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κοινὴ · ko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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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부터 서기 6세기 중엽까지 그리스, 마케도니아, 헬레니즘 문화권에 포함된 동부 지중해 지역과 근동 일대에서 통용된 그리스어. 칠십인역 성서와 신약 성서가 이 언어로 쓰여졌다.
〔형 성〕 그리스는 각 지역마다 자치 정부가 있고 언어 역시 지방마다 다양한 방언 형태로 사용되었으나, 지역 간 교류가 점차 확산되면서 각 지방 방언 중 정치적 · 경제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우세한 지방 방언이 공통 언어 구실을 하였다. 처음에는 지중해 교역의 중심권이었던 이오니아(Ionia) 방언이 공통 언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Delian Lea-gue, 기원전 478)의 맹주로 부각되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아티케(Attike, Attica) 방언이 대표적인 공통 언어가 되었다. 여러 지역의 군대가 모인 동맹군 내의 의사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또 활성화된 교역을 더욱 촉진하기 위하여 공통 언어는 한층 더 중요해졌다. 점차 아티케 방언은 '코이네' (κοινὴ διάλεκτος, 공통된 방언)라 불렸으며, 주변 지방 방언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를 겪게 되었다.
기원전 4세기 말 그리스를 통일한 마케도니아도 처음에는 나름의 그리스어 방언을 사용하였다고 추정되지만, 왕실에서 정치적 · 군사적 이유로 코이네를 적극 수용하였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36~323)이 이집트와 서남 아시아 전역을 정복하여 이른바 헬레니즘 제국을 형성할 때도 코이네가 주요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의 군대 절반 이상이 마케도니아 이외의 그리스 지역에서 차출되었는데, 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솔할 수 있었던 기반이 바로 코이네였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제국이 형성되면서 수많은 그리스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 · 정착하였고, 코이네는 헬레니즘 제국의 통치 언어로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며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2세기 이후에는 거의 모든 그리스어 방언들을 물리치고 유일한 그리스어로 자리잡았으며, 동시에 서남 아시아와 지중해 전역에서 통용되는 세계어로 사용 되었다.
[특 성] 아티케 방언은 코이네 그리스어로 바뀌는 과정에서 발음, 형태, 어순, 어휘 등 여러 면에서 필연적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대체된 다른 방언들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특징적 요소들이 사라지고, 다수 방언의 쓰임새가 수용되었으며, 많은 부분에서 단순화되었다. 한 예로 복합 자음인 -ct- 와 -pp- 은 이오니아 방언 등 대다수의 방언들처럼 -oo- 와 '-po-' 로 바뀌었다(예 : yxocota → yh@ooa) . 특히 대부분의 복합 모음들의 발음이 단일 모음으로 바뀌었고(예 : ei, i, e-) i ; oi → y ; ai → e), 불규칙적인 어미 변화나 격변화는 규칙적인 변화로 바뀌거나 사라졌다. 동사의 기원법과 명사 및 동사들의 양수(兩數) 표현은 모두 사라졌으며, 특히 제국이 형성되자 다른 방언과 하위 계층에서 많은 어휘가 도입되거나 복합어 형태로 새로 만들어졌다. 코이네는 미래 시제 대신 현재 시제를, 비교급보다 최상급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간접 화법보다 직접 화법이 더 널리 쓰였다. 문장에서도 복문은 줄어들고 단문이 성행하였다. 코이네가 헬레니즘 제국의 언어가 되었지만, 현대 국가에서 사용하는 국어처럼 일정한 어문 규범에 따라 표준화된 언어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다만 상업상의 이유로 10에서 20 사이의 숫자 따위만 표준화되었을 뿐이다. 상인들과 선원들, 군인들 등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은 물론 근동의 외국인들까지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기 때문에 코이네의 수준이나 어휘도 사뭇 다양하였고, 성(性)과 수(數)에 대한 일반 규범에서 벗어나는 예가 흔하였다. 이와 같이 코이네는 본래 형용사로 갖는 뜻 그대로 '누구나 사용하는, 공통된' 언어가 되면서 교육받은 이들이 사용하는 문어(文語)보다 구어(口語)적 성격이 강해졌고 문어와 구어 사이의 간격은 점점 커져갔다. 그래서 1세기경에는 식자층에서 글을 쓸 때 고전 시기, 즉 기원전 5세기 때의 아테네 어법을 따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문어에는 영향을 미쳤으나, 구어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코이네로 쓰여진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먼저 기원전 3세기에 옮겨진 칠십인역 성서를 들 수 있다. 또 신약성서와 신약 외경들 및 역사가 폴리비오스(Polybios, 기원전 202~120)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os, 50~138), 유대인 철학자 필론(Philon Judaeus, Philo ofAlexan-dria, 기원전 15/10?~서기 45/50?)과 역사가 요세푸스(F.Josephus, 37/38?~100?)의 저술들을 꼽을 수 있다. 그 밖에 코이네로 쓰여진 일반 문서들은 대략 5만 종 이상에 달한다.
코이네는 4세기부터 중심 언어로 부각된 라틴어에 밀려 6세기경부터 비잔틴 그리스어로 존속하다가 근대 그리스어의 토대가 되었다. 그 존재 자체가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다이스만(G.A. Deissman, 1866~1937)을 비롯한 일련의 학자들에 의해 신약성서를 비롯한 서기 전후 시대의 언어임이 결정적으로 입증되었다. (→ 성서 번역 ; 신약성서 ; 칠십인역 성서)
※ 참고문헌  G. Mussies, languagies (Greek), (ABD) 4, PP.197~198/ 3, pp. 1826~1832. 〔李鎔結〕