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진주시 칠암동 496-14 소재. 1965년 3월 1일 옥봉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관할 구역은 진주시 칠암동, 강남동 일부, 망경북동 일부 지역이다. 〔교세〕 1967년 1,111명, 1977년 1,742명, 1984년 2,814명, 1987년 3,173명, 1992년 3,922명, 1995년 4,117명, 1999년 2,695명, 2003년 2,557명. 〔역대 신부〕 초대 칼마리니(D. Calmarini, 강지홍) 도나토(1965. 3~1970. 4), 2대 필라(A. Pilla, 진우영) 안젤리코(1970. 4~1976. 12), 3대 백형기(白炯基) 레오(1976. 12~1979. 3), 4대 최정오(崔正午) 마리노(1979. 3~1980. 7) 5대 유수일(劉修一)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80. 7~1982. 4), 6대 우리아게레카(J.M. Uriagereka, 우영환) 요셉(1982. 4~1985. 5), 7대 권용희(權龍喜) 도미니코(1985. 5~1991. 2), 8대 박병윤(朴炳玩) 에벤시오(1991. 2~1994. 12), 9대 이병돌(李丙乭) 요셉(1994. 12~1997. 2), 10대 강효식(姜孝植) 야고보(1997. 2~2003. 2), 11대 이태성(李太成) 아우구스티노(2003. 2~현재).
〔공소 시대와 본당 설립〕 칠암동 본당이 설립되기까지는 프란치스코회의 선교에 대한 열성이 있었다. 진주를 중심으로 하여 남서부 경남 지역의 사목을 담당하게 된 프란치스코회는 1961년 진주시 칠암동 272번지의 대지(5,950.41㎡)를 매입하여 본당의 설정과 수도원의 설립을 계획하였다. 이 계획을 추진한 사람은 아르날디(S. Arnaldi, 정) 신부였는데, 그는 당시 거제에서 사목을 하고 있던 칼마리니 신부의 협조를 얻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계획의 책임은 이 지역의 관할 본당인 옥봉동 본당 7대 주임 주포니(C. Giupponi, 주부의) 신부에게 있었다. 1962년 목조 건물 한 채(165.28㎡, 현 유치원 건물)를 지어 임시 성당으로 삼았고, 뒤이어 수녀원(99.17㎡)을 지어 이탈리아의 쿠네오(Cuneo)에 본원을 둔 작은 자매 전교회(현 작은 자매 관상 선교회) 수녀를 초빙하였다. 1963년에는 지안티(G. Gianti, 기) 수녀가 건강 문제로 모국에 간 아르날디 신부를 대신하여 교회를 지키며 전교에 힘썼다. 1964년 봄 수도원(661.15㎡)을 2층 콘크리트 구조로 짓기 시작하였고, 그해 가을 완공 단계에 왔을 무렵 옥봉동 본당 8대 주임 최근성(베드로) 신부가 마무리 공사를 독려하였다. 그리하여 이듬해 봄인 1965년 3월 1일에 초대 주임으로 칼마리니 신부가 부임함으로써 칠암동 본당이 설정되었다.
〔사목 · 선교 활동〕 초대 주임 칼마리니 신부가 가장 먼저 이루어야 할 일은 성전 건립이었다. 이미 매입한 부지 위에 성전을 건립하기 위해 프란치스코회 한국 관구를 중심으로 한 여러 곳의 후원을 받아 성전 건립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966년 5월 18일 성당 신축 기공식이 수도원 준공 축복식과 겹쳐 개최되었고, 1966년 2월에 1 · 2층 전체 181평에 이르는 성전이 완공되었다. 또한 칠암 공동체의 신심을 한 차원 높인 첫 레지오 마리애인 '사도의 모후' 가 1968년 1월 11일에 출발하였다. 레지오 마리애 활동은 더욱 불어나 그 후 1972년에는 칠암 꾸리아가 설립되었다. 2대 주임 필라 신부는 사목 방침을 '평신도 조직의 강화를 통한 자율적인 신앙 공동체'로 삼고 사목회 재건을 시작하였는데, 사목회는 현재의 반조직으로 이어져 사목 활동에 일조를 기하고 있다. 또한 상을 당하였을 때 서로 돕는 문상계를 조직하여 상호 간에 서로 도우며 공동체 정신을 증진하였다. 교회의 활동을 사회로 확대시켜 1972년 8월부터는 야간 중학교를 열고 본당 대학생들이 교사 자원 봉사를 하였는데, 개교 당시는 2년 과정이었지만 1976년 3월부터 3년 과정으로 개편되었다. 또한 1976년 4월에는 '칠암유치원' 을 개원하여 지역 사회의 유아 교육에 이바지하였으며, 진주 시내에서 가장 좋은 유치원으로 성장시켰다.
칠암동 본당의 첫 한국인 사제 3대 주임 백형기 신부는 괄목할 만한 신자수의 증가와 더불어 새로운 발전의 시기를 열었다. 백 신부는 부임하면서 어려운 본당 살림의 자립 운영을 목표로 '본당 자립의 해' 를 정하여 본당 공동체 운영의 기틀을 갖추어 갔다. 이어 본당 사설 묘지 설립 인가를 받아 1978년 3월 18일 3,000평에 인가 면적 1,200평인 본당 묘지를 진양군 문산면(현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산389-1번지에 마련하였다. 또한 외적인 활동의 폭을 넓혀 교도소 방문, 성령 세미나 개최, 화해와 쇄신 교육, 본당 반기도회와 반상회의 활성화 등을 통하여 사목적 기초를 닦았다. 이러한 백형기 신부의 열성적인 활동으로 신자수는 급증하였으며, 본당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기가 마련되었다. 더 나아가 백 신부는 봉곡 본당 건립과 상평 지구 사목 및 상평 본당 건립 준비, 공소 사목 활성화까지 힘을 기울였다. 4대 주임 최정오 신부는 피정과 교육을 통한 신자 생활의 쇄신에 힘을 기울여, 신자들의 내적 사목에 힘썼다. 모든 신자들을 대상으로 학교와 산간 학교를 운영하였으며, 사회 복지 측면에서 한센병 환자를 돕기 위한 자선 음악회도 개최하였다. 또한 처음으로 칠암 본당 주보를 발간하여 본당 운영, 교육, 소식 등을 알렸고, 숙원 사업이던 오르간을 구입하여 성가대를 활성화시켰다. 5대 주임 유수일 신부는 신자들의 재교육 활성화에 힘썼으며, 많은 수련회와 피정 그리고 각 신심 단체의 활동을 통하여 본당의 내실을 다지는데 힘을 쏟았다. 특히 성인 신자들을 대상으로 성경 강좌 개설과 성서 40주간 연수 등을 통해 신자들의 성서 읽기에도 주력하였다. 또한 노인 교리반을 개설하였고, 여름 산간 학교 운영을 통해 중고등학생들의 신심도 키워 나갔다.
6대 주임 우리아게레카 신부는 부임한 직후인 1982년 5월에 '행복한 가정 운동' 교육을 실시하여, 이를 통해 생명권에 대한 위협이 날로 더해지는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 자세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방법' 을 강조하였다. 또한 1983년 한 해에 모두 여덟 차례의 영세식을 가져 성인 254명, 어린이 23명을 새 교우로 맞아들였다. 당시 레지오 마리애의 꼬미시움은 교구 내 하나만 설치하게 되어 있었는데, 칠암동 본당에는 또 하나의 꼬미시움이 설치될 정도로 헌신적인 전교 활동을 펼치는 평신도들이 많았다. 1984년 1월 25일에는 교회의 일치를 위한 구교와 신교의 합동 기도회라는 뜻깊은 행사가 열려, 진주 감리교회 이성민 목사와 개신교 신자 50명 그리고 우리아게레카 신부와 250명의 본당 교우들이 참석하였다. 1984년 6월 10일에는 중단되었던 본당 주보를 다시 발행하였고, 수녀원을 신축하여 1985년 1월에 축복식을 가졌으며, 4월에는 연령회가 발족되었다. 7대 주임 권용희 신부는 6년간 재임하면서 교세를 크게 일으켰는데, 특히 본당 활동을 반으로 나누어 그 반을 남성들에게 분담하게 하는 등 남성 단체를 활성화시켰다. 또한 신자들의 신심 강화를 위해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성서 교육 및 재교육, 성지 순례와 피정 등을 실시하였다. 1987년에 보좌 신부로 부임한 김찬선(레오나르도) 신부는 직접 그레고리안 성가를 가르치는 등 성가대를 발전시켰다. 1989년 5월 14일에는 본당 설립 25주년 경축 기념 행사의 하나로 25주년 기념 책자 발간을 위한 편찬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1990년 10월 4일에는 본당 설립 25주년 은경축 행사를 실시하였다.
8대 주임 박병윤 신부가 부임한 해인 1991년 12월 27일 성당에 화재가 발생하여 감실과 제의실을 제외한 201평이 모두 전소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새 성전 건립을 추진하여 1992년 9월 23일에 새 성전 신축 기공식을 가졌으며, 마침내 1993년 11월 9일 지하 1층, 지상 2층에 605평 규모의 새 성전이 완공되어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9대 주임 이병돌 신부는 성전 건축에 힘을 쏟았던 신자들이 신앙 생활에 전념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사순절 남성 및 여성 피정과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본당 여러 단체들의 신심을 더욱 깊게 하였고, 노인교리반을 통해 노인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실시하여 입교시켰다. 또한 성당 도서실을 재정비하여 개관하였으며, 1996년 3월 31일 노약자와 장애인을 위한 리프트를 본당에 설치하고 조경 공사도 새로 하였다. 10월에는 성모상을 자연석으로 꾸며 축성하고, 본당 묘지를 재정비하여 100기를 더 신설하였다. 10대 주임 강효식 신부는 수녀원을 재건축하여 1997년 8월 15일에 축복식을 가졌고, 사회 복지 활동으로 재가 복지 봉사와 사랑의 쌀나누기 항아리를 마련하여 필요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가져가게 하였다. 1998년에는 호명환(가롤로) 보좌 신부의 주도로 노인들을 위한 재가 복지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 장성 노인 요양원 '프란치스코의 집' 의 협조를 얻어 본당 신자들이 자원 봉사자로 참여하였으며, 가정 봉사부가 파견되어 무의탁 노인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다양한 가정 일들을 돕고 보살폈다. 같은 해 교구의 본당 분리로 신자 1,576명이 6월 25일 신설된 망경동 본당으로 전출되어 칠암동 본당의 교세는 줄어들게 되었다. 현재 본당에는 2003년 2월에 11대 주임 이태성 신부가 부임하여 사목 활동을 펴고 있다. (→ 마산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칠암 본당 25년》, 천주교 마산교구 칠암동 교회, 1990/ 작은 형제회 한국 순교 성인 관구, 《한국의 작은 형제들 - 작은 형제회 한국 60년사》, 가톨릭출판사, 2000. 〔崔先惠〕
칠암동 본당
七岩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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