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아시아 북부에 위치한 국가로, 공식 명칭은 카자흐스탄 공화국(Republic of Kazakhstan).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 서쪽으로 카스피 해에 면한 것을 제외하고 5개국과 국경을 접한다. 동쪽은 중국, 서남쪽은 투르크메니스탄, 남쪽은 우즈베키스탄, 동남쪽은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북서쪽과 북쪽은 러시아와 접하고 있다. 국가의 면적은 2,717,300k㎡로, 독립 국가 연합(CIS) 중 두 번째로 큰 영토이다. 인구는 14,830,00명(20003)으로, 이 가운데 카자흐인이 53.4%, 러시아인이 30%, 우크라이나인이 3.7%, 독일인이 2.5%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수도는 아스타나(Astana)이고, 공용어는 카자흐어이며, 러시아어는 민족 간의 소통어로서 공용어와 마찬가지로 사용된다. 국교는 없으나 인구의 47%가 이슬람교, 44%가 러시아 정교를 믿는다.
카자흐스탄 지역은 10세기 이슬람의 유입과 더불어 문화와 예술이 크게 발달하였으나, 카자흐 민족의 역사는 13세기 몽골의 치하에서 벗어난 후부터 시작된다. 카자흐 카나테(Kazakh Khanate) 민족은 우즈베크 카나테(Uzbek Khanate)를 떠나 유목 생활을 하다가 탈라스 계곡 지역에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 카자흐 카심(Kazakh Kasym, 1511~1523)의 통치하에서 카자흐 카나테는 부강해졌고, 인구도 100만에 이르렀다. 이후 카나테는 대호드(Great Horde, 세미레체 지역), 중호드(Middle Horde, 카자흐스탄 중부), 소호드(Little Horde, 카자흐스탄 서부)로 분열 되었고, 이러한 분열과 봉건적인 전쟁의 지속은 러시아의 유입을 불러왔다. 그리고 결국 18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중부와 남부에 진출, 정치적 · 군사적인 면에서의 지배를 강화하고 식민지화를 기도하여 1850년까지 카자흐스탄 전역을 정복하였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정이 붕괴되자, 카자흐 민족주의자들은 카자흐스탄의 완전 자치를 요구하며 자치 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1920년 키르기스 자치 공화국을 발족한 후 오렌부르크(Orenbrug, 현 러시아령)를 수도로 정하였다. 1925년에는 카자흐 자치 공화국(Kazakh Autono-mous Soviet Socialist Republic)을 선포하고 크질오르다(Kzyl-Orda)로 수도를 옮겼다가, 투르크시프 철도(Turk-sib railroad, 터키-시베리아 철도) 건설로 인해 1929년 알마아타(Alma-Ata, 현 Almaty)로 다시 이전하였다. 1936년 카자흐 공화국(Kazakh Soviet Socialist Republic)으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1991년 소비에트 연방(USSR)이 해체되면서 12월 독립하여 현재는 독립 국가 연합의 일원이다.
〔가톨릭의 역사〕 카자흐스탄에 가톨릭이 전래된 때는 2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세기에는 메르프(Merv)에 네스토리우스교가 자리를 잡아 13세기까지 카자흐스탄 지역에 25개의 교구와 150명의 주교들이 있었다. 특히 12세기경부터 몽골이 중앙 아시아 전역을 지배하자, 몽골 지배층 대다수가 믿던 네스토리우스교가 활기를 띠었다. 1253년에는 프란치스코회 회원이었던 빌렘 반 루브록(Willem van Rubroeck)이 이 지역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3세(1277~1280)는 1278년 카자흐스탄과 중앙 아시아 지역에 교계 제도를 마련하고자 킵차크(Kipchak) 교구를 설정하였는데, 이 교구는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가 아닌 비가톨릭 국가에 설정된 최초의 교구였다. 또한 교황 글레멘스 5세(1305~1314)는 1307년 북경대교구를 설정하고, 몬테 코르비노의 요한(Johannes de Monte Corvino, 孟高味諾, 1247~1328)을 총대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성경을 몽골어로 옮기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요한 대주교와 그의 후원자였던 몽골 제국의 칸 테무르(Temür, 1295~1307)가 사망하자 이 지역 교회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워졌으며, 결국 카자흐스탄에는 1991년까지 주교가 파견되지 않았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에 있던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또한 소비에트 연방 내에 거주하던 독일 · 우크라이나 · 폴란드 · 벨로루시(Belaus) 출신의 가톨릭 신자들이 국가의 종교적 탄압으로 추방당하여 1930~1940년대 카자흐스탄 영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스탈린(J. Stalin, 1879~1953)이 사망하기 전까지 이 지역에 거주하던 신부나 신자들은 체포되거나 추방당하는 등 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죽고 흐루시초프(N. Khrushchov, 1894~1971)가 집권하기 시작한 1950년대 중반에는 투옥되었던 많은 이들이 석방되었다. 석방된 사제들 가운데 일부는 계속 카자흐스탄에 남아 세례 · 고해 · 혼인성사 등을 베풀고 성당을 건축하는 등 전교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1950년대 후반부터 흐루시초프가 종교인들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면서 또다시 상황은 어려워졌지만, 1962년 구소련 공산당 제1 서기로 브레주네프(L.I. Brezhnev, 1906~1982)가 선임되면서부터 다시 종교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예수회 소속 신부들이 카자흐스탄에 들어왔으며, 이 외에 감옥에서 석방되었거나 세계 여행을 하던 신부들도 이곳에 성당을 짓고 전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카자흐스탄 전교의 중심지는 카라간다(Karagan-da)로, 이곳은 1950년대 후반부터 신부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하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1970년대 중반 리투아니아 예수회 출신의 둠블랴카스(A. Dumblyackas) 신부가 왔을 때 중앙 아시아 전체를 통괄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고 카자흐스탄이 독립국이 되자 교황청과 본격적으로 접촉을 하게 됨으로써 카자흐스탄에 직할 서리구(apostolic administration)가)가 설정되어, 인근의 중앙 아시아 국가들(타지키스탄 · 우즈베키스탄 · 키르기스스탄 · 투르크메니스탄)을 총괄하였다. 이후 카자흐스탄 정부는 바티칸과 외교적 관계를 정립하여 1995년 알마티(Almat)에 첫 번째 교황 대사가 파견되었다. 이후 신자들이 계속 증가하여 교세가 확대되자 새로운 교계 제도가 요구되었고, 이에 1999년 7월 7일 카라간다 교구가 설정되었으며 까리따스회가 들어왔다. 그리고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수도 아스타나를 대교구로, 알마티를 교구로 설정하였다.
2003년 현재 카자흐스탄의 가톨릭 신자수는 전체 인구의 1.2%인 178,000명이며, 대교구 1, 교구 2, 직할서리구 1, 본당 40개에, 대주교 1, 주교 3, 신부 63(교구 소속 36, 수도회 소속 27), 수사 8, 수녀 66명이 있다.
※ 참고문헌 아우구스트 프란쯔, 최석우 역, 《교회사》, 분도출판사, 1982/ 《카자흐스탄 편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지역정보센터, 1993/ Martha Brill Olcott, The Kazakhs, Stanford, Institution Press, Stanford University, 1987/ 200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p. 309~310. 〔李侑貞]
카자흐스탄
〔영〕Kazakh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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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카자흐스탄 유목민의 전통 가옥인 유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