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와 중앙 아프리카의 접경 지역에 있는 국가로, 공식 명칭은 카메룬 공화국(République du Came-roun). 북서쪽으로 나이지리아, 북동쪽으로 차드, 동쪽으로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남쪽으로 콩고 · 가봉 · 적도 기니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남서쪽으로는 기니 만과 접해 있는 세모꼴의 나라이다. 면적은 469,440k㎡, 인구는 15,200,00명(2003)이며, 수도는 야운데(Yaoundé)이다. 프랑스어와 영어가 공용어이지만 여전히 방언이
쓰이고 있다. 카메룬에는 100개 이상의 종족 집단이 모여 있고, 이로 인해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복합성을 띠고 있다. 주요 종족 집단은 팡족(Fang)과 바밀레케족(Bamileke)으로 각각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기타 두알라족(Duala) 풀라니족(Fulan)과 그 밖의 소수 집단들이 있다. 인구의 40%가 그리스도교, 20%가 이슬람교 신자이며, 그 외 토착 종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있다.
이 지역은 본래 반투계(Bantu) 종족이 거주하고 있었고, 1472년 포르투갈의 항해사 페르난도 포(Fernando Póo)가 카메룬 해안에 도착하였을 때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다. 후에 몇몇 집단들이 적도 아프리카로부터 카메룬 남부 지역에 정착하였다가 서부로 터전을 옮겼고, 그들의 뒤를 이어 풀라니족 무슬림들이 11세기와 19세기에 나이저(Niger) 강 분지로부터 들어와 북부에 정착하였다. 1520년 무렵에는 포르투갈인들이 사탕수수 농장을 세우고 노예 무역을 하였으나, 1600년대초 노예 무역의 지배권을 네덜란드인들에게 빼앗겼다. 17세기에 유럽인의 무역 기지가 건설되었으나, 연안 부 족들은 백인이 내륙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물물 교환만 가능하였다. 1800년경에 연안은 영국의 세력하에 들어갔으며, 1837년 빔비아(Bimbia) 왕은 두알라(Duala) 하구 주변을 영국에 할양하였다. 1845년 영국인들이 침례교 선교 기지를 획득하였으며, 1858년 빅토리아(Vicona)라고 부르는 해방 노예의 이민지를 건설하였다. 1868년 독일은 연안에 최초의 무역 기지를 설치하였고, 1884년에는 카메룬을 보호령으로 하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중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합동 작전의 승리로 독일군이 스페인령 기니(적도 기니)로 후퇴하였고, 1919년 카메룬은 런던 선언에 의해 프랑스 관할구와 영국 관할구로 나누어졌다. 이어 1922년 국제 연맹에서 프랑스와 영국에 두 관할구의 통치를 위임함에 따라, 프랑스가 전체 영토의 90%, 영국이 10%를 위임 통치하게 되었다. 1946년 위임 통치가 국제 연합(UN)의 신탁 통치로 바뀌었고, 1960년 프랑스의 신탁 통치를 받던 지역은 독립 공화국이 되어 국제 연합에 가입하였다. 그 결과 1960년 동카메룬, 이듬해 나이지리아의 일부였던 서카메룬이 각각 독립하였고 이들이 합쳐져 연방 공화국이 되었다. 1972년 '연방제' 를 중지하고 국가 이름을 '카메룬 연합 공화국' 으로, 그리고 1981년에는 '카메룬 공화국' 으로 변경하였다. 독립 당시부터 카메룬의 대통령을 지낸 아마두 아히조(Ahmadou Ahid-jo)가 1982년에 사임하고, 총리였던 폴 비야(Paul Biya)가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가톨릭의 역사〕 1472년 포르투갈인이 입국한 이후에 전개된 본격적인 선교 활동은 1883년 입국한 성령 수도회 선교사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1890년 7월 22일 설립된 카메룬 지목구(1904년 대목구로 승격)는 독일 팔로틴 수도회(천주교 사도회) 회원들이 관할하였고, 같은 회 소속의 헨리 비에트(Henry Vieter) 신부가 지목구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카메룬에 거주하던 독일인들 또한 가톨릭 복음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1892년부터 독일 정 부는 교육 사업을 수행할 선교사들의 입국을 본격적으로 허용하였다. 입국한 선교사들은 사나가(Sanaga) 강 인근에 있는 마리엔버그(Marienberg)와 뒤이어 사나가 폭포 인근에 선교 거점을 마련하였다. 1894년 선교사들은 말라리아로 고통을 받자 보다 안전한 카메룬 산 인근의 엔젤버그(Angelberg)로 선교 거점을 옮겼고, 이어 1898년 에는 두알라에 선교지를 마련하였다.
1914년 카메룬의 북부 지역에 설립된 아다마우아(Ada-maoua, Adamawa) 지목구는 예수 성심 사제 수도회에서 관할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결과 프랑스 군종 신부를 제외한 모든 선교 단체들이 추방되었고, 1922년부터 카메룬 대목구는 성령 수도회에서 관할하였다. 또한 아다마우아 지목구는 품반(Foumban) 지목구(1934년 대목구로 승격)로 이관되었고, 관할 선교회는 독일 예수 성심 사제 수도회에서 프랑스 예수 성심 사제 수도회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지배를 받던 지역에 대한 선교는 밀힐 외방전교회에서 담당하였다. 1931년 카메룬 대목구는 야운데 대목구와 두알라 지목구(1932년 대목구로 승격)로 분리되었다. 이어 1947년 설립된 가루아(Garoua) 지목구(1953년 대목구로 승격)는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에서, 그리고 1949년 야운데 대목구로부터 분리되어 설립된 두메(Doume) 대목구는 성령 수도회에서 관할하였다. 각 선교회의 다양한 활동 결과, 1920~1960년 사이에 가톨릭 신자수는 6만 명에서 70만 명으로 증가하였으며, 1955년에는 교계 제도가 설립되었다. 또한 1989년부터 성 패트릭 외방선교회(킬테건 선교회) 회원들이 카메룬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특히 카메룬의 보건과 교육 활동에 앞장섰으며, 특히 교육에 가장 중점을 두어 대부분의 지역에 가톨릭계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에 따라 공립 학교가 가톨릭 학교를 대신하게 되면서 현재 가톨릭 초등학교들은 폐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카메룬에서 이슬람교는 주로 북부 지역에, 그리스도교는 상대적으로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지만 특히 남부와 서부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이 중 영국의 식민지 경험이 있는 서부 지역은 프로테스탄트가, 프랑스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남부와 일부 서부 지역은 가톨릭이 우세하다. 이슬람교는 풀라니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북부 지역과 일부 바뭄족(Bamum)들이 거주하고 있는 서부 지역에서 우세하다. 토착 종교는 농촌 지역에서 주로 믿고 있는데, 도시 지역에서는 토착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드물다. 현재 카메룬에서는 가톨릭, 이슬람, 침례교, 감리교 등의 많은 종교 단체들이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종교 회합에 대한 법이 카메룬 정부와 종교 단체들 사이에서 존중되고 있는데, 합법적인 활동을 위해 종교 단체들은 국토 행정부(MINAT)의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2003년 현재 카메룬의 신자수는 전체 인구의 26%인 3,956,000명이며, 대교구 5, 교구 18, 본당 680개에, 추기경 1, 대주교 6, 주교 22, 신부 1,369(교구 소속 885, 수도회 소속 484) 종신 부제 21, 수사 198, 수녀 1,749명이 있다.
※ 참고문헌 J. Bouchaud · M. Hebga · EDS., 《NCE》 2, 2003, pp. 912~914/ 200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296/ Anmuario Pontificio 2004, Città del Vaticano, 2004. 〔徐相鉉〕
카메룬
〔영〕Camer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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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