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계몽주의 철학자.
〔생애와 저서〕 칸트는 1724년 4월 22일 동프로이센의 중심 도시인 코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현 러시아의 Kaliningrad)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 가난한 수공업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부모가 모두 열심한 루터교 신자였기에 경건주의 교육을 받았다. 174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에 입학하여 크누첸(M. Knutzen) 교수의 지도로 수학, 자연 과학, 신학 그리고 철학을 배웠다. 1746년 부친이 세상을 떠난 직후 그는 <활력의 참된 측정에 관한 사상들>(Gedanken von der wahren Schätzung der lebendigen Kriafte)이라는 논문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약 10년 동안 가정 교사 생활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1755년 <불에 관하여>(Mediationum quarundam de igne succincta delineatio)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해에 <형이상학적 인식의 제1 원리에 관한 새로운 해명>(Principiorum primorum cognitionis meta-physicae nova dilucidatio)라는 논문으로 교수 자격을 획득하였다. 이후 약 15년 동안 모교에서 강사(Privato-zent)로 재직하며 논리학, 수학, 형이상학, 윤리학, 인간학, 지리학 등을 강의하였다. 이 시기에 칸트는 강사와 저술가로 점점 큰 명성을 얻었다. 1764년에는 모교로부터 시학 교수직을 제의받았으나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 니라는 이유로 거절하였고, 다음해에 왕립 도서관의 부사서직을 맡아 적으나마 고정 수입을 얻게 되었다.
177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의 논리학과 형이상학 정교수가 되었으며, 이때 교수 취임 논문으로 <감성계와 예지계의 형식과 그 원리들에 관하여>(De mundi sensibilis atque intelligibilis forma et principiis)를 발표하였다. 이후 10여 년 동안 아무런 글도 발표하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한 결과, 1781년 《순수 이성 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을 비롯하여 이 책의 내용을 쉽게 요약한 《미래의 모든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Prolegomena Zu einer jeden kiinftigen Metaphysik, 1783), 제2 비판서의 서론격인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 《실천 이성 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 제3 비판서인 《판단력 비판》(Kritik der Urteils-kraft, 1790),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Die Religion innerhalb der Grenzen der bloßen Vernunft, 1793), 《도덕 형이상학》(Die Metaphysik der Sitten, 1797) 등을 잇따라 출간하였다.
1786년과 1788년 두 차례에 걸쳐 대학 총장직을 역임한 그는 평생 동안 매우 근면하고 절도 있는 생활을 하였으며 독신으로 지냈다. 그는 1804년 2월 12일 물에 탄 포도주를 입에 조금 댄 후 "좋다" (Es ist gu)라는 말을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비에는 "내 위에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 그리고 내 안에는 도덕률"이라는 《실천 이성 비판》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이는 그의 철학의 두 가지 큰 줄기인 엄밀한 과학적 합리성과 엄격한 초월적 도덕성에 대한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 상〕 칸트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그가 던진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세 가지 물음 및 이 모두를 종합한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속에 암시되어있다. 칸트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임을 이미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위의 물음은 곧 인간 이성에 허용되는 지식, 행위, 희망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물음인 것이다. 그는 인간 이성 능력을 위와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차례로 검토하는데, 첫 번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표상하거나 관조하는 능력이고, 두 번째는 인간의 의욕 또는 실천에 관여함으로써 현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며, 세 번째는 개별적인 사례들을 반성하여 일반적 원리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칸트는 이 세 가지 능력을 각기 '이론 이성' , '실천 이성' , '판단력' 이라 부르며, 거기에 해당되는 이성의 활동을 각각 '인식 작용' , '도덕 행위' , '합목적적 판단' 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들을 다루는 영역을 '이론 철학' (인식론), '실천 철학' (윤리학), '희망의 철학' (미학, 종교 철학, 역사 철학)이라 부를 수 있다.
이론 철학 : 일반적으로 칸트는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주의를 비판적으로 종합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경험론이 이성보다 경험을 중시한 이유는, 이성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역할만 하는 데 반해 경험은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가져다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론만 고집하게 되면, 흄(D. Hume, 1711~1776)에게서 볼 수 있듯이 불가지론(不可知論)이나 회의주의에 빠질 수 있다. 합리주의가 경험보다 이성을 중시한 이유는, 경험은 우연적이고 주관적인 것이 되기 쉬운 반면, 이성은 우리에게 필연적이고 보편타당한 지식을 가져다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리주의만 고집
하게 되면, 볼프(Ch. Wolff, 1679~1754) 등에게서 볼 수 있듯이 독단론에 빠질 수 있다. 이에 칸트는 이 두 가지의 장단점을 취합하여 인식의 내용 면에서는 경험론을, 형식 면에서는 합리주의를 수용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 사물에 대한 정보들이 일단 수용되어야 한다. 이렇게 수용된 감각 재료들은 단지 '잡다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이 정리 정돈되고 주어(인식 주관)와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인식이 성립된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틀 즉 형식이 관여하는데, 여기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감성(Sinnlichkeit)의 형식인 공간 · 시간 표상이고, 다른 하나는 오성(Verstand)의 형식인 순수 오성의 개념들 즉 범주이다. 주관적 감성 형식인 공간 · 시간 질서에 따라 감각 재료들이 정돈되고, 이것들이 주관적 형식인 오성의 범주에 따라 종합됨으로써 하나의 대상이 비로소 우리에게 인식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선천적인(a priori) 형식들은 우리에게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자, 대상 세계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식의 기능을 칸트는 선험적(transzendental)이라 부르며, 이로 써 그의 철학은 선험 철학(Transzendental philosophie)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칸트의 이러한 생각은 사고 방식의 대변혁을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사물의 존재가 우리의 의식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칸트로 인해 존재자 일반은 우리의 의식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인간 이성은 어떤 의미에서 현상 세계의 창조자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인식론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이제 우리는 사물 그 자체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에게 보이는 대로의 세계를 인식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 과학을 정립하는 데에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실천 철학 : 위와 같이 발상을 전환함으로써 칸트는 현상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 즉 과학적 지식의 보편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은 모두 주관이 부여한 조건에 제약된 지식이며, 현상계를 벗어난 영역에 대해서는 인식할 수 없다. 칸트는 이것을 일괄해서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라고 부르면서, 이것을 인식하려고 시도할 경우 필연적으로 혼란(이른바 선험적 가상)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 안에는 현상 세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이념들(영혼, 자유, 신등)이 존재하며, 이것들은 사실상 우리의 본래적인 관심사이기도 하다. 선(善)이란 이념도 그중 하나이다. 칸트의 도덕 철학은 '이 세상에서 그 자체로 선한 것은 오직 선의지(善意志)뿐' 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선의지란 옳은 행위를 오로지 그것이 옳다는 이유로 택하는 의지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옳다' 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도덕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칸트에게 있어서 도덕 법칙은 바로 선의 개념의 근거가 되며, 이 도덕 법칙은 '순수 이성의 사실' 로서 우리에게 자명하게 의식된다. 도덕 법칙은 다음과 같은 무조건적 명령으로 되어 있다.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이렇게 도덕 법칙이 가언적(假言的)이 아니라 정언적(定言的)인 이유는, 도덕은 전제되어 있는 어떤 다른 목적(예컨대 행복 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최고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또 도덕 법칙이 명령의 형태를 띠는 이유는, 인간의 의지가 그것을 따르는 일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연적 경향성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덕 법칙은 인간에게 의무로 다가온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있다. 첫째, 도덕 법칙을 따라야 하는 자와 도덕 법칙을 부과하는 자가 동일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도덕 법칙은 이렇게 외적 강제에 의해 부과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는 타율이 아닌 '자율' 이 된다. 둘째, 이 양자가 동일 하면서도 서로 다른 자기라는 점이다. 전자는 현상계(감성계)에 속해 있으면서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는 반면, 후자는 본체계(예지계)에 속해 있으면서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설정한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연(존재)의 세계와 도덕(당위)의 세계에 동시에 속해 있으면서, 전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후자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이다. 칸트는 이러한 능력을 '인격' 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은 항상 목적으로서 대우받아야 할 신성한 것임을 역설한다. 그의 인간 존엄 사상내지 인격주의는 여기서 유래한다.
한편 칸트는 실천 이성이 최고선의 실현을 필연적으로 추구한다는 사실을 들어 영혼의 불멸과 신의 현존을 '요청' 한다. 최고선 실현의 첫 번째 조건, 즉 최상선은 인간 의지와 도덕 법칙의 완전한 일치이다. 그런데 이것은 현세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이 명령될 수는 없으므로 그것은 언젠가는, 말하자면 내세에서라도 가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영혼 불멸' 이 요청된다. 최고선을 실현하는 두 번째 조건은 도덕성에 걸맞는 행복이다. 그러나 예지계에 속한 도덕 법칙은 자기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현상계와 관련된 행복까지 보장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도덕성과 행복의 일치를 보장해 줄 '신의 현존' 이 요청된다. 이로써 칸트의 윤리학은 종교로 연결된다. 이것을 도덕 신앙 또는 이성 신앙이라 부른다.
미학 · 종교 철학 · 역사 철학 :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제1 · 제2 비판서에서 다루었던 자연과 자유(도덕), 이론과 실천의 영역을 매개 · 통일시키고자 하였다. 판단력은 오성과 이성의 중간에 위치하여 양자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칸트가 이해하는 판단력은 선천적인 반성적 판단력으로서, 대상에 대한 구성적 원리가 아니라 규제적 원리이다. 반성적 판단력은 미적 판단력과 목적론적 판단력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미적 판단력의 원리는 주관적 합목적성의 원리이며, 목적론적 판단력의 원리는 객관적인 합목적성의 원리이다. 전자에 의해 두 가지의 미를 경험하는데, 하나는 대상의 형태를 상상력과 오성의 유희를 통해 판단하는 아름다움이며 다른 하나는 상상력과 이성과의 합목적성의 유희를 통해 판단하는 승고미이다. 후자는 유기적 존재자와 자연의 목적론적 체계를 설명하기 위한 규제적인 원리이다. 칸트는 이러한 반성적 판단력의 자연의 합목적성 원리를 통해 자연과 자유, 《순수 이성 비판》과 《실천 이성 비판》을 매개함으로써 비판 철학의 체계적 완성을 도모하였다.
종교론에 있어서 칸트는 도덕 신앙 내지 이성 신앙의 입장을 견지한다. 그의 관심은 오직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이며, 종래의 계시 종교가 지닌 미신적 요소나 비도덕적 요소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에 의하면, 진정한 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도덕적 의무를 신의 명령으로서 준수하려는 심성 안에 있다. 이때 도덕적 완전성을 구비한 신의 아들은 우리에게 이 지상에서 그를 뒤따를 수 있다는 희망의 표상이 된다. 또한 사회적 삶을 통해 쉽게 도덕적으로 타락할 위험성이 있는 인간들에게 있어 순수한 도덕 법칙 아래 결합된 윤리적 공동체의 형성은 악의 지배에서 벗어나 선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러한 윤리적 공동체의 이념은 교회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이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 이며, 다양한 모습의 역사적 · 현실적 교회가 항상 본받아야 할 표상이다. 진정한 종교의 이념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계시 신앙, 역사적 신앙에 대해 참된 교회의 기초가 되는 유일한 신앙은 순수한 도덕 신앙이다. 그러므로 개별적 교회 신앙은 항상 이 후자를 이념으로 삼아 참다운 보편적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칸트는 이것이 지상에
서 실현되는 신의 나라라고 하였다.
칸트 사상의 일관된 이성주의는 '이성적 종교 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이성적 사회' 로도 안내한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의 이성은 인간이 벌이는 불합리한 일들 가운데에서 자연의 의도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피조물의 모든 자연적 소질은 언젠가는 완전하게 합목적적으로 개발되도록 정해져 있다는 통찰에 이른다. 이성이라는 자연적 소질 또한 인간이라는 유(類)를 통해, 그리고 세대를 이어 전개되는 역사를 통해 개발되어 간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회적 결합체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진보하도록 한다. 이러한 진보의 최종 모습은 '보편적인 법이 지배하는 시민 사회' 이다. 이것은 한 국가 내부의 화합뿐만 아니라 영구적인 세계 평화까지 함축한다. 이와 같이 완전한 정의가 구현되는 역사 현실을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자연이 인간에 게 부과한 사명이요, 도덕 법칙의 최종적 요구이기도 하다.
[영 향] 칸트의 철학은 당시 유럽 사회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으며, 이후 여러 철학자에 의해 비판 · 옹호되었다. 그러다가 피히테(J.G. Fichte, 1762~1814)와 셀링(F.W.J. von Schelling, 1775~1854)에 의해 계승된 후 헤겔(G.W.F. Hegel, 1770~1831)에 이르러 하나의 완성된 모습 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독일 관념론' 이다. 또한 19세기에도 한 차례 부흥을 맞게 되는데, 칸트 철학을 새롭게 해석한 일군의 학자들을 일컬어 '신칸트 학파' 라고 한다. (→ 경험론 ; 독일 관념론 ; 슐라이어마허, 프리드리히 에른스트 다니엘 ; 스코투스, 요한네스 둔스 ; 신칸트주의 ; 실제론 ; 역사 철학 ; 윤리학 ; 인식론 ; 종교 철학 ; 합리주의)
※ 참고문헌 Deutsche Akademie der Wissenschaften ed., Kants Gesammelte Schriften, Berlin, 1908. 〔朴贊玖〕
칸트, 임마누엘 (1724~1804)
Kant, Im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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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