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서

勅書

[라]bulla · [영]b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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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임명을 알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의 칙서.

김수환 추기경의 임명을 알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의 칙서.

가장 장엄한 격식을 갖춘 교황 문서.
〔유 래〕 칙서란 일반적으로 왕이나 황제가 훈계하거나 알리는 일을 적은 글이다. 라틴어의 '불라' (bulla)라는 이름은 교황 문서를 원형의 납으로 봉인한 데서 유래하였다. 금속 봉인은 마모가 쉬운 밀초의 밀랍(蜜蠟) 봉인을 좀 더 오래 보존하기 위한 대체 방법으로서 주요 문서를 보증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기원은 동로마 제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6세기부터 교황청 상서원에서 사용되었다. 후에 유럽의 황실에서도 납봉인 대신 금이나 은을 사용한 봉랍(封蠟)을 주요 문서에 사용하였다. 12세기부터 비단이나 삼으로 짠 끈이 문서를 하나로 묶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 끈들은 봉랍 안에 묻혀 봉인되었다. 봉인의 앞면에는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모상이 약자(베드로 사도는 S. PE, 바오로 사도는 S.PS)와 함께, 뒷면에는 해당 교황의 서명이 부각되어 있다. 10세기 말까지 칙서는 파피루스에 쓰여졌으나, 11세기부터는 양피지나 기름 종이에 쓰여졌다. 교황 칙서에 사용되는 언어는 라틴어이고, 12세기 이후 고딕 서체가 사용되다가 교황 레오1 3세(1878~1903) 이후 근대 라틴어 서체가 사용되었다.
〔구 분〕 납봉인의 형식을 갖춘 문서들이 '불라' 라고 불리게 된 것은 대략 13세기부터이다. 교황청 상서원에서 공식 명칭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철인으로 찍힌 모든 문서들은 '불라' 라고 불렀다. 중세부터 여러 가지 교황 문서들이 사안의 중요성 및 문서의 형식과 봉인의 형태에 따라 대칙서(bullae majores)와 소칙서(bullae minores)의 두 가지 형식으로 구별되었다. 대칙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을 다룬 문서의 장엄한 형식으로 후에는 특전(Pivilegia)이라고도 불렸는데, 기간의 제한이 없는 특권의 수여 혹은 확증에 관한 것이 그 대부분이다. 이 대칙서는 장엄한 전문(前文)과 '안녕히 계십시오' (Benevalete)라는 인사말로 끝나는 종결 부분에 이어 교황과 추기경들의 서명이 따랐다. 이런 칙서는 14세기에 대부분 사라졌다. 또한 초기에 소칙서라고도 불린 교서(litterae)는 다소 덜 중요한 문서들을 다루었다. 12세기 이후 이러한 소칙서는 은전을 허가하거나 규정을 공표하는 답서, 교령이나 법령을 포함하는 문서로 분류되었다. 1878년 이래 칙서를 위한 납봉은 장엄한 형식에만 사용되고 있다. 그 밖의 다른 칙서, 교서, 교황 문서는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얼굴을 에워싸는 교황의 이름이 새겨진 붉은색 스탬프가 사용된다. 대개 칙서는 교황청 상서원에서 작성되어 상서원 추기경과 해당 교황청 부서의 장관이 서명한다. 교황은 예컨대 시성 선포 등의 문제를 다룬 추기원 칙서(Bullae Consistoriales)에만 서명하는데, 1984년 5월 6일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도 이런 칙서에 의해 선포되었다. 이것은 가장 중대한 문제들을 다루는 추기경단 전체 회의의 의결 문서이다. (⇦ 대칙서 ; → 교황 문서)
※ 참고문헌  A.H. Skeabeck · L.E. Boyle, 2, 2003, Pp. 687~688. 〔宋悅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