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품

七品

〔라〕ordines septenarii · 〔영〕Seven Or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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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품 중 사제품을 받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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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품 중 사제품을 받고 있는 모습.

사제직 후보자가 처음으로 받았던 수문품(守門品, ostiariatus)에서부터 사제품(司祭品, presbyteratus)까지 일곱 단계의 품계를 가리키는 용어.
현재는 사제품, 부제품(副祭品, diaconatus)만 그대로 남아 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시종품(侍從品, acolythatus)과 강경품(講經品, lectoratus)은 시종직, 독서직으로 바뀌었으며, 차부제품(次副祭品. subdiaconatus)과 구마품(驅魔品, exoricistatus), 수문품은 없어졌다. 로마 교회에는 이 칠품 제도가 251년에 이미 확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교황 고르넬리오(251~253)가 251년에 안티오키아의 주교인 파비오(Fabius, 250/251?~252?)에게 보낸 편지에서, 로마 교회의 교계 제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 칠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대품(ordines maiores)과 소품(ordines mino-res)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부제직에 이어 차부제직이 생겨났으며, 로마에는 일찍부터 일곱 부제가 있어 각자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 직무는 애덕의 봉사(ministerium caritatis)였다. 이 부제들은 각자 7명의 협력자를 두고 있었는데, 이 협력자들 가운데 첫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을 차부제, 나머지 여섯 사람을 시종이라고 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부제가 늘어났으나, 이 차부제는 아직 시종 가운데 첫 자리에 있는 사람(primus inter pares)일 뿐이었다. 이 교역자들 외에도 또 다른 세 교역자, 즉 수문자와 구마자 그리고 강경자가 있었다. 로마에는 2세기에 이미 강경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강경자로 임명되어 봉사하였으며, 그 자격은 글을 읽을 줄 아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이러한 복잡한 로마 교회의 교계 제도에 관하여 교황 고르넬리오가 쓴 편지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는 로마 교회는 주교를 중심으로 46명의 사제(sacerdoti)와 7명의 부제(diaconi), 7명의 차부제(subdiacom), 42명의 시종(acolythi), , 52명의 구마자(exorcisti) 강경자 (lectores), 수문자(ostiarii)가 있다고 언급하였다(에우세비오, 《교회사》, VI, c. XLIII, n. 11 : G. Bardy ed., 41, p. 156 참조).
소품의 교역직은 7세기에 사라져 차부제직만 남았다가, 10세기에 프랑스에서 이 교역직들이 복원되었다. 그러나 이 교역직들은 사제직에 오르는 단계로 남게 되었다. 이 교역자들에 대한 서품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500년경에 쓰여진 《고대 교회 규정》(Statuta Ecclesiae Antiqua)을 참조할 수 있다. 이 《고대 교회 규정》에서는 또 다른 교역자를 추가로 알려 주고 있다. 즉 시편을 노래하는 교역자(psalmista)인데, 이 직무는 사제가 수여할 수 있었다. 10세기 이후에 이 소품의 교역자들은 구체적인 기능 없이 칭호로만 남았고, 중세 말에 이 소품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직무를 수행하지는 않았다. 이 소품의 성직자들은 성직자복을 입고 머리를 깎고, 즉 삭발례(tonsura)를 받고 무리(collegium)를 이루어 주교좌 성당에서 시간 전례를 바쳤지만, 혼인할 수 있었고 교회녹은 받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생계를 위해서 다른 일을 찾아야 하였으나, 이 소품의 성직자들은 상당히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품에 관한 개혁이 이루어졌으며, 이 개혁은 서품을 성사로 확언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이 문제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었고 주교, 사제, 부제에 관하여 말하면서 주교직을 가장 높은 품계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사제직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았으며, 다른 품계들도 인정하였으나 그것들에 관하여 정확히 규정하지는 않았다. 공의회는 소품들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없앨 것인지에 대하여 논의하였고, 그 결과 1562년에 예비 계획을 내놓으면서 이 품계를 재조직하고자 하였다. 이 계획은 수문자에게는 묘지 관리를 맡기고, 강경자는 예비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게 하고, 구마자는 본당의 병자들을 방문하고 돌보게 하며, 시종은 본당의 세례와 견진 및 혼인 대장을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차부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애긍품을 모으고 예비 신자 교리 교육에서 강경자들을 돕게 하며, 부제는 주교의 감독을 받으면서 애덕의 직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고, 오히려 일곱 품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교령(decretum)이 발표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각 품계의 기능을 명확히 하지 않았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일곱 품계의 관습이 지속되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는 각 품계의 의미와 권한 등에 관해 확정하려고 하였지만, 1870년에 공의회가 중단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런 변화 없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맞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여러 차례 서품의 직무들에 관하여 논의하고 주교직과 사제직, 부제직에 관하여 명확히 규정하였으나, 다른 직무들에 관해서는 언급만 하였다. 결국 공의회 이후의 개혁에 그 연구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1965년에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소품의 교역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고자 위원회를 설립하여 1970년에 연구를 마치고, 1972년 8월 15일 자의 교서 <미니스테리아 궤담>(Ministeria Quaedam)을 발표하여 이 문제를 매듭지었다. 이 개혁에 따라 '성직자' (clericus)라는 표현은 오직 부제, 사제, 주교에게만 유보되었다. 그리고 성직자들의 머리를 깎는 삭발례 관습은 사라졌으며, 교회 입적은 부제품으로 시작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서품'(ordinatio)이라는 말은 전통적인 세 품계(주교품, 사제품, 부제품)에 유보되었으며, 소품의 품계는 둘로 축소되어 시종직과 독서직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소품의 성직자들이 수행하던 직무는 평신도들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 강경품 ; 구마품 ; 대품 ; 독서직 ; 소품 ; 차부제품 ; → 사제직 ; 신학교)
※ 참고문헌  Paulus PP. VI, Litterae apostolicae motu proprio datae Ministeria quaedam quibus disciplina circa primam tonsuram, ordines minores er subdiaconatum in Ecclesia latina innovatir, 15 Augusti 1972 : 《AAS》 64, 1972, PP. 520~534/ E. Lodi, Ministero(Minister), D. Sartore . A.M. Triacca (a cura di), Nuovo Dizionario di Liturgia, Roma, 1984, pp. 838~855/ 一, Il Segno del servizio di Cristo-Ministeri ordinati e istituiti, L. Della Torre . D. Sartore . F. Sottocornola (a cura di), Nelle Vostre Assemblee-teologia pastorale delle celebrazioni liturgiche 2, Brescia, 1984, PP. 260~296/ F. Brovelli (a cura di), Ordine e ministeri, A.J. Chupugco (direzione di), La Liturgia-I Sacramenti : teologia e storia della celebrazione, Anàmnesis 3-1, Genova, 1986, pp. 243~300/ P. Jounel, Les ordinations, A.G. Martimont ed., Les sacraments, L'Eglise en prière III, Paris, 1984, Pp. 154~200. 〔金宗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