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스페인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후에 사제가 됨.
〔생애와 작품〕 1601년 3월 19일 스페인의 그라나다(Granada)에서 제단화를 만드는 미겔 카노(Miguel Cano)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614년에 그의 가족 모두가 세비야(Sevilla)로 이주하였다. 1616년부터 세비야에 있는 파체코(F. Pacheco, 1564~1654)의 작업장에서 8개월 동안 회화를 배웠으며, 몬타녜스(J.M. Montañés, 1568~1649)에게서 조각을 배웠다고 한다. 이때 함께 공부한 동료가 벨라스케스(D. Velázquez, 1599~1660)로, 카노는 자신보다 두 살 많은 벨라스케스와 이때부터 일생 동안 친구로 지냈다. 세비야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그의 첫 작품으로 알려진 <성 프란치스코 보르자>(St. Franciscus Borgia)와 채색된 나무에 조각을 한 <성모자>, 그리고 유일하게 현존하는 제단화인 성 바울라 수도원 성당에 있는 사도 요한에게 헌정된 제단화가 있다. 이 제단화는 <성 예로니모>, <성작을 들고 있는 사도 요한>, <천상의 도시 예루살렘을 보는 사도 요한>, <하느님의 환시를 보는 사도 요한>, <어린 양의 환시를 보는 사도 요한>, <성찬식의 성모 마리아> 등 총 여섯 점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대규모로 우아한 선과, 특히 투명하고 창백한 색상을 사용하고 있다.
1638년 1월 마드리드로 간 카노는 올리바레스(Oliva-res) 공작의 후원을 받으며, 궁정 화가로서 스페인의 왕 펠리페 4세(1621~1665)의 왕실 작품들을 복원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이 작업을 통해 16세기 베네치아 대가들의 화법을 습득하게 되었고, 이는 이후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의 작품은 <성 이시도로의 우물의 기적>(1645~1646)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세비야 시기보다 자유로워진 붓질과 밝은 색채를 보여 준다. 1652년부터 카노는 주로 그라나다에서 작업을 하였는데, 스페인 바로크 건축물 중 가장 대담하고 독창적인 그라나다 주교좌 성당의 정면 입구를 도안하였다. 그는 1658년 사제로 서품되어 본격적으로 그라나다 주교좌 성당의 장식에 전념하였다. 그라나다 주교좌 성당에는 그의 걸작으로 여겨지는 채색 목조 소상(小像)인 <무염 시태〉(1655~1656)를 포함한 여러 회화와 조각들이 있다. 그는 1660~1664년까지 이 성당의 돔 장식화인 <성모의 일생>을 제작하였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가 베드로 대성전의 돔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은 것처럼, 카노는 그라나다 주교좌 성당의 정면 입구가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667년 9월 3일 그라나다에서 세상을 떠났다.
〔평 가〕 카노의 성격은 다소 불안정하였으나, 작품은 고요하며 심지어 달콤하기까지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건축가와 조각가로도 활동한 다채로운 재능뿐만 아니라 강한 성격 때문에 카노는 스페인의 미켈란젤로' 라고 불리기도 한다.
※ 참고문헌 H.E. Werthey, Alonso Cano : Painter, Sculptor and Architect, Princeton Univ. Press, 1955/ Jonathan Brown, Images and Ideas in Seventeenth Century Spanish Painting, Princeton, 1979. 〔鄭恩賑〕
카노, 알론소 (1601~1667)
Cano, Alon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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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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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시도로의 우물의 기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