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도미니코 수도회의 주교. 신학자.
〔생애와 활동〕 신학 방법론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카노는 1509년 1월 6일 스페인 중동부에 있는 쿠엥카(Cuenca) 주의 타란콘(Tarancón)에서 태어났다. 1523년 그는 살라망카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한 후 살라망카 대학교에서 4~1527년까지 디에고(Diego de Astudillo)로부터 철학을 배웠으며, 1527~1531년에는 살라망카 학파를 창시한 신학자 비토리아(Francisco de Vitoria, 1483~1546)로부터 신학을 배웠다. 1531년 바야돌리드(Valladolid)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성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카란사(Bartolome de Carranza, 1503~1576)의 강의를 들은 카노는 1536년부터 이곳에서 철학을 가르쳤으며, 그해에 학사증을 받았다. 1542년에는 성서학 석사 자격증을 받았고 이때부터 1546년까지 당시 유명한 대학 중 하나인 알칼라데에나레스(Alcalá de Henares)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1550년 두 개의 저서, 즉 《성사 일반 재론(再論)》(Relectio de Sacramentis in ge-nere)과 《고해성사 재론》(Relectio de paenitentia)이 출판되었다. 알칼라데에나레스 대학에서 제자들과 동료 교수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카노는 그의 스승 비토리아가 사망하자 1546~1552년까지 살라망카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였다. 1551~1552년에는 역사에 대한 박식함과 실천 신학 교수 자격을 갖춘 덕분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1519~1556)에게 발탁되어 그의 고문 신학자 자격으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제2기에 참석하였다. 여기서 그는 특히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그리고 미사 봉헌에 대한 토론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1552년 공의회 제2기가 끝난 뒤 황제는 그의 노고를 치하하였고, 그 결과 교황 율리오 3세(1550~1555)는 카노를 카나리아 제도(Canary Islands)의 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2년 후에도 그는 임지로 가지 않았고 《신학의 원천론》(De locis theologicis, 12권, 1563)을 완성하기 위해 주교직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아빌라(Avila) 근처의 피에드라히타(Piedra-hita) 수도원에 은둔하였다. 그러나 곧 바야돌리드로 가게 되었고, 성 그레고리오 대학의 학장으로 임명되어 이후 3년 동안 이 직책을 수행하다가, 1557년 살라망카 성 스테파노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카노가 살았던 시기는 역사적으로 여러 사건들이 얽힌 복잡한 시기였다. 특히 프로테스탄트의 종교 개혁, 트리엔트 공의회, 예수회의 설립, 반종교 개혁 등이 일어났던 투쟁의 시기였다. 카노 역시 155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수도원 내부의 분란 및 종교와 정치 사이의 잦은 분쟁뿐 아니라 스페인 왕실과 교황청 간의 대립에 휘말렸고, 그의 냉정한 성격 때문에 많은 적들을 만들었다. 특히 카노는 예수회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그와 다른 신학적 견해를 지닌 경쟁자로 톨레도(Toledo)의 대주교가 된 카란사는 예수회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고, 예수회와 교황의 신학 노선에 동조하였다. 그로 인해 카노는 카란사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반대하였고, 그를 루터파라고 비난하였다. 결국 카란사의 저서인 《그리스도인 교리 교육에 대한 주석》(Commentarios sobre el Catechis-mo Cristiano, Antwerp, 1588)이 이단 심문에 부쳐졌고 그 검열을 카노가 담당하였다. 그는 많은 문제점들을 나열하면서 카란사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비판인지 아니면 경쟁자에 대한 감정에 의한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이 당시 카노는 예수회원들을 반그리스도의 선구자라고 비난하였다. 그 이유는 도미니코 수도회나 프란치스코회의,설립자들은 기적을 행하였지만 예수회의 설립자인 로율라의 이냐시오(lgnatius de Loyola, 1491~1556)는 기적을 행하지 않았기에, 예수회원들은 하느님의 진정한 복음 전파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 후 예수회원들은 교황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카노의 예수회에 대한 견해는 당시 사회 · 종교적 상황을 고려할 때, 다른 수도회나 교구에서 이룩한 것들을 예수회가 차지함으로써 생긴 반작용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카노가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예수회를 공격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후대 학자들의 견해이다.
1557년 카노는 스페인 도미니코 수도회의 . 카스티야(Castilla) 관구장으로 선출되었지만, 교황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하였다. 또한 1559년에 재선출되었지만, 교황 바오로 4세(1555~1559)의 생존 시에는 승인을 받지 못하였다. 이는 카노가 당시에 반교황청 정책을 펴던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1556~1598)의 신학 조언자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교황과 교황청의 스페인 및 스페인 국왕에 대한 압력에 반대하면서 국왕의 권한을 옹호하였고, 그로 인해 교황 바오로 4세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후임 교황인 비오 4세(1559~1565)에 의해 로마에서 도미니코 수도회 관구장으로 임명받은 그는 1560년 스페인으로 돌아온 지 몇 달 후인 9월 30일, 51세의 나이로 톨레도에 있는 순교자 성 베드로 수도원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신학 사상〕 카노의 신학적인 명성은 그의 저서 《신학의 원천론》과 관련이 있다. 이 책은 그의 스승인 비토리아의 신학에서 영향을 받아 신학에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였다고 평가된다. 이 저서로 그는 신학 방법론의 개혁자 혹은 현대 기초 신학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이 저서의 1권에서는 입문을 다루고 2~11권은 10개의 신학 '장소' (loci)를 다루며, 12권은 스콜라학 논쟁에서 '장소' 의 사용에 대해 설명한다. 성서 해설을 다루려고 했던 13권과 이방인 · 유대인 · 무슬림에게 가톨릭 신앙을 설명하려고 했던 14권은 그의 사망으로 완성되지 못하였다. 12권으로 마감된 이 저서는 그가 사망한 지 3년 후에 출판되었다.
《신학의 원천론》에 따르면, 신학의 공통 소재는 성서, 성전, 교회, 공의회, 로마 교회(교황), 교부들, 신학자들, 인간 이성, 철학, 역사 등이다. 앞의 7개는 신학 본래의 것이며, 뒤의 3개는 간접적인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성서와 성전이다. 이 10개의 장소(원천)는 다시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즉 신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원천(loci theologici propii)과 다른 학문으로 인식할 수 있는 원천(loci theologici alieni vel adscript)이다. 그리고 첫 번째 것은 다시 둘로 나뉠 수 있는데, 하나는 계시를 구축하는 것 즉 성서와 성전이며, 다른 하나는 계시를 해석하는 것 즉 교회, 공의회, 로마 교회(교황), 교부들, 스콜라학 신학자들이다. 이렇게 분류하여 설명하는 이 저서는 계시와 인간 이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10개를 좀 더 상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성령의 감도로 쓰여진 성서는 각 부분이나 사상에서 무류성을 갖는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와 사제를 통해 전승되어 온 성전의 권위이다. 성전이 필요한 이유는 성서 안의 어떤 진리들이 불분명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말로 전승된 전통은 어떤 면에서 글로 쓰여진 것보다 더 신빙성이 있다. 세 번째, 가톨릭 교회는 교의의 보편성에 근거하여 신앙에서 교회의 무류성을 보여 준다. 네 번째, 공의회는 교황의 동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다섯 번째, 교황의 권위는 사도 베드로의 권위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황이 사적으로는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하느님의 도움을 받은 윤리와 교의의 문제에서는 오류를 범할 수 없다. 여섯 번째, 교부들 각 개인은 신앙 문제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성서 해석과 신앙과 관련된 교의에 대해서는 교부들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결정적인 것이 된다. 일곱 번째, 카노는 스콜라학 신학자들의 권위를 언급하면서, 프로테스탄트에 대항하여 가톨릭 교회의 신앙을 옹호하는 스콜라학 신학자들과 일반 신학자들의 교회에 대한 공헌을 다루었다. 그리고 신앙과 윤리 문제에 있어서 신학자들이 모두 공통 의견을 갖는다면 신학적으로 신빙성 있는 것이 되며 어떠한 반대 사상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여덟 번째, 건전한 인간 이성(자연적 지성)은 신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아홉 번째, 모든 철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지식의 확실한 인식이다. 만약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과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 아리스토텔레스(Anistoteles, 기원전 384/383-322/321)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를 놓고 본다면, 아우구스티노나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우선권이 있다. 열 번째, 카노는 역사적인 비판에서 받아들여진 책이나 교회의 인정을 받은 책은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라며 인간 역사의 권위를 설명하였다.
〔평 가〕 카노는 《신학의 원천론》에서 신학의 주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고 있으며, 추상적인 것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다루고 있다. 또한 휴머니즘이나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 등으로 인해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혁명적인 시각으로 성서를 해석함으로써 성전을 거부하고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을 부정하려는 당시의 신학 · 철학적 경향에 대항하여, 신학적 · 형이상학적 인식론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호교론적 입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의 저서는 당시에 문제가 되고 있던 방법론을 신학적으로 결정화시킨 작품이다. 그가 제시한 신학 방법론은 훗날 모든 신학 교재에서 채택되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까지 교의 신학의 유일한 방법으로 통용되었다.
또한 그는 이 저서를 통해 사상의 박식함과 논리적 명확성을 보여 주는 한편, 아름다운 문장을 사용함으로써 휴머니즘을 주장하는 이들도 받아들일 만큼 신학적 문학성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그로 인해 카노의 저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데, 그것은 문체뿐만 아니라 그의 깊은 교양과 바른 판단에 의한 정확성 때문이다. 그래서 카노를 신학사(神學史)에서 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버금가는 신학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 기초 신학 ; 신학 ; 신학사)
※ 참고문헌 F.A. Caballero, Vida del Mon. Fray Melchior Cano(Conquenses illustres, 2), Madrid, 1871, 2nd ed. 1980/ F. Cicchitti-Suriani, Melchior Cano, Aquila, 1890/ A. Lang, Die Loci Theologici des M.C und die Methode des dogmatischen Beweises. Ein Beitrag zur theol. Methodologie und ihrer Geschichte, Miinchen, 1925/ F. Diekamp, M. Cani de attritione et contritione doctrina, Xenia Thomistica, III, Roma, 1925/ V.B. de Heredia, M.C. en la Universidad de Salamanca, La Ciencia tomista 24, 1933, pp. 178~208/ F. Ehrle, Los manuscritos vaticanos de los telogos salmantinos del siglo XVI, Madrid, 1930, pp. 104~112/ E. Marcotte, La nature de la Théologie d'après M.C., Ottawa, 1949/ V.B. De Heredia o.p., 《DSp》 2, 1953, pp. 74~751 R. Hernandez, Diccionario de Historia Eclesiastica de Espaia, Madrid, 1972, pp. 333~334/ G. Werner, Das Jus Divinum der Confessio integra iibei Melchior Cano, o.p., Roma, 1976/ M. O'Shea, Mission or martyrdom? The Spirituality of Melchior de marion Bresillac and society ofAfrican missions, Roma, 1988/ B. Krner, Melchior Cano-De locis Theologicis, Graz, 1994/ P. Gantly, La voix qui t'appelle : Vie de mon. Melchior de Marion Brsillae, Roma, 1994/ G. Occhipinti, La scuola teologica di Salamanca, Storia della teologia, vol. 2, Da Pietro Abelardo a Roberto Bellarmino, Bologna · Roma, 1996, pp. 458~463. 〔李再淑〕
카노, 멜키오르 (1509~1560)
Cano, Melhior
글자 크기
11권

1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