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체의 손상된 심신이 정상적인 상태를 되찾는 현상.
〔개 념〕 치유는 질병 개념과 밀접한 상관성을 가지며, 질병 개념과 마찬가지로 역사와 문화권에 따라 각기 다른 내용을 지닌다. 한 예로 현대 서양 의학의 경우,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특정한 병리학적 요인에 의해 진행되는 생물학적 또는 정신 의학적 부조화 상태를 질병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 병리학적 요인을 규명하여 제거하면 본래의 심신 상태를 회복할 수 있다는 치료 개념이 치유 개념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개념의 밑바탕에는 사람이 자연과 주위 환경을 적절하게 통제 · 조정할 수 있다는 근대의 자연 과학적 세계관이 깔려 있다.
반면 근대 이전의 시대에는(어느 부분만큼은 동양 의학에서도) 질병을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즉 어느 특정한 요인을 찾기보다 한 사람의 몸과 정신과 영혼이 관계하는 일체의 세계, 생물학적 · 사회적 · 자연적 환경과 더불어 초월적 세계까지 연관된 복잡한 관계에서 조화가 깨져 생긴 이상 상태를 질병으로 보았다. 그래서 질병의 치유도 치료를 넘어, 관계된 세계의 회복이라는 포괄적 의미를 지녔다. 여기에는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 의미가 포함된다.
한편 1946년에 제정된 세계보건기구(WHO)의 헌장에 따르면, "건강이란 완전한 육체적 · 정신적 · 사회적 복지의 상태이며, 단순히 질병 또는 병약이 없는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이 기구는 1998년 건강의 정의에 '영적 건강' 까지 추가하였다. 따라서 건강은 매우 포괄적이며 전인적인 개념으로 확장되었고, 건강을 되찾는 치유 개념 역시 상당히 넓어졌다. 이런 의미의 치유는 몸의 치료를 넘어 전인적인 회복을 뜻하는 성서 및 고대 세계의 치유 개념과 한층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개념의 변화는 결국 인간관의 변화에서 기인하였다고 볼 수 있다.
〔구약성서에서의 의미〕 구약성서에서 치유를 뜻하는 단어는 "라파" (רַפֵּא : 창세 20, 17 등), "아루카" (אֲרֻכָה : 예레 8, 22), "마르페" (מַרְפֵּא : 예레 8, 15), "할람" (חָלַם : 욥기 39, 4) 등이다. 이 단어들은 대부분 '병을 고치다, 회복시키다, 건강하게 하다, 새살이 돋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치유관 역시 고대 세계의 일반적인 치유 개념과 같은 바탕에서 출발한다. 즉 인간의 건강과 질병을 포함한 행복과 불행은 초자연적인 신적 존재에 달려 있고, 그들만이 이상 상태를 온전하게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근동에서는 이집트의 사라피스(Sarapis, 태양신)나 고대 그리스의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 의술의 신)처럼 치유를 맡은 특정한 신을 찾아가 제사를 올리거나, 주술사에게 신과 화해하는 특별한 의례를 부탁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야훼 하느님만을 유일한 신으로 여긴 고유 신앙에 따라, 하느님만을 질병의 원인이자 치유자로 받아들였다. "나는 너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 (출애 15, 26 ; 참조 : 2열왕 5, 7 ; 에제 34, 16).
하느님은 선하기에 창조 질서를 흩뜨리지 않으며, 당신 모습대로 창조한 인간의 온갖 질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생명의 주님이라고 이스라엘인들은 믿었다. 따라서 하느님만을 섬기고 그분께 충성을 다하는 것,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는 것이 건강해지고 치유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기고 악을 멀리하여라. 그리하면 네 몸이 튼튼해지리라"(잠언 3, 8 ; 참조 : 신명 32, 39 : 욥기 5, 18 : 시편 30, 2 ; 41, 4 : 103, 3 ; 107, 20; 147, 3). 주변 세계처럼 치유를 위해 마술과 주술을 사용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레위 19, 26-28 ; 신명 18, 10-14 ; 에제 13, 17-18). 이스라엘에서 치유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일이므로 정화 및 제의 행위와 밀접한 상관성을 가졌다. 사제는 치유받은 병자의 부정을 벗기고 속죄 제물을 봉헌함으로써 치유를 공식적으로 밝혔다(레위 14-15장). 그런 뒤에야 병자는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온전한 이로서 공동체에 정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구약성서에서 직접 치유를 언급한 여덟 군데 대목 중 아비멜렉의 치유(창세 20, 17), 미리암의 문둥병 치유(민수 12, 10-15), 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의 상처 치유(민수 21, 9), 욥의 치유(읍기 42, 12-17), 히즈키야 왕의 치유(이사 38, 9) 등이 하느님이 직접, 또는 본인이나 중재자의 간구를 들어 치유해 준 경우이다. 그 외 사라와 한나 같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출산하게 된 것도 하느님의 치유로 볼 수 있으며(창세 21, 2 : 25, 21 ; 판관 13, 3. 24 : 1사무 1, 19-20), 천사 라파엘의 조언에 따라 토비트의 눈병이 치유된 것도 하느님이 베푼 치유의 일종이다(토비 11장).
하느님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예언자들도 특별히 하느님의 치유 권능을 부여받은 대리자로서 병을 치유해 줄 수 있다고 믿어졌다. 사렙다 과부의 아들을 치유한 엘리야(1열왕 17, 17-24)와 수넴 여인의 아들을 되살리고(2열왕 4, 18-37), 시리아 장군 나아만의 문둥병을 낫게 한(2열왕 5, 1-14) 엘리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예외적인 특별 사례였다.
물론 이 외에도 유향(예레 8, 22), 우슬초(시편 51, 7 : 류머티즘 통증 치료제), 아카시아 나무(이사 41, 19 ; 출애 25, 5 ; 27, 1 : 거담제) 등을 치료 보조제로 쓰는 민간 의사가 있었으리라 추정되지만, 구약성서에서 그들의 활동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또 부정적이다(2역대 16, 12 ; 예레 8, 22-9, 6 ; 욥기 13, 4). 예언자 외에 의사가 하느님의 치유 대리자로 활동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 때는 헬레니즘 시대 이후이다. 이 시대에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학파 등이 발달시킨 의술과 의약품이 동방으로 전해졌다. 기원전 2세기에는 이러한 경향을 이스라엘의 고유 신앙에 따라 해석하여, 하느님이 의사와 약제사에게 치유의 힘을 주었다고 풀이하였다(집회 38, 6-7. 12-15). 그러나 인간의 치유 여부는 최종적으로 하느님의 소관이기 때문에, 기도와 회개, 정화, 제물 봉헌 같은 하느님께 치유를 비는 전통적인 수단들이 동반될 때에야 비로소 치유가 가능하다고 보았다(집회 38, 9-11). 결국 구약성서에는 의사나 약제사 같은 인간 치유자의 자리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의 의미〕 신약성서의 세계는 전통적인 이스라엘의 종교 세계에 헬레니즘의 뒤를 이은 그리스-로마 문화권이 덧입혀진 복합 문화권이었다. 인간 의사와 의약품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좀 더 커지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치유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았다(마르 5, 26). 신약성서에서 치유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테라페이아' (θεραπεἰα) , '이아마' (ἰαμα), '이아시스 (ἰασις) 등은 모두 육체적 치료를 넘어 영적 치유와 구원까지 뜻한다. 신약성서에서 악령 들린 현상을 질병의 하나로 간주한 것 역시 인간의 온전성을 회복하는 것을 치유로 보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치유는 예수의 치유 행위이다. 네 복음서에는 예수의 치유 행위가 72회 소개되어 있으며, 그 분량은 복음서 전체의 약 5분의 1에 해당되는 727절에 이른다. 예수가 치유한 질병에는 마르코 복음서의 열병(1, 29-31), 문둥병(1, 40-45), 중풍(2, 1-12), 오그라든 손(3, 1-6), 출혈(5, 25-34), 간질(9, 18), 시력과 청각 장애(7, 31-37 : 8, 22-26 : 10, 46-52) 등 각종 육체적 · 정신적 · 심리적 질병이 모두 포함된다. 나아가 예수는 온갖 악령에 짓눌려 자기를 잃어버린 이들에게서 악령을 추방하고(마르 5, 13), 심지어 죽은 이까지 되살린다(루가 7, 15 ; 요한 11, 44). 당대의 치유자들과 달리, 예수는 자신의 활동 중에서 치유를 중시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어떠한 간구 없이 직접 치유의 힘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안식일 율법을 주저 없이 깨트릴 만큼(마르 3, 5) 고통과 소외로 시달리는 병자들에 대해 큰 연민을 지녔던 예수는 어떤 특별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말씀과 직접적인 몸의 접촉을 통해 구원하는 하느님의 손길을 보여 주어 치유하였다. 또 당대의 통념에 따라 죄를 용서함으로써 치유하기도 하였다(마르 3, 2 : 요한 5, 14). 예수의 치유 행위는 단순한 질병의 치료를 넘어 그들의 온전성을 회복시켜 주는 진정한 치유였으며, 지금 이 땅에 예수를 통해 성령이 현존하고 하느님의 나라가 와 있음을 보여 주는 뚜렷한 표지였다. 또한 예수가 하느님의 영으로 가득 차 병과 고통을 초래하는 악령 및 그에 부수된 모든 세력을 꺾어 없애는 권위 있는 치유자요(마르 2. 17),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임(마태 11, 5)을 알리는 강력한 표징이기도 하였다. 예수의 치유는 단지 육체의 병을 낫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병자가 죄악에서 해방되어 하느님과 생생한 관계를 맺으며 구원의 삶을 살아가도록 이끄는 데 목표를 두었다.
예수는 자신이 뽑은 제자들에게도 질병을 고치고 악령을 쫓아낼 수 있는 권능을 부여하였다(마태 10, 8 ; 마르 7, 13 ; 루가 9, 1). 그리하여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처럼 사도들(사도 2, 43 ; 5, 12)과 베드로(사도 3, 7), 스테파노(사도 6, 8), 바오로(사도 14, 3 ; 15, 12 ; 28, 8) 등은 예수의 약속(마르 16, 17-18)에 따라 부여받은 치유의 능력을 행사하였다. 이 일 역시 하느님의 영이 그들을 통해 계속 현존하며 활동하고 계심을 드러내는 표지였다.
〔교회의 가르침〕 그리스도교는 본래 "보시니 참 좋게"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온전한 단일체로 만드신 하느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믿는다(창세 1, 1-2, 7). 또한 이를 거스르는 온갖 형태의 질병과 무능력은 근본적으로 죄에서 기인하며, 하느님의 사랑에 어긋난다고 고백한다(이냐시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7, 2). 이에 따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뒤를 이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지닌다. 이는 곧 온갖 질병으로 드러나는 창조 세계의 부조화를 치유하는 중재자가 되는 것이며,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는 부활한 그리스도의 권능이 지금 여기에서 활동하고 계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와 활동에서 치유는 중요한 몫을 차지해 왔다.
초기부터 교회는 병자와 임종자를 위해 기도하고 기름을 바르도록 하였다(야고 5, 14-15). 이는 기름 부음이 "깨지고 상처난 곳을 낫게 하므로 치유를 상징하고, 아름다움과 건강과 힘이 넘치게"(《가톨릭 교회 교리서》 1293항)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체를 날라다 줌으로써 치유를 도왔다. 성령의 선물인 치유의 은사(1고린 12, 9. 28. 30)는 하느님이 택한 이들을 통해 오늘날까지 꾸준히 작용하고 있다.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존중하며 이들을 방문하고 돌보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로 간주되었다(마태 25, 31-46) "우리 영혼과 육체의 의사이시며, 중풍 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육체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성령의 힘으로 그 치유와 구원 활동을, 당신의 지체까지도 대상으로 하여 계속해 주기를 바라셨다. 이것이 치유의 두 가지 성사, 곧 고해성사와 병자성사의 목적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421항). 이에 따라 교회는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통해 고통받는 이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도록,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병에서 벗어나 육체적 · 정신적으로 온전히 치유될 수 있도록 도와 왔다. 나아가 일찍부터 병원을 짓고 호스피스 활동을 전개하는 등 그 어느 사회 조직보다 월등하게 치유에 대한 일을 중시하였다.
오늘날에도 다양하게 전개되는 교회의 활발한 치유 활동은 한낱 의료 사업이 아니라, 인간을 온전케 해 주고 구원해 주는 하느님의 사랑과 그 나라에 대한 선포이자 증거이다. 따라서 교회는 단순히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차원을 넘어, 한층 심오한 구원을 치유의 목표로 지향하며 진정한 치유가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안락사나 수명 연장에 따른 노쇠 문제처럼 현대 의료 기술의 발달로 야기되는 새로운 문제들, 환경 오염과 낮은 소득으로 인한 저개발국과 저소득층의 질병(AIDS 등), 무리한 다이어트 등 육체와 육체적 건강에 대한 과도한 집착 같은 허다한 문제들이 여전히 교회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본연의 치유, 즉 모든 이가 삶의 의미와 목표를 찾고 전인적으로 온전히 건강해지는 데 한층 관심을 갖는 한편, 온갖 형태의 질병에 시달리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치유의 손길을 뻗었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야 할 것이다. (← 기적 ; 나병 ; 질병)
※ 참고문헌 《CPOB》, PP. 413~422/ H.C. Kee, Medicine and Healing, 《ABD》4, Pp. 659~664/ M.T. 켈시, 배상길 역, 《치유와 기독교》, 대한기독교서회, 1986/ H. Avalos, Health Care and the Rise of Christionity, Peabody, 1999/ R.A. Hahn, Sickmess and Healings : An Anthropological Perspective, New Haven and London, 1995/ H. Remus, Jesus as Healer, Cambridge Univ. Press, 1997. 〔李鎔結〕
치유
治癒
〔히〕מַרפֵּ · 〔그〕ïαμα · 〔라〕sanatio · 〔영〕hea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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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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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