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나움의 북쪽 약 3km 지점에 있으며, 요르단 강 서쪽 갈릴래아 호수의 북쪽에 있는 성읍. 검은 현무암으로 뒤덮인 언덕 위에 위치해 있으며, 예수에게 꾸짖음을들은 도시. 코라진이란 도시명은 '나무 많은 곳 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도시의 정확한 위치에 대하여 에우세비오(Onomast. 174. 23)와 예로니모(De Situ et Nom. Loc. Hebr. 194)는 가파르나움 북쪽 3km 지점에 폐허가 된 코라진이 위치하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1850년대 벨데(C.W.M. Van de Vel-de)는 키르베트 카라제(Khirbet Karazeh)가 신약성서의 코
라진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이 주장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날의 위치에 코라진이 세워진 것은 바르 코크바(Bar Kokhba, ?~135)가 132~135년에 일으킨 제2차 유대 독립 전쟁으로 갈릴래아 지역의 인구가 급증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코라진은 신약성서에 두 번 언급되는데, 예수가 복음을 전하고 기적을 많이 행하였으나 믿지 않았기에 책망 받은 곳(마태 11, 21 ; 루가 10, 13)이다. "불행하다, 너 코라진아! 불행하다, 너 베싸이다야! 사실 너희 가운데서 행한 기적들을 띠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벌써 자루와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마태 11, 21). 일반적으로 코라진은 베싸이다, 가파르나움과 함께 예수의 갈릴래아 선교의 중심 지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탈무드에서 코라진은 갈릴래아 지역에서 밀 생산으로 유명한 도시라고 언급되어 있다. 또한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오(Eusebius Caesariensis, 260/265?~339)에 의하면, 코
라진은 4세기에 파괴되었다고 한다.
1905년 고고학자인 콜(H. Kohl)과 바칭거(C. Wat-zinger), 1926년 오리(J. Ory), 그리고 1962~1965년과 1982~1986년 예빈(Z. Yeivin)이 이끄는 이스라엘 박물관과 고고학성 발굴팀은 서기 2세기와 4세기의 유대인 도시와 유대교 회당 터를 발견하였다. 24×17m 규모의 이 회당은 초기 유대인 회당의 양식을 간직한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남쪽 즉 예루살렘 방향을 향하고있다. 이어진 발굴을 통해 특히 유대인들의 집, 건물, 도로, 그리고 정결례를 행하는 목욕탕 등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회당의 프리즈(frieze) 부분에는 인간의 형상 및 헤라클레스나 반인반마의 형상을 한 켄타우로스와 같은 신화적인 인물, 군인 그리고 포도 수확과 같은 장면이 새겨져 있다. 회당 안에서 발굴된 소위 '모세의 의자' 는 현무암을 깎아서 만든 돌 의자로, 마태오 복음서 23장 2절의 기록처럼 모세가 율법을 낭독할 때 쓰던 의자를 상징한다. 이 의자에 기록된 아람어 비문에 의하면 이 의자는 회당의 계단과 주랑을 만든 이스마엘의 아들 유다가 기증한 것으로서, 비문의 원본은 이스라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갈릴래아 호수)
※ 참고문헌 R.W. Smith, 《ABD》 1, PP.911~912/ Z. Yeivin, Ancient Chorazin Comes Back to Life, 《BAR》 13, 1987, pp.32~36/ M. Avi-Yonah, 《EJ》 5, PP. 492~495. 〔金永珍〕
코라진
[그]Χοραζίν · [라]Corozain · [영]Choraz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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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코라진의 유대교 회당 유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