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참 하느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상호 간의 친밀한 관계.
〔구약성서에서의 의미〕 구약성서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단어가 없다는 점에서 신약 세계와 구분된다. 히브리어 '하베르' (חָבֵר)가 여러 가지 목적을 갖고 다른 사람과 제휴하거나 우상과 관련을 맺는 것을 의미하지만, 하느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그리스어 '코이노니아' (κοινωνἰα)는 "담보물"을 뜻하기도 하고(레위 6, 2), 우상 숭배하는 자들의 “무리(동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고(이사 44, 11), 물질적인 "참여" 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지혜 8, 18). 집회서에서는 "식탁의 친교" 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하나(6, 10), 불법적인 행동에 참가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되며(41, 19), 약한 자나 부자와의 각별한 우정을 나타내기도 한다(집회 13, 1).
이스라엘의 예배는 하느님과 친교를 맺으려는 인간의 욕구를 반영한다. 이러한 욕구는 특히 평화의 제사에서 표현되는데, 이 제사에서 희생 제물의 일부는 봉헌자에게 주어지고 봉헌자는 그것을 먹음으로써 하느님의 식탁에 참여한다고 생각하였다. 많은 경우 이 제사는 "친교의 제사"(레위 3장)로 일컬어졌다. 구약성서에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거리가 놓여 있다.
〔신약성서에서의 의미〕 친교라는 의미를 지닌 '코이노니아 는 신약성서에 18번 사용되는데, 주로 바오로 서간과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요한의 첫째 편지 등에 나타난다. 이 단어는 친교(사검), 구제(나눔), 참여(동참), 일치, 완전한 상통 등 다양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는 문맥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리스도와의 사귐 :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통해 신앙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갈라 3, 26 4, 6) "하느님과 그의 아들 예수의 친교에 초대받았으며(1고린 1, 9), 나아가 "영의 친교" (성령에 의해 가능해지는 친교)에 초대받았다(갈라 4, 6 ; 2고린 13, 13 ; 필립 2, 1 ; 참조 : 요한 17, 26 : 1요한 1, 3). 이 친교는 믿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생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하나가 되는 어떤 신비적인 합일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친교에는 복음에의 참여(1고린 9, 23 ; 참조 : 필레 5절)와 믿음에의 참여가 수반된다(필레 6절).
주님의 만찬에서 맺는 친교는 그리스도와의 성사적 친교에 대한 표현으로서(1고린 10, 16-18), 찬양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와 맺는 친교이며, 빵은 그리스도의 몸과 맺는 친교를 의미한다(16절). 따라서 주님의 만찬을 나누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다(17절).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피해야 한다. 빵과 포도주를 받아먹음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얻은 용서의 축복이 수반된 내적인 친교에 그리스도와 동참하게 된다(18-22절). 자녀들은 피와 살을 나누었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과 사탄을 이기기 위하여 친히 참여한 공동 운명을 나누게 된다(히브 2, 14).
그리스도와의 친교는 그와 함께 살고, 고난받고, 죽으며, 유산을 받고,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친교의 두 가지 면이 있는데, 첫째는 그리스도의 겸손과의 친교이며, 둘째는 그의 승리와의 친교이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영광에도 참여하기를 바란다(필립 3, 10 ; 로마 8, 17 : 참조 : 1베드 4, 13 : 히브 3, 14).
성령과의 사귐 :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성령의 친교에 참여하게 되는데(2고린 13, 13), 영의 친교는 성령의 은사이기보다는 성령에 동참하여 성령을 받아 누림을 뜻한다(필립 2, 1 ; 참조 : 히브 6, 4). 이 성령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오신다.
하느님과의 사귐 : 요한의 첫째 편지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친교가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라고 말한다(1요한 1, 3. 6). 하느님과의 친교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를 닮게 되며(1요한 3, 2),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머물러 있음을 우리에게 준 영을 통해 알게 된다(1요한 3, 24 : 4, 13).
거룩한 것에의 참여에는 빛이 어둠과 사궐 수 없는 것처럼 배타적인 특징이 있다(2고린 6, 14). 이 세상에 빚어진 부패를 멀리한 다음 약속된 것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며(2베드 1, 4),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답게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에페 5, 11).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사귐 : 그리스도인들은 포도주 잔과 빵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와는 물론 서로 간에도 인격적 친교를 가지게 된다. "주님의 성찬"(성찬례)을 거행하는 그리스도교 신자 공동체는 합당하게 "그리스도의 몸" (1고린 12, 27)이라고 불린다.
그리스도와의 친교는 믿음과 봉사의 협력 안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2고린 8, 23 : 필레 17절). 서로의 고난에 참여한 후에 그들은 서로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며(필레 7절 : 필립 4, 14), 비록 그들이 고난을 당하지 않을 때라도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동료가 된다(히브 10, 33).
사도 행전에서 신자들의 생활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친교를 맺고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었다(사도 2, 42). 여기서 코이노니아는 교회 생활에서 세워지고 표현된 친교 단체임을 강조하며, 코이노니아로서의 공동체는 하느님의 은혜를 평등하게 나누는 신자들의 공동체이자 지상에서 계속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나눔 :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귀게 되면 자연히 가진 것을 나누어 갖게 마련이다(갈라 6, 6 : 1디모 6, 18 : 히브 13, 16). 사도 행전의 저자는 친교를 "공동으로 소유한다" (사도 2, 44 : 4, 32)라는 표현으로 풀어 설명하였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 2, 44).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친구로 보았기에 공동체 내의 궁핍한 이웃과 가진 것을 나누었다. 그래서 자선의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계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미덕인 우정의 개념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박해로 인해 가난해진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도록 요청하였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2장 9절에서 악수는 그리스도를 믿는 같은 믿음의 교제를 잘 표현한다.
바오로는 독창적으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헌금을 '코이노니아' 라고 불렀는데, 베푸는 이들과 받는 이들의 유대가 헌금의 목적임이 잘 드러난다(2고린 8, 4 ; 9, 13 ; 로마 15, 26). 이 모금에는 섬기는 일(2고린 8, 4)과 신실하고 준비된 나눔(2고린 9, 13) 가운데 존재하는 친교의 중요성이 있다. 또한 예루살렘 교회와 바오로, 바오로의 교회들과의 관계 등 공동체 관계의 상호성이 강조되고, 나눔의 의무에서 공동체 관계를 인식하였다. 그래서 바오로 서간에서의 '코이노니아' 는 (공동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고 어떤 몫을 서로 주고받는 데서 보이는 다양한 공동체 관계를 명시한다. 이러한 유대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각기 영적 은혜와 물질적 선물을 나누어 갖는 것으로 실현된다(로마 15, 27).
또한 선행과 나눔은 종종 동의어처럼 사용된다. "선행과 서로 나누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히브 13, 16). 구약의 예언자들도 형식적이고 물질적인 제사를 배격하고 선행과 나눔의 제사를 강조하였다(아모 5, 21-26 : 이사 1, 10-17).
〔교리에서의 가르침〕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그리스어 '코이노니아' 를 명시적으로 단 한 번만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라틴어 '콤무니오' (communio)를 사용하여 '친교' 또는 '일치' 를 설명하는데, 성서에서 언급되는 친교의 의미 외에도 여러 가지 의미의 친교를 언급한다.
죽은 이들과의 친교 : 교리서는 우선, 천상 교회와 지상 교회의 친교, 즉 죽은 이들과 이루는 친교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래서 교회를 신전(神戰) 교회(Ecclesia mili-tans), 단련(鍛鍊) 교회(Ecclesia purgans), 개선(凱旋) 교회(Ecclesia triumphans)로 구분하면서(954항), "나그네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인의 친교가 우리를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인도하는 것처럼 성인들과 이루는 통공도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켜 준다" (957항)라고 하였다. 나아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하는 것은 거룩하고 유익한 생각" 이기에 이를 통해 "그들을 도울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들의 전구를 효과 있게 할 수 있다" (958항)라고 명시하면서 죽은 이들과 이루는 친교에 대해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장례는 죽은 이와 이루는 효과적인 통공(친교)이며, 동시에 장례식에 모인 공동체가 그 통공(일치)에 참여하는 것이다(1684항). 또한 장례식이 성당에서 거행될 때 봉헌되는 미사에서 교회는 죽은 이와 이루는 친교와의 일치를 표현하며(1689항), 고별식은 죽은 이와 공동체 사이에 친교와 재회가 있음을 노래하는 것이다(1690항).
교계 제도에서의 친교 : 우선 신자들은 주교와 친교를 맺고 있다. 그래서 "거룩한 하느님 백성 전체는 목자들과 일치하여 꾸준히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친교를 맺으며,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항구히 전념한다" (84항). 이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견진성사의 예식을 끝맺는 평화의 인사이다. 이는 주교와 모든 신자들이 이루는 교회의 친교를 가리키고 표현한다(1301항).
또한 주교들은 교황과 친교를 이룬다. 이는 교회의 교도권, 즉 "하느님의 말씀을 권위 있게 해석하는 책무가 교황과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에게만 주어졌다" (85, 100항)라는 것을 통해서 확인된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 세상에 설립되고 조직된 사회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고 있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816항). 그러므로 교황에게, 또 교황과 하나가 되어 가르치는 사람들인 사도들의 후계자들에게 무류성이 있는 것이며(892항) "주교들의 권한은 교황의 지도 아래 온 교회의 친교 안에서 행사되어야" 하는 것이다(895항)
성사와의 친교 : 성사들은 교회 안에서 신앙의 일치와 친교를 표현하고 발전시킨다(1126항) 또한 "성사는 우리를 하느님과 결합시켜 주므로 모든 성사는 친교의 성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친교를 완성시키는 주된 성사는 성체성사이므로 친교의 성사라는 말은 성체성사에 더 적합하다" (950항). 그렇기에 주님의 몸을 모시는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또 그리스도인 사이에 친교가 이루어지도록 한다(790항) "성품성사와 혼인성사는 타인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이 성사들은 개인적인 구원에도 이바지하지만, 그것은 타인들에 대한 봉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1534항). 사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고 공동 생활을 하도록 한 것은 인간들이 서로 나누는 친교의 최초 형태였다(371~372, 383항). 그래서 인간의 성(性)은 "정서, 사랑하고 자녀를 출산하는 능력, 그리고 좀 더 일반적으로는 타인과 친교를 이루는 능력과 관련된다" (2332항). 또한 성품성사는 하느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려는 봉사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성사를 '친교에 봉사하는 성사 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범하는 "죄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모욕이고,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의 단절이며, 동시에 교회와 이루는 친교에 해를 끼친다"(1440항).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교회의 모든 지체, 누구보다도 우선 세례 후 대죄에 떨어져 세례로 받은 은총을 잃고 교회의 친교에 손상을 입힌 사람들을 위하여 고해성사를 세우셨다" (1446항). 이 성사를 통해 "죄인은 치유되고 교회와 이루는 친교를 회복하게 된다"(1448항) .
기도와의 친교 : "기도 생활이란 평소에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면전에서 지내는 것이며,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2565항). 그러므로 기도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생활이고, "골방에서 기도하더라도 기도는 언제나 교회의 기도이며 거룩하신 삼위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2655항). 결국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친교에 대한 열망은 교회 안에 참다운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징표"(2689항)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 성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룬다"(1799항). 특히 "우리' 아버지라고 하느님을 부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 계약과, 거룩하신 삼위와 이루는 친교,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온 세상 끝까지 퍼져 가는 하느님의 사랑을 상기하는 것이다" (2801항). 그래서 주님의 기도를 자주 하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의 여러 가지 방법 중 "관상 기도는 성삼위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모습인 인간을 '당신과 닮게' 하시는 친교" (2713항)이다. (⇦ 코이노니아 ; → 나눔)
※ 참고문헌 차동엽 · 홍승모 엮음, 《말씀의 네트워크》, 풀빛미디어, 2001, pp. 1287~1295/ D. Sesboue · J. Guillet , X. 레옹 뒤프르 엮음, 《성서 신학 사전》, 광주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03, pp. 972~9751 Hermann Ringeling, 《TRE》 12, PP. 346~355/ J. Hainz, 《EDNT》 2, pp. 303~305/ A Greek- 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4, pp. 439~440/ 《TDNT》 3, pp. 797~809/ 주교 회의 교리 교육위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3. 〔崔惠榮〕
친교
親交
〔히〕חֶבֶר · 〔그〕κοινωνἰα · 〔라〕koinonia, communio · 〔영〕communion
글자 크기
11권

주님의 만찬에서 맺는 친교는 성사적 친교의 표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