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준(1912~1949?)

具大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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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교구 신부. 세례명은 가브리엘. 본관은 능성(綾 城). 1912년 4월 27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한말 궁내부(宮內府) 주사(主事)였으며 한일합병 이후 순사 교습소(巡査敎習所)의 한문 교관이었던 구종진(具鍾震, 프란치스코)과 이정자(李貞子, 마리아)의 3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22년 백동(柏洞, 현 혜화동) 성 베네 딕도 수도원 부설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27년 원산교 구를 맡게 된 베네딕도 수도회와 함께 덕원(德源)으로 이주, 1940년 3월 25일 덕원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되었 다. 서품 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덕원 신학교의 감 독〔學監〕 신부로 임명되었고, 이어 1942년 흥남(興南) 본당의 주임으로 임명되었는데 흥남에 수용되어 있던 연 합군 포로(영국군)들을 자주 찾아가 고해성사를 주었다. 또한 일제의 사설 학원 폐쇄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해성 (海星)학원을 계속하였고, 사제관에 대건의원(大建醫 院)을 개설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의료 사업을 전개하 였다. 또 해방 후에는 회령(會寧) 본당의 파렌코프(W. Farrenkopf, 朴) 신부가 소련군에 의해 피살되고 계림(鷄 林) 본당의 짐머만(F.Zimmermann, 闕) 신부가 사망하자, 두 본당의 신자들을 돌보기 위해 자원하여 부임해 갔다. 사목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49년 봄 베네딕도회 원산 수녀원에 피정을 지도하러 갔다가 5월 10일 덕원 수도 원의 독일인 신부 · 수사들과 북한 정치 보위부원들에게 체포되어 평양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그 후의 행방은 알 수 없다. (→ 회령 본당 ; 흥남 본당) ※ 참고문헌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 《구 가브리엘 대준 신 부》, 분도출판사, 1984. 〔尹善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