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프란츠 (1883~1924)

Kafka, Fr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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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의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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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의 카프카.

독일 작가.
〔생 애〕 카프카는 1883년 7월 3일 프라하의 부유한 유대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프라하에서 유대계 독일인이라는 특권 계층에 속하였다. 이 계층은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해 있던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프라하에서 독특한 소수 그룹을 이루고 있었으며, 문화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릴케(R.M.Rilke, 1875~1926), 베르펠(F. Werfel, 1890~1945), 브로트(M. Brod, 1884~1968) 등 많은 유대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종교적 · 인종적 · 문화적 ·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고 있었다. 그들은-카프카의 집안이 그러했듯이-시골에 살았던 자신들의 유대인 조상들의 신앙을 오래 전에 잃어버리고 도시에 사는 과도기적 세대였다. 카프카가 체험한 유대교적인 교육은 피상적인 것이었다. 그는 거의 회당에 가지 않았고, 예배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강제적인 예식으로 보았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유대교와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죽기 전 몇 년 동안, 그는 유대인 친구들 특히 사회주의자인 젊은 유대인 여성 도라 디만트(Dora Dymant)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유대적인 유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히브리어를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팔레스티나로 가려는 유대인들의 시온주의 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팔레스티나 여행을 생각하기도 하였다.
카프카는 프라하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는데, 이 시기에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의 주요 작품을 출판한 브로트를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1906년에 카프카는 법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이듬해에 보험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는데, 긴 근무 시간 때문에 작품을 쓸 수 없어 결국 퇴사하였다. 하지만 1908~1922년까지 프라하의 노동자 재해 보험국이란 준 국가 기관에서 일하였다. 이 기간 중인 1917년에 폐결핵이 발병한 탓에 이후 자주 요양원 신세를 져야 하였다. 그는 이 병을 삶의 위기, 살아 있는 자기 파괴의 표현으로 해석하였으며 이때부터 키에르케고르(S. Kierkegard, 1813~1855) 연구에 몰두하였다. 키에르케고르가 제시한 삶의 문제들 즉 파혼, 사회적 고립, 부조리 등이 자신의 주제와 유사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카프카는 가정을 이루려고 계속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그는 세 번 약혼했다가 모두 파혼하였는데, 그중 두 번은 같은 사람인 펠리체 바우어(Felice Bauer)와의 일이었다. 카프카와 체코의 지식인이자 번역가였던 밀레나 예젠스카 폴라크(Milena Jesenská Pollak)와의 짧고도 정열적인, 주로 편지 교환을 통해 이루어진 관계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카프카의 건강이 나빠진데다 회사 일로 탈진한 상태였기에 서로의 사랑을 키울 수 없었다. 그가 후두결핵으로 죽기 1년 반 전에 만난 도라 디만트는 그 에게 삶의 용기를 주었으며, 카프카가 죽을 때까지 함께 지낸 반려자였다.
회사를 그만둔 카프카는 1923년 작품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갔지만, 이듬해 건강이 악화되었다. 도라 디만트와 함께 프라하에 잠시 머물렀다가 빈 근처의 요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회복되지 못하고 그곳에서 1924년 6월 3일 세상을 떠났다.
〔작품 세계〕 삶과 세계에 대한 카프카의 이해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특히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1788~1860), 니체(F. Nietzsche, 1844~1900), 키에르케고르 그리고 일생 동안에 걸친 아버지와의 대립이었다. 36세였던 1919년 그는 유명한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Brief an den Vater)를 썼다. 이 작품은 아버지와의 관계 청산에 대한 자전적 기록인데, 프로이트(S. Freud, 1856~1939)의 정신 분석적인 요소가 엿보인다. 그의 묘사에 의하면, 카프카의 집안은 힘차고 독단적인 독재자, "거인"이자 성공한 상인에 의해 완전히 지배되었다. 아버지는 민감하고 지성적인 아들에게는 억압적인 초자아로 그려졌고, 계속해서 심판을 내리는 "최종 심급"이었으며 거기에서 피고(아들)의 죄는 애초부터 확실하였다. "유산을 받지 못한" "내쫓긴 아들"은 실존적인 죄의식을 가지고 자기 비하를 하게 된다. 그는 다른 작품에서도 말하듯이 자기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 "더러운 동물"(《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중)로 보았다. 36세의 작가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의 글 전체는 아버지에 관한 것입니다. ··· 그것은 의도적으로 길게 끈 아버지와의 이별이었습니다." 괴테(J.W. von Goethe, 1749~1832)의 자서전인 《시와 진실》(Dichtung und Wahrheit)처럼 카프카의 이 편 지도 실명인 '프란츠' 라는 서명이 있는 개인적인 자료이지만 동시에 문학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며, 삶과 작품 사이의 중요한 연결 부분을 이루고 있다.
카프카의 작품으로는 산문, 파라벨(parabel, 비유 설화) 스케치, 아포리즘(aphorism), 단편 소설, 장편 소설이 있으며, 문학적 자기 표현으로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Brief an des Milena) 등 다수의 편지와 일기가 있다. 카프카는 출판되지 않은 원고는 전부 없애고 이미 인쇄된 작품은 재판 발행을 중지해 달라고 유언하였지만, 그의 작품 대부분은 친구인 유대인 작가 브로트에 의해 출판되었다.
카프카의 모든 작품에 계속해서 나오는 기본 주제는 도착하지 못함, 근본적인 오해, 헛된 기다림, 도달할 수 없음,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상태의 연속 등이다. 그의 작품은 정상적인 것과 환상적인 것이 종잡을 수 없이 뒤섞인 혼합물이다. 그러나 때로 병리 현상의 기만성에 현실의 지위가 부여되거나, 일상적인 발언의 은유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작품이 《변신》(Die Verwandlung, 1915)과 《판결》(Das Urteil, 1916)이다. 《변신》의 주인공은 아침에 깨어났을 때 자신이 밤사이에 거대한 벌레로 변한 것을 알게 된다. 후에 《심판》(Der Prozess, 1925)에 삽입된 이야기 <법 앞에서>(Vor dem Ge-setz)는 접근하기 어려운 의미(법)와 그것에 대한 인간의 끈질긴 열망을 보여 준다. 이러한 글들은 모두 이해와 평정을 얻기 위한 개인의 허영심, 그러나 굽히지 않는 투지에 집중되어 있다. 사실 《심판》은 카프카의 가장 암울한 작품으로, 악은 도처에 있으며 무죄 석방이나 구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고 광란의 노력은 다만 인간의 현실적인 무능을 가리킬 뿐임을 보여 준다. 이처럼 카프카의 작품 세계는 짓누르는 폐쇄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대
안도 없는 일종의 의식의 감옥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의 후기 작품 중 하나인 《성》(Das Schloss, 1926)에서는 새로운 요소들이 보인다. 이 작품은 비극적이지만 황량하지는 않고, 주인공 K를 비롯한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은 역할자에 불과하지만 술집 종업원인 프리다는 확고한 개성을 지니며 냉정하고 사실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로 나타난다. 프리다를 통해 K는 해결의 실마리를 통찰하게 되며, 그가 애정을 갖고 그녀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고독감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에 대한 해석〕 카프카의 작품은 기존의 어떤 문학 사조에도 해당되지 않으며, 단일한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되고, 다른 시각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
우선 철학적 · 실존주의적 해석을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카프카의 작품 세계에서 절대자의 자리는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불안, 근심, 혐오 그리고 부조리이다. 두 번째로 사회학적 ·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을 시도하는데, 이들은 시민 사회에 사는 개인의 소외와 관련지어 카프카의 작품을 해석하였고, 그의 작품에 사회 · 경제적 분석과 폭넓은 사회적 시각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동유럽권에서는 1963년까지 카프카의 작품을 읽는 것이 금지되었는데, 비이성적이고 퇴폐적이며 절망적이고 출구 없는 상황들을 묘사한 그의 작품이 사람들을 무관심하고 수동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세 번째로 심리학적 · 정신 분석학적 해석을 하는데, 그의 작품을 개인적인 삶의 문제에 대한 암호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카프카가 가족, 직업, 종교, 프라하 문화권, 부자 갈등 등에서 자기 자신을 낯선 존재로 여긴다고 해석하였다. 네 번째는 비교 문학적 해석을 하는 것인데, 카프카의 파라벨을 불교와 도교의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다섯 번째로 종교적 해석을 시도하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해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은 카프카의 유대인 친구인 브로트와 유대교의 카발라(Kabbala)적인 요소들(법, 죄, 은총 등)을 제시한 부버(M. Buber, 1878~1965)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카프카의 허무주의를 들어 이러한 해석에 반대하였다.
카프카는 "구원에 대한 굶주림을 가진 유대적 현존재의 신학자" (Günter Anders)로 해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3천년기에 살고 있는 현대의 신앙을
가진 비유대교 독자들에게도 카프카의 작품은 "숨은 신"(deus abscontius)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가득 차 보인다. 하느님, 그리스도, 신앙이 있는, 죄, 은총 등의 개념은 그의 일기나 편지에서 아주 긍정적으로 표현되었다. 사르트르(J.-P. Sartre, 1905~1980)의 주인공이 승리감에 도취되어 "하늘은 비어 있다!" (La ciel est vide!)라고 외친 반면, 카프카의 산문은 "하느님의 죽음" 에 대한 슬픔을 말하고 있다. 이런 변증법적인 긴장 속에서 그는 자신 의 글쓰기를 "기도의 형식" (야누흐)으로 보았다.
카프카의 가장 아름다운 파라벨 중 하나이며 하시딤(Hasidim)의 이야기들을 연상시키는 《황제의 사신(使臣)》에서는 죽어가는 황제가 특별히
자기에게 보낸 사신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 사신은 오지 않는다. 작품의 주인공들처럼 카프카 자신이 참고 견디는 자, 기다리는 자이다. "나는 은총을 받는 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은총에 대한 이 불안한 기대가 은총의 징후 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은총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 희망, 앞으로 나아가기, 이것만이 중요하다." 이렇게 카프카의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삶의 부조리한 모든 어두움 뒤에 의미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영 향〕 카프카의 작품은 그의 개인적 · 인종적 사회적 상황 때문에 개인적인 모순의 징후로 해석될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보편적인 사회적 모순을 폭로하고 있다. 실상 사르트르와 카뮈(A. Camus, 1913~1960) 훨씬 이전에 카프카의 작품은 현대인들의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소외에 대한 증거가 되었다.
카프카의 작품은 오든(W.H. Auden, 1907~1973), 베케트(S. Beckett, 1906~1989), 보르헤스(J.L. Borges, 1899~1986), 카뮈, 되블린(A. Döblin, 1878~1957), 뒤렌마트(F.Dürrenmatt, 1921~1990) 등의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은 많지 않았지만 엄청난 양의 참고 문헌이 지금 까지도 발견되고 있다. 1924년 그의 유고가 출판된 이후 처음에는 반응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의 명성은 히틀러 점령 시기의 프랑스와 영어 사용국에서 널리 알려졌다. 그의 세 누이동생이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 갇혔다가 살해된 것이 바로 그때였다. 카프카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재발견되어 독일 문학에 영향을 미친 것은 1945년 이후였다. 1950년 서독에서 첫 전집이 발간되었는데, 그의 작품은 전쟁과 전후의 상황에 대한 해석으로 읽혔다. 1961년에 카프카에 대한 논문은 이미 5,000건을 넘었다. 그의 소설은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영화화되었으며, 노래(Ein Landarzt, 헨체)와 오페라로 만들어졌고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었다.
※ 참고문헌  Giinter Anders, Kafka Pro und Kontra, 1951/ Gustav Janouch, Gespriche mit Kafka, 1968/ Th.W. Adorno, Kulturkritik und Gesellschaft, 19771 Lee Joo Dong, Taoistische Weltanschaung im Werke Franz Kafkas, 1985/ Klaus Wagenbach, Kafka mit Selbstzeugnissen und Bilddokumenten, 1986/ Max Brod, iber Franz Kafka. Eine Biographie, Neuausgabe, 1986. . 〔崔레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