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요한. 한국명은 고의선(高宜善) .
〔생애 및 선교 활동〕 1842년 4월 17일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Montpellier) 시로부터 12km 떨어진 몽타르노(Montamaud)에서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로데즈(Ro-dez) 교구의 벨몽(Bel-mont) 소신학교와 몽펠리에의 선교 수도회 대신학교를 거쳐 1866년 12월 10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한 그는 1868년 6월 6일 사제 서품을 받고, 7월 15일 선교지로 파견되었다. 2년간 홍콩에서 부경리계직을 맡은 후, 1870년 12월 30일부터 1872년 6월 22일까지 싱가포르에서 경리계직과 요양소 건설에 종사하였다. 이 때 최초로 건축 일에 관여하기 시작하여, 1872년 홍콩으로 되돌아가 베타니 요양소(Sanatorium de Béthanie) 건설에 종사하였다. 이때 코스트 신부는 고딕 건축에 조예가 깊은 기술자들과 교류하면서 본격적으로 고딕 예술을 비롯한 건축에 대해 경험을 쌓게 되었다.
1874년 상해의 경리부를 맡으면서 조선 포교를 청원하였고, 1875년 11월 21일 청원이 허락되자 조선으로 들어가기 위해 6대 조선 대목구장 리델(F.C. Ridel, 李福明) 주교가 있는 만주의 차쿠로 갔다. 그곳에서 리델 주교가 준비해 오던 《한불자전》(韓佛字典)의 편찬 작업을 맡았으며, 1878년에 일본 요코하마로 건너가 인쇄를 위한 한글 자모를 주조하여 1880년 《한불자전》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한국어 문법책과 《천주성교공과》(天主聖教功課)를 출판하였고, 리델 주교가 나가사키에 설치한 조선 대목구 경리부의 경리부장을 맡게 되었으며, 동시에 인쇄와 관련된 일도 수행하였다. 당시 한글 활자는 코스트 신부의 도안과 지휘로 처음 주조된 것이며, 이후 각 인쇄소에서 사용된 활자들은 그가 창작한 세가지 모형을 본뜬 것이다.
코스트 신부는 1885년 11월 8일 조선 입국 후 조선대목구 경리부를 맡았으며, 1886년 1월 1일 조선 대목구 부주교로 임명되었다. 1886년 한불조약이 조인되어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자 교회가 점차 안정되면서 성당, 주교관, 신학교, 사제관, 수녀원 등 각종 교회 건물의 건축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는데, 코스트 신부는 이후 10년 동안 이러한 건축물의 설계와 시공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886년에는 일본 나가사키의 성서 활판소를 서울로 옮겨와 30여 권의 한글 책을 출간하였으며, 1887년 푸아넬(V.L. Poisnel, 朴道行) 신부가 구입한 종현(현 명동) 성당 부지의 정지(整地) 작업을 시작하여 1890년에 대지 조성을 완료하고 벽돌 제조를 지도하였다. 그리고 1890년 2월 21일 블랑(G-MM-J. Blanc, 白圭三) 주교가 선종하자, 같은 해 9월 21일 8대 조선대목구장 뮈텔(G.-C.-M. Mutel, 閔德孝) 주교 임명 시까지 조선 대목구장 대리직을 수행하였다.
그가 국내에서 제일 처음 지은 건축물은 명동의 주교관으로, 1889년에 착공하여 1890년에 준공하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인 이 주교관은 199평의 H자형 평면의 붉은 벽돌조에 기와를 올린 조지 양식(Georgian style)의 건물로, 2층 베란다가 특징적이다. 1891년에는 조지 양식의 벽돌조 2층 규모인 용산 예수 성심신학교 교사를 지었으며, 국내 최초의 서양식 교회 건축물인 약현(현 중림동) 성당을 1891년에 착공, 1893년 완공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코스트 신부의 설계와 감독 아래 한국인이 시공한 이 성당은 신랑(身廊, nave)과 측랑(側廊, aisle)의 구분이 뚜렷한 삼랑식(三廊 式, basilican) 평면으로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절충한 건물인데, 이후 한국 성당 건축의 모델이 되었다. 또한 1893년에는 조지 양식의 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제물포 수녀원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제물포(현 답동) 성당을 설계하였다. 이렇듯 박해에서 벗어난 한국 교회 발전의 초석을 튼튼히 다진 그는 만년에 고아원에서 어린이들을 돌보다가 명동 성당이 채 완공되기 전인 1896년 2월 28일 장티푸스로 선종하였으며, 현재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명동 성당의 건축〕 한국 천주교의 상징이자 심장인 명동 성당은 한국 가톨릭 성당 건축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 건축사의 대표적 건물이다. 코스트 신부의 설계와 감독하에 1892년 5월 8일 공사를 시작하였고, 신부가 사망한 뒤에는 당시 명동 성당의 3대 주임이었던 푸아넬 신부가 그 대신 공사 감독을 맡아 1898년 5월 29일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공사에는 중국인 벽돌공과 미장이, 목수 등이 동원되어 직접 벽돌을 제작하여 공급하였으며, 독립문을 설계한 러시아인 건축가 사바틴(A.I.S. Sabatin)에게서 건축 기술 및 구조에 관한 자문을 받기도 하였다. 명동 성당은 라틴 십자형 삼랑식 평면의 벽돌조 건물로서 단순한 외관과 견고한 벽체, 분절적 구조의 노출 등 구조 체계와 공법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가깝다. 그러나 뾰족 아치 창, 목재에 의한 교차 리브 볼트 천장, 수직적인 공간 비례, 스테인드 글라스 등 내부 공간은 고딕 양식으로서 손색이 없다. 원래 고딕 양식은 석조에 의해 그 정교함을 나타내지만, 코스트 신부는 적색과 회색의 이형 벽돌을 써서 풍부한 장식적 디테일로 이를 보완하였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폭 29m, 길이 68m, 종탑 높이 46 7m, 건축 면적 427평에 이르는 건물을 순수 벽돌조로 지었다는 것은 교회 건축사뿐 아니라 일반 건축사에서도 기념비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 명동 본당 ; 중림동 본당)
※ 참고문헌 《M.E.P. 선교사 약전》/ 《뮈텔 주교 일기》 1 · 2 · 3 · 5, 한국교회사연구소/ 金正新, 《한국 가톨릭 성당 건축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94/ 林正義 편저, 《명동 성당 100년》, 코리언북스, 1998/ Répertoire des membres de la société des missions étrangères 1659~2004, Archives des missions étrangères, Paris, 2004. 〔金正新〕
코스트, 외젠 장 조르주 (1842~1896)
Coste, Eugène Jean Geor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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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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