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

〔영〕Costa 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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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메리카 남부에 위치한 국가로, 공식 명칭은 코스타리카 공화국(República de Costa Rica). 북쪽으로 니카라과, 남동쪽으로 파나마와 국경을 이루고 있으며, 북동 해안선은 카리브 해, 남서 해안은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다. 면적은 51,100k㎡이고, 인구는 3,870,000명(2003) 수도는 산 호세(San José)이다. 공용어로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인구의 대부분은 백인이지만, 메스티소(mestizo)와 원주민들도 일부 있다. 국민의 87%가 국교인 가톨릭 신자이며, 기타 다양한 종파의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있다.
우에타레족(Huetares), 브륜카족(Bruncas, Borucas), 초로테가족(Chorotegs) 등이 살고 있던 이 지역은 처음에는 누에바 카르타고(Nueva Cartago)로 불리다가, 1539년부터 '풍요로운 해안' 을 뜻하는 코스타리카로 불리게 되었다. 1502년 10월 콜럼버스(C. Columbus, 1451~1506)가 4차 항해 중에 대서양 연안 리몬(Limón)에 상륙하였고, 1560년 후안 데 카바욘(Juan de Cavallón)에 의해 본격적인 식민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0년 후인 1570년 과테말라 총독청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었고, 1738년 수도 산 호세가 건설되었다. 18세기 말 스페인이 중앙 아메리카 식민지를 인텐덴시아(intendencia)로 승격시켰을 때, 코스타리카는 니카라과에 속하게 되었다. 1821년 9월 과테말라시티(Guatemala City)에서 중앙 아메리카 지
역의 독립이 선언되었고, 1822년 1월 중앙 아메리카 지역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에 편입되었다. 1823년 멕시코 초대 황제 이투르비데(Agusin de Iturbide, 1783~1824)가 실각함에 따라 코스타리카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과 함께 '중앙 아메리카 연방 공화국' 을 결성하였으나, 1838년 이 연방 공화국이 해체되자 같은 해 11월 코스타리카는 평화적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독립 이후 코스타리카는 초기 정복자 가문들의 비공식 협약을 통해 통치되었으며, 1847년까지 전통적인 정치인과 부유한 지주의 연합이 유지되었다. 1940년 라펠 앙헬 칼데론 과르디아(Rafel Angel Calderon Guardia)가 집권한 이후 민주화가 급진적으로 추진되었으나, 그의 개혁 정책에 불만을 품은 세력에 의한 내분으로 내전이 일어났다. 호세 피게레스 페레르(José Figueres Ferrer, 1906~1990)의 민족 해방군은 1948년 권력을 잡은 뒤 이듬해 공표된 신헌법을 통해 즉각 군대를 해산하였으며, 그 이후로 코스타리카는 군대 없는 나라가 되었다. 1952년 피게레스 페레르는 온건파, 좌익, 중도 자유파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민족 해방당(Partido de Liberatión Nacional, PLN)을 창당하여 1953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민주적 틀 안에서 사회 변혁을 추구하였고, 그의 집권기에 민주주의가 제도화되면서 코스타리카는 번영을 누렸다. 1983년 11월 코스타리카는 '중립 국가 를 선언하였으며, 공식적으로 군대가 없기 때문에 주변 여러 나라의 정치 정세 안정과 민주화 촉진을 지향하는 선린 외교를 유지해 오고 있다. 한 예로, 1980년과 1990년대 이웃 나라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의 내전을 중재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이로 인해 1987년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Oscar Arias Sánchez)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가톨릭의 역사〕 1520년경 선교가 시작되어 17세기부터 본격적인 선교 활동이 시작되었으나, 지역 원주민들은 선교 활동에 크게 저항하였다. 18세기 이들에 대한 선교는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이 담당하였다. 1848년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였고, 1850년 니카라과의 레옹(León) 교구로부터 산 호세 교구가 분리 설립되었다. 1882년 집권한 프로스페로 페르난데스(Próspero Fernán-dez)는 1884년 제정한 법률을 통해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명시하였고, 정교 분리의 방침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교회와 국가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1940년에 집권한 칼데론 과르디아는 가톨릭 교회와의 연계 정책을 통해 교회가 사회 및 경제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고, 이에 부응하여 교회는 고용법 제정, 노동자들을 위한 의료 지원 제도 마련 등 사회 보장 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많은 일을 수행하였다. 1949년 헌법은 가톨릭을 국교로 정하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였으며, 종교적 믿음이나 동기를 바탕으로 한 사제들의 정치적 발언은 허용하지 않았다. 피게레스 페레르 정부는 공공 교육을 확대하면서도, 교회 조직의 원칙과 교육에 대한 이념 등을 존중하고 교회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교회 측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한편 코스타리카 교회는 1960년대 이후부터 더욱 진보적인 사상에 편승하면서 사회 내에서 더욱더 개혁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2003년 현재 코스타리카의 신자수는 3,371,000명이며, 대교구 1, 교구 6, 본당 265개에, 추기경 1, 대주교 2, 주교 8, 신부 755(교구 소속 534, 수도회 소속 221), 종신 부제 2, 수사 47, 수녀 850명이 있다. (→ 니카라과 ; 라틴 아메리카)
※ 참고문헌  강석영, 《라틴 아메리카史》 상,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1996/ David B. Barrett, World Christian Encyclopedia, vol. 1, Oxford Univ. Press, 2001, pp. 695~6971 J.A. Lines · EDS., 《NCE》 4, 2003, pp. 288~290/ 200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298/ Annuario Pontificio 2004, Città del Vaticano, 2004. 〔金志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