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 아돌프 니콜라(1833~1884)

Calais, Adolphe-Now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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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 신부.

칼레 신부.

파리 외방전교회 한국 선교사. 한국 성은 강(姜). 1833년 8월 3일 프랑스 뫼르트에모젤(Meurthe-et Moselle) 크리옹(Crion)에서 출생,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1858년 7월 23일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들어가 1860년 6월에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조선 선교사로 임명되어 1860년 7월 25일에 리델(F.C. Ridel, 李福明)신부와 함께 파리를 떠나 8월 28일에 페낭에 당도하였다. 같은 해 9월 홍콩에 도착하여 조안노(P.M. Joanno,吳) 신부와 페낭 신학교에서 공부한 조선인 신학생 2명을 만났고, 12월에는 산동반도 체푸(芝罘, 현 煙台)에 도착하여 랑드르(J.M.P.E. Landre, 洪) 신부와 합류하였다. 그를 비롯한 4명의 조선 선교사들은 1861년 3월에 체푸에서 출발, 4월 7일 조선에 도착하여 조선교구 4대 교구장 베르뇌(S.F. Berneux, 張敬一) 주교와 부교구장 다블뤼(M.N.A. Daveluy, 安敦伊) 주교를 만났다. 그 후 칼레 신부는 1861년부터 1866년까지 5년 동안 경상도의 서부 지역에서 전교 활동을 벌였다.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가 발생하여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여러 신부들이 체포되자, 칼레 신부는 전교 활동을 중단하고 페롱(S. Féron, 權) 신부와 함께 중국으로 피신하였다. 그리고 상해로 가서 리델 신부를 만나 다시 조선 입국을 시도하는 한편, 페롱 신부와 함께 중국으로 건너간 조선인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한어문전》(Gram-maire Coréenne)의 편찬을 거들었고, 조선에서의 박해 상황과 순교자의 전기 등을 파리 본부로 발송하였다. 그는 프랑스 공사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조선 입국을 시도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였고, 병인박해 때 얻은 병으로 인해 부득이 1869년 프랑스로 귀국하였다. 그 후 1883년에 트라피스트 회원이 되었고, 이듬해에 모벡(Maubec)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녀원의 지도 신부로 활동하였다. 그는 1884년 5월 22일에 사망할 때까지 조선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가 남긴 주요 저서로는 필사본 《강 신부 훈계》가 있다. (→ 리델, 펠릭스 클래르)
※ 참고문헌  《M.E.P. 선교사 약전》/ <조선 포교지에서 트라피스트 수도원까지-마리 칼레 신부>, 《교회와 역사》 119호(1985.5), 한국교회사연구소/ 《리델 문서》 I, 한국교회사연구소, 1994/ 샤를르 달레, 安應烈 · 崔奭祐 역주, 《韓國天主教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96.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