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파초, 비토레 (1460?~1526?)

Carpaccio, Vituc

글자 크기
11
<성녀 우르술라의 생애> (왼쪽)와 <만 명의 순교자> .
1 / 3

<성녀 우르술라의 생애> (왼쪽)와 <만 명의 순교자> .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에 속한 화가. 본명은 비토레 스카르파차(Vittore Scarpazza) .
〔생애와 작품〕 베네치아에서 모피 상인인 피에트로 스카르파자(Pietro Scarpazza)의 아들로 태어난 카르파초는 벨리니 형제(Gentile Bellini, Giovanni Bellini)의 제자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바스티아니(Lazzaro Bastiani, 1449?~1512)를 그의 스승으로 여긴다. 그는 그림을 시작할 무렵,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 1430?~1479), 벨리니 형제, 자코메토 베네치아노(Jacometto Veneziano, 1472~1497)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또한 그의 초기 회화 작품에 페루지노(Perugino, 1450?~1523)의 영향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카르파초가 로마를 방문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카르바초는 특별히 공식적인 지위도 없었으며, 벨리니 가문처럼 귀족들의 후원을 받지도 않고 베네치아의 중산 계급을 위한 화가로 활동하였다. 유일하게 베네치아의 도제 궁(Palazzo del Doge)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곳에 <산 마르코의 사자>(Ⅱ leone di San Marco, 1516)를 그렸는데, 이 작품은 현존한다. 그러나 <안코나의 역사>(Storia di Ancona)라는 작품은 1577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카르파초는 화가로서의 생애 대부분을 베네치아의 평신도 단체인 스쿠올라(Scuola)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데 보냈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현재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Accademia di Belle Arti에 있는 <성녀 우르술라의 생애>(Vita di Sant'Orsola, 1490~1495)이다. 그는 <성모의 생애>(Vita della Vergine), <성 스테파노의 생애>(Vita di Santo Stefano, 1514), <성 예로니모의 생애>(Vita di San Gerolamo), <성 제오르지오와 용>(San Giorgio e il drago)등과 같은 여러 성인의 일생을 그린 작품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1506년경에는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델리 스키아보니 스쿠올라(Scuola di San Giorgio degli Schiavoni)에 <마태오를 부르심>(La chiamata di Matteo)을 제작하였다. 또한 산 알비소(San Alviso) 성당에는 여덟 개의 패널을 이어 요셉의 이야기, 시바의 여왕, 욥, 레베카를 그렸다. 이 작품은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카르파초의 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카르파초 회화는 동시대의 다른 베네치아 화가들처럼 만테냐(A. Mantegna, 1431?~1506)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다른 어느 화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베네치아의 세련됨을 재현한 독특한 매력을 인정받고 있다. 베네치아의 뛰어난 풍경화가인 과르디(F. Guardi, 1712~1793)와 카날레토(Canaletto, 1697~1768)보다 이미 오래전에 카르파초는 운하와 운하선을 묘사한 역사가이자 시인이었다. 그의 작품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황금 시기를 사진처럼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그는 베네치아의 모든 화가들 중 가장 베네치아인다웠으며 베네치아 도시 자체를 최대한 이해하고 정확히 인식하였다. 더구나 그는 동방에 관심이 있어 동방의 의상은 물론 경치를 담기도 하였다. 1511년 카르파초는 만토바 영주의 주문을 받아 예루살렘의 광대한 정경을 완성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가 젠틸레 벨리니(Gentile Bellini, 1429?~1507)와 함께 콘스탄티노플에 다녀왔을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추측일 뿐이며, 1486년 마인츠에서 출판된 브레이덴바흐(B. von Breydenbach, 1440~1497)의 여행기에는 로이비치(E. Reuwich, 1460?~1490)의 그림만 실려있고 그의 작품은 누락되어 있다.
카르파초는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만큼 깊은 종교적 서정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표현은 활기가 다소 부족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천재성은 사실적인 묘사에 있다.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에 있는 그의 <만 명의 순교자>(II martirio dei diecimila Cristiani del monte Ararat)라는 작품은 고요할 뿐 아니라, 절묘한 위엄과 의기양양한 영웅적 행위를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로 표현하였다. 베네치아의 산 비탈레(San Vittale)에 있는 말탄 기수의 그림(San Vitale a cavallo)은 베로네세(P. Veronese, 1528~1588)보다 앞선 가장 아름다운 장식화이다. 감상적인 면에서 카르파초는 매혹적이다. <성녀 우르술라의 생애>는 매우 서사적이고 교훈적이며, 베네치아의 모든 것을 화려한 스펙터클 속에 융합하였다. 또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현시>(La visione di Sant'Agostino)에는 정교함과 고상함이 깃들어 있으며, 그의 후기 작품인 <그리스도의 죽음>(La preparazione del sepolcro di Cristo, Berlin-Dahlem, Gemaildealeleie)에는 초기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영적인 긴장감이 드러난다. 카르파초는 1526년경 베네치아에서 죽었다고 다소 불확실하게 전해지며, 그의 두 아들인 피에트로(Pietro)와 베네데토(Benedetto)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화가가 되었다. 특히
베네데토는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아 16세기 중반의 뛰어난 화가로 기록되고 있다.
※ 참고문헌  John Steer, Venetian Painting : A Concise History, London, Thames & Hudson, 1985/ Patricia Fortini Brown, Venetian Narrative Painting in the Age of Carpaccio, Yale Univ. Press, 1990/Stefania Mason Rinaldi, Carpaccio : The Major Pictorial Cycles, Skira, 2000/ F. Valcanover, Carpaccio, AA.VV., The Great Italian Painters. Masters ofthe Reneissance, Scala, 2004, PP. 485~561. 〔鄭恩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