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조지 (1906~1981)

Carroll, George

글자 크기
11
신자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캐롤 신부.
1 / 2

신자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캐롤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몬시놀. 제7대 평양교구장 서리. 세례명은 제오르지오. 한국 성은 안(安). 1906년 4월 8일 미국 뉴욕에서 출생하여 메리놀 소신학교와 대신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수학하고 1930년 5월 워싱턴 가톨릭대학에서 신학사 학위를 받은 후, 1931년 2월 1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된 즉시 한국의 선교사로 자원하여 같은 해 8월 한국에 입국한 후, 메리놀 외방전교회가 관할하던 평안도 지방의 마산(馬山) · 안주(安州) · 운향시(運餉市) · 서포(西浦) 등지에서 10여 년간 사목 활동을 하였다. 1932년부터 1937년까지는 마산 본당의 4대 주임으로서 1934년 새 성당을 완공하여 교세의 확장에 따른 성당의 협소함을 해결하였으며, 공소를 개척해 나가는 등 선교에 헌신하였다. 또한 학교와 유치원을 세워 교육 사업에 힘쓰고, 시약소와 양로원을 설치하여 사회 복지 사업에도 열의를 다하였다. 1937년 4월에 안주 본당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그해 11월에 평양 지목구 관리소로 전임되었다. 1939년에서 1940년까지는 한논(S.Hannon, 韓論) 신부가 사목하던 운향시 본당의 보좌 신부로 봉직하였다. 그리고 1940년 4월부터 서포 본당의 5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활발한 사목 활동을 펴고 있었는데, 1941년 12월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제 당국에 의해 체포 · 구금되었다가 이듬해 6월 메리놀회의 다른 성직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미국에서 버팔로 소신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중 1945년 한국이 해방되자 미국 주교 회의 원조 기구인 가톨릭 구제회(N.C.W.C.)의 한국 지부장으로 입국하여 사회 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가톨릭 구제회가 공급한 밀가루 · 분유 · 의류품 같은 구호 물자들은 교구를 거쳐 각 본당에 배급되었으며, 이러한 사업은 1946년부터 1975년까지 가톨릭 구제회의 책임자였던 캐롤 신부의 절대적인 역할에 힘입어 진행되었다.
캐를 신부는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잠시 일본으로 피신하였다가 미8군 사령부 소속 군종 신부가 되어 다시 입국하였다. 전쟁중에 행방 불명이 된 평양 대목구장 홍용호(洪龍浩, 프란치스코) 주교를 대신하여 11월 20일 평양 대목구장 서리 및 몬시놀로 임명되어, 평양 대목구를 순회하며 신부의 인사 이동을 지시하고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의 재건을 돕고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베푸는 등 교회와 신자들의 신앙 생활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12월 중공군의 개입에 따른 유엔군의 후퇴로 남하하게 되었는데, 영어와 한국어로 쓰인 신원 보증서 2,000여 매를 마련, 배부하여 신자들의 피난을 주 선하고 이들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남하한 뒤에는 미8군 사령부에 머물다가 1951년 1월에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왔다.
당시 유엔군 내부에서는 군종 목사나 신부의 활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측 모두가 뜻을 함께하여 한국에서의 군종 제도 창설을 추진하였다. 캐롤 몬시뇰은 감리교 선교사였던 쇼(W. Show) 박사, 극동 사령부 군목과장 베넷(I.L. Bennett) 목사와 함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정부에 건의하여 대한 민국 국군 군종단이 창설되기까지 막후 주역을 담당하였다. 이에 1951년 2월 7일 육군 본부 인사국에 군승과(軍僧課, 4월에 '군목과' 로 개칭)가 설치되어 국군 군종 제도가 창설되었고, 캐를 몬시뇰은 군종 신부단 고문으로 활약하였다.
한편 구라 사업에도 헌신하여 1950년 6월에는 경기도 광명시 부근에 부지를 매입한 후 성 라자로 마을(현 경기도 의왕시 오전동 87번지 소재)을 세워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거리를 떠도는 한센병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하고 요양하게 하였다.
1953년 한국 전쟁은 끝났지만 평양 대목구가 침묵의 교회가 되자, 캐를 몬시뇰은 한국 가톨릭 구제회 지부장직을 계속 수행하면서 한센병 환자 사업을 비롯한 사회복지 사업에 헌신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4년 보사부 장관 표창, 1961년 대한 민국 문화 훈장 등을 받았다. 또한 가톨릭계 의료 기관들이 의료 사업을 통하여 교회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 가톨릭 병원 협회의 창립을 주선하여, 1967년 7월 협회가 창립되자 그 총재직을 맡았다. 1975년 노령과 건강 문제로 평양교구장 서리를 사임하고 귀국하여 로스엔젤레스에서 휴양 생활을 하다가, 1981년 9월 16일 메리놀회 본부 은퇴 신부 휴양소에서 향년 75세로 선종하여 메리놀회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 군종교구 ; 메리놀 외방 전교회 ; 평양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신문>/ 《경향잡지》/ 《가톨릭 사전》/ 《The Field Afar》/ 평양교구사 편찬위 원회 편, 《천 주교 평 양교구사》,1981/ 패트릭 헨리 클리어리, 《흥남 부두의 군종 신부》, 한국 메리놀 외방전교회, 1991/ 이정순 엮음, 《목 요안 신부》,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1994/ 군종교구사 편찬위원회, 《천주교 군종교구사(군사목 50년사)》, 천주교 군종교구, 2002/ 천주교 구라사 편찬위원회, 《천주교 구라사》, 한국 가톨릭 나사업 연합회, , 2002. 〔崔先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