하여 곧 조선어 문법 공부를 하면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였다. 그리고 1933년 회령 본당의 그라프(O. Graf, 金大振) 신부 밑에서 보좌 신부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5년 말에는 일본으로 어학 연수를 떠나 1936년 10월에 돌아온 후, 11월 신설 공업 도시로 발전하고 있던 웅기 · 나진 본당 주임 신부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이곳에 상주할 수 없게 되어 나남(羅南, 함경북도 부령군 나남읍)에 본당을 세운 다음, 나남 본당 주임으로 있으면서 응기 나진 본당 신자들까지 사목하였다. 1939년에는 회령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었고, 1941년 회령에서 8km 떨어진 계림 준본당으로 옮겨 사목하다가 그곳에서 1946년 6월 26일 선종하였다.
그는 순수 사목적 봉사와 학문적인 능력을 접목시키려고 노력하며, 열성적으로 민속품 수집과 한국 고대사 연구에 정열을 쏟았다. 당시 덕원 수도원에 속한 베네딕도회 수도자들 중 본당 사목을 하는 사제들은 수도원에서 월례 모임을 가졌는데, 그 모임에서 치머만 신부는 '조선 민족의 유래' 와 '그리스도 이전까지의 조선 민족의 역사' 등을 주제로 강의하였다. (→ 나남 본당 ; 웅기 · 나진 본당 ; 회령 본당)
※ 참고문헌 D. Drexl OSB, Necrologium congregationis Ottiliensis 1888~2000, St. Ottilien/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함경도 천주교회사 자료집 제2집》,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1/ Todesanzeige von Abtei St. Ottilien, 1946/ Schematismus Monachorum Et Fratrum Congregationis Ottiliensis O.S.B. 1933~1946/ 이정순 엮음, 《원산 수녀원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1988. 〔宣智勳〕
치머만, 프리돌린
Zimmerman, Fidolin(190~19446)
글자 크기
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