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마리오. 한국 성(姓)은 공(孔).
1909년 9월 5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코르데스는 베르사유(Versailees)의 소신학교와 대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1935년 6월 29일 사제 서품을 받 았다. 서품 뒤 우당(Houdan) 본당의 보좌 신부로 임명되어 2년간 활동하다,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1937년 9월 17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1년간의 수련기를 거쳐 한국 선교사로 임명된 후, 1938년 9월 12일 프랑스를 떠나 10월 23일 대구에 도착하였다. 6개월간 한국어와 풍속을 익힌 뒤 1939년 5월 송대 본당(현 언양 본당) 2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1년간 사목 활동을 한 후 이듬해 5월 대구 대명동 본당(현 남산동 본당) 4대 주임으로 전임되었다. 그리고 1941년 9월에는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의 교수로 발령을 받아 교수 신부로 활동하다가 1943년 3월 다시 화원 본당의 5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화원 본당 재임 중설이나 추석 때 각 가정마다 지내는 차례를 성당에서 일괄하여 공동 연미사로 봉헌하게 하였다.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코르데스 신부는 일본의 적성국(敵性國)에 속하는 프랑스인이라는 이유로 일제의 심한 감시를 받았다. 1945년 3월 11일부터는 '서양 신부 집단 수용소 로 변한 대명동 본당의 건물 내에서 대구 대목구의 여러 프랑스인 신부들과 함께 연금 생활을 하였다. 이 생활은 해방 뒤에도 두 달 동안 계속되다가 10월 20일 석방되어 다시 화원 본당으로 돌아왔다.
충청남도 지역이 1948년 서울 대목구에서 분리되어 독립 포교지로 설정되고 그 운영을 파리 외방전교회가 담당하게 되자, 코르데스 신부도 대전 지역으로 옮겨왔다. 이에 8월부터 당진 본당 4대 주임으로 발령을 받아 새로운 지역에서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8월 합덕 본당의 페랭(P.F. Perrin, 白文弼) 신부와 함께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대전 감옥에 투옥 되었다. 그곳에서 고문을 당하던 중 9월 23일과 26일 사이에 피살된 것으로 전해진다.
※ 참고문헌 《M.E.P. 선교사 약전》/ <꼬르데스 신부의 마지막 길>, 역사》 29호(1978. 2), 한국교회사연구소, p. 3/ 염대하,《花園本堂 五十年史》, 천주교 대구대교구 화원 교회, 1988/ 남산 본당 70년사 편찬위원회, 《南山本堂 七十年史》, 천주교 대구대교구 남산 교회, 1999. 〔洪延周〕
코르데스, 마리우스 (1909~1950)
Cordesse, Ma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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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